바벧론 제국

신 바벧론의 기원과 신흥 (B.C 612-605)

신 바벧론은 시리아의 사막으로부터 문명지대인 하부 메소포타미아로 이

주해 온 셈족의 한 부류를 이루는 아람인이 먼저 이곳에 정주하고 있던 같

은 셈족 계통의 아모리인에 흡수되어 혼합과 혼혈된 주민이 세운 나라로 그

아람인의 한 부족인 칼투족에서 처음 왕조가 나왔기 때문에 갈대아 왕국이

라하며 고대 바벧론의 함무라비왕 이후 역사의 중심지인 바벧론의 옛 도시

를 부흥시켜 이곳에 수도를 정하였기 때문에 신바젤론이라고도 부른다.

때는 앗수르의 쇠퇴기로 아슈르바니팔이 죽던 해 (B.C 627) 칼투족의 출

신으로 앗수르의 남부지역에 있는 군대를 지휘하던 나보폴라살 장군이 그

의임지인 바벧론에서 정권을 장악하여 새로운 왕조를 시작하였다.

처음의 지배력은 바벧론시에 국한되었으나 점차 남부의 바벧론 지역을

장악하였고 B.C 614 년경에는 동방에 있는 메대왕 시악사레스와 동맹을 맺

어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를 함학시켰고(B.C 612) 2년 뒤에는 최후의 보루인

하란을 점령하고 이집트의 도움으로 탈환을 시도한 앗수르의 마지막왕 아슈

루발릿 2세의 공격을 격파하여 신바벧론은 앗수르의 영토를 거의 차지하였

다.

바벧론의 왕성 (B.C 605-562)

초대왕 나보폴라살의 뒤를 이어 왕이된 그 아들 느부갓네살(Nebu-

chadnezzar)은 다니엘이 예언한 금머리처럼 (단 2:36-38) 그의 43년간의 통

치기간은 황금시기를 이루어 외국정벌에서 이집트의 세력을 시리아와팔레스

틴에서 일소해 버리고 오리엔트 상업의 이권을 차지하였다.

이때의유다도 이집트의 영향하에 있다가 바벧론으로 넘어가 마침내 느부

네살에게 멸망하여 많은 백성들이 세차례에 걸쳐 유배를 당했다. 이에 이집

트는 두로, 시돈등 유다 주위의 여러나라를 원조하여 동맹을 맺게하고 바

벧론에 대항케 했으나 바벧론으로 하여금 이집트의 국경선까지 세력을 확정

시켜 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리고 대항한 여러 약소국들은 점령되어 엄벌을 받았으며 지형적으로 견

딜 수 있었던 두로만이 포위 13년 만에중주권을 인정받았을 뿐 이집트 조차

도 나일강까지 휘퇴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1세기도 채 안된 바벧론을 당시 세계 제일의 강대국으로 성장시

킨느부갓네살은 군소국가의 정복과 상업독점으로부터 들어오는 막강한 재정

으로 제국을 일대 번영으로 이끌었다.

당시 느부갓네살은 수도인 바벧론에 수많은 신전과 제단을 세웠는데 특

히신들의 주신인 말둑신을 위해 말둑신전을 55곳,다른 대신의 대신전을 53

곳,땅의 신들인 소신전을 300곳,하늘의 신을 위해 역시 600곳 신들의 여왕

인이시타르를 위한 제단을 180곳에다 세웠으며 고대의 7대 불가사의 하나

인공중정원(옥상정원:메대에서 데려온 왕후를 위해 만든 정원) 을 세우기

도했다.

바벧론의 몰락(B.C 562-539)

느브므갓네살이 죽은 후(B.C 562) 왕권은 그의 아들 Evil - Merodach( 에

윌므로닥, 왕하 25:17 헬라오는 Amel-Aarduk B.C 562-560)에게 계승되었으

나 2년 후인 B.C. 560년에 반역으로 살해되고 그의 처남인 Nergal

-Sharezer(네르갈사레셀 렘39:3 헬라오는 네리그리살 B.C. 620-556)이 4년

간통치하고, 그후 그 아들 Labash - Marduk( 라바시 말둑 혹은 라보소알

동B.C 556?) 올랐으나 9개월 만에 음모단에 의해 살해되고 음모단

의Nabonidus(나보니더스 혹은 Nabonaid B.C 556-539) 라는 귀족이 왕위에

올랐는데 그는 파사만과 애굽의 중간지점인 Tema를 제2수도라하여 11년간

정주하였고 그 아들 벧사살이 부왕으로서 바벧론궁에서 나누어 나라를 다스

렸다. (단 5:1-2 의 느브갓네살이 부친이라 한것은 할아버지를 그렇게 부

른것)

그후 나보니더스는 아라비아 별장에서 죽고 벧사살왕은 매데족속 아하수

에로의 아들 다리오에게 죽임을 당하였고 바벧론은 다리오의 통치하에 있다

가B.C 539년에 일어난 파사의 고레스에게 완전 멸망했다. 이때 파사는 메대

를이겼으나 부친의 궁중정략결혼을 생각해서 속국으로 하지 않고 연합국의

성격을 띠었으며 그후 서아시아 전토를 지배하고 관대한 정책으로 포로들에

게귀환을 허락했다. (스1:1-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