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정복 전쟁
블레셋 인과 최후 결전 : 과거에 아기스의 보호를 받은 바 있는 다윗은봉
신의 위치를 벗어나 예루살렘을 공략하고 이스라엘의 남북을 통일하여온 이
스라엘의 왕이 된 것은 전연 예기치 못한 일로 블레셋을 크게 놀라게 했다.
그의 지위가 급전되어 이제는 블레셋이 다윗의 공격을 받게 된상황이었다.
그러므로 블레셋은 다윗을 쳐서 없애려고 두 차례나 공격해왔다. 이것은
이스라엘과 블레셋은 다윗의 결전이었다.처음에는 아세가에서 엘라 골짜기
를 통하여 격전 끝에 베들레헴을 탈취하고 예루살렘으향하였으나, 예루살
렘의 서남쪽 40km 의 르바임 골짜기에서 다윗에게 격파되었다.
두번째는 직접 르바임 골짜기의 뽕나무 숲에 진을 치고 공격해 왔다. 다
윗은 헤브론의 동북쪽에 있는 아둘람 굴에 본부를 두고 그들에 대항하였다.
이번에 하나님께서는 공격의 방향을 바꾸어 하나님께서 뽕나무 근처에서 소
리를 내실 때 뒤에서 엄습하라고 지시하셨다.
그 공격은 또다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게 했고, 다윗은 멀리 세벧라 구
릉지의 게셀까지 블레셋 인을 추격하였다. 이스라엘은 다윗이 이전에 망명
한 가드와시글락을 빼앗고 블레셋을 굴복시켰다. 이후 왕국이 분열될 때까
지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존재가 되지 못하였다.
다윗의 위대한 통솔력과 인간적인 매력은 그에게 패배한 적까지도 자기쪽
에 받아들였다. 그의 군대에는 블레셋 인가까지도 합세하였고,특히 그레데
섬 출신이라고 생각되는 게렛 인과 베렛 인, 가드에서 온 가드 인등이 있
었다. 다윗의 치세는 정치적으로 이스라엘의 황금시대였다.
암몬, 소바와의 전쟁: 다윗의 생애를 통하여 가장 장기간에 걸친전쟁은 [
암몬과의 전쟁] 이었다. 이 싸움은 다윗의 사절들에 대한 암몬 왕의 모욕적
인 처사가 다윗을 자극하여 일어났다 (삼하 10:1-5) 다윗은 몹시 격분하여
암몬 족의 수도 랍비를 공격하려고 요압이 지휘하는 군대를보냈다.
그동안 암몬 사람들은 자기들이 저지른 무모한 처사를 깨닫고그들이 북쪽
에 있는 아람 족 (수리아) 여러 나라들의 원병을 청하여 다윗을 강력하게
저항할 수 있었다. 그 중 소바는 아람 족의 맹주였다. 아람인의 원병은 적
시에 도착하여 그때 랍비를 포위하고 있었던 이스라엘 군대를 모아서 암몬
족을 구하려고 재차 침공하였으나 또다시 참패를 당했다.
요압은 랍바의 포위 공격을 다시 시도했다. 이 장기간에 걸친 치열한 전
쟁중에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다윗은 헷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수치
스러운 불륜의 관계를 맺었다. 그리고 이 전쟁에서 부하인 우리아를 전사케
하고 밧세바를 자기 손에 넣었다. (삼하 11:25) 이 일에 대해 선지자 나단
은 그를 신랄히 비판했다.
전쟁은 [물의 성읍] 이라고 하는 랍바의 함락이 가까워 결정적인 승리로
끝이 날 무렵에, 요압은 예루살렘에 있는 다윗에게 사자를 보내어 왕이 최
후의 전쟁을 지휘할 것을 진언하였다.
다윗 제국 실현 : 다윗 전쟁의 중요한 결과로는 (1) 이웃 나라에 대항하
여 이스라엘의 국경을 강화하고 (2) 왕궁의 보고를 가득 채워 다윗은 자
기의 백성에게 세금을 부과할 필요가 없게 되었고 (3) 북쪽 지파가 남쪽 지
파를 한하지 않게 되고 (4) 외국에 대해 왕이 위신을 높일것들을 들 수 있
다. 다윗 제국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할 때는 별로 크지않지만, 고대 세계에
있어서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볼 때 그 국토의 면적이 상당히 넓은 편이었
다.
즉, 팔레스틴의 동부와 서부 전역, 말하자면사막에서 바다에 이르기까지
를 합병하고, 남부 국경은 아카바 만으로부터 애굽 강 하구의 지중해에 미
치었다. 블레셋 인들은 남부 해안 평야의 좁고 길다란 지대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견제되었다. 북부의 국경선은 레바논 산맥의 배면을 따라 오론데
스 강의 게데스 부근가지 뻗었고, 거기서 동족으로 구부러져 하맛의 국경
선과 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