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 생애의 시련
(1) 우리아를 전사케 함 : 이상적인 왕이라 일컬어지는 다윗의 생애 말년
은 순탄하지만 않았다. 이때부터 고뇌의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하였다. 그
의 가정이 어렵게 된 것은 그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 때문이었다. 다
윗의 생애에서 오점이 되는 사건이 둘이 있다. 하나는 우리아의 아내 밧세
바와의 범죄이고 (삼하 11:2-27) 또 하나는 백성에 대해행한 인구조사이다.
(삼사 24:1-25)
첫째, 그가 자기의 충실한 부하 우리아를 격전지로 보내 전사케 하고그
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은 일이 그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불의를 노하여 선
지자 나단을 보내 엄중히 질책하였다.
이 범죄에 대한 징계를 보면 (1) 칼이 네 집에서 영원히 떠나지 아니하
리라 (2) 다른 사람이 백주에 네 처를 범하리라 (이것도 그대로 되었다.
삼하 16:21-22) (3) 밧세바가 낳은 아들은 죽을 것이라는 등이다. (삼하
12:10-14) 이것들 중에서 특히 [칼이 네 집에서 떠나지 않으리라] 한 말씀
대로 그의 왕국내에서는 반역과 반란이 계속되었다.
다윗이 자기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통회의 기도를 올렸
다. (시편 51편) 거기에서 다윗의깊은 종교심을 찾아 볼 수 있다.
둘째로, 다윗의 또 하나의 과실은 9개월 20일동안 국토 전수를 등록하게
한 사실이다. 인구조사 자체는 약한 것이 아니나 그 동기가 악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을 자기 자신의 소유로 알고 권력과 무력으로 쓰려고 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여야 할 여호와의 종으로서 그는 지
상 나라의 권세를 추구하는 교만에 빠졌다. 다윗이 인구 조사를 실시한 후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선지자 갓에게 임하여 그를 통하여 다윗에게 말하기
를 다음 세가지 벌 중 하나를 택하라고 했다.
곧 7년간의 기근, 대적에게 쫓겨 석 달을 그 앞에서 도망하는 일, 국중에
3일간 온역 (전염병)이 있을 것 등을 들었는데, 그 중에서 다윗은 세 번째
것을 택하였다. (삼사 24:11-15) 이에 온역이 온 이스라엘에 백성중 죽은
자가 7만인에 달했다.
(2) 압살롬의 반역 : [네 집에 칼이 떠나지 않으라]는 하나님의 경고대로
다윗 왕궁을 둘러싼 골육 상쟁의 비극이 그의 말년을 어둡게 했다.그것은
주로 이복의 왕자간에 연로한 다윗의 왕위 계승 문제를 놓고 벌어졌다. 다
윗 왕에게는 8인의 처와 열 사람이 넘는 첩이 있어 (삼하 3:2-5)그 아들 수
는 성서에 기록된 것만도 17인에 달한다. 압살롬의 반역도 궁중의 문란에서
오는 왕자들의 반목과 갈등에서 싹튼 것이었다.
다윗의 셋째 아들 압살롬이 부친에 대한 반역의 선두에 섰다. 즉, 다윗의
장자 암놈이 이복누이 다말을 능욕했으므로 다말의 친 오빠 압살롬은누이의
복수로 암놈을 살해하고, 어머니의 고향인 아람의 그늘로 도망했다. 이것은
단순한 복수일 뿐만 아니라 장자인 그를 제거하여 왕위를 노렸기 때문이었
다.
3년후 다윗은 압살롬을 용서해 주었으나 그는 부친을반역할 계획을 노렸
기 때문이었다. 3년후 다윗은 압살롬을 용서해 주었으나 그는 부친을 반역
할 게획을 마음에 품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압살롬은 특히 북부 지파 중의
베냐민 지파에서 다수의 젊은 자를 모으고 헤브론에서 왕위에 오를 것을 선
언했다. 그리하여 강한 젊은자들로 편성한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진군
했다.
아무 준비도 없는 다윗은 급히 이스보셋의 전수도였던 마하나임으로 물러
갔다. 여기서 다윗의 군대장 요압은 병사를 모아 압살롬의 군대와 에브라임
숲에서 마주하여 부자 대결의 비극적 전쟁을 치르게 되었다.
다윗은 가신들에게 자식을 죽이지 말라고 명령했으나, 패전을 하게 된압
살롬은 나귀를 타고 도망하다가 큰 나무 가지에 머리카락이 걸려 요압의부
하에게 살해되었다. 다윗은 자식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예루살렘으로돌아갔
다.
(3) 세바의 반역 : 다윗의 마하나임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 오기 전에새
로운 반란이 베냐민 지파의 세바에 의해 또 일어났다. 이스라엘 최초로 왕
이 베냐민 지파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상기하면 세바는 왕위가 베냐민 지파
사울에게 되돌아오도록 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킨 것 같다.
그는 북부 10지파를 선동하여 자기가 왕이 되려는 야망을 가졌다. 다윗
은 급한 마음으로 요압의 동생 아비새에게 세바를 추격할 것을 명령하였다.
아비새는 요압과 함께 다윗에게 공헌한 자이다. 요압과 아비새는 세바와 그
일파를 북부 단 성읍 서쪽의 아벧까지 추격하였다.
그 성이 포위되자 그 성이 파괴되지 않게 하기 위해 그 성의 한 지혜로운
여인이세바의 머리를 베어 요압에게 주었다. 이로써 그 반란은 종결되었다.
(4) 아도니아의 반역과 솔로몬의 즉위 : 노왕 다윗이 죽을 때가 목전에다
가왔다. 사람들이 누구를 다음 왕으로 할 것인가에 대하여 궁금하게생각했
으며, 이 문제를 급히 서둘러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왕자 암놈과 압살롬은 이미 죽었으므로 다음 차례는 단연 3남인 아도니야
이며, 요압과 아비아달이 이를 지지했다. 아도니야의 지지자들은 비밀리에
예루살렘 정남쪽에 있는 에느로겔 성에서 아도니아를 왕으로 추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