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엘이 전한 메시지
요엘( )이라는 이름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요엘은B.C. 830년대 요아스가 7세에 유다의 왕으로 세움을 받았을 때 활동하던 선지자였습니다.
당시는 북 이스라엘의 아합 왕이 엘리야 선지자의 예언에 따라 몰락하고예후에 의해 이세벨이 살해된 직후였습니다. 특히 아합의 딸 아달랴는 자기아들 아하시야 왕이 예후에 의해 죽자 모든 왕자들을 죽이고 유다왕국의 정권을 쥐고자 했습니다(왕하 11:1-3). 그러나 요아스만이 구출되어 숙부이자제사장인 여호야다에 의해 6년 동안 성전에서 숨기워져 양육을 받았습니다(대하 22:10-12). 그리고 요아스가 7세가 되자 여호야다는 유다의 정통을 잇는 요아스를 왕으로 세우게 됩니다(왕상 11:9-12).
어린 나이에 왕이된 요아스는 숙부 여호야다의 가르침을 따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호야다는 제사장으로 무엇보다도 아달랴에 의해 폐쇄된 성전의 재건을 도모했습니다. 비록 요아스가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아 여호와 보시기에정직히 행하기는 하였으나 조모 아달랴가 곳곳에 세워둔 바알 산당과 우상숭배만은 제거하질 못했습니다(왕하 12:1-3). 그리고 대부분의 중대한 일은 제사장 여호야다에 의해 결정되었으므로 요아스의 세력은 미약할 수 밖에 없었으며, 유약한 상태로 유다를 다스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더우기 외부적으로는 페니키아, 블레셋, 애굽, 에돔 등 주변 나라들이 호시탐탐 불안한 유다를 침공하고자 노리고 있었습니다. 이때 요엘이 등장하여여호와의 심판의 날이 임하기 전에 순전한 모양으로 돌아설 것을 선포하였던것입니다.
1. 왜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가?
요엘 선지자는 메뚜기 재앙이 임함과 같이 여호와의 심판날이 임하기 전에금식을 선포하고 여호와께 통회하라고 선포합니다(1:14-15).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회개하지 않자 여호와의 날이 임박하였다고 선포합니다(2:1). 그리고 마침내 이방 군대가 침입하여 초개와 같이 이스라엘을 불사르고 잔혹한 학살이 전개됩니다. 그날은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떨며 일월이 캄캄하며 별들이 빛을 거두도다"(2:10) 함과 같이 크고 두려운 날이라서 아무도벗어날 사람이 없었습니다(2:11).
그렇다면 이와같은 메뚜기 재앙이나 외적의 침입으로 인한 곤고를 왜 이스라엘이 당해야만 하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방 나라들은 하나님을 떠났다는 것 때문에 심판을 받지 않는데 왜 이스라엘만은 혹독한 심판을받아야 하는가는 지금 우리들에게도 중대한 문제입니다.
본래 전 인류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버림받은 상태 아래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곧 노아 홍수사건입니다. 노아 시대에 온 인류가 홍수로 멸절당할 만큼 악했을 뿐만 아니라 심판을 받아도 마땅할 만큼 버림받은것이 사람이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하나님은 노아를 부르셨고, 그 후손 중에아브라함을 택하시어 하나님이 친히 다스리시는 거대한 나라를 건설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창 12:1-3). 그 약속에 따라 하나님은 야곱의 후손들을 애굽에서 중다하게 번성시킨 후, 이스라엘 민족으로 만드시고 가나안 땅으로불러들여 이스라엘 국가를 건설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는 하나님이 친히통치하시는 나리임을 선포하시고 율법을 통해 이방 국가들과 구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국가는 세상 이방 나라들 처럼 권세를 잡은 왕이 다스리는 나라가 아닙니다. 왕의 뜻에 따라 나라가 운영되고 다스려지는 것이 아닌특별한 나라가 된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왕이 되시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운영되는 나라가 곧 이스라엘 국가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인간 보다는 하나님을 따라야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존재하여야 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은 순전히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삶의 방법대로만 살아야 했습니다.
대신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가나안을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이 말은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증표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세상 이방 나라 사람들과 달랐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들의 유업을 위해 땅을 사거나 전쟁을 통해 탈취하여 소유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사거나 빼앗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누어 주신 것을 받았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기업은 장차 영원한 나라에서도 똑같은 유업을 받을 것이라는 증표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항상 장차 임할 영원한 메시야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이러한 삶을 잊어버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방사람들 처럼 변화되고 말았습니다. 곧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께 대한 에배를중단해 버린 것이 그것입니다. 그럴때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돌아올 것을 권고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악해진 이스라엘은 들으체도 하지 않고 머뭇거릴 뿐입니다(왕상 18:21).
하나님은 먼저 재앙을 내리시면서 이스라엘이 돌아설 것을 권고하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돌아서지 않을 경우 이방 나라를 동원하여 철저하게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이유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이었습니다(출19:4-6).
2. 심판의 의미
요아스가 유다의 정통을 받아 왕이 되었으나 아달랴에 의해 세워진 바알산당과 각종 산당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심지어 아달랴에 의해 철폐된 성전이 아직도 회복되질 못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마당히 드려야 할 제사까지도 드려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요엘 선지자는 이렇게 외칩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지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마음과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끼치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른지 누가 알겠
2:12-14).
재앙과 이방의 침략을 통해 황폐해져가는 이스라엘의 신앙을 촉구하는 요엘의 외침에서 우리는 오히려 강퍅해질대로 강퍅해진 이스라엘의 모습을 엿볼수 있을 뿐입니다. 그렇더라도 이스라엘이 그러한 자리에서 돌아서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용서해 주실 뿐만 아니라 복을 주실 것이라고 선포함을 볼 때, 하나님의 심판은 단순히 징계만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 않음을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이 그처럼 곤고한 날을 통하여 하나님께 통회한다면(2:15-17) 그리고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으로 욕되게 하여 열국들로 그들을 관할하지 못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한다면 하나님은 자기 땅을 위하여 중심이 뜨거우시며, 그 백성을 긍휼히 여기실 것이라고 함을 보아서도(2:18-20) 하나님의 심판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원 상태로 회복하도록 하기 위함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가나안은 하나님의 소유이며 이것을 이스라엘 곧, 하나님의 백성에게 기업으로 주신 약소의 증표입니다. 그들이 잠시 하나님을 떠난 댓가로 그 땅에외적이 침입했지만 진정으로 통회라며, 그 기업을 위하여 기도한다면 하나님은 타인에게 기업을 넘기지 않고, 그의 백성들에게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다시 그 기업을 얻었다는 것은 예전처럼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며, 장차 임할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얻으리라는 보증을 확인함을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구별된 선민으로서의성결의 모습을 찾은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심판이란 징계 이상으로서먼저는 그의 백성을 깨끗케 하고 원 상태로 회복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숨은뜻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께서 탕자 비유에서 가르쳐주신 교훈과도 같습니다(눅 15:11-24).
또 하나의 의미는 이러한 심판을 통하여 진정으로 하나님이 왕이신 것을 나타내며,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분이심을 증거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나아가 이스라엘 뿐 아니라 이방의 교만한 나라까지도 심판하시는 전능자이심을 증거함으로써(3:9-13) 우주적인 하나님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가나안 뿐만 아니라 전 세계 구석구석까지도 미치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심판을 통해 하나님이 살아계신 분이시며, 전능자이심을이방에게 선포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입니다.
3. "여호와의 날"에 대하여
요엘 선지자는 독특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담고 있는 메시지를 전파하고 있습니다. 특히 "여호와의 날"을 반복적으로 사용함으로써 그날이 점진적으로 완성되어지며, 마침내 그 종국에 가서 거대하고 웅장한 모습으로 완선됨에 대하여 보여주고, 그날이 임하기 전에 이스라엘의 통회를 촉구하는독특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요엘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호와의 날"에 대한 바른 이해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먼저 요엘은 "여호와의 날"에 대하여 메뚜기 재앙과 같이 곤고한 날로 묘사합니다. 당시에 메뚜기가 수도 없이 날아들어 각종 푸른 것을 다 갉아 버리면그 타격이란 말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더 나아가 한발까지 임하여 모든초목이 불타는 것 같은 가뭄이 계속되는 모습이란 비참하기 그지 없을 것입니다(1:15-20). 요엘은 먼저 이러한 재앙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심판인 것을 선포하고 그 고난이 극심할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여호와의 날"이 임할 것인데, 메뚜기떼와 같이 많고 강한 이방의 침략이 그것이라고 말합니다(2:1-3). 그리고 그날의 곤고한 모습을 말하면서 아무도 벗어날 수 없으리라고 선포합니다(2:11).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이 철저함을 선포하면서도 요엘 선지자는 최후까지 참으시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심을 보여줌으로써(2:12-14) 이스라엘의 회개를촉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긍휼하신 은혜의 풍요로움을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그날에 하나님은 모든 땅에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부어주시어(2:23), 온땅에 밀이 가득하고 포도송이가 가득하며, 메두기떼가 먹은 것을 그 이상으로 갚아주시되 다시는 이방으로부터 어떠한 수치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위로해 줍니다(2:21-27). 그리고 이러한 날(말세)에 이르러 하나님은 그의 신(神)을 모든 백성들에게 부어주어 꿈과 이상이 가득찰 것이라고 말합니다(2:28-30; 성취 행 2장). 요엘서는 경고 → 심판 → 위로의 과정을 보여주면서 요엘은 또 다른 "여호와의 날"을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곧 영원한나라가 임하기 직전의 최후 심판에 대한 경고가 그것입니다. "여호와의 크고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2:31-32)라는 경고의말씀은 모든 열국을 심판하시는 모습에서 성취가 되며(3:14-17), 마침내 영원한 새 나라가 이루어질 것을 선포(3:8)함으로써 대장정을 마치고 있는것입니다. 곧 영원한 심판에 대한 경고 - 최후심판 - 새 하늘과 새 땅의 성취로 이어지는 "여호와의 날"을 기묘한 방법으로 연결시키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나 여호와가 시온에 거함이니라"(3:21)는 말씀이야 말로 우주적인 통치자로서의 하나님이심을 단적으로 표해주는 선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도 그 앞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그의 심판을 견딜 수 없는 법입니다. 그러나오직 "나 여호와는 내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리로다"(3:16)는 말씀처럼 그의 백성들에게는 오히려 생명이 되심에 감격하지 않을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