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중앙팔레스틴의 정복 :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 성읍을 6일간 매일
1회씩 양각나팔를 부는 제사장을 선두로, 무장병들이 나팔 소리를 따
라 성벽 밖을 돌며 길게 일에 일곱 번째 돌며 길게 부는 양각 나팔소
리에 따라 온 군대가 큰 소리로 하늘높이 고함을 칠 때 성벽은 기적
적으로 무너지고 드디어 여리고 성은 함락되었다. (수6:1-21) 결국여
리고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파괴되고 이스라엘에게 점령되었다. 이것
은 주전 13세기의 일이다. 그 성 중의 모든 사람이 죽었고, 오직 약
속대로 기생 라합의 가족만이 살아 남았다. 그 당시의 여리고 성은현
재의 여리고로부터 북서 2KM 지점의 언덕에 매몰되었다.
아이 성의 실패와 승리 : 여리고 성의 점령으로 가나안의 심장부 진
입의 길이 목전에 열려졌다. 가나안의 중앙 산지는 여리고 서북쪽 22
KM 의 아이성에 의해 방어되었다. 여리고에서 승리를 거둔 여호수아는
아이 성에는 소부대를 진군시켰는데, 이 전투에서 이스라엘 군이 처음
으로 패배하였다.
여리고의 승리로 그들이 자만해지고 일치 단결이 결여되었고, 또 하
나는 이스라엘 진영에서 범죄가 일어난 것이 그 원인이었다.후자의 경
우,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에서 얻은 어떤 전리품이든지 착복을 엄금했
음에도 불구하고 유다 지파의 아간이란 자가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
고 자기를 위해 그 물품으 훔쳐내 감추었다. 하나님의 계시로 여호수
아가 그 물품을 찾아낸 다음 아간과 그 가족을 여리고 부근의 아골 골
짜기에서 돌로 쳐서 사형에 처했다.
그 죄악을 징벌한 후 여호수아는 3만명의 용사를 뽑아 어둠을 틈타성
의 서쪽으로 보내 그곳에 복병하게 했다. 아침이 되자 여호수아는 주
력 부대를 이끌로 아이 성의 북방, 적이 잘 보이는 곳에 당당히 진을
쳤다. 이것을 본 아이 왕이 군대를 이끌고 성에서 나와 이스라엘 군은
동방의 요단 골짜기 쪽으로 패주하는 것처럼 상대를 속였다.
아이 왕의 군대가 이스라엘을 추격하여 아이 성이 무방비 상태였을 때
성 서쪽에 이미 복병한 이스라엘 군은 곧 성읍을 습격하고 민가에 불
을 놓았다. 연기가 하늘 높이 솟은 것을 보고 아이 왕과 그 군대가 급
히 되돌아오는 것을 이스라엘의 복병과 주력부대가 협공하여 전멸시켰
다.
벧엘의 정복에 대해서는 벧엘 왕이 여호수아의 군대에 의해 죽임을당
했다고 성서에 말할 뿐 (수8:7) 직접 공격한 기록은 없다. 아마도 아
이성의 함락 때에 벧엘은 세력이 약하여 아무런 저항도 못한 채 점령
되었거나, 혹은 벧엘 왕이 이스라엘의 아이 성 공격 때 아이 왕과 합
세하여 싸우다가 전사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시내 계약의 재확인 의식: 여리고와 아이, 벧엘을 점령한 다음 여호
수아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백성들은 북쪽 세겜으로 인도해 갔다.그
의도는 40년 전 시내산에서 맺은 계약을 재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기브온의 평화적 항복 :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13KM 떨어진 곳에
히위 족의 기브온, 그비라, 부알롯, 기랏여아림의 4성읍이 있었는데,
이것은 가끔 [기브온의 네 성읍]으로 불리었다. 그 중 기브온이 가장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이스라엘이 승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들
은 재빨리 평화적 항복을 강구하였다. 그들은 꾀를 내어 헌 옷을 입
고 곰팡이 난 빵을 예비하여 먼 나라에서 온 것처럼 꾸며 길갈의 진
영에 돌아온 여호수아에게 나타나, 평화적 항복을 하고 보호해 줄 것
을 간청하여 허락을 받았다. 3일 후에야 이스라엘은 그들에게 속임을
당한 줄 알았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이미 여호와의 이름으로 맺어진
일이므로 그 약속을 지키고 화목을 맺은 기브온의 네 성읍의 거민들
을 멸하지 않고 그 대신 그들을 [나무를 패며 물긷는 노예로 사역하
게] 하였다.(수9:33). 그 결과 이스라엘은 큰 노력없이 중앙지역을획
득할 있는 길이 열렸다.
남부와 북구 팔레스틴의 정복
기브온 전쟁과 남부 동맹의 패배 : 히위 족의 [기브온의 네 성읍]이
이스라엘에게 항복했다는 소식이 남부에 전해지자 예루살렘을 점거하
고 있던 여부스 왕 아도니세덱은 이에 대응하여 헤브론, 야르뭇,라기
스, 에글론의 남부 5성읍의 왕들과 군사동맹을 맺고, 다섯 왕이 합세
하여 우선 기브온을 공격했다. 기브온 인들은 급히 여호수아에게 원
조를 구하였다. 급보를 받은 여호수아는 곧 길갈에 군사를 소집하여
38KM 떨어진 기브온까지 밤새도록 진군을 강행하여 불의에 그들을 쳐
서 기브온을 해방시켰다. 또 도망하여 가는 적을 예루살렘의 서북쪽
16KM 지점, 사론 평야에서 중앙고지로 들어가는 관문인 벧호른까지추
격하였다. 그곳에서 비탈길로 내려갈때 여호와께서 하늘로부터 큰 덩
어리의 우박을 퍼부어 그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칼에 죽은 자보다우
박에 죽임을 당한 자가 더욱 많았다. 아얄론 골짜기 밑으로 패주하는
왕들을 벧세메스의 서남쪽 아세가와 막게다까지 쫓아가 한 동굴에 숨
어 있는 다섯 왕을 끌어내어 모두 살해하였다.
서방과 남방 서읍의 정복 : 중요한 전쟁에서 승리한 여호수아는 계
속하여 서방과 남방의 성읍을 정복하는데 박차를 가했단. 중요 성읍
의 군인들이 많이 죽었으므로 그때가 마침 순조로운 기회였다. 그리
하여 우선 세벧라 구릉지에서 블레셋 해안을 향하여 나란히 있는 성
채들을 정복하였다. 립나,라기스,에글론 등이 그것이다. 라기스는고
고학자의 발굴에 의하여 주전 1230년경, 성읍이 완전히 파괴된 사실
이 밝혀졌다.
이스라엘은 다시 유다 산지를 돌아서 남쪽 헤브론, 드빌로 진군해
내려가 거기서 전광석화와 같이 가데스 바네아 오아시스까지의 네겝
지방에 이르렀다. 이스라엘 군대는 또 멀리 서쪽으로 진군하여 지중
해 연안의 가사에 이르기까지 정복하였다. 남방의 여러 성읍을 점령
한 여호수아는 처음 정복을 시작한 길갈로 돌아갔다. 여호수아서에
는 가나안 인의 성채에 대하여 아무 언급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