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연구 (1-6장)

제 목 : < 구약연구 > 이사야 Jesaia 6장

구 절 : 사 6:

1-12장에서 6-8장은 문체 style이 다르다(narrative section). 6장이 차지하는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6장에서 기록하고 있는 이사야가 겪은 경험을어떻게 보느냐에 달려 있다. 즉, 첫소명으로 보느냐, 이미 선지자로서 활동하던 중에 겪은 경험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웃시야가 살아있는 동안에어느 정도 활동을 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어느 정도 연대적인 틀에 비추어 볼 때, 6장보다는 더 앞에 받은 경험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웃시야의죽던 해라고 한다면 웃시야와 요담 섭정기간에 받았던 계시를 기록하고 있지않은가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보면 곤란한 점이 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자신이 전혀자격없음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은혜로 죄를 깨끗케 하시고, 사명을 주신 이일이 첫소명 때인가? 활동 중이었는가? 2차적인 경험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예레미야서 등 선지서의 구조를 들어 주장한다. 그러나 그렇다고해고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6장에서의 사건을 이사야의 첫소명 사건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내용상으로 볼 때). 그러나 이사야의 특별한 의도가 있어서 중간에 기록했다고 볼 수 있다(통상적으로는 맨 앞에 위치해야 한다). 웃시야 시대의 선지자 이사야의 활동은 1년 미만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웃시야의 죽던 해는 죽은 그 해를 말한다.

이사야가 부르심받은 해가 웃시야의 죽던 해라 함은 암시적인 표현이다.

웃시야는 솔로몬 이후 가장 위대했던 왕이었다. 정치적 번영의 시대가 이때였다. 솔로몬 때와 버금가는 광활한 영토를 차지했던 때이다. 당시의 상황을보면 앗시리아의 팽창과 맞먹던 나라가 아람, 다메섹의 벤하닷이었다. 벤하닷 이후 이스라엘이 세력을 떨치게 되는데, 이들 세력이 그때 약화되기 때문이다. 당시 북왕국은 여로보암 2세, 남왕국은 웃시야였다. 북 이스라엘이 먼저 쇠퇴하기 시작하고, 유다에 있어 웃시야는 정치적 강성과 번영의 시대였다. 그러나 웃시야가 죽던 해라는 것은 번영의 시기의 종말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전성기의 종말과 더불어 이사야가 등장한 것은 그의 사역과 메시지의 성격을 암시한다고 하겠다.

이사야가 본 성전은 지상 성전이 아니라 하늘 성전을 말한다. 이사야는 하나님을 지극히 높으신 분, 만유를 통치하시는 왕의 모습, 온 세계의 왕의 모습으로 보았다. 쇠락에 들어선 이스라엘의 왕은 죽었으나, 하늘 보좌의 하나님은 살아계신다는 위로의 메시지라고도 해석하나 실제로는 위로의 뜻보다는 심판의 의미를 시사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때 스랍이 좌정해 계신 하나님 위를 날고 있었는데, 이와 똑같은 장면이계시록 4장에 나타난다(보좌에 둘러선 4생물과 24장로들). 스랍과 4생물의 관계는 무엇인가?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하는 그 소리의거대함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지극하심에 상응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거룩앞에서 거룩을 직면한 이사야는 '화로다 나여' (세파타임; ;메수파토)는 의 Nip.(사파트의 니팔형) 이 일로 인하여 '침묵시켜져 버렸다.

당해버렸다. 죽을 자 같이 되어버렸다.' 하나님의 영광을 본 요한도 죽은 자같이 되었다. 이렇게 된 원인은 "입술이 부정한 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거룩 앞에 직면하여 자신의 더러움이 그대로 드러났다. 자기의 죄된 모습때문에 "나는 죽은 자다"고 했는데 왜 자신의 죄를 입술의 부정으로 표현했을까?선지자로서의 사역이 말과 관련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해왔다. 렘 1:9 내가내 말을 네 입에 두었다(그 입에 손을 대시며). 그러나 이 해석이 조금 곤란(무리)하다. '내가 입술이 부정한 백성 가운데 거하면서...'에서 그 죄는 내죄이기도 하나 백성의 죄이기도 하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럽게 하는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더럽게 한다. 이는 영적 더러움이다.

이 말은 영적 내면 상태와 가장 밀접한 상태요, 입술은 말과 연결된다. 따라서영적 내면의 부정함을 입술의 부정으로 표현했다. 입술의 부정함은 그 사람의 전인격적 부정을 뜻한다. 29장의 내용과 관련해서 본다면 '입술로는 나를부르나 마음으로는 내게서 멀도다할 때, 영적 내면과 일치해야 할 기관이 서로 다르다.

이사야의 환상의 의미

·왕상 22:19-20 미가야가 본 환상 - 하늘의 모든 영적 군대들이 좌우편에 서 있었다. 스랍들이 모셔섰다. 천사들이 찬사하는 소리, 누가 아합을 꾀어 엎드러지게 할꼬.

·사 6장 이사야가 본 환상 -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 이 두 환상은장면의 유사성이 있다. 이로 볼 때 두 환상은 동질의 것임을 느낄 수 있다.

욥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보좌에 앉으시고 사단이 와서 충동하는 사건이가리키는 바는 무엇인가? 바로 지상의 역사는 하늘에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선지자들은 어떤 특권을 얻은 자인가? 천상에서의 하나님의 결정(렘 23:18; 암 3장)을 환상 중에 계시받고 이것을 하나님이 명하신 자에게전달하도록 파송받은 자들이다. 누가 하나님의 회의에 참여하여 그 말을 알아들었으며 누가 귀를 기울였느냐?6장의 전반부는 아사야가 하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뵙고 선지자의 사명 받은 일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 자신의계획을 인생에게 알리심이다. 하나님께서 내리신 역사 결정이다. 6장 이전에이어 이 환상을 기록한 것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결정을 이사야가 친히 환상중에 보고 전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계속 들어라 그러나 깨닫지는 말아라. 계속 보라 눈을 풀칠하라. 명령으로서 imp형. 이 백성의 마음을 기름지게 = 둔하게 한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 마음으로 깨닫고 혹시 나음을 얻을까 하노라. 결과적으로 그렇다. 이는예수님의 천국비유와 동일하다. 그들이 듣고 보아도 깨닫지를 못한다.

hardening, Verstockung(페아스톡쿵) 돌처럼 굳게 만들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마음을 완악하게 만들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왜? 나음 받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구원 못받게 하기 위해서이다.

지금까지 선언한 하나님 심판의 예언의 또 다른 양상이다. 인간의 배역과하나님의 심판 그것과 다른 새 국면이다. 2가지 예상이 가능하다.

유기적인 의미에서의 hardening, 심판의 한 형태로서의 hardening, 계속 돌아오지 않을 때 계속 내버려 두어(영적 무지 가운데) 회개의 길을 막으시겠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후자의 쪽이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심판은 인간의책임을 전제한다).

영적 무지의 상태를 주여 언제까지니이까? 언제까지 그 완악한 상태로 버려두실 것입니까? "성읍이 황폐할 때까지" 그 목적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철저히 심판 받도록 하겠다. 거룩한 씨가 그 땅의 그루터기이다. 이는 남은자를 전제로한 심판이다. 여기서 '거룩한 씨'는 누구인가? 남은 자인가? 아니면 메시야인가? 이 거룩한 씨가 싹터서 새 생명으로 자라나 열매 맺게 될것이다. 이 유기는 정하신 기간 동안 영적 무지 가운데 버려두셔서 철저한심판을 받게 한 후 새 소망 주실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볼 때 남은 자 보다그 핵심은 메시야이다. 이스라엘의 배역과 하나님의 심판과 그 다음에 오는미래의 구원을 새로운 각도에서 보게 한다.


제 목 : < 구약연구 > 이사야 Jesaia 5장

구 절 : 사 5:

포도원 노래(그의 포도원을 위한 사랑의 노래)이다. "내 사랑하는 자(하나님)를 위하여 노래하되..." 하나님 편에서는 농부로서 하실 일을 다 하셨다.

내가 농부로서 포도원에 하지 않은 일이 무엇이냐? 이 말은 1장을 상기시킨다. 바로 1장 전반부의 요약이다. "열매 맺지 않은 과일"을 불에 던지리라.

이어 비를 내리지 않겠다는 것은, 식물 성장의 '비'는 싹틈을 가능케 하는생명을 상징한다. 바로 영적인 사망 속에 방치해 두시겠다는 표현이다.

(미슈파트 미스파 체다콰 체아콰)공의를 구했으나 옳은길에서 벗어났고, 의를 구했으나 울부짖음 뿐이다. 너희가 그 토지의 소유로 잘먹고 잘살겠다하나 불의한 수단으로 모아봐라, 결국 너희 많은 집들이황폐하게 되리라. 8절은 이스라엘의 극단적 이기심을 나타내고, 12절은 세상연락에 깊이 빠진 모습을 보여준다. 10에바 = 1호멜, 1바트는 40되. 10절의'열흘갈이'는 1겨리(2마리)의 소가 하루 동안 갈 수 있는 넓이가 바로 10에바이다. 그러면서 여호와의 행하시는 일은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고 하면서 세상 쾌락에 빠져있다. 따라서 내 백성은 영적 무지로 가득차 있다. 그로인하여 너희의 부요가 하루 아침에 무너질 것이다.

18절 '헛된 줄 = 자로 죄악을 끄는 자'라는 말은 죄를 적극적으로 짓는사람들로서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태도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고의적으로범하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하나님 해볼려면 해 보십시요"라고 하는 양심에 화인 맞은 자의 모습이다. 일말의 양심적 가책없이 행하는 일들에 대하여강하고 잔인한 큰 민족을 불러 일으켜, 이스라엘을 철저히 심판하실 것이라는 선언을 하신다.

제 목 : < 구약연구 > 이사야 Jesaia 4장

구 절 : 사 4:

1절은 전쟁이 나면 남자가 귀해질 것이므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2-6절 '구원의 예언'이다. 이스라엘의 임박한 미래는 하나님의 심판이지만그것은 정화를 의미하며 다시 구원으로 이어질 것을 암시한다. (체마아도나이; 여호와의 싹) 이는 앞으로 오실 "메시야"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말은 앞으로 메시야가 "아름다움과 영광"이 되리라는 말인데, 이 영광은 이스라엘 남은 자들의 영광과 자랑거리가 될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타락하고 부패한 아름다움은 제하시고 그 후에 여호와의 싹이 이스라엘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영광을 나타낼 것이다.

이 영광은 어떠한 것인가? (페리 하아레츠; 그 땅에 와서) "메시야가 그 땅에 와서 이루실 일들"이 진정한 이스라엘의 영광이 될 것이다.

예루살렘에 남은 자가, 생명 얻기로 녹명된 모든 자들은 거룩하다 일컬음을받으리라. 이때 시온이 거룩하다고 불릴 것이다. 메시야로 말미암은 치장과아름다움은 '성결과 거룩'이다. 즉, 영적 아름다움이다.

어떤 의미에서 메시야가 영광이 되시는가? 진정한 '성결과 의'를 주시므로. 4절에 보면 주께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폭력과 죄)을 씻으심으로 성결과 의를 주신다. 여기서 우리의 성결(여호와께서 주시는 내적 미)은 사죄에근거한다. 심판, 공의, 불사름의 영으로 이스라엘의 더러움과 죄를 씻기실것이다(심판을 통해). "그 죄값이 다 치루어졌도다" 육신의 고난은 죄값의일부이지 전부가 아니다.

요나서 - 이스라엘의 죽음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 죽음은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그 완성이 이루어진다. 이스라엘의 포로생활이 이스라엘의 죄값을 완전히 치루었는가? 전부는 아니다. 이스라엘의 포로생활은 더 궁극적인 심판과죽음을 상징한다. 완전히 죄값이 치루어진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뿐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임박한 심판은 앞으로 올 궁극적 심판의표현이다.

5절 여호와께서 시온의 모든 집회 위에 구름과 연기, 화염과 빛이 될 것이다. 이때 구름과 연기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말하며, 이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다. 이 거룩을 전제로 해서만이 하나님께서 그들 속에 임재하실것이다. 이 임재하심이 이스라엘의 진정한 자랑과 영광이 될 것이다.


제 목 : < 구약연구 > 이사야 Jesaia 3장

구 절 : 이 3:

3장은 당시의 구체적 상황으로 옮아간다. 포괄적, 궁극적 심판이 그 당시이스라엘에게 어떻게 적용될 것인가? 미래 시행원칙들이 당시 이스라엘에게어떻게 나타날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이다. (마슈엔 우마슈에나)즉, 같은 단어를 남성, 여성, 단수, 복수를 다양하게 함께 씀으로 모든 종류의 의지물들을 제거하실 것을 의미한다. 빵, 물(육적 생존의 기본 조건),용사(군사력, 대적으로부터의 보호), 재판관(한 공동체 내에서 질서확립 직임), 선지자, 점쟁이( ; 코셈; 신접자), 장로들( ; 자퀘; 원숙함, 오랜경험의 축적을 통해 어린 사람을 지도할 수 있는 지혜자들), 지혜자들을 앞으로 제하실 것이다. 이것들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그의 뜻을 알리리라 하심으로써 의로운 모습을 잃지 않도록, 회복하도록 세운 사람들이다.

그러나 당시 이스라엘에 (하캄 하라쉼) 즉, 매직 Art(사술), 귀신과 속살거리는 것, 사술에 능한 자들도 장로들과 함께 언급되어 있는 것으로보아 이스라엘의 신앙이 변질되어 이들이 세움을 입어 이스라엘을 다스리고있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나아르; 미숙하고 제멋대로 날뛰는 어린 아이들)즉, 이 미숙자들이 제멋대로 날뛰다가 사회질서를 붕괴시키는데 그 이웃과 더불어 사나와진다. 즉, 싸우려는 태도를 갖게된다. 젊은 아이가 노인에게 큰소리지르면서 권위를 무시하고 휘둘러대는 것 바로 하극상이 일어날 것이다. 천한 신분의 사람이 존귀한 신분의 사람에게 대든다. 즉, 고상한 것이천한 것에 의해 축출당하고 짓밟힌다. 이 말은 곧 그 사회 가치관의 전도(뒤바뀜)를 전제하는 것이다. 이런 형편에서 모두 책임을 회피한다. 그리고 네가 이 난국을 수습해 보라. , (시믈라, 레헴 = 겉옷과 빵) 이는 경제적 여유, 지위를 뜻한다고 생각하기도 하나 사실 겉옷은 그 사람의 신분과지위를 상징한다. 엘리야의 승천시 겉옷(선지자의 직분)을 떨어뜨린다. 그러므로 이 말은 위정의 책임을 맡을 만한 자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무질서한 상태에서 난국 수습해달라고 하나 아무도 하지 않으려 한다. "나는 상처를 싸매는 자가 되지 아니하리라" = 나는 그럴 능력도 책임도 없다.

이와같은 심판의 이유에 대해서 8-9절에서 그들의 말과 혀가 하나님을 거스려 촉범케 했고, 표정이 그들에 대해 증거하며, 죄가 소돔처럼 말하고 숨겨도 숨겨도 숨길 수 없는 상태, 이스라엘의 죄악의 상태가 그토록 심각하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상태를 11절에서 말한다. 어린 아이가 백성을 학대하고 여인들이 그 아이들을 관할할 것이다. 이스라엘 지도층의 난맥상(무자격자들의 천행)을 표현하는 말이다. 그들이 내 백성이 행해야 할 길을 오히려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이와같은 이스라엘의 지도층의 잘못을 심판하시려고재판하실 것이다.

14-15절 이것은 폭력이다. 교묘하게 말로하는 폭력, 남의 칼로 폭력을 쓰기도 하고, 남을 억울하게 하는 그 모든 것이 폭력이다. "지도층" - 그들이가진 권력을 연상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세우신 것은 그 힘과능력으로 가난하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을 돕게 하려 하심이나 오히려짓밟고 힘을 오용하였다.

재판관은 법을 이용한 폭력,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서 폭력, 지식인은 지식으로 폭력을 휘두를 수 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모든 은사, 힘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돕고 일으켜 세우기 위함 즉, 사랑을 베풀기 위한 수단으로 이러한 것들이 주어졌으나 자기를 위해 남을 착취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사랑을 위해 쓰지 않고 자기 위해 쓰는것이 곧 권력남용이다.



남자다움을 연상하면 힘이다. 이 힘은 너그럽고, 인내하고, 포용하라는 것이다. 성경은 이 힘을 타인에게 유익을 주고 세우는 목적에 사용될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것을 오용하면 폭력으로 남을 착취하게 된다. 남자의 사나움은 힘이 아니다. 반대로 여성의 연상은 미(美)이다.

16절 이하 여인들의 죄를 논하면서 그 핵심을 아름다움에 두고 있다. 남자들이 착취한 것을 집에 가져오면 여자들은 그것으로 자신의 외모의 아름다움으로 치장한다. 그러니 진정한 아름다움이 그곳에서 나올 수 없다. 부드러움과 겸손과 단아함이 여자의 무기요, 이것은 내적인 아름다움이요, 성경이말하는 여자의 진정한 미이다. 아기죽거리고, 늘인 목과 눈은 타락한 정욕을 자극하는 미로서 진정한 미가 아니다. 바로 선정적인 태도이다. 이들은속사람을 아름답게 하는 대신 남을 유혹하고, 충동하게 한다. 그들의 유일한 목적은 선정과 유혹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머리(여자의 머리는 치장의 핵심이다)에 부스럼이 나게 하고, 대머리(수치를 드러냄)가 되게하겠다고 하신다. 이 말은 바로 그들의 치장을 수치스럽게 하신다는 말씀이다.

제 목 : < 구약연구 > 이사야 Jesaia 2장

구 절 : 사 2:

1-4절이 그대로 미가(같은 8세기 선지자이다)서에서 반복된다. 이것은 이사야서 전체 내용의 서론이요 요약이다. 하나님의 은혜에도 불구하고 계속반역한 이스라엘은 징계를 받는다. 이 일은 인간의 철저한 부정과 오직 하나님께 모든 가능성을 두는 것이 복음의 핵심이다. 이것이 우리 심령 속에서철저히 고백되어야 한다.

원래 범죄 - 하나님 같이 되어보리라는 충동 /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여살게 하는 것이 마귀이다. 나의 능력, 목표에 대한 부정이요, 이 모든 것을하나님에게서 찾아야 한다. 미래 구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공평과 의(이스라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 귀속이 되리라는 것은 철저히 하나님의주권에 의한 것이다.

하나님을 저버리는 자 = 우상숭배하는 자들 = 가짜 하나님을 택하고 참 하나님을 버리는 자 = 그들은 그 우상들로 인하여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시온을 구원하실 때 그들이 섬기던 신이 거짓된 우상임이밝혀질 것이다. 하나님의 미래 즉, 남은 자를 구원하시고, 여호와를 버린 자를 멸망시킨다는 것이 종말론에 투사된다. 모든 산들 위에 굳건히 설 것이요, 여호와의 전이 있는 산(시온, 즉 하나님의 교회)이 우상의 산(산당, 우상 섬기는 곳)들 보다 높아지겠다, 높이 들리겠다. 이는 교회가 높아진다는뜻이다.

그러면 교회가 높아지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이 하나님으로드러나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나님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교회의 높아짐의 참 본질이다. 이것이 교회의 영광이다. 불신자들로부터 "참으로 너희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는구나" 하는 소리를 듣지 못하면 교회는 인간들이 모여장난치는 장소에 불과할 것이다.

과거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반역한 것과 징계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계속 반역과, 하나님은 긍휼과 자비로 남은 자 두심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 하나님께로부터 외면당한 그들이 열심히 여호와를 찾고, 외양으로는 어느 때보다 하나님에 대한 열심은 컸으나 하나님 앞에 그들의 시도가 역겹고가증스러운 것이었다는 엄청난 불행의 원인에 대해 하나님은 무엇이라 말씀하셨나? "그들의 손에 피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의식과 실생활간의괴리, 실생활에 옮겨지지 않는 예배는 무의미하다. 의식과 예배의 관계는성경에서 여러 군데 다룬다. 롬 12:1; 신 16장 등 '약속의 땅에 들어가면 그땅의 소산을 가져오라 원래 유랑인이었으나 그 축복의 표시인 땅의 열매를 드리라.

가장 중요한 문제 제기는? 의식을 통한 하나님 만남의 실패, 예배의식과삶의 괴리가 원인이다. 그러면 이 간격을 제거하는 일에 있어서 위험한 것은율법주의이다. 바리새인들의 경건은 과소평가할 것은 아니다. 바울도 율법의 의로 말하자면 책망받을 것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 율법주의가 왜 나쁜가? 의식과 삶의 간격이 없어지면 된다. 의식과 관계된 것이 우리 삶에서는이루어질 수 없다. 영적 영역에서의 무엇없이는 결코 삶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데 있다.

막 7장에서 왜 손을 씻지 않고 먹습니까? 왜 유전을 지키지 않습니까? 이러한 물음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외식하는 자"라고 책망하신다.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마음은 내게서 떠났다" 즉, 마음이 없는 외부적 선행, 경건을위선이라고 하고 외적 규례만을 강조, 발전시켜온 장로들의 유전이나 그것을 지키는 바리새인들에게 사람의 계명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법을 저버린다

고 하셨다. 이는 영적 무지를 나타낸다. 하나님의 법의 참 뜻을 오해하여 저버리는 그 한 예로서 "고르반"을 들고 있다.

이것이 우리 마음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밖에서 먹는). 우리를 참으로 더럽게 하는 것은 우리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사람을 깨끗케 하는 것을 부정, 정결은 심령에 있다(마음과 영적인 차원). 인간의 존재방식이란 내부에서 시작되어 외견에 드러난다. 그러므로 안을 고쳐서 밖이 깨끗케 된다. 우리 마음(영적 내면)이 부정, 정결을 결정한다. 참된 선한 마음에서 나오는것이 아닌 것은 모두 악하다. 깨끗한 마음에서 시작되지 않은 선행도 더럽다는 것이다. 겉으로 아무리 꾸며도 마음이 깨끗지 않으면 그것은 더러운 것이다. 위선은 있을 수 있으나 위악은 있을 수 없다.

의식과 삶의 괴리 문제에 있어서도 이런 내면적, 영적 문제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의식을 통한 하나님과의 만남이야 말로 어떤 면을 직접적으로 가르치는가? 영적 차원 즉, 의식을 통해 참으로 영적 은혜에 참여해야 한다.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진정한 경건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이사야 1장만 보아도 선지자가 어떤 재료를 선택해서 메시지를 전달하는가? 왜 이스라엘의 현재 상태를 말하며 예배의식적 상황을 예로 들고 있는가? 이는 그들의 영적 상태를 염두에 둔 것이다. 이스라엘의 현재 상태에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절망, 소망이 전혀 없다. 여기에 하나님의 미래의 2가지 면을 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구원과 심판이다. 즉, 시온이 의와 공평(하나님의 의와 공평)으로 귀정, 구속되리라. 이는 이스라엘의 모든 가능성을 부정했기 때문에 남은 소망은 하나님의 의와 공평("결정하다"는 뜻으로재판정을 염두에 둔 단어이다) 뿐이다.

2절 하나님의 산이 영화롭게 될 날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 모든 산(우상신전들이 있는 산)들 위에 높아지리라. 이 말은 무엇을 염두에 둔 말인가? 앞으로 행하실 하나님의 심판의 핵심은 인간들이 의지한 우상들이 수치를 당하고, 오직 하나님만이 진정한 하나님으로 드러나실 것이라는 의미이다. 여호와의 전이 있는 산 즉, 교회의 높아짐 그것은 곧 하나님의 높아지심이요, 진정한 하나님되심이 계시, 드러나는 것이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영광이다.

없는 것을 있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있는 그것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하나님 영광의 참 본질이다. 여기 시온은 여호와의 통치가 이루어질 곳이요, 앞으로 메시야의 통치기 이루어지는 영역을 말한다.

구약에 있어서 "날들의 끝"(末日)은 상당히 포괄적 의미를 가진다. 열방들이 모여든다. 무엇을 보고 모이는가? 하나님께서 자신을 오직 유일하신 참하나님으로 나타내셨기 때문이다. 이는 교인들에게 무엇을 제시해야 할 것인가?를 알 수 있다. 내게 없으면 나누어 줄 것도 없다. 열방이 나아온 목적을3절 하반절에서 설명하기를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길로 행함을 배우러 나아온다. 시온 = 예루살렘(하나님의 통치보좌가 있는 곳)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즉, 그의통치가 시온으로부터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계시의 내용은 하나님이 온 우주의 통치자시며 생사화복이 그에게 달려 있는 그런 분이심을 계시하신다.

4절 그가 열방을 판단하신다. 즉, 그의 심판이 보편적(세계로 확대된 것을의미)이라는 말이다. 하반절에서는 통치의 결과가 나타난다. 그들의 칼, 창(이는 살륙의 도구)을 보습과 낫으로 바꾸어 다시는 전쟁 훈련이 없을 것이라고 한다. 바로 평화의 통치요, 평화의 나라일 것이라는 의미이다. 개인과개인, 집단과 집단 사이에서 다시는 살륙이 없는 참된 평화의 통치일 것을의미한다. 물론 이 나라에 대적하는 세력을 멸하시지만 그 나라의 본질은 평화이다( ; 샬롬).

5절 "야곱 집아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이는 앞으로 나타날 하나님의 통치로서 그 통치는 안식이요(이는 하나님과의 화목이 전제된), 온

전함이 된다. 그러므로 '빛'은 하나님의 통치 자체요, 하나의 힘(power)이요, 생명이다. 그리고 그렇게 행하자고 권고하는데, 이는 영광스러운 미래를내다볼 때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주의 얼굴 빛을 우리에게 비추시며'에서 빛은 주의 얼굴을 바라볼 때 비쳐지는 실제적인 무엇이다.

6절 "주께서 야곱 족속을 버리심은..." 이는 1-5절 내용(앞으로 나타날 통치 바라보는 구원)과 상반된다. (키 나타슈타 암므카) 여기서라는 접속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 여러가지로 볼 수 있다. 즉, for, but,although, indeed 등 다양한 뜻 중에서 but이 가장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6절 이하는 심판의 내용이다. 이 급격한 전환은 1:27-28에서 예견할 수 있었다. 앞으로 행하실 하나님의 구원의 양면을 보면 알 수 있다. 미래에 대한 소망에서 하나님께 외면당한 비참한 현재 상태로 되돌아온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왜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부터 외면을 당했는가?를 볼 수있다. 블레셋 처럼 신접한 자들이 가득했고, 이방인의 소생(국제결혼의 소산)들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결국 외국인들이 많았다는 의미는 신접한 자들이 많아졌다는 말이다. 즉, 이스라엘 내에 이질적 요소들이 존재하게 되고이로 인하여 이스라엘의 "구별됨"을 상실하게 되었다. 혈통적 순수성을 상실함으로 변질되어가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변질은 영적 변질까지도 암시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혈통적 변질 뿐 아니라영적으로도 변질되어가는 모습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오늘날 세속화된 교회의 모습과 유사하다. 물탄 술 같이, 은이 변질된 것 처럼 이것이 속화된이스라엘의 구체적 모습이었다.

7절을 보게되면 그들의 땅에 은, 금이 가득했고, 말도 가득했고, 병거 수가 한이 없었다는 표현은 은, 금은 경제력의 상징이요, 말과 병거는 군사력의 상징으로서 돈을 의지하고 인간의 폭력적 수단을 의지했다는 말이다.

8절 그들의 땅은 우상들로 가득했고, 그 본질은 그들의 손으로 만든 것에그들이 절하는도다. 우상은 Man-made Religion(인간이 만들어낸 종교, 신앙)로서 인간이 의지하면서 인간 자신이 만들어낸 것의 특징이 있다. 곧 우상숭배의 근거는 인간숭배이다. 모든 우상숭배의 특징은 "자기 힘으로 할 수있다는 것"으로, 자기 행위로 하나님의 축복을 살려는 것(이것이 율법주의),자기 힘으로 안되는 것을 깨달은 자만이 하나님 앞에 꿇어 엎드린다. 자기모습을 자기가 알 때 꿇어 엎드릴 수 밖에 없다.

9절 "천한 자도 절하며 귀한 자도 굴복하오니" (와이솨 아담 와이슈팔-이스) 여기 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이라는의미요, 는 인간이 낮아졌고 사람이 낮아졌다는 의미이다. 9절은 8절초반에서 연결되는 접속법(와우접속법)으로 여기서는 미완료로 되어있다.

하나님 대신 돈을 의지, 군사력, 특별히 자기 손으로 만든 것에 절하는 오히려 피조물 앞에 절하는 하나님 형상의 고귀함을 저버린 비참한 저질화된인간으로 낮아졌다. 즉, 원래 만물을 다스릴 자로 지으셨는데 그것을 저버렸다는 것이다. "인간이 스스로 자신을 욕되게 했으니 그들의 죄를 용서하지 말라" 돌이나 흙 속에 뒹굴라(자신의 더러운 모습 숨기기 위해 땅 속에 숨는).

하나님께서는 어떤 자에게는 구원을 베푸시나, 어떤 자에게는 심판을 베푸신다. 그러나 궁극적 결과는 같다. 오직 하나님께서 참 하나님 되심이 드러난다. 하나님께서 홀로 높아지시리라. 인간이 스스로 의지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들의 정체가 드러남으로 인간이 자랑하던 것들이 모두 다 낮아지고하나님 홀로 높아지시리라. 인간에게는 무엇을 기대하지 말아라. 그 호흡이코에 달려 있는 만큼. "수(數)에 칠 가치가 없느니라"(무엇으로 쳐줄 수 있겠는가?라는 의문문이다). 3장부터는 그것이 이스라엘의 현상황과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가 있는가?가 나타난다.

심판과 구원의 교차구조가 큰 맥락에서 독특한 의미있겠으나 1장에서 보았듯이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그 후에 오는 하나님의 구원의 메시지를반영한다. 이 동일한 메시지의 반복은 앞으로 행하실 심판과 구원의 내용이더 풍부하게 제시되어 가고 있다.

1장은 이사야 전체의 근본적 내용의 틀을 제시한다(이스라엘의 과거는 반역이요, 현재는 심판을 받아야 할 상태이다). 그 미래는 그 자신으로 볼 때는 구원의 가능성이 없고 다만 하나님의 긍휼을 바라볼 뿐이다. 심판이 심판으로 끝나지 않고, 구원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멸절로 끝나지 않고, 그심판은 죄된 이스라엘을 정화시켜 구원의 반열에 참여케 하심이다.

2장은 포괄적으로 종말의 시간까지의 풍부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신약의 모든 메시지를 cover하는 구원 메시지가 주어진다. 낙관일색의 미래는 아니고 하나님을 저버리는 자에게는 궁극적 심판이 있을 것을 예언한다.

제 목 : < 구약연구 > 이사야 Jesaia 1장

구 절 : 사 1: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는 특정한 시대와 그 상황과 밀착되어 있다. "......

에 관한 계시"라고 밝히는데 대부분 그 시기가 명시되어 있다. 어떤 시대적상황과 결부되어 있고, 그리고 그 시대와 결부시켜 해석(이해)되어야 한다는것을 암시한다. 즉, 특정상황에 대해 말씀되어진 계시라는 뜻이다.

어느 시대나 초시간적으로 영원한 진리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상황과 연관된 계시임을 밝힘이다. 이것은 성경계시의 보편적 특성이다. 성경계시가 담긴 틀 자체가 역사이고, 역사 흐름과 결부되어 계시된 것을 볼수 있다. Von Rad는 구약을 가리켜 "역사책"이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에게있어서 이사야의 계시를 이해할려면 당연히 이사야가 처한 역사적 상황을 살펴보아야 한다.

이 계시의 말씀이 특정 시대, 특정 인물과 관련하여 주어진 것이지만, 그계시의 의미가 그 시대에 국한되지 않고 앞으로 올 모든 시대의 하나님의사람에게 주어지는 말씀인 것은, 그것이 기록되었다는 사실로 보아 알 수 있다. 계시가 특정 시대, 시간, 공간, 특정 대상과 연관되되 그 시대를 뛰어넘어 모든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것임은 아주 중요하다. 여기에 대해 역사주의는 이 계시는 그 시대와 함께 끝나버렸다고 말한다.

그러면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떻게 의미가 있는가? 실존주의에서는 나의 삶의 관계 속에서 내 관심사와 관계된 것이 있을 때, 과거의 사실이 내게의미있게 된다(그 계시의 객관성과 관계 없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만 찾는다). 과거를 과거로 묻어버리는 역사주의와 실존주의의 결합이라고 볼 수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는다. 객관적인 하나님의 말씀이역사와 과거 속에 묻혀버리지 않고 오늘도 내게 말씀하신다.

2절

1장 내에서도 내용을 구분할 실마리가 있다. 즉, 실마리를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있다. 하나의 연결된 표현을 시작과 끝에 나누어 이 전체가 하나의unit를 이루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1-9가 한 단락, 10-20가 한 단락, 그 나머지가 한 단락. 즉, 이와같은 단락법이 내용에 충실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들으라" 그 후에 이스라엘의 죄악에 관한 내용이나온다. 8세기 선지자들의 주된 내용이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선언이기 때문이다. indictment(정죄)의 글이라고 볼 수 있다. "자녀로 길렀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녀 처럼 키우고, 양육하였는데 이스라엘이 부모를 배반하듯 하나님을 배반하였다. 짐승도 주인과 구유를 아는데 "이스라엘은 짐승보다 못하다".

여기서 '자녀로 키웠다'는 것은 비유적 표현으로 "아비와 자식"의 관계는

바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표현한 것이다. 양식비평학자들은 지혜문학의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잠언에 그 표현이 많으므로). 가장 기본적으로는 "하나님의 통치와 그 나라,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라고 할 수 있는데, 어떤 경우에는 "아비와 자식", "남편과 아내"라는 관계로 표현하기도했다. 이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의", "정절"이 아주 중요하다. 이처럼 신실이 강조될 때 이 표현을 쓴다. 결국 이 말은 이스라엘의 근원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기르시고, 양육하셨다.

언약 파기 때는 하나님을 배반하였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하늘과 땅"은 언약과 관계되어 있다. 신 32:1에 ... / ... (하아지누 하샤마임... / 웨티슈마 하아레츠...)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들으라'라고 말하는 배경이 된다. (신 31:28; 웨아이다 밤 에트-하샤마임 웨에트-하아레츠) 여기서 밑줄 친 것은 명사에서 동사로 만든 것으로(dinominative) "...을 증인으로 세우다"의 뜻이다. 이 말은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운다. 앞으로 너희가 반역할 것에 대한 증거의 노래이다. 다시 말하여 이 노래가 증거가 될 것이다. 이것을 예언하면서 하늘과땅을 증인으로 세운다. 그러면서 신 31:28-29는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들으라"고 하면서 하늘과 땅을 세워 증인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사 1:2이하는 신 32:1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32: 6 - 이스라엘은 지혜가 없는 우매무지한 백성이며7 - 하나님을 아버지로 묘사

20 - 무신한 자녀

32 - 소돔, 고모라

이렇게 신 32장 자체는 앞으로 이스라엘이 배역할 것에 대한 증거이며 이사야는 이 말씀(증거)을 배경으로 한다고 할 수 있다.

이사야가 출현한 역사적 상황은 엘리야가 시내산에서 받은 계시의 말씀즉, 시내산 언약이 전제되고 있다. 시내산은 어떠한 곳인가? 이스라엘이 순종을 맹약한 장소이다. 그곳에서 철저한 심판을 선포하심은 근본적으로 언약 파기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사야의 구속사적 맥락에서 보면, "하늘이여땅이여 들으라......"는 말은 시내산 언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이 말은 이 언약 파기를 선포하심이다.

"아들 처럼 길렀다" - 하나님 편에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언약의 주로서 기대되는 모든 은혜를 베푸셨다는 말씀이다(부성적인 사랑으로). 이 언약의 관계가 의무 이상의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에 대한이스라엘의 반응은 "나에 대하여 반역하였도다"로 보여지며, 그와같은 사랑받고도 반역한 이스라엘에 대하여 "짐승보다 못하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죄 범한 민족이요" (호테) = miss the mark; 하나님의 표적에 이르지못함(아온) = 길에서 벗어나다

결국 이 말은 반역 = 하나님의 요구하신 정당한 길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렸고 말씀을 능멸했다" 죄의 근본적 동기를 하나님을 버린 것(뒤돌아섬, 등을 돌림)과 말씀을 능멸한 것으로 즉, 그가 명하신율법의 말씀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짓는 고범죄는 항상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데 그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느냐, 등을 돌리고세상의 욕심을 좇을 것인가 중에 선택하게 된다. 이렇게 볼 때 죄의 근본성격은 변하지 않는다.

이때까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취급해 오셨는가의 은혜의 역사를말하고 동시에 그 반응으로 이스라엘이 계속 반역했던 것을 말한다. 상처투성이의 이스라엘(어찌하여 더 맞으려고 반역을 계속하느냐)에게 묻는 질문은, (1) 배역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때리심을 볼 수 있다. "온 머리가 병들었고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다"고 표현 즉, 상처가 아물틈이 없도록 계속 맞아왔다. (2) 그러나 이스라엘은 계속 반역하고 있다. 혹은 반역해 왔다.

7절 땅이 황폐했고 너희 성읍은 불살라졌다. 이는 전쟁의 참화를 그린 것이다.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곧 전쟁은 배역에 대한하나님의 심판이다.

8절 딸 시온만이 오이밭의 망대 처럼(포도원의 움막) 예루살렘만 남았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만 남겨두지 아니하셨다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배역을 치셨고, 이스라엘은 계속 배역하였으나 하나님께서 남은 자를 남기셨다(그 채찍 속에는 그래도 아들에게 향한 사랑이 "남은 자"로표현되어 남았다). 왜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로 표현했나가 여기서 밝혀진다(아들의 배역에도 불구하고 문 밖에 기다려 섰는 아버지의 사랑을 가장 잘나타낼 수 있었으므로).

10절 소돔의 관원들아, 고모라의 백성아 - 이는 두번째 부분의 시작으로서들으라는 대상을 지칭한다. 이 표현은 바로 앞 절을 의식한 표현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위해 긍휼 베푸시지 않았더라면 소돔과 고모라 같이 완전히 멸망받아 마땅했다(그 죄질 자체로 볼 때는).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죄질이기때문이다. 경제, 사회적으로 부요하고 군사적으로 강국이었고, 그들의 외적경건과 열심도 대단했다. 즉, 3일마다 십일조를 드리고 제물의 향이 끊이지않았다. 그런데 이사야는 "오해하지 말라"고 한다. 너희는 망해야 마땅한 존재이지만(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의 시기이다), 하나님의 긍휼에 의해 잠시외적인 풍요를 누리는 것 뿐이라고 한다. 오늘 우리 시대 교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평안이 없는데 평안하다 평안하다 하지 않는가? 위기의 시대 속에서. 이스라엘의 죄악상, 죄질에 대해 원칙적으로 재림까지 유보된 상태였으나 심한 죄악상 때문에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 개입하셔서 잠시 심판하신다.

11절 아들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어떠한가? 너희 많은 제물이 나와 무슨상관이냐? "목까지 차서 넘어오려고 한다" - 배불렀고 /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찬양하나 올라올 정도라니...... ( ) (미-비퀘쉬 조트 미웨드켐 리르모스하체라) 나의 뜻을 밟는 것(부사적 연계형)은(조트)를 수식. 이에 대한 해석은 (1) 내 성전을 짓밟는 것을 누가 너희에게요구했느냐?(즉, 나의 뜰을 밟는 것이 짓밟는 것이라고 말하는 격), (2) 한글역;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마당만 밟을 뿐이니라는 두 가지가 있으나 둘 다 가능한 해석이다.

13절 일을 하지 않으면서 모이는 것(그 모이는 사람들이 악을 행한다고 하면) 즉, 성회와 기도로 모이는 것이 짐스러운 것이 되었다 - (아차라;도저히 못참겠다) 왜냐하면 너희 손에 피( ; 위데켐 다밈 말레우; 모든 종류의 폭력, 남을 억울하게 하는 것, 말, 정신적 폭력까지)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16절 (쉬므우) 들으라 - 듣는 대상이 이스라엘로 직접 호칭한다. 과거 역사에 관한 것으로 하늘이여 땅이여 하고 하늘, 땅을 대상으로 불렀으나이제는 취급하는 상황이 이스라엘의 현재상황이다. 그 첫 예가 그들의 예배의식(cult)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언약의 주로서) 선택하여 세우신 그 일에 있어서모든 임무를 행하셨으나 이스라엘은 배역하였다. 이같이 배역한 이스라엘을하나님이 고치시려고 징계하시나 이스라엘은 고침받으려 하지 않고, 반역을계속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남은 자"를 두셨다. 여기서 '남은 자'의 의미는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한 희망을 아직 버리지 않으셨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이스라엘 자체가 소망을 가질 능력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에 의한 것이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과거역사의 모습니다. 10절 두번째 부분에서 이스라엘의 현재 상태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

들으라 하늘이여 땅이여 -+ 어법 자체도 첫째 부분에서 들으라는 대상이

제 3자이고들으라 이스라엘이여 -+ 이스라엘의 지칭도 3인칭으로, 이스라엘의 과거 상태이다. 나 자신이 3인칭으로 지칭될 때는 강도가 약하다. 그래서 두번째 부분에서는 2인칭으로 호칭("너희들"; ; 헴)하므로, 이때는강력한 호소력이 있다. 이제부터는 이스라엘의 현재 상태가 주된 관심이 된다.

이스라엘의 현재 상태에서 취급하는 것은 의식(cult)이다(삶에 연결되지않은 cult의 영역). 의식 명령에 평가 대상을 삼는 이유는? 현태 상태에서의식을 취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의식은 현재와 관련되어 있다.

cult의 본질적 특성은 Vergegenw rtigung(페어게겐베르티궁; 현현화)이다.

미래의 일을 지금 이 시간에 성취하고, 과거 사건을 지금 이 시간으로 재현(review)하는 의식은 과거와 미래가 한 순간에 집적(현재화)한다. 의식이야말로 우리 삶의 현재와 가장 밀착된 것이므로 우리는 과거의 사건을 현재에체험하고, 미래에 있을 역사를 선취체험하며, 우리의 경험 영역 밖의 하나님을 가시적 순간을 통해 영적인 것을 우리 삶의 현실 속에서 누리는 것이cult이다.

동시에 cult가 이루어지는 장소는 성전이다. 성전은 이스라엘 삶 속에서핵심적, 중심적 위치를 차지했다. 여기서부터 이스라엘의 삶은 시작된다. 여기서 영이신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모든 영역으로 삶이 확산된다.

이스라엘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여기서부터 하나님에 의해 거부되고,하나님이 혐오스러워 "내 얼굴을 돌리겠다, 눈을 감겠다"는 것, 철저히 하나님으로부터 거부당하는 것은 상당히 시사적이다. 여기서 이루어지는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가 하나님에 의해 거부되었다. 하나님과 영적 교통에 장애가 되는 것을 넘어선 헌신된 삶, 영적 기도, 영적 형식의 삶들이 하나님으로부터 거부되었다.

대개 제사와 관련하여 성경에 잘 나타나는 표현은 하나님이 제사를 열납하시는 것이다. 본래 제사가 잘 되었으면 열납되어야 하는데 혐오, 가증한 짐이 된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내의 한계에 도달했다는 말이다. 의식이 이루어지는 장소(cultic place)인 성막은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이 모든 다양한것을 하나로 묶는 본질은 만남이다. 성막을 회막으로도 말한다. 바로 하나님과의 만남의 장소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님은 제사드리는 것도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한 것인데 만나기를 외면하시겠다고, 거부하셨다.

15절 하반절 하나님이 친히 제정하신 것이 의식인데 하나님께서 만나기를거부하신 것은 "너희 손에 피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피는 삶의 모든 종류의폭력을 의미하며, 남을 억울하게 한 것이다. 바로 손은 인간 행위의 도구이다. 너희 삶이 남을 억울하게 하는 폭력으로 가득하다. "성회와 아울러", 성회는 금식을 선포하고 아무 일도 않고 모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의식을 거부하는 이유가 그들의 삶의 행위가 악하기 때문이다.

17절에서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가르치신다. 일상 삶의 질서와 관련된 부분에서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할 것을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만나려는 의식적 시도들이 철저히 거부되는 이유가 그들의 삶이 선하지 못하다는사실을 우리 교회에 적용시킨다면? 이것은 그 당시 이스라엘 주위 세계의의식 개념에 대한 변증적 의도와 효과를 가지고 있다.

'의식이 무엇인가' 이방세계의 cult는 철저한 비윤리성이다. 신에게 이방인들이 드리는 cult는 그 사람의 윤리적 상태는 필요없고, 절차에 따라 요식법대로 되었느냐는 것이다. 아모스서에서 법의 이름으로 행한 불의를 지적한다. 이방의 의식은 정신과 상관없이 요식대로 행하면 효과가 나온다. 이런의식은 아무 상관없다. 그들의 삶과 직결되지 않는 의식은 하나님이 거부하신다. 이사야서가 말하고자 하는 전부가 이 부분인가?(17절) 이것이 이사야의 생각의 전부일까?

쉽게 말하여 우리 행위를 고쳐 우리의 삶이 실제로 이루어진다면 의식을통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할까? 이런 피상적 판단에서 생겨난 것이바리새인들이었다. 삶 속에서 실제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는(삶 속에서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바르지 않다 하고 여기서 그치면 내가무엇을 하려고 한다. 여기서 바리새인의 외식주의가 나온다. 겉으로 무엇을하면 된다는 것이다. 역기서 하나님이 참으로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성전 밖의 일상적 삶과 의식과의 괴리 같은데, 외부적 특징이 뚜렷한 것이의식인데, 삶도 마찬가지이다. 외부적 행동도 우리의 내면적 본질을 표현하는데 외부적 형식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내면적 진실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여도 그 마음은 멀도다"실제적 삶과 의식을 대비하면서 우리에게 경계시키는 것은 외식주의이다.

진정한 내면적 본질, 경건, 사랑을 제외한 것은 무의미하다. 진정한 믿음에서 나오지 않은 외부적 삶은 무의미하다. 내면적 본질을 강조한 성경은 '로마서'에서 '믿음으로 행하지 않은 것이 죄'라고 한다. 우리 행위가 잘못되면우리의 내면적 믿음의 상태를 알아보아야 된다. 믿음이 고장난 것이다. 잘못된 행위를 고치려는 것은 고쳐지지 않는다. 고치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아야 가능한 것이다.

18-20절 이 부분의 말씀에서 문장의 흐름이 매끄럽지 못하다. "오라 변론하자 너희 죄가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 변론하자는 말은 따져보자는 말인데 그런데 따져보자 해놓고, 그 다음에 나오는 "주홍같이 붉을지라도......"와는 맞지 않는다. 이 본문을 요즈음 와서 의문문으로해석하는 이도 있다. "주홍같이 붉으면 과연 희어질 수 있겠는가?"(너희 죄가 진홍같이 붉다고 하자). 이 해석은 이스라엘 스스로의 가능성에 대한 철저한 부정이다. 하나님의 엄중한 평가원리를 말씀하신다. 이 판단원리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운명은 분명하다. 이렇게 의문문으로 해석하는 것이 낫다고여겨진다. 그리고 추가적 진리는 이스라엘에 희망이 없음을 말한다.

21-31절, 18-20절이 하나님의 심판원리요, 이스라엘의 소망이 없음을 말한다. 이것을 확증케 하는 것은 20절의 "하나님의 말씀이니라" 하고 엄중하게끝난다(추가적 언급). 21절은 하나님으로부터 정죄의 심판을 선고받은 이스라엘의 상태이다. 예레미야 애가에는 "어찌하여 통곡하는가?"라는 표현이나오는데 이는 시온의 심판을 눈 앞에 두고 하는 말이다. 예레미야의 슬픔은바로 하나님의 슬픔이었다. 이렇게 볼 때 21절과 유사한 점이 많다. 이스라엘의 이전 상태를 신실, 공의로 충만, 그 안에 의가 거하였던 그런 때가있었음을 말한다. 그러나 이제는 살인자들이 우글거린다. 신실했던 성읍이창기, 공평과 의가 있었던 곳이 살인자들로 우글거린다.

22절의 말 뜻은 (시김) = 은박(pbo - 산화납)으로서 은에 pbo가 섞이면 쓸모없는 은이 된다. 여기서 은이 찌끼가 되었다는 것은 즉, 제거되어야할 가짜 은이 되었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신실, 의, 공평이 없어지고 창기의 불성실, 살인자의 폭력과 불성실로 된 이스라엘은 내적 본질이 변질되어버린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은을 원하셨으나 즉, 신실, 의공평을 원했으나 살인자의 폭력과 불의로 바뀐 것이 외형적 은이 찌끼로 바뀐 것과 같은 것은, 겉으로는 의로운 것 처럼 보이나 속은 딴판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현재 상태를 가리켜 변질되었다고 선언하시는데 그 선언의전제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참 본질이 된다. 그것이 앞에서 언급한 신실함,공평, 의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너희는 변질되었다고 함은 이는 변질되기 전 참 본질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23절 이하 너희 방백들은 반역자들이요, 도적들과 한 패라. 뇌물을 좋아하며 추구하고, 과부들의 송사는 올라오지 않고, 과거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요구하셨던 삶의 본질에서 변화되었다. 내가 내 대적들로부터......보수하시겠다. 이 대적은 바로 이스라엘을 가리킨다(하나님 백성의 본분을 버리면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슬프다" 이 말은 이스라엘에 대한 절망감의 표현이다. 왜 절망할 수 밖에 없는가 상황을 묘사한 후 24절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리라고 하신다.

그리고 24절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나 다시 정결케 하시고 회복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모든 행위의 주체가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의 미래를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므로 이스라엘의 미래는 하나님의 미래이기도 하다. 절망적인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이것은 2가지 의미를 시사한다. 첫째는 불순물 제거 과정 즉, 모든 찌꺼기와 잡된 불순물을 제거하리라는 정화의의미와 다음에 옛 재판관들을 회복하신다. 정화와 회복 후(옛 상태로) 의의성읍이라, 신실한 읍이라 칭함이 되리라.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본질대로의회복(의롭고 거룩한 백성으로 세움을 받는 일)이 심판의 의미이다.

27절 시온이 공평으로 귀속(회개하는 자들이 구속되리라) , ,(슈브, 샤브, 샤베하) = 회개하다, 돌아서다. 패역한자는 패망 = 여호와를버린 자는 패망한다 = (= ; 요자브 아도나이 = 요즈베 아도나이)정리해 보면, 8-20절에서 이스라엘의 과거와 현재 역사는 하나님 앞에서혹은 하나님의 평가에 의해서는 절망적이다. 그래서 남은 것은 이스라엘의모습대로 보면, 철저한 심판 밖에 없다. 이스라엘 스스로의 가능성으로는철저히 부정적일 수 밖에 없으나 인간의 힘, 지혜, 계획에 의한 역사가 아니고, 철저히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에 의해서만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있다. 계속 반역하는 이스라엘을 아주 멸망케 하지 않으시고 철저한 하나님은혜에 근거하여 남은 자를 남기시는 미래, 죄에 처한 백성을 회복케 하시고, 정결케 하시는 미래의 소망은 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더러움 제거,참여케 하시고 신실하고 의로운 백성에 대하여 회개하는 자) 밖의 사람은 철저히 심판당할 것이다.

(샤브; 돌아오는 자, 회개하는 자) / (샤리드; 남은 자) - 하나님께서 남기신 자가 돌아온다. 이 두 사이의 밀접한 관계는 모든 신학자들의 공통되는 주장이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 하시면 이는 철저한 심판인데 그와동시에 돌아오라고 요구하신다. Psychological impossibility(심리적 불가능, 정신적 불가능) = 8세기 선지자는 너희는 철저히 멸망하리라고 선포한반면, 그후 선지자들이 돌아오라고 말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전체로서의 미래는 심판으로 확정 선언하면서 그러나 그들 가운데 '남은 자'가있다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결코 상호모순한 것이 아니다.

제 목 : < 구약연구 > 이사야 Jesaia 서론

모든 선지서가 이사야 한 권에 압축된다고 할 만큼 중요하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66장이 신구약을 대표한다고도 한다. 마가복음의 경우 이사야의 인용으로 시작할 정도이다. 이사야는 매우 깊으므로 또 중요하므로(구약 이스라엘 멸망과 메시야 왕국의 예언, 매우 중요한 위치에 서 있다) 신구약의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선지서 중 가장 밝히, 풍부히 신약을 나타내는 것이이 이사야이다. 그렇게 중요한 만큼 마귀의 장난으로 가장 말 많은 책이기도 하다. 18세기 비평학 이전에 이븐 이즈라는 사람은 제 2이사야란 칭호를붙였다. 최근에 56장 이후를 제 3이사야라고까지 부르기도 한다. 이런 이론들의 근거는 굉장히 복잡하다. 이런 쓸데 없는(그럴듯하기는 하나) 이야기가상당히 많다.

최근의 책들은 1,2,3 이사야서 이론이 정설처럼 되어 버렸다. 인정하건 반대하건 이 구분설을 인정해야 이야기가 된다. 순수한 예언의 가능성을 믿는다면 이 구분설은 필요가 없다. 8세기 선지자들은 세계 상황의 변화를 보고예언할 수 있었다는 이론, 이것은 예측에 불과하지 순수한 예언이 아니다.

B.C. 19세기 / 구 바벨론

B.C. 11세기 / 다윗왕국

B.C. 9-8세기 / 앗시리아

B.C. 8-7세기 / 신 바벨론

비옥한 초승달 지역의 주인이 바뀔때마다 서남쪽으로 진출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목재(레바논 : 두로, 시돈), 공물, 해상무역 때문인데, 애굽도 힘이남으면 올라간다. 팔레스틴은 바로 두 세력간의 길목이다. 그래서 항상 짓밟힌다.

이사야 시대(B.C. 8-9세기)에는 친 애굽파와 친 앗시리아파 등으로 팔레스틴은 복잡했고, 그러나 당시 애굽은 종이 호랑이에 불과하였다.

팔레스틴의 내부는 다윗왕국 이후 내부 분열이 일어나고 솔로몬은 실정함으로 외부 반란이 일어난다. 웃시야 시대는 북 아람의 내부 분열로 이스라엘은 세력을 확장하고 남 유다도 에돔까지 정복하여 솔로몬 시대의 고토를거의 찾았다. 팔레스틴 지역은 한편으로는 열강의 각축장이나 또 한편으로는주요 교역로이다. 이 교역로를 장악하는 것은 부의 원천이 된다. 솔로몬 시대에는 백향목을 뽕나무처럼, 은, 금을 돌처럼 흔하게 했다는 말이 이런 것이다.

북 앗시리아가 돌아가고 아람이 불안하고 이 지역의 주도권을 남북 이스라엘이 50년간 잡았던 때가 이사야의 시대적 배경이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망상을 아모스가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도 당시의 시대 배경을 이렇게만 생각할 것인가? 사 1:1에서 언급하는 시대 배경은 이러한 관점에서 보아야 하는가? 지금까지 살펴본 역사적 사실 진술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고 사건들을 꿰는 틀이 있다. 그러나 우리의 시각으로는 열방의 침입은 바로 하나님의 심판이다.

메소포다미아 지역의 2개의 세력은 바벨론과 앗수르, 니느웨요, 구 바빌로니아의 가장 흥한 왕이 바로 함무라비이다. 그후 B. C. 11C에 다윗왕국이큰 나라를 형성한다. 이때는 바벨론이 약했었다. 그리고 바벨론 대신 앗시리아가 커진다(B. C. 9C). 그리고 이 앗시리아는 느부갓네살의 신 바벨론에게 B. C. 8-7C에 망한다. 그리고 이어서 동방의 고레스에 의한 메데 바사에신 바벨론 역시 망한다.

Palestine의 세력 균형은 바벨론(메소포타미아 지역)과 애굽에 의해 이루어진다. 바벨론이 커지면 서방정책을 쓰고(두로와 시돈 향하여) 레바논의목재와 광석을 구하기 위해 지중해 진출을 하게 되는데 이때 소아시아 진출의 길이 열린다. 그리고 힘이 더 강해지만 애굽을 바라보고 남하정책을쓴다. 반대로 애굽 역시 마찬가지이다. 애굽이 커지면 북진정책을 쓰고, 더힘이 커지만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넘보게 된다. 따라서 두 문명권의 길목이바로 Palestine이기에 항상 짓밟힌다.

다메섹의 아람민족 - 아람 다메섹이(벤하닷, 하사엘 왕) 큰 세력으로 당시존재했다. 이들은 두 산맥 사이의 깊은 골짜기-베카( ; 골짜기, 쪼개어진곳), 골란고원에 위치하였고 이들의 침입경로는 이 골짜기를 따라 갈릴리로들어온다. 그리고 다메섹 위에 하맛왕국, 그 밑에 두로와 시돈, 해안평야지대로서 블레셋 지역, 이 모든 곳 즉, 야르묵강=길르앗지역을 성경에서는 바산지역(골란고원)이라고 한다. 이 야르묵강에는 라반의 민족(아람민족의 근원)이 살았다. 아람과 이스라엘의 경계지역(라반과 야곱의 협정)이었다.

이스라엘의 문제는 친애굽파와 친앗시리아파의 갈등이었다. 정치적으로 저울질하다가 갈등한다. 그러나 당시 애굽은 종이 호랑이에 불과하였다. 르호보암 때 시삭이 쳐들어 왔고, 8세기 선지자인 요나, 아모스, 이사야, 미가시대에는 가장 위협세력이 앗시리아였다. 이스라엘의 내부사정을 보면 내부적으로 혼란했다. 중앙정부의 힘이 약해지자 속국들(아람, 다메섹)이 떨어져나갔고, 나라는 2분되어 서로 분열과 다툼이 심화되고 있었다. 이때부터 2대를 못나가 반란이 일어난다.

북이스라엘은 두로와 시돈 화친으로서 아합을 두로의 공주와 결혼시키고,여호사밧의 아들과 아합의 딸 아달랴를 결혼시킨다. 이때 아람이 앗시리아때문에 힘이 부쳤던 것 같다. 아합시대는 그의 아들 때 예후의 반란으로 끝난다. 예후 이후 이스라엘은 아람에게 짓밟히기 시작하고, 이 결혼으로 남,북이 흥망성쇠를 같이 한다. 아합이 병거 천승, 보명 2만을 둔 것에 비하여 예후 때는 앗시리아가 쳐들어 올 때 파견한 군사가 겨우 병거 십승이었음을 볼 때, 이스라엘은 공격력이 전무한 상태인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아람에 의해 철저히 유린된 상태였다.

앗시리아가 서남진정책을 쓰면 다 망하고 마니까 앗시리아와 동맹을 맺으려는 움직임이 일고, Qarqar전투에서 여러 동맹국이 앗시리아와 대항하나 이때 앗시리아가 철저히 승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추측컨대 한참을앗시리아가 저지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Adadhirari 3세가 앗시리아 왕일 때아람, 다메섹을 완전히 짓밟고 이스라엘에게 조공을 받는다. 그러나 여로보암 2세 때 앗시리아가 바벨론 때문에 지치고 아람 다메섹과 하맛의 자기네들끼리 싸우므로 그 틈을 타서 이스라엘과 유다가 큰 세력을 떨치게 된다.

여로보암 2세, 웃시야 왕 때에 이스라엘이 세력을 크게 확보하기 시작한다(에돔을 다시 정복). 웃시야 왕은 농업을 크게 일으키고, 옛 솔로몬 시대에버금가는 영토가 된다(비록 남북으로 갈라졌으나). 나쁘게 보면 열국 사이에서 눌리는 지역이지만 좋게 보면 두 큰 문명권의 다리 역할(교역로)로 여기서 떨어지는 부가 상당히 크다(솔로몬 시대가 그러했다). 그리고 그 다음

앗시리아가 침략할 때까지 약 50년간 그 당시 판도를 주름잡는 이스라엘의정치적 부흥기였다.

이스라엘이 가장 정치적으로 융성했던 시대에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선지자가 8세기 선지자들이다. 그 당시 교회 지도자들의 자세, 그들의업적에 대한 자랑, 유례없는 축복의 때에 살고 있다는 허황됨에 대한 치는예언자가 아모스였다. 그 당시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스스로를 평가했다. 이스라엘이 맞은 정치적 호기들을 이렇게 해석하고 보아야 할 것인가? 이사야 1:1의 말씀에 비추어 이러한 역사적 상황에 대해 어떻게 암시하고 있는가?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주류인데, 과연 그러한가? 역사적 사실만들어서 이야기한 것이지만 이 사실들을 꿰는데는 어떤 틀(시각)이 있다.

아브라함 이후의 역사는 이스라엘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겠다는큰 나라 형성 계기와 엘리야 사건으로 타락한 이스라엘의 역사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끌어 가실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한 사건이다. 언약 파기한 이스라엘에 대해 철저한 심판을 하고, 그 심판의 도구는 하사엘(이스라엘을철저히 괴롭힌 자), 예후, 그 손을 피하는 자는 엘리사를 통해 심판하시리라. 그러나 남은 자를 남기리라. 이러한 이스라엘이 당할 심판을 예언한 자가 요나이다(여로보암 2세 때). 죽었다가 사는 의미의 심판이다. 사망의 곳에서 부활하여 세계 만민에게 복음을 전할 것이다.

그러면 여기에 일어나는 사건들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요아스, 여로보암2세를 통해 융성케 하신 이유에 대하여 성경은 이스라엘이 너무 고생하므로불쌍해서라고 한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교회사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의 시각을 제공한다. 조금 넓게 보면, 글을 남긴 선지자 - 아모스, 호세아 등등 8세기에 들어와 거의 동시대에 선지자들이 쏟아져 나온다. 물론 엘리야, 엘리사, 요나 등등 함께 튀어나온다. 이들 선지자를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표현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나님께서이스라엘을 통해 주신 계시의 말씀은 특정시대와 관련되어 이해되어야 하고,그것이 기록되었다는 것은 오고 오는 모든 시대에 말씀하시는 계시의 성격이있음을 놓쳐서는 안된다. 이사야가 기록되었다는 것은 그 당시에만 해당하는것이 아니고 모든 시대에 연관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1-12장과 13장 이후는 그 내용이 구분된다. 1-12장은 이스라엘에 관심이있고 13장 이후는 이방에 관심이 있다. 심판과 구원의 예언이 번갈아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