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해 : 이사야 6장 1절 - 5절

차 례

Ⅰ. 이사야서 개관

1. 이사야서 개요

2. 저자의 문제

3. 기록 연대

Ⅱ. 내용 분해(이사야서 6장 전체)

1. 환상을 봄 : 1절-4절

1) 그 시기와 환상을 봄(1절)

2) 스랍들의 활동 모습(2절)

3)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함(3절)

4) 하나님의 임재(4절)

2. 자아발견 : 5절-7절

3. 이사야의 사명 받음 : 8절-10절

4. 이사야의 예언 결과 : 11절-13절

Ⅲ. 본문 주해(1절-5절)

Ⅳ. 결론

참고도서

1. 이사야서 개요

:- 이사야서의 저자는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로 그의 이름을 따라 '이사야'라 이름하였다. 이 뜻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란 뜻이다. 이사야는 히브리 예언자 중 최대의 예언자로 보통 알리어 있으며 구약 예언서 가운데 제일 분량이 많은 책의 명칭이다. 이사야서 6장의 내용은 이사야가 환상을 통한 소명과 임무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2. 저자의 문제 ; 본서의 저자는 이사야이다. 그러나 영 박사에 의하면 이사야의 저작문제에 대하여 주후 1780년에 처음으로 변론이 일어났는데, 라벌트 로우드 감독의 이사야서 주석이 나타남으로부터 되어진 것이다(이사야 50장 문제). 그 후 1789년에 되들라인(40장-66장 문제), 1892년에 버나드 둠(40-55장과 56-66장을 나눔), 1917년에 헤르만 궁켈 등이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이사야서의 첫 부분(1-39장)이나 둘째 부분(40-66장)이 서로 관련되어 있는 한 개의 문서임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첫째, 본서는 유일하게 이사야의 이름만을 들어 그의 예언이라고 말한다(1:1, 2:1, 13:1). 이 두 부분에 있는 몇 가지 장절들의 내용이 서로 유사한 것은 이 사실을 증명한다(28:5/62:3, 29:23/60:21, 29:18/42:7, 30:26/60:19, 11:6/65:25).

둘째, 우리는 신약 성경의 저자들이 이사야서를 인용하면서, 그것이 이사야의 글이라고 확언한 사실로 말미암아 이사야서 전체가 이사야의 저술이라고 믿는다. 사6:9,10/행28:25, 사10:22,23과 11:5/롬9:27, 사1:9/롬9:29, 사53:1/요12:38, 사6:9,10/요12:39 등 , 마태복음에서 로마서에 이르기까지 이사야서가 21회나 인용되는데, 특히 요12:38-41에서 저자 요한은 이사야 6:9-10, 53:1,6,9,10을 언급하는데, 요한은 이 예언을 모두 이사야의 것으로 말한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

3. 기록 연대 ; 본서의 기록 연대에 관하여 확실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지만 본서의 저자인 이사야가 활동했던 시기에 대하여는 알려 준다(참조, 1:1, 6:1). 일반적으로 이사야의 활동 시기와 본서의 저작 시기를 동일하게 본다. 그러므로 본서의 기록 연대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B.C. 759)부터 이사야가 므낫세 왕에게 처형되기까지(B.C. 700) 약 60년 동안이었다.

Ⅱ. 내용 분해

1. 환상을 봄 : 1절-4절

1) 그 시기와 환상을 봄(1절)

2) 스랍들의 활동 모습(2절)

3)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함(3절)

4) 하나님의 임재(4절)

2. 자아발견 : 5절-7절

1) 자신의 부정한 모습을 발견(5절)

2) 죄 사함 받음(6절-7절)

3. 이사야의 사명 받음 : 8절-10절

1) 이사야의 소명(8절)

2)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상(9절-10절)

4. 이사야의 예언 결과 : 11절-13절

1) 이스라엘의 불신앙의 결과(11절-12절)

2) 하나님이 택한 그루터기(13절)

Ⅲ. 본문 주해(1절-5절)

1. 환상을 봄 : 1절-4절

1) 그 시기와 환상을 봄 : 1절

그 시기가 여기에 묘사되어 있는데 즉 "웃시야왕이 죽던 해"가 이 예언자에게는 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여기에 소개된 이 적나라한 진술 자체가 "사건이 일어나다"라고 시작되는 문장보다 훨씬 더 강조적이다. 그것은 웃시야왕이 죽던 해였으며, 요담의 제위 원년이 결코 아니었다.

1 절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웃시야 왕"은 유다왕 중에 비교적 정치를 잘 한 군주로서 52년간 다스렸다. 그는 주전 758년에 죽었는데, 웃시야왕이 죽은 해부터 유다의 국세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사야는 유다의 명군 웃시야왕의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유다의 장래에 대한 불안한 마음이 그를 성전으로 향하게 하였고, 이사야는 성전에서 또 하나의 왕이신 만군의 만군의 여호와를 보게된 듯하다.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여기서는 3절과 5절의 "여호와"와는 달리 "주"란 칭호를 쓴다. 물론, 주는 그 대명사로 뜻에는 변함이 없다. 지상의 왕자의 보좌를 묘사하는 말이요, 언약궤로 만들어진 지상보좌에 대한 하늘 보좌의 원형이다. 분명코 예언자는 하나님의 보좌를 죽은 웃시야의 보좌와 대조시키고 있는 것이다. 웃시야의 죽음으로 낙망한 이사야는 웃시야에 비할 수 없는 하나님의 보좌를 발견한 것이다.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왕자의 긴 옷자락을 말하며, 그것은 곧 그의 고귀한 신분을 표시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옷자락은 너무 길어 성전에 가득하였다.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였음을 표시하는 것이다.

2절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스랍"이란 말은 불탄다는 뜻인데 불은 성경에서 주님의 성결을 의미한다. 히 12;29에 말하기를,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고 하였다. 여기 이른바 "소멸"한다 함은 죄를 소멸하신다는 뜻이다. "스랍들"은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는 근위 천사들로서 저렇게 불타는 성결을 소유하였다. 그들은 저렇게 하나님에게서 유래되는 성결을 가졌고, 독립적 성결을 가진 것이 아니다.

"모셔 섰는데"는 그의 위에 서서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그들이 주님의 옷자락 위의 방면에서 하나님에게 봉사하는 태도로 서서 있음을 가리킨다.

"얼굴을 가리었고 발을 가리었고 날며" 두 날개로 "얼굴을 가리운"것은 여호와의 성결하신 위엄 앞에서 경외하는 태도이며, "발을 가리운"것은 천하고 더러운 발을 가리운 성결과 겸손을 가리키고, "나는"것은 그들의 봉사하는 활동을 말한다. 그리고 여섯 날개는 그들의 빠른 동작을 표시한다.

3절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충만하도다"

여기 "창화"라는 것은 그들이 동시에 음악회에서 하는 것처럼 목청을 드높였음을 나타낸다.

"거룩하다"(ࠚࠅࡆࠃএ=카도쉬)고 세번이나 말한 것은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에게 해당시키는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이것이 정확한 해석인지 아닌지는 불문하고 생각되는 것은, 세번 말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대하여 "말할 수 있는 힘"을 다하여 말한 것을 가리킨다."거룩하다"는 것은 그가 피조 세계에 속하시지 않고 초월하여 계심을 가리키는 동시에 죄를 전연 용납지 않으시는 성품을 의미한다.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다"함은 이렇게 거룩된 하나님을 땅에 있는 만물이 칭송한다는 의미이다. 범죄한 인간들은 그를 모르나 만물은 피조 성격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을 보여주고 있다. 보이는 만물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거룩하신(초자연적이신) 권능으로 말미암아 나타나게 된 것이다(히 11:3). 스랍들은 이 말로써 은근히 유대인들의 좁은 생각을 꾸짖는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자기들에게 전속시켜 교만하여졌음으로 도리어 하나님 말씀에 대하여 생명 있는 반응을 가지지 못하게 되었다(9, 10). 거룩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사람들은 잘못 생각하기를 어떤 지역에 갇히운 분으로 생각하고, 또 혹은 자기들에게만 전속되어진 분인 듯이 그릇되이 생각한다. 하나님을 이렇게 생각하는 교회는 온 땅에 그 영광을 충만케 하신 하나님을 오해한 것이 분명하다. 그런 오해 속에서 교만이 나옴에 따라 하나님 말씀의 섭취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런 무생명한 교회는 결국 성결을 보존하지도 못하고 도리어 세상에게 삼키우고 만다.

4절 "이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문지방의 터가 요동"함은 스랍들의 소리가 초자연적인 힘이 있는 것을 증거해 준다. 사실상 천래(天來)의 음성은 이런 운동력을 가진 것이다. 여기 있는 말씀은 간접적으로 인간에게 교훈을 주나니 곧, 인간들은 지각 없는 성전 문지방만도 못하여 하나님의 초자연적 말씀 앞에서 아무런 느낌이 없음을 은책한 것이다. "집에 연기가 충만"하다 함은 하나님의 진노와 위엄이 가득함을 보여준다(출33:9) "연기"(ࠐ৊फ़=아솬)는 하나님의 현림을 가리킨다고 하나, 그 보다도 "연기"는 하나님의 진노를 상징한다(시18:8). 이것은 그가 장차 불신의 무리들에게 나타내실 심판에 대한 시위이다. 그가 이제 이사야를 보내어 말씀을 전할 때에 유대인들은 결국 순종하지 않고 멸망을 받고야 만다(9, 10).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시지만 자기의 사랑하시는 자들로 하여금 그 자신을 알게 하시려고 이런 초자연적인 현상을 보여주신다.

5절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거룩하고 두려우신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는 사람은 누구나 이렇게 고백할 것이다(눅5:8). 하늘이라도 주 앞에서는 부정하다고 하였다(욥15:15). 또 하나님을 본 자는 죽는다는 것이 구약에 공통된 개념이었다(출33:20, 창 32:30, 삿6:22). 이사야는 지금까지 백성의 죄를 지적하고 저들의 화를 선언했으나 이제는 자신의 화를 고백하는 것이다. 죄를 회개하고 구원받는 과정에서 먼저 자신의 죄를 해결받지 않고는 남의 죄를 해결시킬 수 없는 것이다.

또 "화(ࠉࠅࡀࠀ)"라는 낱말이 이사야서에 21회나 나타나 본서의 특징적 용어가 되어 있다(본서 다음으로는 예레미야에 12회, 에스겔에 6회, 하박국에 5회 등).

"입술"의 죄악은 모든 죄악의 대표적인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입술의 죄악을 가장 작은 것인 듯이 취급한다. 약3:2에 말하기를,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고 하였다. 이것을 보면, 사람의 말은 그 인격의 시금석이다. 마태복음 15장 11절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고 하셨다. 이사야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스랍들의 모습을 보고 자신을 돌아볼 때 자기의 더러운 입술은 사망에 해당하는 것임을 깨달은 듯하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라고 한다. 그는 자기가 자기 민족 중에 속하는 일원으로서 민족의 죄악에 대한 공동 책임이 있음을 자백한다. 민족의 죄악에 대하여 연대 책임성을 느끼는 것은, 죄악을 바로 보는 선지자들의 공통 의식이었다.

인간이 완전자의 현존앞에 서게될 때 자기의 제한성과 죄성을 인식하게 된다. 겸손이란 말은 우리들의 진정한 입장을 고백한다는 것이다.

Ⅳ. 결론

본문 내용을 정리하므로 주해를 마무리 할려고 한다.

본장에서는 이사야가 예언자의 길을 걷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는 환상을 본 사건을 기술하고 있다. 즉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보좌에 앉아 계시고 스랍들이 주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는데 그는 그중에서 자신의 더러운 모습을 발견하고 죄인됨을 고백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비록 죄인이라고 할지라도 먼저 그 죄를 용서하시고 정결케 하신 후 사명을 맡기심을 알게 된다.

오은날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군을 선택하실 때 먼저 자신의 위치를 올바로 인식하는 자를 고르시어 자기의 죄를 개닫고 회개하는 사람에게 주님의 일을 맡기시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롬3:23)고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6:23)고 하신 말씀처럼 우리는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우선해야 할 과제이고, 그 후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준비를 갖추어야만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