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니엘의 아침햇살
이 책은 저자가 구약성서와 평신도들의 간격을 좁히기 위해서 저술한 것
이다. 이것을 위해서 저자는 서문에서 말한 바와 같이 "구약성서 본문의 함
축적인 의미를 찾아내기 위해 쉬운 예화로 풀이해가며.." 구약성서의 각 책
의 핵심이 되는 동시에 평신도들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장(장)들을 재미있
는 필치로 해설하면서 그것이 구약성서 전체및 신약성서의 신앙에 어떤 의
미를 끼치고 있는지를 밝혀주고 있다. "구약성서의 이야기들을 통하여 오
늘을 사는 현대인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메세지가 무엇인가 하는 점"(생
명나무와 가시덤불 중에서)을 부각시키려 하는 것이다.
독자들은 이 책에 펼쳐진 저자의 구약성서에 대한 수상을 통해서 각 성
서가 주는 멧세지가 오늘 현대를 사는 나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 하는 질문
에 이르게 되면서 구약성서의 깊이에로 초대된다. 저자는 오늘 우리 주변에
서 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을 매개로 하여 구약성서와 우리들과의 밀접한 관
계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인류의 이야기는 하나의 이야기이다. 그리
스의 '오딧세이'가 그렇고, 그보다 앞선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쉬 서사시'
가 그렇다. 고향을 떠나 모험을 겪은 다음 다시금 고향으로 돌아오는 이야
기이다. 자신의 고향을 떠나 영원한 안식처를 찾아 헤메는 아브라함의 이야
기는 모든 크리스챤의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우리가 가진 성서는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 나그네가 되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묵시록
에는 하늘나라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로 되어있다. 아담은 'everyman'
이며 ..방랑하는 아브라함의 모습은..믿음의 조상의모습이 되는 것이다."
(방랑자 아브라함 중에서)
그러나 저자는 단지 쉽게만 전개하지 않고 평신도들의 이해에 부담이 가
지 않는 한도 내에서 구약성서신학의 중요한 포인트들을 적절하게 삽입하고
있다. "야훼 신학자의 실락원 이야기는 인간 실존의 문제이며,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 것인가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피노키
오와 실락원"에서) "우리는 아브라함과 유사한 족장의 위치에 있었던 인물
들이 많이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하지만, 산 이스라엘의 구두전승(구두전승)
으로 전해지고 또 이것이 신학적으로 해석된 것은 연출가가 자신의 어떤 의
도를 살리기 위해 무대 위에 등장한 많은 인물 중의 단 한사람을 클로즈업
시켜 그의 말과 행동에 모든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과 같이 이해해볼 수 있
다. 즉 성서 기자가 아브라함을 부각시켜 그로 하여금 결국 출애굽 사건을
가능케 한 중심 인물들의 조상이 되며, 아울러 한 걸음 더 나아가 그가 살
고 있는 이스라엘 역사의 시조가 되게 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방랑
자 아브라함 중에서) "십계명은 "나는 너희 하나님"으로 시작된다. 개역성
서는 히브리 본문을 따라 제2인칭 단수를 사용하지만, 공동번역은 복수 2인
칭 "너희"를 사용하고 있다. 물론 내용적으로는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를 포
함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은 계약 체결을 위해서 공동체를 하나의 인격체로
보신 것을 나타낸다. 이와같이 그리스도 교회도 하나의 신앙 공동체이며,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하나의 인격체가 되는 것이다."(십계명 연구(2) 중에
서) "메소포타미아 문헌에 나오는 '바빌론의 욥'은 절대자인 신들 앞에 무
력한 유한적인 존재이다. 그는 아무 잘못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잘못
했다고 신에게 빌며 도와 달라고 간구한다. 그러면 신을 불쌍히 여겨 그를
도와준다. 여기에는 유한과 무한의 단절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성서의 욥
은 그렇지가 않다. 그는 대담하게 창조주에게 대들었고, 유한한 존재와 무
한 존재 사이에 대결이 일어난 것이다."(유한과 무한의 만남-욥기38장- 중
에서)
저자는 또한 이 책을 통해서 한국교회 교인들의 궁금증들에 대해서 시원
한 답을 제시하기도 한다. "우리의 조상들 뿐만아니라 세상의 많은 사람들
이 오랫동안 천체는 물론 대자연까지도 초인간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믿었다. 그리스도교가 한국에 소개되기 이전에 우리는 이미 '이미 하늘에
계시는 분'이라는 '하늘님'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이 분은 막연하게나마 하
늘에서 삼라만상 온 세상을 다스리는 분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 후 그리
스도교에서는 이 분을 유일하신 신이라고 여겨 '하나님'이라고 부르게 되었
다. ...가톨릭과 개신교가 합쳐서 성서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우리말 문법으
로는 '하나님'이 맞다고 보아 공동번역에서는 그렇게 쓰고 있다. 그것은 하
늘이 인격화되어 하느님이 될 수 있지만 하나라는 추성명사는 의인화시킬
수 없다는 해석이다." (십계명연구(1):하나님의 이름 중에서) "이 하나님
이 자신을 계시하실 때 그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야훼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촐3:15)라고 하셨다. 이 구절에서 이스라엘
'조상의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로 되어있다. 여호와라는 우리말은 영어
의 Jehovah에서 온 것이고, 공동번역에서는 '야훼'라고 번역하고 있다. 이
새이름은 신의 이름을 '야훼(Yahweh)라고 기록한 야훼 기자에서 온 것이
다."(이스라엘의 하나님-출애굽기20장- 중에서 )
이와같은 책의 내용으로 볼 때 이 책은 교회에서 평신도들의 구약성서공
부를 위한 교재로 또는 목회자들의 구약성서설교를 돕는 안내자의 역활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실정에 비추어 볼 때 아래와 같은 부분들에 대해서는
좀 더 자상한 해설이 곁들어져야 할 것이라고 보여진다. 즉 "창세기 3장에
서는 뱀이 현명한 짐승의 표상이지 악을 상징하는 사탄의 모습은 아니다."
(생명나무와 가시덤불 중에서) "족장 아브라함은...그들이 메소포타미아에
서 모시고 온 'El Shaddai'를 섬겼다. 이 신이 후일에 야훼로 대치된 것으
로 보인다."(아브라함의 축복 중에서) "성서는 야곱이 밤새도록 하나님의
사람과 씨름을 했다고 말한다. 성서학자들은 강에 사는 귀신이 밤중에 나타
나 사람을 괴롭힌다는 전설적인 이야기를 이스라엘 신학자들이 야훼 종교에
접목시켜 신학화작업을 이루어 놓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야곱은 자기보다
더 큰 힘을 가진 존재와 밤새껏 겨룬 것이다."(브니엘의 아침 해살-창세기
33장- 중에서) 등이다.
이와같은 내용은 구약성서의 율법서 가운데서 엄격하게 배격하고 있는
혼합주의와 어떻게 다를 수 있는가? 전통적인 무속신앙들을 우상숭배라고
엄격하게 배격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좀 더 자상한 설명
이 곁들여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볼 때 필자는 이 책은 구약성서에 대해서 뿐만아니라
구약성서신학과 교회와의 간격을 좁히기 위한 좋은 매개체의 역활을 하게
될 것이라고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