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김성수 교수 강의
서론
I.성경신학의 정의
성경과 거리감을 줄이기 위하여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1.근본된 거리감-----성경은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절대적 권위를 갖는다.그러나 인간은 성령의 영감적인 차원이 아니라 조명적인 차원에서 성경을 이해하기 때문에 항상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성령의 영감적인 사역은 일시적이요 한정적이라고 하면 성령님의 조명은 우리 인간의 전 생애를 통하여 역사하기때문에 점진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교회를 통하여 보면 예수님 재림 때까지 함으로 점진적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거리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2.학문적인 거리감-----성경을 다루는 신학적인 접근 때문에 거리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1)교회사 ----성경 이해를 전제로 하고 교회 역사를 해석하기 때문에 적용 역사라 할 수있다.
2)실천신학---- 성경 이해를 전제로 하고 삶에 적용하기 때문에 적용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3)조직 신학 -----Proof -textual Method
성경으로 어떤 교리를 증명할 때 모든 필요한 구절을 뽑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4)주경신학---역시 단어의 의미를 중심으로 본문의 의미를 파악하는 신학이다.
5)성경신학----이모든 신학에서 빼놓은 사실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역사성이다.왜냐하면 성경은 역사적 흐름 위에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역사적 흐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다루는 것이 성경 신학이다.
*참고*
보다 성경을 잘 알기 위해서는 이모든 신학을 종합하여 하는 것이 제일 좋다.신약 성경에서는 이모든 것이 종합하여 나온다. 사도행전에서 구약 성경을 인용할 때는 성령님께서 문맥과 의미와 적용을 다알고 행하신 것이다.
II.역사란 무엇인가?
1.역사의 장
성경 신학이 역사의 흐름에 따라 본문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라면 역사란 무엇인가 정의를 내려야 한다.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역사의 시작으로 돌아가야 한다.역사의 시작은 창세기 1:1이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는데 하늘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주의 공간을 말할 수도 있지만 하늘의 세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땅"의 의미는 물리적 공간이다. 물리적 공간의 기본적인 틀은 시간과 공간이다. 역사라고 하는 것은 땅에서 일어나는 거시이다.그러나 역사의 시작을 말하면서 "하늘"이라는 단어를 무시해서는 아니된다.왜냐하면 역사의 시작에 함께 나왔기 때문이다. 하늘은 영적인 세계이다. 역사의 장은 시간과 공간으로 이루어진 물리적인 세계와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를 포함한다.
2.역사의 주체
역사의 주체는 누구인가? 법칙이면 헤겔 철학이 되고 인간이 되면 실존주의 자가 되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역사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와는 상반되지 않는 다. 모든 만물이 하나님께로 나오고 모든 만물이 그에게로 다시 돌아간다(룸 그러므로 하나님은 역사의 주체이시다. 우리는 역사의 불투명성을 주장한다.역사의 자체로는 그 의미와 뜻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3.역사의 정의
역사란 하나님께의 뜻과 의도를 점진적으로 실현하는 과정이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인간으로서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계시해야 만이 알 수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것은 자연과 양심 그리고 성경이다. 자연은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자연을 올바르게 해석하지 못한다.양심 또한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명확하게 알 수만이 있다. 오직 성경만이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일정한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시고 질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의도와 목적이 있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의 의도는 무엇인가? 요 5:39 과 눅 24:24 에 잘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예수그리스도이시다.역사를 다시 한번 정의한다면 "예수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뜻의 실현 과정이다.
본 론
I. 역사의 시작
역사를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하나님의 뜻의 실현 과정이라고 하면 역사의 시작을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가? 예수님을 알기 위해서는 족보를 알면 된다. 성경의 족보 사용례를 보면 역사의 근원점일 뿐만 아니라 이전의 역사와 이후의 역사의 계속성을 말해 주는 것이다. 특히 혈통을 통한 약속의 계속성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할 때 족보가 나오는 것이다. 예수님의 관한 역사는 복음서에 나오고 있다 . 마태복음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고 마가는 이사야 선지자로부터 시작하고 누가는 아담부터 시작하며 요한은 태초 전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밀접성을 고려한다면 마태복음이 제일 낫다 . 왜냐하면 구약 성경이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계시하신 것이라면 이스라엘의 시작이 나오는 마태복음이다.
마태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의 세계라" 그러므로 예수님을 논하기 위해서는 아브라함부터 시작해야 한다.
마태 1:1의 족보는 3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아브라함------다윗 :14대
다윗-----바벨론 포로 :14대
바벨론 포로-----그리스도 :14대
이 족보를 통해 성경 기자는 전구약 역사를 압축하여 설명함을 알 수있다.
예수님께서 제일 처음 외치신 것은 "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느니라"
주기도문에서 "나라가 임하옵소서" 여기서 나라는 하나님의 뜻이 역사 속에서 실현함으로 찬송 받으시고 영광이 되는 것이다,제자들은 정말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기도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창 1-11 인류의 보편적인 역사
창12:1-3 아브라함 창11:1-9 바벨탑
지시할 땅 시날 땅
큰민족 큰 성과 대
네이름을 창대케하리라 자기 이름
복의 근원이 됨 저주를 받음
이 두 가지 사건이 크게 대조되는 데 그것은 왕국 건설이다. 하나는 아브라함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 하나는 사람을 중심으로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다. 12장에 나타난 동사는 하나님 1인칭으로 되어 있고 11장의 동사는 사람들 1인칭 복수로 되어 있다. 날카로운 대조는 하나는 축복으로 끝나고 하나는 저주로 끝나는 것이다. 하나는 하나님의 나라 건설이고 하나는 인간 왕국 건설이다.
중요한 것은 획기적인 사건이 있을 때마다 족보가 나온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아브라함 의 족보가 창 11:10-26에 나온다. 이 족보는 셈의 족보이다. 이 셈은 노아의 후손이다 .노아의 족보는 창11:1-9에 나온다. 홍수 이후의 노아의 후손의 역사는 새인류의 역사이다.10장은 11장 다음에 나오는 사건이다. 10:5에 각기 방언 과 여러 나라 백성으로 나뉘어 각기 방언과 종족과 나라대로 바닷가의 땅에 머물렀더라. 홍수 이후의 사건은 인류의 내면적인 특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바벨탑 사건은 홍수 이후의 사람들이 어떠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언어의 통일은 내적인 통일을 의미한다. 바벨탑 사건은 인간의 내적인 상태의 통일성을 의미한다. 그러면 그들의 내면적인 통일성은 어떠했는가? 창 6:5 에 "그 마음에 생겨 먹은 것이 원래 (항상)악하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창 5장에 시작된 아담의 역사로부터 인간이 악한 것임을 보여줌 .그래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쓸어 버리셨고 오직 노아만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남았는데도 인간의 근본적인 악은 사라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사건은 창 9:20 -27 에 나온다. 노아가 술에 취하여 잠이 들었을 때 함이 그 사실을 보고 아버지를 놀린 것은 그의 악이 계속 된 것을 의미한다.바벨탑 사건에서 하나님을 반역하는 것은 함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전인류에 퍼져 있음을 알려 주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악한 인간의 역사는 스스로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결국 망하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창9:26에 "셈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니라" 고 노아가 셈을 축복 한것이 나온다. " --의 하나님"이 단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언약을 맺으실 때 사용한 형식이다. 하나님께서는 셈과 특별한 관계를 맺으시겠다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