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김성수 교수

*구약에 대한 critical approach

historical - critical method(source critisism)

1.1.anstjtjf(document hypothesis)

구약은 한권(ex.모세오경)이라 할지라도 단일저작이 아니고,한번에 쓴것도 아니며 여러시대에 걸친 여러저자의 작품이다. 왜냐하면 논리적 일관성이 없고 중복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doublet"(중복보도)는 한 사건을 두번이상 기록하는 형식이다.

J.E.D.P등의 문서등으로 성경을 모두 찢어내기 시작 현재는 그 분류등이 아무 의미가 없음을 인정하는 상태

.MARTIN NOTH;성경의 문서설을 뒷받침해주는 것으로서, 한사건이 두가지로 기록된 것을 증명하는 확실한 근거는 'DOUBLET'밖에 없다.

.최고의 문서설학자 EISSFELDT;문서설은 확실한 FACT위에 근거한 이론이라기 보다 가설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

1.2.FORM CRITICISM(양식사학 비평)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문서설의 극단화된 이론이라 할 수 있다. 문서설은 j.e.d.p라는 문서의 본래적 성격을 그래도 인정하여 현존하는 원문을 추적하려는 시도를 하는데 비해 양식사학은 기록된 형태 이전의 form을 추구함.

현재의 구약형태가 존재하기까지는 간단한 것들의 복합이 아니라 더 오래된 기원이 있었다고 생각

j.e.d.p 이전의 문서가 있을 수 있고 문서이전에는 구전의 형태로 있을 수 있다는 것.

pre-literary stage(문서이전의 상태)를 인정하고 그것까지 추적하려 함

*그런데 남아있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사용하는데 그 방법으로 gattungsforchung를 사용(장르,형식)이 형식연구의 근거는,고대인들은 우리보다 훨씬 형식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이며 뿐만아니라 종교적 영역에 있어서는 더욱 보수적이므로 더 형식에 철저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

문서화 이전의 형식은 보수적 성격때문에 그대로 보존 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

형식과 삶의 내용(상황)은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현재의 삶의 내용속에서 고대의 형식(gattung)을 추적할 수 있다. -삶의 상황을 전제

현존형태 이상의 풍부한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

그러나 한 unit안에 여러 장르가 동시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서로 찢어 분류하다보니(atomistic)원문으로서의 구약 전체는 아무 의미가 없게 됨.

1.3.canonical criticism 예일대의 b.s. childs가 주장

위의 2가지 비평은 성경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으려는데 비해 이들은 현존하는 정경 자체를 중요하게 받아들임

예수님과 사도들이 인용한 귀절은 구약이었다고 하여 구약의 권위를 인정.,그러나 이들의 주장의 근저에는 문서설과 양식비평이 전제.

비평의 방향만 달리하여 현재 형태의 구약에 관심을 두고 이 구약이 어떤 경로를 거쳐 이루어졌나를 연구함

연구의 방향은 다르지만 연구의 방법론은 변하지 않았다.

(childs의'the crisis of bibleical theology'를 보면 근본적으로 우리와 다르다)

1.4.이들 3비평의 공통점은 오늘 우리의 성경이 실제로 이러난 역사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전제하는 점이다.

한 사건의 중복기록은 서로 모순된다고 하며,그렇게 되면 양자가 모두 그릇되거나 적어도 하나는 그릇되므로 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본문의 한 unit를 다른 새로운 문맥에 집어넣음으로써 본래 문맥의 의미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contest변조)

이런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난 결과는 성경이 참 역사가 아니다라는 것인데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진리로서 생명을 바칠만한 가치가 성경에 있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2.성경의 역사성(geschichtlichkeit:historicality)

2.1.성경의 역사적 성격

'성경은 어떤책'이냐 하는 것이 현대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이다.

b.w.anderson의 "exodus thpology in second isaiah"에서 "allegory와 typology는 2개의 상이한 존재론적 기초를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2.1.1.allegory;구체적 역사적 시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오히려 무시간적,영원한 어떤 것에서 참 실제를 발견코자함.

알레고리칼한 해석은 구체적관심보다는 배후의 진리에 더 관심. 이러한 해석이 함축하고 있는 것은 '구체적 역사는 실제적 역사의 영역이 아니고 무시간적 영원한 역사의 표면적 구체화에 불과하다'는 것

시공의 역사적 사건은 무시간적진리의 일시적구체화에 불과

plato의 idea에서 이러한 입장이 잘나타남

" 현상은 영원한 이상의 묘사요 그림자이다"

2.1.2.typology;시공에서 일어난 일은 영원한 실제와 동일하다. 역사속에서 궁극적 실제가 표출된다.

성경은anderson의 2가지 주장중 어느한 범주에만 속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성경이 진술한 내용은 근본적으로 하나의 역사를 말하고 있다. 이 역사는 우리가 살고있는 시.공에 뿌리박은 구체적 역사요 구체적 폭표를 향해 시작과 끝을 가지고 진전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교의신학은 이러한 역사성을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성경의 주요한 성격을 놓치고 있다.

(오랫동안 전통신학과 자유신학의 구체적 충돌이 없었던 이유중 하나는 교의 신학의 그런 성격 - 성경의 역사적 상황(context)을 근거하지 않는 - 때문이었다.)

만약 성경신학이 전통적인 신학의 조류였다면 그것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성격때문에 처음부터 자유주의 신학의 짜깁기 성격과 크게 충돌하였을 것이다)

2.2. 성경의 중심주제와 관련된 역사성

요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

눅24:44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모든 것 ~

이런 귀절들은 적어도 신약을 영감된 것으로 받아들이는 자에게 절대적이고 근본적인 열쇠를 제공한다.

신구약의 근본적 통일성은 jx에게 있기 때문

신약이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한다는 것은 이견이 없지만,구약도 그리스도에대해 증거한다는 것에는 자유와 보수사이에 많은 이견이 있으며 정통견해 중에도 그리스도의 구체적 증거에 대해서 서로 다르다.

흔히 구약은 그리스도를 예언하고 신약은 그리스도를 성취했다고 한다. 신약의 많은 구절들이 "~이것은 구약의 그리스도의 예언을 이루기위함이라고"기록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구약은 예언(prediction)이고 신약은 성취만으로되었는가? 이것은 약간 주저되는 결론이다 구약은 예언이고 신약은 성취라고만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에 대한 직접적인 구절만 찾으려 한다.

이렇게 할 때 시편,이사야,미가 등만 찾기 때문에 역사서 등 그외에서는 그리스도에 대한 것을 찾지 못하여 구약의 많은 부분을 윤리적으로 해석 (moralize)해 버린다.

예표적으로 해석하는 사람은 성막이나 제사,그 외의 사건을 그리스도와 관련하여 풀어가지만,오히려 그 사건이 그 당시에 갖는 실제적 의미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신약편향적'이 된다(예언 - 성취의 입장) 이들은 신약저자들이 "~은 구약의 ~을 이루려함이라"고 기록한 부분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

구약은 순전히 예언이고 신약은 그 성취라고 보는 것은 위험하다.

왜냐하면 구약에도 성취가 있으며 신약에도 예언이 있기 때문 그러므로 '신 구약은 모두 예언과 성취의 역사이다.'

이러한 결론은 예언성취의 의미를 단순히 시간적 의미에서 보다더 폭넓게 생각할 것을 요구한다.

3. 왕하17:22-23에 보면 이스라엘의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선지자들의 말씀에 근거했고,"역사는 바로 하나님 말씀의 실현"임을 말해준다(actualization)

모든 성경의 역사는 하나님 말씀의 실현인 것이다.

말씀은 약속의 형태든지 예언의 형태든지 말씀의 실현은 바로 역사인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는 하나님 말씀에 의해 창조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55:11-12 "하나님 말씀은 한번 나으면 반드시 구체화되고 실현된다."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성경저자들의 근본적 역사관(참 역사관)은

"전 역사는 하나님 말씀의 실현이라는 간점이다"라는 것

신약 특히 공관복음의 저자들은 이미 이런 역사기술 방법을 이어받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예언 성취를 보다 폭넓게 보면 신구약이 모두 예언과 성취이며 말씀의 실현이다

성경역사를 하나님 말씀의 실현이라고 볼 때 사55:12에는 내입의 말이 헛되이 내게 돌아오지 않는다고 했다. 예수님도 아버지의 뜻을 행하러 왔다고 했다.(구속역사와 관련)

(결론)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실현되는 것이다.

9월12일

하나님께서는 원리들을 가르치실때에 반드시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통하여 하신다.

성경의 구체적 역사성을 부인하는 입장 중 하나는 gnositism인데 도굛衁 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가현설 주장.성육신은 역사내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함.

성경은 항상 구체적 역사와 관련 있는 것

신구약의 관계를 예언 성취의 관계에서만 이해하는 것은 어법을 잘 모르는 입장이다.

그렇게 될때 구약은 그 자체의 역사성이 약해지며 신약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4.성경은 하나님말씀의 실현이라고 할 때(사55:11-12) 그외에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라는 것을 함축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의 실현이라 할 수 있다.

관련귀절은 암3장 6(하) (하나님의 행하심이 아니고서야 재앙이 어찌 성읍에 임하겠느냐)

7절:하나님께서 자기계획을 선지자에게 먼저 계시하시고 행하신다.

8절:주께서 말씀하시면 누가 예언하지 않겠느냐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장래사의 계획을 선지자에게 말하시고 선지자는 선포하는 것

. 렘23장 16 ~ 거짓선지자가 말씀지 않은 것을 예언언한 것을 책망

18:참선지자는 여호와의 회의에 참석하여 비밀계획을 전수받는다

.앙상 22장에는 하나님의 회의가 나옴 (미가야 선지)

. 이사야는 하나님의 어전회의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을 알게됨

14:27 여호와께서 경영하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이스라엘 뿐 아니라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결정과 뜻에 따라 실현됨을 알 수 있다.

. 사40장 이후에는 이방 신들을 국문하시는 장면이 나온다.

늬희 이방신들아 너희가 장래일을 말해보라

미래사를 말한다는 것은 역사의 주관을 한다는 것을 뜻하므로 하나님의 그 말씀은 자신만이 역사의 주관자임을 증명함

.시편33:9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매 이루어졌다.

이렇게 성경역사를 하나님 말씀의 실현이라 볼때 구약과 신약의 첫부분으로부터 마지막까지를 어떻게 이해해야하겠는가

구약도 역시 하나님의 계획의 실현의 역사이며 의미있고 실제적인,하나님과 그 백성의 역사이다.(불트만등은 구약을 무의미하다고함)

허상의 역사,알멩이 없는 역사가 아니다

구약은 '예언 모음집'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 여러곳에는 신약을 가리켜 성취의 역사라 하며,구약의 예비적 성격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양자의 입장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구약은 하나님 말씀의 실현임과 동시에,구약의 예비적 성격을 둘다 충족시키는 결론은)

결론;하나님에 의해 계획되고 이루어지는(점진적 성격) 어떤 목표,종국,완성을 향해 나가는 완성의 역사이다. 낮은 단계는 높은 단계를 내다보는 것이다.

구약자체로서도 의미를 잃지 않고 신약에 대한 예비적 성격도 살릴 수 있다.

구약의 역사가 그리스도에 의해 완성이 된다는 점에서 진정한 발전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신약의 "~이루려 함이라"라는 뜻은 ՐՋՇՑՏՙ의 뜻은 make fall fill이라는 뜻 consummation 가득채운다는 것)

(예수께서 내가 율법과 선지자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성하러 왔다고 했을 때 역시 ՐՋՇՑՏՙ를 쓰는데 그것은 구약의 절정은 그리스도에서 성취됨을 의미

5.구속역사가 하나님의 계획의 완성을 향해 가는 완성의 역사라고 한다면 그 목표를 향해 계속 흘러가는 역사를 꿰뚫고 있는 일관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은?

<대전제> 성경의 중심주제는 무엇인가

(요5:39 성경은 곧 예수님을 가리킴) 성경의 중심주제는 예수와 밀접한 관련을 맺어야 한다)

전통적으로는 예언성취의 관계로 신구약을 보려는 경향이있다. 그후로는 신구약의 통일성을 covenant에 의해 이해 하려는 시도는 구속사의 점진성,즉 성경계시의 역사적 성격을 드러내는데 많은 공헌을 했다. 계시의 여러 성격에서는 역사성과 함께 상이성(발전성)을 보이고 있다.

존 머레이는;계약신학이야말로 구속사의 진전성을 나타내는데 큰 공헌을 했다. 그러나 과연 '언약'의 개념이 성경의 중심주제를 꿰뚫은 중심사상이 될 수 있는가?

관련귀절에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뒷받침하다.

*(현재는 covenant에 대한 명확한 개념도 설정되어있지 않다.)

보편적인 언약의 개념은 '관계확립'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관계결속'(다윗과 아브라함 언약에 국한)

"그러나 노아에 있어서는 관계결속에 맞지 않다"

그렇다고 할 때 성경의 주제는 하나님과의 관계확립이라고 할 수 있다(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이것이 성경을 흐르는 하나의 핵심사상임을 부인할 수 없지만 모든 성경의 중심사상인가 하는 것은 주저하게 된다.

이와같이 언약개념이 언약의 실제내용을 완전히 포괄하지 못한다는 사실은,언약은 어떤 내용을 담는 형식에 불과하거나 그 내용의 일부에 지나지 않아서 그 내용은 어떤 더 큰 주제를 가리킨다고 할수있다.

형식으로서의 언약은 충족되지만 그 내용까지 포괄하지못함.

언약이 전 구약 중심주제에 부합되는 것에 부족하다는 것은 언약을 관계결속이라는 것으로 보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언약을 연결하기가 힘들다.

그리고 언약의 개념이 구약의 전 내용을 담지못하므로 여러가지 언약의 내용이 서로 산만하게 존재하다가 그리스도에 와서 종합됨을 설명할 수 있다.(언약의 서로의 성격이 긴밀하고 연결을 갖지못한다)

그렇다면;

구약의 일관된 중심주제가 있는가?

둁 그에 대한 대 전제는,이러한 중심주제는,신구약이 지목하는 그리스도에 직결되는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

둁 또한 이것은 신학적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경자체가 명백히 보여주는것이어야 한다.

이에 대한 귀결;

마태1장은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예수님의 족보의 중요성

전구속역사의 뼈대를 보여주고,어떻게 구속역사를 이해할 것인지를 설명한다.

마1장에는 예수그리도의 족보가 나온다.

ՂՉՂՋՏs ՍՅՍՅՓՅՉ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