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서에 나타난 인본주의
박종수(강남대, 구약학)
1.신명기의 명칭, 형태, 구조
신명기는 오경의 마지막 책으로 창세기부터 열왕기하에 이르는 하나의 긴 이야기(성서설화)속에 들어가 있다. 우리성경의 제목(新命記)과 영어성서의 제목(deuteronomy)은 모두 신명기가 "새로운 명령" 혹은 "두번 째 율법"을 의미한다. 이것은 기원전 2-3세기에 헬라어로 번역된 70인역 구약성서(LXX)의 제목(ԤԥԵԴԥԱԯԭԯԬԩԯԭ)을 따른 것이다. 이러한 이유는 신명기를 모세의 고별연설에서 나타난 제 2 의 율법으로 간주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히브리 성서인 마소라 본문(MT)은 신명기를 "이것이 말씀들이다"(ࠎࠉ࠘ࠁࠃࠄ ࠄࠌࠀ) 라는 구절로 시작하고 있다. 이는 신명기가 모세의 말씀들을 수집해 놓은 책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두 성서의 제목에서도 보여주는 바와 같이 신명기는 오경의 전반부, 특별히 출애굽기와 레위기, 민수기등에서 강조되었던 여러 법률과 이야기들을 반복해서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신명기를 두번째의 법으로 이해할 때, 첫번째 법은 시내산계약을 의미하며, 모압평지에서 모세가 백성에게 행한 당부의 연설인 신명기의 말씀이 두번째 법에 해당된다.
신명기는 오경 이야기의 결론이며 다음에 이어지는 여호수아의 땅점령 사건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하나님이 족장과 맺은 땅에 대한 약속은 오경의 핵심적 주제가운데 하나이다. 이 땅에 대한 약속이 제 2의 율법서인 신명기에 강조되어 그 결과가 여호수아에 나타나기 때문에, 금세기의 탁월한 신학자 폰 라트(Gerhard von Rad)는 창세기에서 여호수아에 이르는 6경설을 주장하고, 신명기는 그 중간위치에 속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그에 반하여 마틴 노트(Martin Noth)는 창세기에서 민수기까지를 한 묶음으로 보는 4경설을 주장하면서 신명기를 신명기사가에 의해 기록된 역사서의 첫 권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우리는 히브리 성서 모두가 신명기를 오경(혹은 율법서)의 마지막 책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신명기서의 정경적 위치를 고려해야만 한다. 이는 결국 신명기는 오경의 전통안에서 형성되었고, 그 전통의 맥락에서 해석되어 왔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견해로 출발하는 장일선 교수는 그의 『신명기주석』에서 신명기를 율법서, 전기예언서, 역사서가 겹치는 핵심부분으로 간주하고 있으며(장일선, 20), 토마스 만(Thomas W. Mann)은 신명기를 "오경전체에 대한 해석학적 열쇠를 지닌 책"으로 여긴다(만, 174).
신명기는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진입하기 직전, 자기들이 겪은 과거를 회상하면서 반성의 기회로 삼고, 장래 다가 올 미래를 예측하는 모세의 설교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모세의 설교에는 설교의 대상인 이스라엘을 향한 2인칭 단수(너)와 복수의 호칭(너희들)이 자주 등장하고 있으며, 때로는 시형태의 노래(32장)와 축복의 말씀(33장) 등이 출현한다. 이런 설교문은 대개 교훈적인 형태와 법을 선언하는 고별설교의 성격을 띠고 있다. 가끔 모세 자신이 직접 말하는 사담의 형식을 띠는 문구도 발견된다. 그 밖에도 오경의 다른 부분과 현저하게 구별되어 반복적으로 쓰이는 신명기만의 독특한 표현이 발견된다. 이러한 표현들이 대개 신명기의 중심주제를 이루고 있다: (1)하나님을 두려워하다(4:10; 5:29; 6:2; 8:6...); (2)규례와 법도를 지키라(4:1; 5:1; 11:32...); (3)다른 신을 섬기므로 하나님이 진노하신다(7:4; 11:16; 13:2...); (4)야훼 보시기에 악을 행한다(4:25; 9:18; 17:2...); (5)이집트에서 종살이한 것을 기억하라(5:15; 15:15...); (6)야훼가 이스라엘을 선택하셨다(4:37; 7:6...); (7)야훼께서 땅을 기업으로 주셨다(4:21; 15:4; 19:10...)(장일선, 26).
학자들은 신명기의 저자문제에 대해서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했다. 전통적인 견해에 따라 신명기를 모세의 저작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는가 하면, 요시아의 종요개혁을 직·간접으로 도왔던 레위인과 예언자들(R. E. Clements)라고 주장하는 최근의 견해가 대두되고 있다(장일선, 38). 후자의 견해에 따라 요시아가 성전에서 발견한 율법서(B. C. 621)가 신명기의 근간을 이룬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그 율법서는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명기서의 전체를 가리키는지, 아니면 그 일부인지, 만약 그 일부라면 어느 부분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의 일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는 요시아 왕의 명령에 의해 성전을 수리하다가 발견한 율법서는 현존하는 신명기의 12-26에 해당된다고 여긴다. 토마스 만 역시 이러한 근거에서 신명기서를 7부분으로 나누고 있다: 1)서문: 1:1-4:43; 2)일반적인 계명들: 4:44-11:32; 3)법령: 12-26장; 4)저주와 축복의식: 27:1-29:1; 5)훈계: 29:2-30:20; 6)모세의 유언: 31-33장; 7)모세의 죽음과 찬양: 34장(만, 178).
2. 신명기의 내용
본 소고는 이런 구조를 따르면서 신명기의 전체적인 내용을 간략히 소개한 후에, 특별히 신명기의 설교신학에 나타난 인본주의 사상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모세의 첫번째 연설에 해당되는 신명기 1:1-4:43은 모세가 이스라엘이 호렙산에서 요단강에 도달하기까지 광야를 유랑하는 동안, 야훼가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구원의 역사를 회고하는 것이다(1:6-3:29); 이어서 모세는 이스라엘이 야훼의 계명에 순종할것을 당부한다(4:1-43). 신명기는 처음부터 하나님이 선조들에게 하신 약속이 어떻게 성취되는가에 주목한다: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사 그들과 그 후손에게 주리라 하신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들어가서 얻을지니라"(신 1:8). 모세는 이와 비슷한 내용으로 아브라함에 대한 축복이 지금 성취되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더 큰 축복이 미래의 이스라엘을 기다리고 있음을 말한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번성케 하셨으므로 너희가 오늘날 하늘의 별같이 많거 니와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현재보다 천배나 많게 하시며 너희에게 허 락하신 것과 같이 너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신1:10-11).
그러나 동시에 신명기 저자는 약속의 땅과 축복이 왜 파멸되었는지를 해석하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백성들을 광야로 이끌어 가는 해방자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으며(1:22-28), 우상의 형상을 조각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자초했기 때문이다(4:25-26). 이는 신명기 저자가 광야에서의 금송아지 숭배사건을 기억하고 반가나안적인 정서에 호소하고 있음이 분명하다(만, 180). 또한 암몬, 모압, 에돔에 대한 야훼 하나님의 축복약속(2-3장)은 하나님의 은혜가 이스라엘에만 한정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모든 인간과 땅의 모든 것들이 야훼의 것이기 때문에 모든 백성들의 한계를 세우는 분은 궁극적으로 야훼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참조. 32:8-9; 출 19:5; 만, 181-82).
두번째 이야기인 4:44-11:32도 호렙에서 시작하여 호렙으로 끝을 맺고 있는데, 계약을 체결하는 이야기가 5장에서 시작된다. 신 5:1-27(D)의 십계명은 출애굽기 20:1-21(E)의 십계명과 차이점을 보인다. 두 십계명 사이의 차이점은 안식일 준수에 대한 명령에서 두드러진다. 출애굽기의 십계명은 안식일이 하나님 창조의 일부로서 강조되고 있는 반면에(제의적 측면), 신명기 십계명의 안식일 준수는 이스라엘 자신이 애굽에서 종살이 한 점을 그 전제로 하면서(사회적 측면), 사람의 휴식과 더불어 동물의 휴식까지도 포함한다. 이는 다분히 안식일 제도의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며 신명기 저자의 사회적 관심을 드러낸다: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게 명한대로 안식일을 지켜 거룩하게 하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 인즉 너나 네 아들이 나 네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으로 너같이 안식하게 할지 니라,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신 5: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