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ࠎࠉ࠘ࠁࠃ; Deuteronomy)


신명기는 한 마디로 약속의 땅을 바라보고 이제 요단강을 눈 앞에 두고 모압광야에서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행한 연설이다. 모세는 옛세대의 대표이자 마지막 인물로서, 광야에서 멸절되도록 되어있는 마지막 사람이므로 모세의 설교는 광야여행의 마무리장이라 하겠다. 또 신명기는 모세의 죽음으로 끝나므로 모세의 유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고별설교(Fareuall Adress) : 요 15장의 예수님의 고별설교, 여호수아 24장의 고별설교 = 여호수아는 언약갱신으로 끝난다. 모세의 고별설교도 신 29장에 언약갱신(Covenant Renewal)으로 끝남으로써 같은 구조적 흐름이다.

신명기의 핵심적 단어들을 빼낸다면,

① ࠌࠀ࠘࠙ࠉ ࠒࠍࠚ(샤마 이스라엘) - 너희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ࠇࠀ 한 분(대문자로 기록함)

② ࠘ࠊࠆ(자칼) 기억하라 현재를 의미함 ࠄࠛࠒ(아타)

과거를 상기하는 표현 ࠄ࠘ࠅࠛ(토라; 하나님의 율법을 들으라)

+- ࠒࠍࠚ는 다시 말하면 exaltion(권고, 권면)이다.

+- ࠘ࠊࠆ는 과거를 되살리는 의미인데 그 사건은 지금에도 동일한 의미가 있다는 것 - 과거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지금도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따라서 ࠒࠍࠚ와 ࠘ࠊࠆ는 같은 의미이다.

실존주의적 의미에서 과거를 되살리는 것과는 의미가 다르다. 그들은 과거 역사의 자체로서의 의미는 없고 나와 관계될 때만 의미가 있다고 하며 사실적 연결은 무시해 버린다. 과거와 나와는 인과적 법칙에서만 뿐이고, 그 의미는 내가 과거를 받아들이는 결단에서만 온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과거를 과거로서 끝맺기를 원하지 않으시고 오늘도 그 의미와 효과가 있음을 알도록 하시는 것은 ࠒࠍࠚ와 ࠘ࠊࠆ로 말해진다. '과거를 배우라'고 한다 - 과거의 교훈.

과거에서 무엇을 배운다는 말은 과거가 오늘과 연결된 것이라는 것이다. 역사의 주체를 하나님으로 본다면 과거역사의 하나님 통치 원리가 근본적으로, 동질적으로 오늘 역사의 원리가 된다는 것이다.

실존주의는 주관적 결단으로서 과거에 의미를 부여하지만 우리는 객관적 사실로서의 과거 역사가 오늘 역사의 의미의 key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역사가 기계적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역사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향한 하나님의 뜻이 변함없이 이루어간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통치에 인간이 참여하는 방식은 믿음과 기도와 인격적 만남이고 하나님께서는 허락, 부여해 주시는 것에 불과하다.

1장 ࠘ࠁࠒࠁ(베아바르) - 동편, 요단 동편은 아직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이라는 것.

광야 - 아라바(홍해 맞은 편 ࠔࠅࠑ ࠎࠉ;임 슈프㬉

㬑절은 요단 동편을 가리키는 아라바 같은데 1절 하반절은 사해 및 아라바를 말한다. 하세롯, 라반, 도벨 등은 광야 전체를 말하므로 신명기는 그렇다면 요단 동편에서만 한 유언이라고 보기보다는 광야생활 전반에 걸친 모세의 이야기 같이도 보인다. 그러나 모세는 요단 동편에 서서 아직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사실이 광야 전체의 생활을 회상할 수 있는 배경으로 된다고 한다. 아직 들어가지 못한 것은 아직도 광야생활임을 말하는 것이다. 광야 전체의 삶이 배경이 되는 것은 2절에 나오는 말로 보면 자연스럽다. '호렙에서 세일까지 가데스바네아까지는 열 하룻 길이다'

3절은 제 40년 11월 그달 1일이라고 함으로써 11일이라는 기간과 40년이라는 기간을 대조하여, 왜 이런 기간이 많이 필요했는가를 기억하게 한다(너무나 대조적인 기간이다). 이것은 광야여행의 의미와 교훈을 찾아내고자 하는 것이다. 즉 광야여행의 종장으로서 그 모든 과거사건을 돌아보고 그것의 의미를 알려주고자 함이다.

4절은 시혼과 옥을 쳐부수고 난 후의 일을 말한다. 이는 약속의 땅 정복의 시작이며 예비적 성취이다. 민 21장의 발람의 예언의 의미는 이스라엘의 미래의 축복(약속의 땅 정복)이며 승리를 확인하는 것이다. 신명기에서 시혼과 옥을 승리한 것(정복의 역사)을 첫 서술한 것은 앞으로 올 정복과 승리의 역사를 내다보는 의미가 있다.

1-3절은 retrospect(과거의 회상) - ࠘ࠊࠆ이고

4절은 현재의 전망(권고 - Ermahunung) - ࠄࠛࠒ ࠒࠍࠚ(샤마 아타) 이어 권고의 핵심은 율법해석이다(5절).

+- (과거)࠘ࠊࠆ(기억하라) -+ +- 하나님의 의미+- 과거-+하나님의 주체(율법)

+- (지금)ࠄࠛࠒ ࠒࠍࠚ(들으라) -+ ࠄ࠘ࠅࠛ(율법) +- 현재-+ 통치원리

광야여행에서 배운 교훈의 핵심은 순종 = 생명, 불순종 = 죽음이다. 신명기가 율법을 remind하는 이유가 순종→생명, 불순종→죽음이기 때문이다.

8장 순종하면 살리라. 지켜 행하면 살고, 번성하고 얻으리라. 만나 주신 이유 = 사람이 하나님 말씀으로 사는 것이기 때문, 육신적인 생명을 포함한 전 생명이 하나님의 말씀에 달린 것(순종)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과 죽음을 가르는 기준이 될만큼 너무나 중요하다.

13장 여기서 선지자가 예언의 성취를 시행하더라도 다른 신을 섬기자고 하면 때려 죽이라고 함. 이 말씀에 대한 중요성은 12:32절(원문 13:1)에서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모든 말을 지켜 행하고 가감하지 말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앞으로 올 계시(revelation)와의 unit로 이해해야 될 것을 말한다 = '계시의 동일성'(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

모세가 그의 죽음을 앞두고 유언을 하는데 하나님의 율법을 설명한다는 사실은 율법준수가 이스라엘의 생명과 죽음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29장에는 언약갱신을 하며 축복과 저주를 눈 앞에 둔다고 한다. 그런데 31:27-30절에 보면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을 제시해 놓고 언약의 파기를 할 이스라엘을 예언하고 있다. '너희가 스스로 ࠄࠅࠄࠉ의 길을 떠나서 악을 행할 것이라'고 한다.

* 성경에 나타난 "비관주의"(passimism)

선지서나 마찬가지로 모세는 비관주의로 말한다. 이것은 비관으로 끝나는 비관주의인가? 그것은 더 온전함을 기다리는 자신의 연약성을 바라보는 소망의 비관주의이다. 그것은 선지서에서도 계속 나타난다. 예레미야나 이사야는 현실에 대해 아주 비관적이고 절망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더 나은 상태, 온전한 구원을 기다리는 기대감이다. 지금 상태의 불완전함과 앞으로 올 완전함을 대조하여 말한다. 오히려 이것은 미래지향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사상이 이스라엘 구원의 초장부터 나타난다. 하나님 백성의 역사를 배경으로 나타났다(시내산 언약에서의 금송아지 사건). 이것은 완전한 구원(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바라보게 하는 배경적 사실이다. 선지서는 그런 점에서 새로운 계시가 아니고 신명기 32장의 연속인 것이다.

신명기의 구조는 곧 설교구조와도 상통한다. 과거를 기억하게 하고 현재에 권면하는 것이 설교style 같다. Von Rad는 그래서 신명기를 '설교'라고 취급한다. 후대 왕국의 레위계통의 설교라고 했다. 그러나 이렇게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신명기의 기본 테마는 '권고'이며 언약수립으로 끝난다(모세). 이것은 여호수아의 경우와 사무엘의 경우 그리고 예수님의 경우에서도 일치된다. 고별설교와 성만찬의 새언약으로 끝나는 것이다.

+- 신 명 기 - 언약(신 29장)

[권고 → 언약수립] | 여호수아 - 언약(수 24장)

+- 예 수 님 - 새언약(요 15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