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하

역대 상과 역대 하는 한권의 책으로서 역대 상이 선민의 계통을 밝히고 다윗을 통한 신정국가의 확립을 말하였다면 역대 하는 솔로몬을 통한 신정국가의 완성과 남왕국 유다 열왕들의 성공과 실패를 제사장의 관점에서 기록하고 있다.

A.본서의 내용세분

1.솔로몬의 통치(1:1-9:31)

1)솔로몬의 등극(1:1-17)

2)솔로몬의 성전(2:1-7:22)

3)솔로몬의 명성(8:1-9:28)

4)솔로몬의 죽음(9:29-31)

2.유다의 왕들(10:1-36:21)

1)르호보암(10:1-12:16)

2)아비야(13:1-22)

3)아사(14:1-16:14)

4)여호사밧(17:1-20:37)

5)여호람(21:1-20)

6)아하시야(22:1-9)

7)아달랴(22:10-23:15)

8)요아스(23:16-24:27)

9)아마샤(25:1-28)

10)웃시야(26:1-23)

11)요담(27:1-9)

12)아하스(28:1-27)

13)히스기야(29:1-32:33)

14)므낫세(33:1-20)

15)아몬(33:21-25)

16)요시야(34:1-35:27)

17)여호아하스(36:1-4)

18)여호야김(35:5-8)

19)여호야긴(36:9-10)

20)시드기야(36:11-21)



B.내용연구

(대하1:1-17 "솔로몬의 제단")

본장은 솔로몬의 왕위 계승사건이 기록되었던 역대상29장에 이어지는 부분으로서 정치에 앞서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에 서기를 원한 솔로몬의 일천번제가 기록되어있다.

1.솔로몬의 일천번제(1-6절)

1)솔로몬의 왕위가 하나님의 은혜로 창대해 갔으며 기브온 산당에서 자신과 백성을 하나님께 헌신하는 일천번제를 드렸다.

2)솔로몬의 창대함과 왕위의 견고함은 하나님의 동행때문이었다(1절)

①솔로몬의 탄생 이전부터 다윗을 통해 약속되었다(대상22:9-10)

②솔로몬의 인간적인 능력이나 정치적 수완에 있지 않았다.

3)솔로몬은 전국의 천부장,백부장,재판관,방백,족장들을 소집하여 온 회중과함께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번제를 드렸다(2-6절)

①새로 즉위한 왕으로서 온 백성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게하기 위함이다.

②또한 솔로몬 자신도 하나님께 먼저 헌신코자 하였다.

③기브온 산당은 성전이 세워지기전까지 성전을 대신하였고, 번제물은 놋단이 있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④솔로몬의 일천희생은 본문의 문자적인 의미로볼때 그 기간이 한주간 정도쯤으로 보게된다.

2.하나님의 축복(7-12절)

1)하나님은 솔로몬의 일천희생을 다 드린날 밤에 꿈으로 응답하셨다.

2)솔로몬은 자신이 부족하여 은혜를 구하기도 하였지만(10절) 다윗을 통해 자신에게 하신 약속의 실현을 위해 드린 제사이기도 하였다.(9절)

(겔36:36-37)-"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

3)하나님은 솔로몬이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화도 함께 응답하여 주시었다.

①하나님은 기도자의 자세와 마음속을 감찰하시고 계신다.

②(마6:33)-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자에게 이 모든것을 더해주시는 분이심을 말해준다.

3.솔로몬의 정치사(13-17절)

1)솔로몬의 통치는 기도응답을 받은 후부터 그의 치리가 시작되었다(13절)

①일의 시작이 하나님께 있으며, 하나님의 신호가 있은후에 시작하여야 확실한 것 임을 보여준다.

2)솔로몬의 통치를 받은 이스라엘은 화려하고 풍부하였다(15절)

①'은금이 돌같이 흔하고'-화려함을 말함

②'백향목이 평지의 뽕나무같이 '-풍족함을 표현함

(대하2:1-18 "솔로몬의 성전건축") 95, 2/26 저녁

솔로몬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고, 또한 하나님 중심의 통치를 위하여 성전건축을 결심하고, 이웃나라인 두로 왕 후람에게 이방인들이지만 건축 기술자와 건자재를 요청하여 전 건축을 완공코자 하였다.

1.솔로몬의 성전건축 준비(1-10절)

1)솔로몬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자신의 권세와 영광을 위하여 궁궐을 건축하기로 결심하고 이방인 건축 기술자들을 초청하기에 이른다.(1절)

2)건축을위한 잡일군 70,000과 작벌할 일군 80,000과 감독자3,600명(왕상5:16-이스라엘의 고급 감독자250명, 이방인의 고급 감독자 300명, 이방인의 보통 감독자 3,300명. 모두3,850명가량이 됨)의 인력을 확보하였다.(2절)

3)또한 다윗과 동시대의 통치자였으며, 우호관계에있던 두로의 후람왕에게 주물 제조 기술자의 파견과 벌목 기술자들을 요청하였다.(3-10절)

①솔로몬은 다윗때 도운것처럼 자신에게도 도움을 줄것을 정중히 요청하였다.(3절)

②솔로몬은 하나님의 전이 웅대해야하며(5절), 이교의 신전과 다르며(4절), 가장 뛰어난 기술자를 동원하여 지어야함을 말하였다.(6절)

③금,은,동,철등으로 물품을 만들 수 있고 직조에 능한 기술자는 한사람을(7절)

④벌목에 능한사람들은 보조원들을 붙여줄터이니 기술자들을 파견해 줄것을 요청하였다.(8절)

⑤그리고 이들에게는 후한 사례(매우 많은 밀과 보리, 기름과 포도주)를 제시하였다.(10절)

2.주변국의 협조(11-16절)

1)솔로몬의 사자를 통해 전달된 후람의 답장은 먼저 하나님을 찬송하고, 또한 솔로몬이 요청한 일군과 재목을 보내 주겠다고 응답하였다.

2)후람은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사랑하시므로 당신을 세워 그 왕을 삼으셨도다'(11절)라고 하였다.

①사적인 욕구에의해 왕이 된것이 아니라 공식적인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졌다는 축하의 말이다.

②후람은 솔로몬의 왕 됨이 하나님에의해 세워졌음을 인정하였다.

3)후람이 보내기로한 기술자는 이스라엘의 피가 섞인자로 [아비('권위자,우두머리,아버지')]라는 칭호가 붙여진 사람을 보내기로 하였다

①그의 부친은 두로 사람이며, 모친은 단 지파 출신으로 납달리 지파에 속하였었다.(14절)

②가장 뛰어난 기술자를 보내기로 한 것이다.

4)후람은 솔로몬이 약속한 사례물을 보내어줄것을 말하였고(15절), 목재는 수운해 주기로 하였다.(16절)

3.이방인 차출(17-18절)

1)성전 건축을 시작한 솔로몬은 이스라엘 땅에 거한 이방인들을 조사하여 사역을 분담시켰는데 그 수효는 153,600명이었다.

2)이스라엘 내에 거주하는 이방인들은 대부분 다윗의 정복 전쟁을 통해 전쟁포로가되어 노예가 된자들이며 그 나머지는 매매로인한 노예나 귀화한 외국인들이었다.

3)다윗은 성전건축에 쓰일 재료나 인력까지도 미리 확보하여 두었던 것이다.

(대하3:1∼4:22 "솔로몬의 성전건축") 95, 3/5 저녁

A.역대하3장1-17절; 성전건축 착수

본장은 성전내의 중요한 부분인 성소와 지성소를 만드는일에 관하여 중점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특별히 모든 규례와 양식을 하나님의 계시를 따라 만들었다고 하는점에서 귀하게 평가된다. 특히 성전을 건축하는 동안 성전속에서 철연장 소리가 들리지 않게하였는데 이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곳이므로 절대적으로 거룩성이 유지되도록 하였다(대상22:8)

1.솔로몬의 성전건축 착수(1-2절)

솔로몬은 예루살렘 모리아산에서 성전건축을 시작하였다. 그곳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던 곳(창22:2)이며 다윗의 오르난 타작마당에서 불로 응답하신 곳(대상21:18,26)이기도 하여 다윗은 이곳을 하나님의 전이라 불렀었다.(대상22:1)

2.전의 지대(3-7절)

'옛적 재는 법대로'-솔로몬은 성전치수에 대하여 아버지의 지시를 받았다(대상28:11) 그는 첫번째 확정된 치수를 그대로 시행하였다는 것이다.

3.지성소(8-17절)

①지성소는 장이 20규빗(9m), 고가 20규빗, 광이 20규빗의 정육면체로 만들어졌다. 이는 완전하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완전성을 부여하기 위함이다.

②성전의 내부에 정금을 입혔다. 하나님께 나아가는자는 금과같이 변치않는 믿음을 소유해야 하며 그러한 믿음의 소유자는 황금도성인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게됨을 상징한다.

③성소안의 다락(9절)은 제사장들이 지성물들을 여기에서 먹고, 제사드리기위한 지성물들을 여기에다 보관하기 위함이다.

④성소안의 골방은 모두 30개로(겔41:6)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잠을 자며 봉사하게하기 위한 곳이다.

B.역대하4장1-22절; 각종 기물들과 기구의 완성

본장은 성전기구들을 놋과 금으로 만들어졌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놋기구들은 성전뜰에, 금으로 만들어진 기구들은 성소와 지성소에 보관되어짐으로 성물에대한 보관의 중요성을 말해주고 있다.

1.놋단과 바다와 물두멍과 등대(4:1-10절)

①솔로몬 성전은 모세시대의 장막에 있던것보다 약 두배의 높이, 두배의 크기로 지어졌다.

②성소밖에 두는 기구들은 모두 놋으로 만들어 졌는데 놋은 인내(렘15:20)와 하나님의 뜻(슥6:1)과 그리스도의 영광(계1:15)을 상징하고 있다.

③놋바다는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봉사할때 씻기위해 만든 거대한 놋 대야로 보혈의 공로를 의미하며 그 놋바다는 열 두 소가 받치고 있게 만들었다.

④제사장들이 봉사할때 놋바다에 씻기어지는 것처럼 제물은 물두멍에서 씻기워야 했다.

2.각종 기물들(11-18절)

①후람은 솔로몬 왕을 위하여 전의 모든 일을 빈틈없이 마쳤다(11절)

②후람이 놋을 부어 기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형틀을 만들어야하기 때문에 진흙이 많은 요르단 골짜기에서 공사를 진행하였다(왕상7:46)

3.각종기구들(19-22절)

①성소안의 모든 기구들은 금으로 만들었다. 이는 밖의 기구들보다 더 중요한것들이었기 때문이다.

②진설병은 열두덩이로 되어있는 누룩없는 떡으로 안식일마다 새것으로 바꾸어 놓게하였다.

③금단은 향을 피우는 제단 곧 분향단으로서 성도의 기도를 상징하고 있다.(계5:8,8:3)

(대하5:1∼14 "성전 봉헌준비") 95, 3/12 저녁

본장은 성전건축을 마친 후 언약궤를 다윗성에서 성전으로 메어올려 지성소에 안치하였음을 다루고 있다. 언약궤를 다윗성에서 메어 올릴때에 솔로몬은 레위사람과 제사장들로 하여금 여호와께 찬송과 감사를 하게 하였다. 그러자 여호와께서는 구름 가운데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시었다.

1.완공된 기물의 보관(5:1절)

1.솔로몬 왕 제 11년 8월에 성전건축이 완공되었다.(왕상6:38)

2.또한 솔로몬은 봉헌된 물건들을 성전 곳간에 들여 놓았다

①그 물건들은 이미 전에 다윗에의해 하나님께 구별하여 바쳐진 것들이었다(대상29:3-5)

②솔로몬은 구별하여 드려진 재료로 성전의 온갖 기구를 만들고, 남은 것은 다른 용도에 쓰지 아니하였던 것이다.

③그것은 그 드려진 재료들이 일단 하나님께 드려진 성물이었기 때문이다.

2.옮겨진 궤(2-10절)

1.솔로몬은 장로들과 족장들을 소집하여 언약궤 옮기는일을 의논하였다(2절)

①이스라엘에게 있어서의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다.(출25:22)

②각 지파와 가문의 대표자들인 그들은 전에 성전건축을 의논하기 위해 다윗에의해 소집된 적이 있었고(대상28:1), 성전건축을 위해 자신들의 보물들을 아낌없이 드리기도 하였다.(대상29:6-9)

③솔로몬은 이들과 함께 성전봉헌식을 거행하려 하였으며, 온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기위한 종교적인 정책수단이었다.

④솔로몬이 소집한 7월 절기는 장막절 기간 직전이라는 말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에서의 안식이 하나님의 인도하심 이었음을 감사하는 절기 전에 성전봉헌을 하려 하였음을 알 수 가 있다.

2.솔로몬은 언약궤를 제사장과 레위 사람으로 하여금 메어 올리도록 조치하였다.

①다윗성에서 성전까지 언약궤는 레위사람이(4절), 장막안에서 사용하던 기구들은 제사장과 레위인들이(5절), 그리고 성전에서 지성소까지는 제사장들이 메워 올렸다(7절).

②언약궤는 고핫자손 레위인들에게만 할당된 일이었으나(민3:30,31) 특별한 의식에는 제사장이 궤를 메었다(수3:6, 6:6). 이토록 솔로몬이 언약궤와 성전에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것은 궤를 옮길때에 있을 수 있는 실수(삼상4:17, 6:19, 삼하6:7)와 불완전에대한 점들을 극복하고자 함이었으며, 하나님과의 화해를 추구한 때문이다.

③솔로몬은 궤가 옮겨지는 동안 제사들 드렸다(6절). 이는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피하며, 하나님의 축복이 가까와짐에 대한 백성의 즐거움의 표시다.

3.언약궤 안에는 두 돌판이 들어있었다(10절).

①하나님의 임재 상징인 궤 안에 돌판 곧 말씀이 담겨있다는것은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②본래 궤 안에는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함께 담겨져 있었다(히9:4)

3.성전봉사(11-14절)

1.제사장들이 24반열로 나뉘어져 각 반열이 해마다 2주간씩 섬겼으나 모든 제사장이 한번에 정결케하고 함께 봉사하였다.

2.레위의 첫째 아들인 게르손의 자손인 아삽은 헤만의 우편에서 신령한 노래를 부르는 직무를 행하였는데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은 다윗의 언약궤를 다윗성으로 옮긴후 찬송하는 일을 맡았었다(대상6:31,33)

3.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구름이 성전 가득하게되자 제사장들은 감히 봉사의 직무 감당하기를 두려워 하였다.

(대하6:1∼42 "성전 봉헌기도") 95, 3/19 저녁

앞장에 의하면 언약궤 안치때에 성전에 구름이 가득하여 하나님께서 그 장소에 임재하셨음을 나타내었다. 이때 솔로몬은 하나님의 임재앞에 무릎을 꿇고 입을 열어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다.

1.솔로몬의 고백(1-11절)

1)솔로몬은 성전 건축의 동기가 자신의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그 근거가 있었음을 고백하며 성전 완공을 기뻐하였다.

2)솔로몬은 자신의 성전건축에대해 부친 다윗의 열망을 언급하였다(8-9절)

①다윗은 성전을 매우 사모하였고 건축에 필요한 재료를 준비하였다. 그러나 '피흘린 손'(대상28:3)때문에 성전건축에 합당치 못함을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②군인인 다윗이 화해와 평화의 상징이 될 수 는 없다. 솔로몬은 '평화'를 뜻하는 이름이다.

3)'여호와께서 캄캄한데 계시겠다 말씀하셨사오나...'(1절)

①과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만나실때에는 빽빽한 구름가운데서 였다.(출19:9, 20:21, 신4:11)

②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자신이 만든 성전에 임하신것을 감격해하는 고백이다.

4)'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위하여 축복하니...'(3절)

①백성에대한 축복기도는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들에게 부여된 임무요, 특권이었다(민6:22-27)

②그러나 솔로몬의 축복기도는 정치적인 왕 만이 아니고 종교적인 지도자로 이스라엘을 이끌고 있음을 나타낸다.

5)'말씀하신것을 이제 그 손으로 이루셨도다'(4절)

①성전건축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예언되고 그 말씀하신 하나님이 친히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으로 성취하셨다는것에 대한 고백이다.

②하나님께서 친히 역사의 주관자가 되심에대한 신앙고백이다.

2.솔로몬의 기도(12-42절)

1)솔로몬은 뜰 가운데 준비한 놋 단위에서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해 손을 펴고 기도하였다.(12절)

2)솔로몬이 올라가 기도한 놋단은 길이가 2,25m 폭이 2,25m 높이가 1,35m의 크기다.(일반적인 단상)

3)솔로몬은 다윗왕권을 위해(14-17절), 그리고 제사장적인 기도(18-42절)를 하였다.

①'천지에 주와같은 신이 없나이다.'(14절) - 이 말은 하나님외에 다른 신이 존재하면서 그 신들 가운데 하나님이 가장 뛰어나다는것이 아니라 오직 홀로 하나이시며, 한분이신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이다.

②다윗왕권을 위한 기도(14-17절) - 다윗과 맺은 언약에따라 성전건축을 이룩하신 하나님께서 다윗의 왕권도 영원히 보존해 주실것에대한 기도이다.

③제사장적인 기도(18-42절) - 하나님께서 지목하시어 세워진 성전을 향해 백성들이 다음의 경우를 놓고 성전을 향해 기도할때 응답해 주시기를 구하였다.

ㄱ.공의를 구할때(22-23절)-범죄의 여부에관한 최종적인 판결을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

ㄴ.전쟁에서 패할때(24-25절)-전쟁에 패한 후 죄를 회개하면 회복시켜 주실것을 원하는 기도

ㄷ.가뭄이 들때(26-27절)-하나님께 범죄함으로 가뭄의 벌을 받을때

ㄹ.질병과 재앙이 있을때(28-31절)-배신과 불신의 징벌로 율법에 언급된 각종 재앙을 받을때

ㅁ.이방인의 경우(32-33절)-예루살렘의 명성이 이끌린 이방인들의 기도에대하여.

ㅂ.하나님이 원하시는 전쟁에 임하였을때(34-35절)-하나님의 방법을 따라가는자에게 돌보심을 구함.

ㅅ.적국에 포로되어 끌려 갔을때(36-39절)-절망중에라도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기도의 응답 요청.

④솔로몬의 이러한 기도는 성전을 '기도의 집'으로 삼아주실것에대한 기도이다.(40-42절)

(대하7:1∼22 "불과 말씀의 응답") 95, 3/26 저녁

솔로몬의 성전봉헌에대한 기도를 하나님은 응답 하시었다.

하나님께서 불로써 응답을 하시자 왕과 온 백성이 기도의 응답에대한 감사로 다시금 제물을 드렸다. 이에 말씀으로 응답하신 하나님은 축복과 경고의 음성으로 답하시었다.

1.불의 응답(1-3절)

1)솔로몬이 성전봉헌과 함께 성전을 향해 기도하는 모든 기도에 응답을 구하는 기도를 마쳤을때 불이 내려와 번제물과 제물을 살랐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도와 제물을 받으셨다는 표시이다.

2)'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1절)

①하나님의 응답의 신호로써 모세에게(레9:24), 기드온에게(삿6:21), 다윗에게(대상21:26), 엘리야에게(왕상18:38)나타났었다.

②불은 하나님의 속성으로서 예배자의 제물만 살르신것은 죄인들에대한 사랑을 나타낸다.

③불이 내리는것을 보았을때 백성들은 놀라 달아나지 않고 땅에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하고 감사하였다.(3절)

④또한 그들은 여호와의 전앞에 땅에 엎드림으로 하나님앞에 설 자격이 없음을 나타내었다.

3)'박석(憟石) 깐 땅..'(3절)-돌로 포장한 도로를 말한다. 화반석, 백석, 운모석과 여러가지 보석들의 갖가지 색깔과 재료로 모자이크한 섬세하게 장식된 성전 뜰이라는점을 보여준다.

2.솔로몬의 제물(4-7절)

1)왕과 백성은 하나님의 응답에대한 감사의 마음을 풍성한 제물의 제사로 나타내었다.

2)이들이 드린 제물은 소가 22,000마리, 양이 120,000마리였다. 이토록 엄청난 희생물의 숫자는 하나님의 영광과 은총을 나타내었다.

3)불로 응답하신 하나님앞에 제사장은 나팔을 불고 레위인들은 악기를 가지고 찬송을 함으로 맡은 직무를 수행하였다. 제사장의 나팔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신앙고백이다.

3.성전 낙성식(8-10절)

1)왕과 백성들은 성전봉헌의 절기를 7일동안 지켰고, 이어서 성전 낙성식을 7일동안 지켰다. 이 두 주간의 절기를 지키면서도 왕과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큰 기쁨과 지극한 만족감을 표했다.

4.말씀으로의 응답(11-22절)

1)하나님은 모든 백성들이 자신의 삶속에서 문제들을 깨닫고 성전을 향해 기도할때 곤경에 빠진것에 대하여는 죄사함과 회복을, 기도하는 집으로서의 인정, 왕권의 보존등 구체적인 응답의 약속을 하시었다. 2)솔로몬은 하나님의 전과 자신의 집을 건축하려는 모든 계획을 잘 수행하였다.

①예배와 두려운 마음으로의 경배가 형통함을 나타내었다.

3)'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12절)

①성전과 왕국건축을 모두 마친때이다.

②솔로몬의 기도에 응답을 주시기위해 꿈으로 나타나셨다.

4)곤경에처할때 회개와 겸손과 기도만이 해결된다고 하시었다.(14-18절)

5)하나님은 계명을 지키는자에 한하여 축복과 문제 해결로 기도의 응답을 하시지만, 계명을 버리고 우상숭배로 등을 돌리면 그 땅에서 몰아내고, 성전을 버리시고, 멸시받는 민족으로의 징벌이 있음을 엄숙히 경고하셨다.(17-22절)

(대하8:1∼18 "솔로몬의 통치사") 95, 4/2 저녁

여호와의 전과 자신의 궁을 20년간 건축하면서도 솔로몬은 주변국의 정복과 이웃나라간의 무역업을 추진하였다. 정복한 나라에 대하여는 각 도성마다 필요한 성과 건물을 지었고, 그러면서도 하나님께대한 절기마다 번제와 레위인과 제사장들로 하여금 반차를 좇아 직분 수행에 만전을 기 하였다.

1.솔로몬의 성읍재건(1-2절)

1)솔로몬은 성전과 자신의 왕궁 건축에 필요한 자재를 공급한 후람 왕에게 갈릴리의 성읍 20군데를 선물로 주었다. 그러나 후람 왕은 가불 곧 보잘것 없는 땅이라 하여 되돌려 주었다.(왕상9:10-14절) 그러자 솔로몬은 그 성읍을 재 건축하여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거하게 하였다.

2.주변국 정복(3-6절)

1)솔로몬은 성전과 왕국 건축에 심혈을 기울이는 한편 주변국에대한 영토확장에도 많은 노력을 기하였다. 또한 솔로몬은 확장된 지역마다 국고성과 병거성, 마병의 성을 건축하고 외세의 침략에도 대비한 방비에 만전을 기하였다.

①국고성(4절)-흉년에 대비하여 기름과 곡식을 저장하는 곳을 말한다.

②병거성과 마병의 성(6절)-군인과 기병들을 수용하기위한 처소.

2)'...성과 문과 문빗장이 있게하여 견고한 성읍을 삼고,'(5절)-솔로몬은 바다를 통한 외세의 침략을 대비하여 예루살렘에서 욥바 항구에 이르는 북서쪽 통로의 중요한 지점을 경계토록 하였다.

3.건축에 동원된 인력(7-10절)

1)솔로몬은 가나안 족속의 남아있는자들에게 강제노동을 시키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급의 역군으로 삼아 군사와 두목과 장관이 되게 하였다.

2)솔로몬이 추진한 20년간의 건축사업은 자연 노동력이 강요될 수 밖에 없다. 가나안 족속의 이같은 노예생활은 노아를 통한 예언의 결과라 할 수 있다(창9:25).

3)이스라엘 자손을 노예로 부리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때문이다.(레25:39)

4.솔로몬의 아내의 궁(11절)

1)솔로몬은 바로의 딸(왕상3:1)을 처음에는 다윗궁전에 거하게 하였으나 이방여인이었기에 하나님의 언약궤를 들여온 다윗궁전에 머물 수 없어 새로운 궁전을 지어 거기에 거하게 하였다.

5.성전봉사(12-15절)

1)솔로몬은 여호와께 작정한 번제와 절기를 지키며 부친 다윗이 정한 예배의식을 위해 레위인과 제사장들에게 직분과 서열을 정하여 직무수행을 명하였다.

2)솔로몬이 작정하여 드린 번제는 '모세의 명'(13절)을 좇아 드린 것이다.

①매일:상번제(매일 늘 드리는 번제)

②안식일:일곱째날을 특별한 구속의 날로 기억하게 하는 번제

③초하루:한달의 첫째날은 안식일보다 더 귀하게 지켜 드림

④3대절기:무교절,칠칠절,초막절은 이스라엘의 구원의 역사적 사실을 상기하며 새로운 헌신을 다집하는 의미로 특히 가장(家長)들에게 있어서 이 3대절기에의 참여가 중요하였다.

6.성전완공(16절)

1)성전은 건물자체가 그 목적이 아니다.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번제드리며 예배하는것이 주 목적이다. 모세의 명한 규례를 좇아 번제와 절기를 지키며, 레위인과 제사장들에게는 철저한 봉사를 통해 완벽한 성전다움의 모습을 나타내었다.

2)'기지를 쌓던날부터 준공하기까지 범백을 완비하였으므로..'-성전건축에 필요한 모든 재료가 완벽히 준비되었다는 말이다.(범백-모든 사물 혹은 재료를 뜻한다.)

7.솔로몬의 무역(17-18절)

1)솔로몬의 무역확장에 후람 왕은 자신의 노련한 선원들의 뱃삯을 지불하고 솔로몬의 선원들과 함께 보내어 에시온게벨과 엘롯에서 오빌에 이르러 금 450달란트를 솔로몬에게 바쳤다.

(대하9:1∼31 "스바여왕의 방문") 95, 4/9 저녁

스바 여왕은 솔로몬을 방문하여 그의 뛰어난 지혜와 부귀와 권세를 들어 하나님을 높이 찬양하였다. 그의 외교적인 면과 확장된 영토, 거기에 화려하며 웅장한 성전과 궁전과 내신들의 정열은 스바여왕 놀라게 하였다.

1.솔로몬을 방문한 스바 여왕(1-12절)

1)솔로몬의 상선들이 오빌에까지 왕래하면서 드러난 솔로몬의 명성은 스바 여왕으로 하여금 그의 어려운 문제를 상담하러 찾아오게 하였다.

①솔로몬의 지혜에 감동된 스바여왕은 왕과 그 신하들의 무한한 행복을 노래했고 또 여호와를 찬송하였다(8절)

②그녀는 솔로몬의 지혜를 언제나 들을 수 있는 그의 신하들을 '복되도다'고 하였다.(7절)

③상담을 마친 스바 여왕은 솔로몬에게 금120달란트의 선물을 하였다.

(그중 백단목은 인도산으로 그 향기 때문에 매우 값진 목재로써 도장이나, 우상의 형상 조각물로, 또는 고급 인테리 자재로, 혹은 향을 태우는데 사용되었다.)

2)스바는 아라비아 반도 남쪽 끝에 위치한 사베리아 왕국으로 예루살렘으로부터 1.920km의 거리이다.

3)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찾아온 스바 여왕을 들어 예수님은 '땅끝에서부터 왔다'고 하시면서 말씀들으려는 그가 이 세상 사람들을 정죄하게 될것이라 하시었다.(마12:42, 눅112:31)

2.솔로몬의 부귀(13-21절)

1)솔로몬의 한해 세입금이 666달란트(약19kg)이며, 무역하는 상인들과 아라비아의 왕들과 방백들이 보내온 금과 은이 많았다. 이는 기브온 산당에서 드린 예배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 결과이다.(대하1:12)

2)솔로몬의 왕궁은 거의가 금으로 장식될만큼 화려 하였다.

①금방패(큰방패200개, 작은방패300개), 금보좌, 금그릇

②왕의 보좌는 상아로 만들어 금을 입혔고, 보좌의 여섯층계 좌우편에는 팔걸이 옆에서부터 12 사자 모양이 호위하게 하였고, 아래에는 금족대(金足臺)가 있었다. 바닥에 앉거나 의자에 기대는것이 관습인 이스라엘에서의 의자사용은 왕의 위엄의 상징이다.

③이같은 보좌의 화려함은 '아무 나라에도 이같이 만든것이 없었더라'(19절)고 할 정도로 세상 모든 나라의 그것보다 뛰어났음을 말해준다.

3)또한 솔로몬이 무역했던 다시스에서 후람의 종들과 함께 3년마다 금, 상아, 잔나비(원숭이), 공작(새)등을 실어왔다. 이같은 것들은 오빌,인도에서 다시스로 실어온것들이다.

3.솔로몬의 권세와 죽음(22-31절)

1)솔로몬은 전무후무한 부귀와 영화를 누리며 살았다.

2)그러나 솔로몬은 후에 이 모든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바으려는 것'같이 무익한 것이었다고 술회하였다.(전2:9-11)

(대하10:1∼19 "르호보암의 악정(惡政)") 95, 4/16 저녁

120년간의 통일된 왕국도 솔로몬의 죽음이후 르호보암의 포악과 백성들의 탄원 거절로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분열의 조짐을 보이게 되었다. 결국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왕상11:11-13)되는 것이었다.

1.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의 요구(1-5절)

1.솔로몬을 피하여 애굽에 가있던 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의 온 무리는 르호보암 왕을 찾아가 솔로몬 시대에 평화와 번영을 누리기위해 노역에 시달려 왔으니 이제는 쉬게 해 달라는 요청을 하였다.

2.르호보암은 솔로몬의 아들로 이방의 암몬여인 나아마의 소생이다.(왕상14:31)

①르호보암은 에브라임지파를 중심으로한 북쪽 10지파의 추대를 받아 세겜으로 갔다.

②이때 그곳에는 이 소문을 들은 여로보암도 참여하여 함께 백성들의 뜻을 르호보암에게 탄원하였다.

③백성들은 멍에를 가볍게 해 달라고 하였다. 솔로몬의 시대에는 평화와 번영의 시대로써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었다. 그러나 솔로몬의 성전 건축과 자신의 궁을 위한 건축사업에 백성들로 하여금 노역과 많은 세금의 멍에를 메워야만 하였다.

3.르호보암은 백성들의 요구에대해 3일후에 다시 오라 하였다.

①르호보암은 일단 신중한 결정임을 보이기 위해 3일을 말하였다.

②또한 백성들의 요구에대해 조언을 들으려면 노인모사들과 젊은 모사들을 만나야 하는데 예루살렘에서 나불루스의 거리는 하루가 걸리는 거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③왕이 백성을 모르기 때문에 백성들의 문제를 파악하지 못하면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다.

4.여로보암은 솔모몬 건축때에 선지자 아히야로부터 열지파의 왕이 될것이라는 예언을 받았다. 그러자 솔로몬은 그를 죽이려 하였기 때문에 애굽으로 피하게 되었던 것이다.(왕상11:26-40)

①그는 후에 북왕국의 첫 왕이 되었다.(왕상12:20) 이는 그가 여호와의 성전 건축때에 건축의 감독자로 있으면서 아히야 선지자로부터 예언받은 것이었다.

②하나님은 그에게 말씀을 순종하면 그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는 말씀을 하셨다.(왕상11:38-39)

③그러나 그는 불순종하였고 그 집이 지면에서 끊어져 멸망을 받았다(왕상13:34)

2.조언을 듣는 르호보암(6-11절)

1.르호보암은 부왕(父王)인 솔로몬의 모사들인 노인모사들과 젊은 모사들 중 젊은 모사들의 충고를 받아들이고 만다. 이는 르호보암이 스스로 왕이 되기를 원한 사람이었고(10:1) 거만하고 오만한 왕이었기 때문이다.

2.노인 모사들은 솔로몬의 시대를 너무나도 잘 아는 모사들이다. 그들은 르호보암이 백성의 참된 왕이 되는길을 제시하였다.

①'백성을 후대하여 기쁘게 하는것과 선한 말로 대답'하도록 하였다.(7절)

②그리할때 노인 모사들은 영원히 르호보암을 섬기겠노라 하였다.

③그러나 르호보암은 노인들의 제안과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3.젊은 모사들은 멍에를 더 무겁게 하고, 더 무서운 회초리를 들도록 충동하였다.

①이미 르호보암은 백성들의 요청이 달갑지 않았고, 노인들의 충고가 불만스러웠다.

('백성이 내게 말하기를 하라 하였느니라'(9절), '왕이 노인의 교도하는것을 버리고'(8절))

②소년들은 르호보암의 말을 인용하여 답 함으로 비위를 맞추었다.

③'부친의 멍에보다 더 무거운것으로, 부친의 채찍보다 더 무서운 채찍(전갈-전갈의 독처럼 가시달린 채찍을 가리킨다.)으로 백성을 다스리라' 하였다.(10-11절)

(대하10:1∼19 "르호보암의 악정(惡政)") 95, 4/23 저녁

3.열지파의 반란(12-17절)

1.솔로몬의 죽음 이후 새롭게 맞는 르호보암 왕의 통치에 백성들은 무거운 짐을 덜어줄것을 요구하는 탄원을 하였다. 이에 르호보암은 3일의 말미를 얻은후 자신에게 다시오라 하였다. 3일후에 다시 찾아온 백성들에게 르호보암 왕은 부친 솔로몬보다 더 무거운 짐과 더 아픈 정치를 하겠다는 답을 하게 된다. 이에 이스라엘의 열지파는 다윗 지파에대한 소망을 포기하고 자신들의 장막으로 돌아간다.

2.르호보암은 자신과 함께 자란 친구들의 조언을 선택하였다.

①르호보암을 교도하는 노인들은 솔로몬의 정치시대를 잘 알고 민심을 잘 읽은바 였기에 민심의 요구 사항을 받아들이고, 솔로몬 시대에 졌던 짐을 덜고, 고역(苦役)을 멈출것을 제안하였다.

②르호보암이 채택한 교도는 젊은이들의 아부였다. 그들은 포악한 자신과 전혀 다를바가 없었고, 민심 보다는 자신들의 정치적인 야욕을 충족시키는일에만 관심있는 자들이었다.

③가장 진실되고 선한 충고는 친구의 우정보다 노인의 지혜와 경험이 더 앞서야할 것이다.

3.백성들은 르호보암의 답변에대해 다윗 왕가에대한 반감과 하나님의 언약에대한 포기까지 단행하였다.

①"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뇨 이새의 아들에게서 업이 없도다 ... 다윗이여 이제 너는 네 집이 나 돌아보라..."(16절)

②일시적인 어려움이나 고난을 이기지 못하면 이와같이 신앙까지도 버리게 된다.

4.이 모든일의 결과는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었다.(15절下)

①3일후에 나아온 백성들에게 르호보암은 포악한 말로 그들의 요청을 거부하였다.

②이일은 르호보암의 교만때문이기도 하였지만 그보다 앞선것은 하나님의 섭리때문이다

③이는 솔로몬의 불순종에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다.(왕상11:11, 31-36)

4.르호보암의 도주(18-19절)

1.이스라엘로 돌아간 백성들에게 르호보암은 자신의 정치권을 확보하기 위하여 하도람을 보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도람을 돌로 쳐 죽이고 말았다. 이같은 일의 결과를 본 르호보암은 급히 피신하게 되었고, 하도람을 돌로 쳐 죽인 이스라엘과는 현재까지 등을 돌리게 되었다고 증거하고 있다.

2.르호보암은 화친의 사절을 보낸것이 아닌데다 하도람을 보낸것이 커다란 실수였다.

①르호보암에 대한 이스라엘의 마음은 이미 떠난 상태였다.

②하도람은 역군의 감독자라고 하였다. 곧 공사를 지휘하고 또 세금을 관리하는 우두머리였던 것이다. 솔로몬의 정치하에 성전과 궁을 짓는일에 백성들은 막중한 세금의 짐을 져야만 하였다. 솔로몬 통치 하에 짓눌렸던 민심앞에 르호보암은 더 악한 정치 선전포고를 하였고 거기에다 세금관리의 가장 중요 한 요인의 감독자가 르호보암을 대신하여 왕의 뜻을 가지고 왔으니 백성들이 그를 그냥 돌려보낼리가 없었던 것이다.

③하도람에대한 백성들의 태도는 곧 르호보암에게 대한 격한 감정의 표현인것임을 알았기에 그는 급히 피하기에 이르렀다.

3.사절(使節)은 보내는이를 대신하는 권위와 의사를 대신한다.

(대하11:1∼23 "르호보암의 통치") 95, 4/30 저녁

본 장은 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의 반역으로 남은 유다 와 베냐민 두 지파를 다스리게 된 르호보암의 통치사가 기록되어있다. 그는 나머지 10지파를 회복하려고 18만 용사를 모았으나 하나님께서 이를 용납치 않으셨다. 르호보암은 유다를 방비하기 위하여 15 성읍을 건축하였다. 한편 나머지 10지파를 다스리게 된 여로보암이 온갖 우상숭배에 젖어들게되자 많은 제사장과 레위사람들이 르호보암에게로 모여들었다.

르호보암은 18명의 아내와 60명의 첩을 통해 아들 28명을 낳았는데 그 아들들을 유다 각 성에 흩어져 살게 하여 국방을 튼튼히 하는 지혜로운 면을 보였다.

1.르호보암의 전쟁을 막으신 하나님(1-4절)

①르호보암은 떨어져나간 10지파와의 무력통일위해 18만의 용사를 모집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를 통해 이스라엘 두 나라가 분열된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밝혀 통일을 위한 전쟁을 치루는것은 결국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것임을 경고하였다.

②다윗의 통치를 거부하였던 베냐민지파와 유다지파는 서로 적대관계에 있었으나 수도인 예루살렘이 베냐민의 경내에 있었고, 유다지역과 경계선이 같이하고 있었으므로 이들 두 지파는 예루살렘을 떠날 수 없었던 것이다. 자연 르호보암의 통치도 받게 되었던 것이다.

③'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종으로 혹은 하나님의 어떠한 사역을 위해 부름 받은 사람을 말한다. 반면에 '선지자'는 단순히 하나님을 가르치는 자로 한정되었다.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의 메시지는 소집된 18만의 군사를 해체하는데 가능하였다.

2.유다를 방비하기 위해 세워진 성읍들(5-12절)

①르호보암은 유다와 베냐민 영역에 있는 15개의 성읍을 요새화 하여 유다땅의 방어를 강화하였다. 하지만 르호보암은 서쪽의 블레셋과 남쪽과 동쪽의 애굽의 침공을 방어하기 위해 방비한 것이었다. 정작 르호보암은 북쪽을 향하여는 개방하고 있었던 것이다.

3.제사장과 레위인들의 복귀(13-17절)

①여로보암은 우상숭배와 우상숭배를 위한 제사장을 임의로 세웠고,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직분을 박탈하고 파면시켰다. 이러한 처우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나서게 하였다. 유다를 향하여 넘어온 이들은 3년간 르호보암을 도와 나라를 강성하게 하였다. 그러나 나라가 강성해지자 율법을 버린 르호보암에게 애굽 왕 시삭의 침입을 받게 된다.

②'...마음을 오로지 하여 이스라엘 하나님을 구하는 자들...'(6절)

衁.이는 '...에 마음을 두다'라는 뜻으로써 많은 경건한 백성들이 여호와를 섬기는데 온 마음을 쏟았다는 것을 가리킨다.

遁.이러한 열성적인 믿음의 사람들을 향하여 우상을 제시하니 이를 쾌히 수락할 리가 없다.

③경건심을 가진 이들과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하나님을 찾는 마음으로 남왕국으로 넘어왔으니 이들은 자연 열심으로 르호보암을 도왔던 것이다.

4.르호보암의 아내들과 자녀들(18-23절)

①르호보암은 두 아내를 포함하여 아내 18명과 60명의 첩을 취하여 아들 28명과 딸 60명을 낳았다. 그리고 르호보암은 마아가를 가장 사랑하였으므로 마아가의 소생 아비야를 후계자로 삼았다. 나머지 27명의 아들들은 각 지방에 흩어져 아비야의 대적이 되지못하도록 하였고, 한편으로는 공공의 안녕과 평화를 보존하도록 하였다.

②'많은 아내'는 율법에 위반되나(신17:17) 솔로몬은 이방여인들을 첩으로 두어 이스라엘의 가계(家系)를 어지럽혔으나 르호보암은 이스라엘 딸들로 두었다.

(대하12:1∼16 "르호보암의 행적") 95, 5/7저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강성해지는 복을 받았던 르호보암은 그 강성함 때문에 교만에 빠지게 되었다.

결국 교만은 하나님의 율법을 버리게 하였고, 하나님은 그에대한 징벌로 애굽 왕 시삭을 보내 이스라엘을 침공하게 하였다. 정신이 든 르호보암은 다시금 회개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모면하였다.

1.애굽왕 시삭의 침입(1-4절)

①르호보암은 나라가 견고하여지자 하나님을 더 잘 섬기기보다는 도리어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고 범죄하였다. 이에 하나님은 애굽왕 시삭을 보내어 르호보암을 징계하시었다.

②애굽왕 시삭의 침입은 율법을 버리고 하나님을 떠나 범죄하던 르호보암과 유다에대한 채찍이었다.

衁.시삭은 리비아 귀족 출신의 왕으로써 애굽 제22왕조의 창건자이다.

遁.그는 솔로몬을 피하여 망명해온 여로보암을 받아주었었다(왕상11:40).

鑁.또한 그는 예루살렘과 팔레스틴 전역을 무력 침공하여 여로 성읍들과 몇몇 요새들을 파괴시켰다.

鱁.이렇듯 시삭의 예루살렘 침공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으며 하나님의 율법을 떠나 범죄하던 르호보암과 유다에대한 하나님의 징계의 도구로 사용된 것이다.

③유다를 침공한 애굽의 부대는 '튓'과 '숩'과 '구스'의 연합군이었다.

衁.'튓'은 북 아프리카 사막, 즉 애굽의 서쪽에있는 리비아인들을 말하며, '숩'은 애굽의 동쪽 산악지대의 토굴인들이며, '구스'는 에디오피아인들을 가리킨다.

遁.시삭의 3개국 연합군으로 침공해 온것은 유다의 성이 견고하였기 때문이다.(4절)

鑁.그러나 견고한 성읍도 하나님이 치리하시는 징계의 채찍앞에는 쉽게 허물어질 수 밖에 없다.

2.회개와 회복(5-8절)

①애굽왕 시삭이 예루살렘에 육박해오고 유다 방백이 그 안전책을 강구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모였을때 하나님은 선지자 스마야를 보내어 "애굽왕 시삭의 침입은 유다의 국방이 약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다"라는 메세지를 주셨다.(5절)

②스마야의 메시지를 들은 방백들과 르호보암은 스스로 겸비하여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였다(6절)

衁.'스스로 겸비하였다'는 것은 자신들을 비천하게 낮추었다는 뜻이다.

遁.'여호와는 의로우시다'라는 말은 그들의 회개가 철저한 회개의 자세에서 나온 고백이다

鑁.진정한 회개는 자신을 철저히 낮추는데서 이루어진다.

③백성의 회개에 하나님은 스마야를 통해 심판을 내리지 않고 구원하겠으나 시삭의 종이되게 할 것이라 하시었다.(7-8절)

衁.그들에게 '대강 구원한다'(7절中)는 하나님의 말씀은 '잠깐', 혹은 '짧은 시간'을 말하는 것으로서 잠간동안만 구원하시겠다는 骕이셨다.

遁.유다로 하여금 죄의 결과를 깨닫게하여 죄에대한 심각성을 심기위한 하나님의 뜻이었다.

鑁.그러나 일시적일찌라도 시삭의 종이되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멍에가 더 낫다는것을 깨닫게하기 위한 하나님의 영적 의미가 있다.

3.시삭의 약탈(9-12절)

①시삭은 성전보물을 약탈하고 솔로몬의 영화를 상징하는 금방패를 약탈해 갔다.

②그러나 유다가 멸망하지 않도록 보호하시었다는 점을 환기해야 한다.

③재물이나 경력, 화려한 전적, 훌륭한 조상의 덕을 가지고 있다 해도 율법에 순종하지 않는 르호보암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4.르호보암의 행적과 죽음(13-16절)

①르호보암은 강력한 왕권을 가지고 통치하였으나 마음을 오로지 하지 않고 악을 행하였다.

②그의 모친 암몬여인 '나아만' 이 언급된 것은 그가 그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말한다.

③여로보암과의 전쟁을 금하신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항상 전쟁을 치루었다. 이도 또한 큰 죄였다(15절)

(대하13:1∼12 "아비야와 여로보암의 전쟁") 95, 5/14저녁

르호보암의 대를 이은 유다왕 아비야가 이스라엘의 왕 여로보암과의 전쟁에서 하나님께대한 신앙으로 전쟁을 멈출것을 종용하였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그사이 아비야의 후방을 공략하여 전.후방 공격을 강행하게 되었다. 아비야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였다 결국 하나님의 개입으로 그 전쟁은 이겼고 여로보암은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1.아비야와 여로보암의 전쟁(1-12절)

①여로보암 18년에 르호보암의 대를 이은 아비야가 즉위하여 3년간 유다를 통치였다. 이때 80만의 정예병을 이끈 여로보암이 포진하게 되었다. 이때 유다는 40만의 용병이 나섰을 뿐이었다. 하지만 아비야는 여로보암과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하나님의 언약을 환기시키면서 이 전쟁을 치루게 되면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가 됨으로 죽음을 자초하는 것임을 경고하였다.

②아비야의 연설(4-12절)은 다음과 같다.

衁.'..소금 언약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다윗과 그 자손에게 주신것을...'(5절)

a.하나님이 소금언약 즉 영원히 변할 수 없는 언약으로 이스라엘을 다윗과 그 자손들에게 주셨다는 말씀을 환기시키려는 의도에서이다.

b.다윗 왕권은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권위이니 이 권위를 주신 하나님께 대적하지 말라는 것이다.

遁.'난봉과 비류가 좇으므로...'(7절)

a.'난봉'은 허전하고 변덕스런 사람'을, '비류'는 사람같지 않은 자 즉 불량자를 말한다.

b.백성들이 원하는대로 행해 줄 통치자를 요구하여 이들에의해 여로보암이 왕이 되었다는 것을 꼬집은 말이다. 이는 하나님에 의해 세워지지 않고 반란에의해 스스로 왕이 된 여로보암을 두고 한 말이다.

鑁.'..너희는 큰 무리요...'(8절)

a.하나님께서 과거 여로보암에게 10지파를 주셨는데(왕상7:30-39) 유다의 두지파를 공략하려는 것은 옳지않다는 지적이다.

b.이는 결국 다윗 왕가에대한 반기를 든것이 잘못이라는 것이다.

鱁.'너희를 위하여 신으로 만든 금송아지...'(8절下)

a.여로보암은 반란을 일으킨 후 백성들의 마음을 자기에게로 모으기위해 금송아지 둘을 만들어 단과 벧엘(왕상12:26-29)에 두었다. 또한 유다의 절기와 비슷한 날짜에 제사와 분향을 하게 하여 온 백성들에게 우상숭배를 끌어들였다.

b.백성의 무지를 악용하였다. 하나님께대한 무지는 이렇듯 망할 수 밖에 없다.

ꁁ.'제사장과 레위인을 좇아내고 ... 장립 받고자 하는 자 마다...'(9절)

a.여로보암은 오직 아론의 자손만이 할 수 있는 제사장직을 파면시키고 좇아내었다.(11:14)

b.또한 여로보암은 수송아지 한마리, 수양 7마리만 있으면 누구를 막론하고 제사장으로 채용하였다. 이는 이방인들의 풍습에서 온것이었다.

ꑁ.'그를 우리가 배반치 아니하였고... 제사장들이 있으니 ... 레위사람이 수종들어 ... 계명을 지키나, 너희는 그를 배반하였으니'(10-11절)

a.유다는 아론 자손의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여호와를 섬기며, 그들에 의해 여호와의 규례를 따라 바른 제사가 드려졌다.

b.결국 아비야는 유다는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나, 이스라엘은 우상을 섬기므로 하나님을 버렸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걁.'제사장들도 우리와 함께하여 나팔을 불어...'(12절)

a.제사장들이 전쟁때 나팔을 부는것은 그 전쟁이 하나님께 있고, 전쟁의 승패를 하나님께 맡기라는 하나님의 말씀(민10:9)을 믿는 신앙의 고백 행위이다.

b.유다는 이 말씀을 아직도 믿고있다는 고백과 동시에 이스라엘에대한 경고이기도 했다.

③아비야는 여로보암과 80만의 이스라엘 군대보다고 더 두려운 분이 하나님이심을 고백 하였다(12절).

이는 하나님이 자신들과 함께하여 이스라엘이 공략해 올때 반드시 승리케 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에 차있었기 때문이다.

(대하13:13-22 "아비야의 승리" 95년 5월21일 저녁

2.아비야의 승리(13-22절)

아비야의 열변에 귀를 기울이지 않던 여로보암은 아비야의 연설시간 동안 유다의 후방에다 진을 쳤다. 유다의 배후에 진을 친 여로보암은 전후방 공격을 동시에 시작하였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있던 유다의 왕과 용병들은 합심하여 기도하였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어 하나님의 약속을 구하였다. 이에 하나님은 이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50만의 이스라엘군 과 여로보암 왕을 치시었다.

①'여로보암이 유다의 뒤를 둘러 복병하였으므로..'(13절上)

衁.여로보암은 아비야 왕이 경고하는 동안 그 경고를 듣는 척하면서 뒤로는 복병을 매복시킨 것이다.

遁.선한 시기를 악하게 이용하여 승리하려 하였지만 결국 여로보암의 이같은 행동은 하나님께 도전장을 던지고 있는 셈이었다.

②유다는 앞뒤로 쳐들어오는 이스라엘의 군대앞에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제사장은 나팔을 불었다.

衁.'...자기앞의 적병을 인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14절中)

-특별히 환난을 당했을때에 갈급한 마음으로 부르짖었다.

遁.제사장은 나팔을 부니라(14절下)

-"또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때에는 나팔을 울려 불지니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너희 대적에게서 구원하리라."(민10:9)

-믿음으로 하는 행위에 공로가 있을 수 없다. 제사장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말씀에 의지하여 나팔을 부는것 밖에 없었다. 또한 이 나팔은 오직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들만이 불도록 하시었다(민10:8). -전쟁에 제사장이 개입되도록 하신것은 그 전쟁과 전쟁의 승패가 하나님께 있다는 점을 심도록 하신 것이다.

鑁.'유다 사람이 소리지르매...'(15절上)

-이같은 행위는 겁에질린 두려움의 함성이 아니다. 승리를 자신하고 이미 승리한것에대한 믿음의 함성이다.

鱁.'유다 사람이 소리지를때에 하나님이 ... 쳐서 패하게 하시니'(15절下)

-하나님을 의지하여 구하되 말씀에 의지하여 호소하는 부르짖음에 직접 개입하시었고, 친히 이스라엘의 군대를 물리치셨다.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와 불순종에대한 하나님의 입장이 얼마나 준엄하였는가를 보여준다.

ꁁ.유다의 군대는 하나님을 의지 함으로 승리하였고, 이스라엘은 항복하고 말았다.(18절) 또한 이스라엘을 점령하였고, 여로보암은 죽고 말았다.

③전쟁에 승리한 아비야는 더욱 강성하게 되었고(21절), 하나님의 은혜로 평화를 누리며 14명의 아내로 아들 22, 딸 16을 두었다. 후에 아비야는 다윗성에 장사되었다.

衁.다윗성에 장사되었다는 것은 아비야의 일생이 믿음으로 살아왔다는 것이다.

(대하14:1-15 "아사의 유다통치" 95년 5월28일 저녁

본장은 유다의 3대 왕 아사의 선정(善政)이 기록되어 있다. 르호보암과 아비야 시대에 계속되는 전쟁이 그치고 아사 시대에 10년간 평안이 계속되었다. 그것은 아사 왕이 우상을 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왔기 때문이다. 또한 아사는 견고한 섭읍을 건축하여 국방을 튼튼히 하였고, 군사 58만을 거느렸다. 이때 구스사람 세라의 100만 대군과 병거 300승의 침공이 있었다. 아사왕은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셔서 아사왕으로 하여금 승리하게 하셨다. 아사왕은 평안할때 자만치 않고 하나님을 의지한 성실한 믿음의 사람으로 우리에게 소개되고 있다.

1.아사의 통치(1-8절)

①왕상15:12-15에 의하면 아사왕은 자기 할머니에 의해 만들어진 우상을 파괴하고, 태후의 위를 폐하였다. 또한 남색하는자들을 내쫓고, 모든 우상을 부수고 불태웠다. 이같은 아사의 행위는 하나앞에서 선과 정의를 행하고자 함이었다.(1-5절)

衁.'유다 사람을 명하여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게 하며 ... 행하게 하고'(4절)

-조상때부터 이스라엘 민족에게 말씀하시고, 역사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권유하며 가르쳤다.

-'열조의 하나님' 하나님과 우상을 대조하여, 복을 주시고 언약을 성취하는 하나님을 말할때 사용.

遁.'유다가 그 앞에서 평안함을 얻으니라'(5절), '여호와께서 아사에게 평안함을 주셨으므로 '(6절)

-아사의 시대가 평안하게된 이유는, 우상을 철폐하고, 성읍에서 산당과 태양상을 없이하고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였기 때문이며, 하나님도 유다를 지켜주셨기 때문에 평안한 것이다.

②아사왕은 평안한 시기를 자신의 안락과 쾌락을 위해 보내지 않고 나라의 국력을 다지는데 기울였다. 이같은 행위는 나라의 안정과 평안의 원인이 하나님께 있었기 때문이라 하였다. 이에 58만의 군대를 정비하였으며, 그들은 다 용사라 하였다.(6-8절)

衁.아사는 평안할때에 이 평안의 이유가 하나님께대한 신앙때문이었으니 하나님을 의지하여 나라를 더 욱 견고하게 할것을 제안하여 58만의 군대를 정비하였다.(9-8절)

遁.'아사가 ... 유다사람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우리가 주를 찾았으 므로 '(7절)

-이는 아사왕이 유다의 백성들이 믿음을 잘 지켜온것을 강조하며 더욱 믿음을 돈독히 할것을 역설 하는 신앙의 격려이다.

2.세라의 침공(9-15절)

①구스(현 애굽의 남쪽에 위치한 수단)의 세라는 막대한 100만의 대군과 병거 300승을 이끌고 아사와 르호보암이 요새화한 예루살렘 중간의 성읍인 '마레사'로 쳐들어왔다. 이는 유다의 58만의 군대보다 훨씬 강력한 부대였다(9절)

②아사는 적군의 침공을 방비하고난 후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유다의 군대를 지켜주실것을 호소하였다(10-11절).

衁.'...사람으로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이 전쟁이 유다와 구스의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과 구스와의 전쟁이 되게 해 달라는 간구이다.

-본문에 언급된 [사람]은 '깨지기 쉽다'는 말에서 유래된 '죽을 수 밖에없는 약한 존재'라는 의미의 말을 사용하였다.

遁.아사의 기도는 그 전쟁을 유다가 이긴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긴 전쟁임을 강조한 믿음의 기도였다.

③아사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구스사람을 아사와 유다앞에서 패하게 하셨다(12-15절)

衁.'여호와 앞에서와 그 군대 앞에서...'(13절)

-하나님께서 유다를 돕고 계셨고, 실제의 유다의 군대와 천사의 부대를 합친 군대를 말한다.

遁.유다의 군대는 그랄의 모든 성읍까지 공격하여 많은 물건을 노략하였다. 이는 구스 군대가 그랄로 피신하였기 때문이며, 그랄 성읍은 구스와 연합하여 유다를 대적하였기 때문이다.

대하15:1-19 "아사의 개혁" 95년 6월4일 저녁

구스의 침략군을 무찌르고 큰 승리와 함께 돌아오는 아사왕에게 하나님은 무명의 아사랴 선지자를 통하여 아직 정복하지 못한 유다와 베냐민 안에 있는 우상을 지적하셨다. 아사왕은 선지자를 통해 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큰 힘을 얻고 용기를 얻어 우상을 파괴하는 개혁운동을 시행하기에 이른다. 개혁이 이루어지자 하나님께서 유다에 평화를 주셨다.

1.아사의 권고(1-7절)

①아사랴는 오멧의 아들로 무명의 선지자였다. 그는 개선하는 아사의 군대들에게 승리에대한 찬사보다 저희로 계속해야 할 일을 말씀하시었다. 이는 지금껏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도 이스라엘을 만나셨기에 평안했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등질때 나라가 불안하고, 평안치 못하였으니 이러한 모든 결과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셨기 때문이었음을 상기시켰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굳은 결단을 해야함을 요구하셨다.

②'이스라엘에는 참신이 없고, 가르치는 제사장도 없고, 율법도 없은지가 이제 오래였으나'(3절)

衁.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이스라엘에 하나님을 진실되게 섬기는자가 없었다.

遁.제사장은 있으나 가르치지 않았다.

鑁.하나님의 백성들이 율법의 구속을 받지않고 있다

즉 이스라엘의 신앙상태가 마치 풍성하고 푸짐하게 차려진 식탁에 실제 먹을것은 하나도 없는것처럼 신앙의 외적인 모습은 화려하나 그 속과 중심은 하나님을 등진상태의 불신을 지적하는 말씀이시다.

③'그 환난때에 찾으매 만난바가 되셨나니'(4절)

衁.방탕한 가운데 있을때에는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

遁.그러나 환난을 만나 회개하고 하나님을 찾으니 하나님이 만나주셨다.

④결국 하나님은 아사왕에게 결단을 촉구하는 격려의 말씀을 하신 것이다.

2.아사의 개혁(8-15절)

①아사랴를 통해 들은 하나님의 말씀대해 아사왕은 나라안의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제단을 수리하기에 이른다. 또한 승리한 그날에 노략한 물건중 짐승을 하나님께 제사로 드리고, 온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신앙을 다짐하는 결의대회를 갖고 헌신하니 온 백성들이 이를 기뻐하였다. 이에 그 나라가 평안을 누리게 되었다.

②'또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를 모으고, 에브라임과 므낫세와 시므온 가운데서 모았으니'(9절)

衁.북이스라엘의 에브라임과 므낫세와 시므온 지파중에서 아사에게 돌아온것은 신앙때문에 유다로 온 사람들이었다.

遁.하나님이 아사와 함께하심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9절下)

③'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는자는 대소 남녀를 무론하고 죽이는것이 마땅하다'(13절)

衁.우상을 숭배하거나 하나님께 경배하는일에 참여를 거절하는 완고한 우상숭배자나 철저한 무신론자를 그 나라안에서 몰아내기위한 결의를 하였다.

遁.이는 새로운 법이 아니라 모세시대에 율법의 확실한 실행을위해 만들어진 바였다.(신17:2)

鑁.유다 백성은 엄숙한 맹세를 기뻐하고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찾았다. 그 결과 하나님은 그들을 만나주셨다. 하나님이 그 백성들을 만나주시는것, 이는 저들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이었던 것이다.

3.아사의 우상파괴(16-19절)

①아사왕은 자신의 모친이며, 태후인 마아가를 폐위시키면서까지 종교개혁을 단행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도시에 있는 산당을 철거하였으나 시골에있는 산당은 철거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부친이 하나님께 드리려하였던 헌물과 함께 자신도 하나님께 드릴 금과 은과 기명들을 하나님의 전에 드림으로 나라가 평안하게 되었다.

②'산당은 이스라엘 중에서 제하지 아니하였으나...'(17절)

衁.성읍안에 있던 산당을 중심으로 철거하였다.

遁.유다에 있는 산당은 제하였으나, 다윗왕가에게 돌려진 지역안의 산당을 제하지 못한것 같다.

대하16:1-14 "아사의 실패" 95년 6월11일 저녁

선하고 정직했던 아사 왕이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지함으로 실패한내용이 본장에 기록되었다.

첫째는 북왕국 바아사의 침입때 아람 왕을 의지했던 것이며, 이를 지적하는 선지자 하나니를 책망한것이 그 둘째며, 발에 병이들어 썩어갈때 의원들을 의지한것이 세번째의 실수였다. 하나님은 당신을 의지하는 사람, 의지하는 왕을 도우시건만 아사왕은 그 신앙의 뿌리가 깊지못한 실패자로 기록되고 있다.

1.바아사의 라마 건축저지(1-6절)

①이스라엘의 왕 바아사가 유다를 침공하여 유다와 이스라엘을 잇는 중요한 교통로인 라마에 성을 건축하고 이스라엘 사람의 유다 왕래를 저지하려 하였다.

이에 유다의 아사 왕은 다메섹의 벤하닷 왕에게 뇌물을 주며 아람과 북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파기하여 이스라엘이 유다로부터 떠나가도록 요청하였다.

②'아사가 여호와의 전 곳간과 왕궁 곳간의 은금을 취하여...'(2절) - 아사 왕은 멀리 다메섹의 아람왕 벤하닷에게 뇌물을 줄때 왕궁의 은금 뿐 아니라, 성전 곳간에 있는 은금을 사용하였다.

衁.그가 사람을 의지하는 세속적인 방법을 쓴것만도 어리석은 일이었으나, 성전 곳간의 은금을 사용한 것은 평소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소홀히 여기며 살았다는 것이다.

遁.참된 믿음의 사람이라면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며, 일의 해결을 구하여야 한다.(소원예물)

鑁.세속적인 해결을 위해 하나님의 이름이나, 하나님의 것을 사용하는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컸는 죄를 범하는 것이다.

③'...이스라엘 왕 바아사와 세운 약조를 깨뜨려서...'(3절) - 유다의 아사왕은 은금의 뇌물을 통해 동맹관계를 맺기를 요청하면서 바아사와 맺은동맹을 깨뜨리도록 권유하였다.

衁.북이스라엘의 바아사는 아람의 벤하닷과 동맹을 맺어 북쪽의 침입을 방지하려 하였다.

遁.아사는 뇌물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려 하였고, 국제적인 조약관계를 깨뜨렸다.

鑁.벤하닷은 결국 이스라엘의 이욘과 단과 아벨마임과 납달리의 곡식 저장 탱크가 공격당하자 라마를 건축하던 일을 멈추고 본국으로 되돌아갔다(4-5절).

④아사는 이 일 후에 라마를 건축하려던 돌과 나무를 수운하여 게바와 미스바를 건축하였다.

2.하나님의 책망과 아사의 분노(7-10절)

①하나님은 아사왕에게 선지자 하나니를 보내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인간을 의지한것을 책망하였다. 이에 아사왕은 선지자 하나니에게 화를 내면서, 옥에 가두고 말았다.

②선지자 하나니가 책망한 요지는 다음과 같다.

衁.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아람 왕을 의지하였기 때문에 의지하던 아람 왕이 오히려 유다를 돕지 않게 될 것이다.(7절)

遁.과거 구스와 룹의 막강한 군대도 하나님의 의지할때 그들을 이겼다.(8절)

鑁.능력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후에는 전쟁이 있을 것이다.(9절)

③'...이는 그 말에 크게 노하였음이며, 그때에 아사가 몇 백성을 학대하였더라.'(10절)

衁.아사왕은 하나니를 통해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몹시 불쾨하게 생각하였다. 이는 충고를 받아들일 여유가 없는 교만함으로 가득하였기 때문이다.

遁.또한 하나니와 관계된 사람과 친지를 학대하기까지 하였다.

3.아사의 죽음(11-14절)

①아사 왕은 재위 39년에 발에 병이들어 크게 악화되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의원들을 의뢰하였다. 결국 발병 2년만에 사망하고 말았다. 절망적일때 하나님을 저버린 사람, 자신의 경험과 지식, 인간적인 노력의 결말에대한 교훈을 그의 삶이 보여주었다.

②'...그 시체를 법대로 만든 각양 향재료를 가득채운 상에두고 또 위하여 많이 분향하였더라.'(14절)

- 아사왕은 비록 노년에 믿음을 잃어 실수와 약점을 안게되었으나 과거의 경건과 열심에대한 존경심이 이토록 성대한 장례를 치루게 하였고, 많은 향을 피워 경의를 표하게 하였다.

대하17:1-19 "여호사밧의 유다 통치사" 95년 6월18일 저녁

본 장은 유다의 3대 성군(여호사밧, 히스기야, 요시야)중의 한 사람인 여호사밧, 그의 즉위 초의 경건과 유다 백성에 대한 신앙 교육과 국방 사업이 기록되었다.

그는 다윗이 하나님을 향하여 진실하였던 것처럼 여호와의 도를 행하였고, 즉위 3년째에 방백들과 레위인들로 구성된 율법교사를 각 성으로 파송하여 하나님을 가르쳤다. 그러한 여호사밧에대해 하나님은 주변국의 두려운 나라로 부각시켜 조공을 받게 하셨고, 그 가운데 여호사밧은 국방을 강화하여 평안을 누리게 되었다.

1.여호사밧의 경건(1-6절)

①여호사밧은 유다 왕 아사의 아들로 그를 이어 유다 제 4대 왕으로 즉위하였다. 그는 즉위하였을 때 선친 아사의 뒤를 따르지 않은 현명한 처사로써 다메섹에 도움을 청하지 않고, 유다 자체의 국력을 강하게 하기 위하여 각 성과 에브라임에 강력한 수비대를 배치하였고, 거기에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함께 하시는 축복을 받아 누렸다.

②'...스스로 강하게 하여 이스라엘을 방비하되'(1절)

衁.유다의 여호사밧이 왕위에 오를 때에 북쪽의 이스라엘에는 활동적이고 호전적인 아합 왕이 즉위 3년 째에 올라 있었다(왕상22:41).

遁.이에 대해 유다로서는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공격적인 대응책이 아 닌 자체적인 방어태세 즉,

鑁.'이스라엘의 행위를 좇지 아니하였음이라'(4절下)-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유다간의 동족 전쟁을 금하 셨다(11:4). 하지만 이스라엘은 이를 어기고 유다를 침공하려 하였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공격적인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③'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에 군대를 주둔하고 또 유다 땅과 그 아비 아사의 취한 바 에브라임 성읍들에 영문을 두었더라'(2절)

-여호사밧은 나라의 일선지역에 위치한 성읍에 먼저 군대를 주둔시켰다. 그리고 선친이 장악한 에브라임 지역에는 전보다 더 강력한 수비대를 투입하였다.

④'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나라를 그 손에서 견고하게 하시매...'(5절)

衁.여호사밧은 부왕 아사의 실정을 거울삼아 이웃나라와 동맹을 맺지 아니하고, 오직 자신을 다듬고 하 나님께 도움을 요청하여 문제해결을 받는 정치를 하였다.

遁.여호사밧은 전심으로 여호와의 도를 행하고, 당시 이스라엘과 유다를 파고드는 바알우상을 좇지 아 니하였다. 또한 그는 바알우상과 아세라 목상을 유다에서 제하였고 백성들의 신앙성장에 큰 관심을 갖고 이를 추진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함께 하시는 이유였다.

2.율법교사 파송(7-9절)

①여호사밧은 즉위 3년에 다섯 방백을 유다 각 성에 보내어 교육사업에 종사하게 하였다. 또 그들과 함께 아홉명의 레위인과 두명의 제사장을 보내어 방백들과 함께 성읍을 순회하면서 여호와의 율법을 가르치게 하였다.

②'방백'들이란 지반장관을 의미한다. 이들 장관들을 동원하여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칠 정도라면 그 사회는 상당한 신앙심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③레위인과 제사장들은 '여호와의 율법책'을 가지고 가르쳤다(당시의 율법은 [토라] 즉 모세오경이었다).

3.유다의 국방 강화(10-19절)

①유다 주위의 나라들은 여호사밧과 감히 전쟁을 할 수가 없었다. 이는 하나님께서 주변국들로 하여금 여호사밧을 두려워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이는 여호사밧이 율법을 가르치고있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친히 국방을 담당하여 주셨던 것이다. 그는 이에 자만하지 않고 교육사업에 이어 구체적인 국방 강화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②여호사밧의 군대는 명예나 영예를 위한 군인이 아니라, 지원병들로 구성되었고(19절), 이들의 국력은 블레셋으로 하여금 조공을 바치게 할 정도였다.

대하18:1-27 "아합과 미가야" 95년 7월2일 저녁

열왕기상22:2-35절과 일치되는 오늘의 본문은 열왕기서와 그 촛점이 다르다. 열왕기서에서의 촛점은 아합에게 두었지만 본서에서의 촛점은 여호사밧에게 두고 있다. 여호사밧은 북 이스라엘의 아합과 사돈 관계를 맺고, 미가야 선지자의 예언에도 불구하고 아합과 함께 길르앗 라못 전투에 참가하였다. 이 전투에서 아합은 전사하였고, 여호사밧은 간신히 도망쳐 나와 죽음의 위기를 모면하였다.

1.여호사밧과 아합의 동맹(1-3절)

①여호사밧이 부귀와 영화를 누리게 되자 아합왕가(王家)와 사돈관계를 맺게 되었다. 몇해 후에 아합은 여호사밧에게 군사동맹을 맺고, 함께 길르앗 라못을 토벌할것을 권유하였다.

②아합이 토벌코자한 길르앗 라못은 아람이 과거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벤하닷의 부왕이 빼앗은 땅을 모두 반환하는것을 조건으로 하여 휴전협정을 맺은일이 있었다(왕상20:34). 하지만 아람 나라는 여섯 도피성중의 하나인 길르앗 라못을 반환하지 않았다. 이에 아합은 길르앗 라못을 되찾기 위해 여호사밧에게 군사동맹을 맺을것을 권유한 것이었다.

③'저가 사마리아에 내려가서 아합에게 나아갔더니', '아합이 ... 우양을 많이 잡고 ... '(2절)

衁.여호사밧이 아합을 방문하였다. 이때 아합은 성대한 환영식과 함께 잔치를 벌였다.

遁.그 자리에서 아합의 군사동맹 제안을 받았다.

鑁.여호사밧은 아합의 제안에대해 한 민족의 일이라는 의사를 밝히므로 이를 수락하였다.3절).

2.라못 전투에대한 선지자의 예언(4-22절)

①여호사밧은 아합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고는 하나님의 의사를 묻기위해 선지자를 요청하였다(4절).

②이때 초청되어 나온 선지자 400명은 아합에게 그 전쟁의 승패가 확실하니 나가 싸우라는 예언을 하였 다. 하지만 여호사밧은 전 선지자가 모인것인가를 확인하였다. 이때 아합은 항상 불길한 예언을 하는 미가야 선지자가 있어 그를 미워한다는 의사를 전하였다(6-7절). 이때 여호사밧은 선지자를 미워하지 말라는 권유를 하였다.(7절下)

衁.당시 북이스라엘은 우상숭배에 젖어들어 있었기 때문에 그속에서 공적으로 활동하는 이들은 타락한 종교와 타협한 선지자들로 보아야 할것이다.

遁.바알에게 무릎꿇지 아니한자 700명(왕상18:22,40)은 이들에게 알려지지 아니한 상태이다.

③아합이 미가야를 부르자 내시는 미가야에게 좋은 예언을 권유하였지만(12절)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해야만 한다고 하였다.

衁.관원의 권유는 당시의 이스라엘의 종교 부패여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실이다.

遁.미가야는 진실을 왜곡할 수 없다는것을 이미 마음에 굳힌 상태이다.

鑁.400명의 선지자가 한 예언은 올라가면 승리할 것이며, 적군은 왕의 손에 붙여졌다는 것이다.(11절)

鱁.미가야의 예언은 아합이 전사한 뒤 전의를 상실하고 모두가 도망하되 지도자가 없으니 집으로 돌아 가 버릴 것이라 하였다(16절)

ꁁ.또한 한 영이 거짓 선지자들의 입에 들어갈 것이며, 아합은 한 영에의한 거짓 예언에 귀를 기울이고 속을 것이라는 것까지 밝혔다(18-22절)

3.미가야 선지자의 핍박(23-27절)

①미가야 선지자는 시드기야에게 뺨을 맞았다. 시드기야는 자신들의 예언은 하나님의 영에의한 것이며, 하나님이 자신들 이외에는 누구에게도 말씀하실 예언자가 없다고 하였다(23절).

②미가야 선지자는 시드기야의 말에대하여 그들은 잘못된 예언때문에 골방에 숨게될 것이며, 아합의 죽 음과함께 미가야의 예언이 옳았다는것을 확인하게 될것이라 하였다(24절).

③아합은 미가야 선지자를 아몬 성주와 요아스 왕자에게 넘기며 자신이 돌아올때까지 미가야에게 고생 의 떡을 먹이고, 그를 옥에 가두도록 하였다. 하지만 미가야는 아합이 전쟁에서 돌아오는것은 하나님 께서 말씀하지 않으셨음을 밝히고 백성들에게 이 사실을 공포하였다(27절).

대하18:28-34 "아합의 죽음" 95년 7월9일 저녁

아합은 하나님이 자신을 길르앗 라못 전투에서 죽일 것이라는 미가야의 예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사밧과 함께 길르앗 라못 전투에 참가하였다. 이 전투에서 아합은 미가야의 예언대로 전사하였다.

결국 군사 동맹 관계로 길르앗 라못 전투에 참여는 했지만 예언자를 통해 나타난 패배를 통해 여호사밧은 큰 교훈을 깨닫고 자신의 나라와 국민의 신앙정비를 들어가는 일대 개혁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4.라못전투와 아합의 죽음(28-34절)

①아합은 불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는지 자신은 왕복을 벗어 변장하고, 여호사밧 왕에게는 그대로 왕복을 입고 전장에 나갈 것을 부탁하였다. 하지만 아람왕은 아무하고도 싸우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의 왕과만 싸우도록 명령하였다. 아람군사들은 왕복을 입고 있는 왕을 발견하고 추격하였으나 추격 당하는 여호사밧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므로 아람군사들의 눈을 뜨게 하였고 여호사밧이 이스라엘의 왕이 아님을 깨달은 아람군사들은 추격하던 발걸음을 돌이켰다. 한편 아람 군사가 우연히 쏜 화살은 아합의 갑옷을 꿰뚫어 중상을 입혔고 그날 저녁 아합은 하나님의 작정대로 숨지게 되었다.

②"나는 변장하고 군중으로 들어가려 하오니 당신은 왕복을 입으소서"(29절)

衁.미가야 선지자의 예언을 생각한 아합은 자신의 안전만 생각하고, 여호사밧을 통하여 자신의 안전을 확실하게 하려 하였다.

遁.당시 전장에는 선두에 왕이 앞장서는것이 선례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선례까지도 무시하고 자신의 신변안전만 생각한 아합이었다.

鑁.국민의 안전과 평화는 안중에도 없었던 왕이었다(왕상21:1- 나봇의 포도원 탈취)

③"아람왕이 오직 이스라엘 왕과만 싸우라 한지라"(30절)

衁."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이스라엘 왕 아합을 꾀어 저로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할 꼬"(19절). 하나님은 이미 아합왕을 죽이기로 결심하셨고 이를 실행하려 하시었다.

遁.아람왕은 하나님의 뜻을 알기라도 한듯 오직 이스라엘 왕 아합만을 죽이라 하였고 오직 이스라엘 왕 과만 싸우라고 명령하였다. 이는 전쟁의 승패가 하나님께 있으며(삼상17:47), 생사화복(生死禍福)이 오직 하나님께 있으며(신32:39), 사람이 계획하여도 이를 시행토록 하시는 분은 하나님(잠16:9)이시라 는 것을 확인해주는 사건이다.

④"병거의 장관들이 여호사밧을 보고 저와 싸우려 한즉"(31절上)

衁.아람나라의 장관들은 여호사밧 왕이 이스라엘의 왕 인줄로 알고 여호사밧과 싸우려 하였다.

遁.악인과 손을 잡으면 그 뜻이 아무리 선한 것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환경을 만난다.

⑤" 여호사밧이 소리를 지르매 여호와께서 저를 도우시며 하나님이 저희를 감동시키사 저를 떠나가게 하신지라"(31절下)

衁.하나님의 명령, 곧 말씀을 소홀히 여길때 만나는 환경은 회개만이 해결할 수 가 있다.

遁.아합은 죽이려 하시고, 여호사밧은 살리려 하셨다. 아합은 자신의 생명 보존을 위해 노력하였지만 여 호사밧은 하나님께 부르짖어 문제해결을 구하였던 것이다. 결국 하나님은 아람군사들을 친히 유인하 여 여호사밧의 생명을 살리셨던 것이다.

⑥"한 사람이 우연히 활을 당기어 이스라엘 왕의 갑옷 솔기를 쏜지라 해가 질 즈음에 죽었더라"(33-34절)

衁.우연한 화살 그러나 하나님의 정하신 일이기에 한 병사의 손을 들어 아합을 치신 것이다.

遁.하나님의 말씀이 응한 사건이며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신 전투였다.

鑁.하나님이 택하신 자는 생명싸개로 지키시며, 악인의 생명은 우연한 화살을 통해 거두신다.

대하19:1-11 "여호사밧의 개혁" 95년 7월16일 저녁

길르앗 라못에서 이스라엘과 연합하여 전쟁을 치룬후 여호사밧은 무사히 귀국하였다. 그러나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는 그가 악한 아합과 연합했던 사실에 대하여 비난하였다. 예후는 여호사밧의 행위가 여호와를 진노케 하였지만 율법을 지키고자 하였던 노력을 참작하셨음을 말하였다.

1.예후의 책망(1-3절)

①여호사밧왕은 아합과 동맹관계 맺었던 일에 대하여 하나니의 아들 예후에 의해 책망을 받았다. 이로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여호사밧에게 임할 것이라는 경고와 그동안 하나님을 위해 쌓아온 우상 타파의 선한행실도 있어 그의 신앙심을 칭찬받았다. 이는 하나님께서 예후를 통해 여호사밧의 신앙심을 일깨우는 사랑의 책망이었다.

②'여호사밧이 평안히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그 궁으로 들어가니라'(1절)

衁.여호사밧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악인 아합을 도와 길르앗 라못 전투에 참가하여 죽음의 위기를 만났 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목숨을 건져 본국 유다로 귀국하게 된 것이다.

遁.여호사밧의 무사 귀국은 그의 중심이 하나님을 향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③'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을 맞아 가로되 하였더라'(2-3절)

衁.여호사밧이 악한자를 도왔고, 하나님을 미워하고 있는자를 사랑한것이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켰다는 것을 경고하였다.

遁.하나님의 진노는 20장1절에 모압과 암몬의 침입으로 이루어졌다.

2.재판관 임명(4-7절)

①여호사밧은 2차적인 종교개혁을 시행하기에 이른다. 그는 남쪽 브엘세바에서 왕국의 북쪽 에브라임 산지까지 순찰하면서 백성들의 올바른 신앙을 갖도록 가르치고 돌보았다. 또한 온 나라의 성읍에 재판관을 두어 재판을 하게 하였는데 뇌물을 받지 않고 공의로 재판할것도 함께 지시하였다.

②'여호사밧이 예루살렘에 거하더니 나가서 브엘세바에서 ... 산지까지 ... 순행하며 ... 저희를 여호와께로 돌아오게 하고'(4절)

衁.여호사밧은 선견자의 책망을 겸손히 받아들이고 즉시 자기가 해야할 일을 찾아 살행에 옮겼다.

遁.또한 여호사밧은 백성들이 우상에 미혹되지 않고 그 열조의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힘썼다.

③'재판관을 세우고 ... 재판관에게 이르되 ...'(5-7절)

衁.여호사밧은 그들 가운데 재판관을 세워 율법이 잘 지켜지도록 하였으며, 하나님을 대신하는 공정함 과 청렴결백(淸廉潔白)한 재판에 힘쓰도록 하였다.

遁.이같은 절차는 종교 교육과 함께 뒤따라야 할 중요한 일이었다(교육과 실천).

3.여호사밧의 회개와 개혁(8-11절)

①유다의 각 성읍에 재판관을 세운 여호사밧은 예루살렘에서도 재판관 제도를 실시, 운영하도록 하였다.

종교적인 문제는 대제사장 아마랴가, 일반적인 문제는 이스마엘의 아들 스바댜가 각각 관할하게 하였다. 여호사밧은 이렇게 재판관을 세우고 그들에게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임할것을 당부하였다.

②저희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여호와를 경외하고 충의와 성심으로 이 일을 행하라"(9절)

衁.[충의]-한결같은, 혹은 성실, 혹은 진리를 말하며, [성심]-은 좌우로 치우지지 않는 마음을 말한다. 遁.이는 재판관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세로 재판에 임하며, 뇌물이나 사람에 의해 좌우되지 말고 한 결 같은 공의의 재판관이 될것에 대한 권고이다.

③'무릇 어느 성읍에 거한 너희 형제가...여호와께 죄를 얻지 않게하여...진노하심이 없게하라'(10절)

-사회적인 문제와 종교적인 문제의 엄격한 구별로 하나님께 죄짓는일이 없도록 할것을 명하였다.

④'여호와께 속한 모든 일에는 대제사장 아마랴가 너희를 다스리고'(11절 상)

-대 제사장 아마랴는 여호와께 속한 일, 즉 종교적인것에 관한 일을 주관하여 재판관들을 명령하고 그들의 대변자가 되게 하였다.

⑤'왕에게 속한 모든 일은 유다 지파의 어른 이스마엘의 아들 스바댜가 다스리고'(11절中)

-스바댜는 국가 사무의 수석 치리자로 왕에게 속한 모든 일, 즉 행정적인 일을 주관하게 하였다.

대하20:1-37 "여호사밧의 승전" 95년 7월23일 저녁

아합과의 연혼으로 큰 환난과 수치를 당한 여호사밧은 예루살렘에 돌아온 후로 줄곧 유다의 종교교육과 재판제도의 개혁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모압 연합군의 침공이 있자 온 백성들에게 금식을 선포하고 하나님께 맡겨 이를 지혜롭게, 그리고 신앙으로 해결을 받는다.

1.아람나라의 침공(1-13절)

①유다는 모압과 암몬, 그리고 마온의 연합군이 침략했을때에 아무런 군사 행동을 취하지 않았으며 온 백성에게 금식을 선포하고 더불어 금식하며 간구하여 여호와께 도움을 요청하였다.

②'...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3절)

衁.여호사밧은 이스라엘과 동맹관계를 맺고 있어 이스라엘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도 있었다.

遁.하지만 그는 먼저 자신이 하나님께 문제해결을 기도하고 백성들에게 동참해줄것을 선포하였다

③'유다 사람이 여호와께 도우심을 구하려 하여 ... 모여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더라.'(4절)

衁.유다의 온 백성(13절/유아포함)은 쾌히 성전뜰에 모여와 여호와께 도움을 구하였다.

遁.이렇듯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전으로 나와 전 앞에서 기도하는것이 생활화 되어 있다.

④'여호사밧이 ... 회중 가운데 서서 가로되 ... 하고(5-12절)

衁.여호사밧은 회중 가운데서 솔로몬의 성전봉헌때 주신 하나님의 말씀(왕상9:3)을 근거로 기도하였다.

遁."...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12절), 즉 유다의 군대가 무력하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부정을 통한 하나님의 능력을 호소하는 신앙의 고백이다.

2.야하시엘을 통한 하나님의 응답(14-30절)

①레위사람 아하시엘을 통해 기도의 응답을 받은 여호바사밧은 찬양대를 조직하고, 전선에 찬양대를 앞세워 찬양을 드렸다. 그러자 적군이 내분으로 서로 싸워 멸망하자 사흘에 걸쳐 엄청난 분량의 전리품을 거두어 들였다.

②'..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15절下)

衁.유다 군대가 싸울 필요없이 살아계신 여호와께서 친히 침략군들을 대항하여 싸우실것을 의미한다.

遁.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 곧 유다에대한 전쟁은 하나님의 명예가 걸려있는 전쟁이었다.

鑁."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것이 없나니 ... 서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 마주 나가라 ... 함께하리라."(17절)

③야하시엘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여호사밧과 백성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머리숙여 감사하였고 레위인들은 목소리를 높여 찬양하였다.(18-19절)

④또한 성가대를 급히 조직하여 예복을 입히고 군대앞에 행진하면서 찬송을 부르게 하였다(20-21절)

⑤성가대의 찬양소리를 시작으로 하나님의 개입이 시작되었고, 하나님의 개입으로 내분이 일어나 서로 싸워 자멸하였다(22-24절)

⑥여호사밧의 신앙은 하나님을 신뢰하는것과 선지자를 신뢰하는 신앙이었다(20절 下). 선지자를 통해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인 이 신앙이 유다를 승리로 이끌었고, 하나님을 찬송하며 아무 방비도 하지 않은채 하나님의 개입으로 전쟁에서 승리를 얻어내자 주변국들에게 큰 두려움의 대상이 되게 하시었다(29-30절).

3.파손된 합작 배(35-37절)

①여호사밧은 북 이스라엘 왕 아하시엘과 합작하여 상업동맹을 맺고, 합작하여 배를 제작하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들의 배를 깨뜨리시자 여호사밧은 아하시야와의 동맹을 파기하였다(왕상22:49). 이러한 행동은 여호사밧이 선지자 엘리에셀의 경고를 받아들인 행동이며, 하나님이 금하신 동맹을 피한 슬기로운 행동이었다.

대하21:1-10 "여호람의 악정" 95년 7월30일 저녁

유다의 제 5대 왕으로 즉위한 여호람의 악정(惡政)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정치 기반을 확고하게 하기 위하여 친 형제들을 죽였으며, 북 이스라엘의 아합의 딸과 결혼하였고 이스라엘의 악한 왕들을 본받아 우상숭배에 젖어 들었다.

1.여호람의 형제 살해(1-4절)

①여호사밧은 장자인 여호람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그리고 그의 동생들에게 성읍과 많은 재물을 나누어 주었다. 하지만 왕위에 오른 여로람은 즉시 자신의 아우들과 이스라엘의 방백들을 처단하였다.

②'... 그 모든 아우와 이스라엘 방백 중 몇 사람을 죽였더라.'(4절)

衁.[이스라엘의 방백]이란 유다의 방백들을 말한다. 이들은 여호와께 대한 신앙을 왕과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참된 이스라엘 사람이며 흠없는 지도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遁.아우들과 함께 이스라엘의 방백들을 죽인것은 가인이 아벨을 죽인 이유와 같다.

鑁.여호람은 선왕이 물려준 권세로 충신들을 죽이고 자기의 왕권을 절대화시키려 하였다.

2.하나님의 언약체결(5-7절)

①하나님께서는 여호람이 타락하고 부패하였으나 그 왕실을 멸하지 않으셨다. 이는 다윗과 맺은 다윗 왕가(王家)에대한 약속때문이었다(삼하7:12).

②'저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6절)

衁.이스라엘 왕들의 길을 따랐다는 것과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는 것은 우상숭배의 죄를 범하였다는 지적이다.

遁.아합의 딸과 결혼하였으니 아합 가(家)의 가문을 좇아 우상숭배의 전철을 밟았고, 자연 그녀에게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이미 하나님과 먼 삶을 살아왔기에 휩쌓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③'다윗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시고...'(7절)

衁."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삼하7:12)

遁.다윗의 자손이 죄를 짓게 되더라도 그 언약은 폐기될 수 없다는 것이다.

3.유다를 배반한 에돔과 립나(9-10절)

①유다에게 공물을 바치던 이방의 에돔과 유다에 속한 립나가 배반하여 독립하였다.

②'여호람이 ... 출정하였더니 밤에 일어나서 자기를 에워싼 에돔 사람과 ...장관들을 쳤더라'(9절)

衁.유다에 반기를 든 에돔을 치기위해 여호람은 장군과 병사들을 이끌고 출전하였으나 에돔군에게 포위 되었다. 그러나 밤에 포위망을 뚫고 나왔다.

遁.이러한 기회를 타서 립나도 유다로부터 반기를 들고 일어나 독립하였다.

③'이는 저가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더라'(10절下)

衁.이스라엘의 주변국과 이방나라들은 유다를 하나님의 나라 라고 여겨 두렵게 생각해왔다. 하지만 여호람의 불신앙과 패역이 유다의 신성을 무너뜨렸다.

遁.막강한 나라의 이면 세계를 쥐고 계신 하나님을 등진 불신앙 때문이라는 증거이다.

대하21:11-20 "여호람의 죽음" 95년 8월6일 저녁

이스라엘의 악한 왕들을 본받아 우상숭배에 젖어든 여호람에게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 여호람으로 하여금 블레셋과 아라비야의 침입을 받아 왕궁이 황폐케 되고, 창자에 병이들어 비참한 죽음을 당할것을 예언한 편지를 띄우게 하셨다. 하나님의 예언대로 그의 죽음은 시신도 불행한 최후를 맞고야 말았다.

4.엘리야를 통한 하나님의 책망(11-15절)

①여호람은 유다의 산마다 산당을 짓고 예루살렘 시민을 유혹하여 우상을 섬기도록 하였다. 이에 엘리야는 "선친의 옳은 길을 좇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왕들처럼 악한 길을 따르며, 백성에게 죄를 짓게 한 죄와, 자기보다 더 선한 동생들을 죽인것에 대하여, 자기의 백성과 가족에게 재앙이 따를것이며, 여호람 자신에게는 창자가 빠져나와 죽게될 것"이라는 경고의 편지를 띄웠다.

②"여호람이 ∼ 하였으므로, 선지자 엘리야가 여호람에게 글을 보내어..."(11-12절)

衁.남 유다 왕과 백성의 우상숭배가 심각하여 북 이스라엘에까지 전해졌다.

遁.승천할 날이 임박해가는 엘리야는 하나님의 음성을 받아 책망의 편지를 보낸 것이다,.

③"가로되 왕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 "(12절)

衁.여호람이 다윗의 혈통이라는 점을 들어 그의 불신앙적인 행동을 경고하는 말이다.

遁.다윗 자손의 명예와 영예에 합당치 못한데에 대한 경고와 책망은 그만큼 다윗의 가문이 중시되어 왔기 때문이며, 메시야 사상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

④"여호와가 ∼ 치리라."(14절)

衁.여호람은 다음의 두가지 죄를 지적 받았다(13절) 그것은 백성들에게 우상을 섬기게 한 것이며, 다른 한가지는 자기보다 선한 동생들을 죽인 것이다.

遁.그 죄에 대한 댓가로 내려진 경고 첫째는 자신의 백성과 처들과 자식들이 재앙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과 자신의 건강에 화가 임하여 파멸에 이를 것이라는 것이다(15절)

"창자에 중병..." → 뱃속을 퍮어내리는 배앓이를 말한다.

5.예언의 결과(16-19절)

①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 전한 예언의 성취를 위해 불레셋과 구스(에디오피아)에 인접한 아라비아(아랍)인을 격동시켜 여호람을 치게 하셨다. 그들은 왕국을 부수고, 모든 재산과 여호람의 처자들을 잡아갔고, 오직 막내아들 여호아하스만 남겨놓앗다. 그리고 여호람에게는 창자에 중병이 들어 창자가 빠져나와 죽었고, 그의 죽음에 대해 백성들은 빈소를 차려주지 않았다.

②" ... 여호아하스 외에는 한 아들도 남지 아니하였더라."(17절)

衁.여호람의 아들중 붙잡혀가지 않고 남겨진 여호아하스는 어떠한 의로움이 있었던것이 아니다. 다만 다윗의 자손에대한 하나님의 약속 때문에 다윗의 대를 남겨두었던 것이다.

6.여호람의 죽음(20절)

①8년간 통치하던 왕의 죽음에 대해 그의 백성들은 아무도 애도하지 않았다. 이는 그에 대한 존경심이 없었다는 것이며, 여호람의 장지(葬地)를 그 조상들의 묘소와 격리시켜 평민의 장례로 치루어주기만 했을 뿐이다.

②" ... 아끼는자 없이 세상을 떠났으며 ... "

衁.아내들과 자식을 잃고, 2년동안 중병으로 신음하며 고통속에 죽어갔는데 그의 죽음을 아무도 애석하 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遁.여호람이 하나님을 떠나는 순간 백성들의 마음도 함께 떠났던 것이다.

대하22:1-12 "위태한 다윗의 등불" 95년 8월13일 저녁

우상 숭배자 아합가와 혼인관계를 맺은 여호사밧왕으로부터 다윗 왕가의 비극이 절정을 이룬다. 여호사밧의 아내이며 아하시야의 어머니인 아달랴, 그녀는 아들의 정치사에 우상을 반입시켜 하나님의 진노를 샀고, 예후를 통해 아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 이에 아달랴는 다윗의 남은 씨 전부를 죽이려 하였지만 아하시야의 딸이자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인 여호사브앗이 요아스를 빼내어 성전에 숨겨 다윗 왕가의 대를 보존하였다.

1.아하시야의 즉위(1-2절)

①예루살렘의 시민들은 애도하는 사람없이 죽은 여호람의 막내아들 아하시야를 왕으로 추대하였다. 그의 형제들은 아라비아의 침입으로 학살당했고 그 와중에서 살아남은 이하시야가 왕의 뒤를 이었다.

②"아하시야가 왕이 될 때에 나이 사십이세라 예루살렘에서 1년을 치리하니라...."(2절)

衁.부친 여호람이 32세에 즉위하여 8년을 치리하고 죽었는데 이하시야가 42세에 즉위하였다고 하였는 데 이는 성경 저자가 옮겨쓰는 과정에서 잘못 옮겨 쓴 것이다. 왕하8:26에는 아하시야가 22세에 즉위 하였다고 기록되었다.

遁."아하시야가 위에 나아갈때에 나이 이십 이세라..."(왕하8:26)

鑁.그는 예루살렘에서 1년을 치리하였다.

2.아하시야의 이스라엘 요람 왕과의 동맹(3-5절)

①폭군의 부친 여호람과 아합의 딸, 광적인 우상숭배자의 딸인 어머니 아달랴 사이의 불경건한 환경속에서 어머니의 우상 유혹과 교도가 이스라엘과의 군사동맹으로 이어졌다.

②"아하시야도 아합의 길로 행하였으니 이는 그 모친이 꾀어 악을 행하게 하였음이라"(3절)

衁.어머니의 잘못된 의견을 따르다보니 아하시야는 아합 가문의 전철을 밟게 되었다.

遁.유대인들은 어머니의 신앙과 가르침을 중요시하고 있다.

③"... 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들 요람과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 더불어 싸우더니 ... "(5절)

衁.아하시야는 아합가의 일, 즉 모친 형제의 일을 따랐고, 그 일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있다는 것 을 생각하지 못하였다.

遁.아하시야는 조부 여호사밧이 아합과 사돈 관계를 맺고 군사 동맹관계로 길르앗 라못 전투에 함께 나갔다가 간신히 목숨을 건져 살아났었는데(18:28-32), 아하시야도 북 이스라엘의 요람과 군사동맹을 맺고 길르앗 라못 전투에 참가하여 아람과 싸움을 벌였다.

3.아하시야의 요람왕 문병(6절)

①아하시야는 이스라엘의 요람 왕이 아람과의 전투에 부상하여 이스라엘 본국으로 치료차 돌아갔다. 아하시야는 본국으로 돌아간 요람을 문병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방문하였다.

4.예후의 아하시야 살해(7-9절)

①아하시야는 아람과의 전투에서 부상당한 요람왕을 문병하러 왔다가 임시의 아들 예후에게 살해당하였다. 하나님이 예후를 기름부어 세우고 예후를 통해 아합 왕가를 멸하기로 작정하셨다. 하지만 그 계획된 자리로 아하시야가 끼어들어 그의 부하들과 조카들이 살해당하고, 사마리아로 피신한 아하시야가 발각되어 죽임을 당하였다.

②"아하시야가 요람에게 가므로 해를 받았으니 이는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 "(7절)

衁.아하시야를 따르던 그의 장교들과 조카들이 죽고, 아하시야 자신도 죽음을 당하였다.

遁.이는 하나님의 심판자리를 스스로 걸어 들어온 때문이었다.

5.아달랴의 반란과 요아스의 피신(10-12절)

①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서 살해 당하자 그의 모친 아달랴는 스스로 왕이 되어 다윗 왕가의 씨를 진멸하려 하였다. 그녀가 손자들을 포함한 왕손들을 거침없이 살해하는 동안 여호사브앗이 아하시야의 한 살된 아들 요아스를 구출하여 아달랴의 폭정 6년동안을 성전에 숨겨 보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