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언약과 언약

1.다윗 언약

언약적 관점에서 다윗언약의 수립은 백성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목적을 잘 드러내 주며, 동시에 '메시야적 왕권'을 전형적으로 예언하였다. 히브리인들의 메시야 기대 사상은 규범적으로 다윗왕가와 연관을 맺고 있다. 하나님 자신은 그의 왕권을 다윗의 왕권과 연결하신다. 다윗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은 왕국이 오는 것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이 언약은 그의 백성가운데 하나님의 왕국이 오는 공식적인 약정으로서 기여한다.

이러한 다윗 언약의 골자는, 다윗이 주님을 위하여 성전을 지으려는 소원을 갖고 있었는데 이에 대한 응답으로 주신, 나단 선지자의 말 가운데 나타나 있다. 이제 다윗 언약의 내용을 간단히 살펴본 후, 중심되는 요소들을 설명하고자 한다.

1.삼하7:11b-17의 약속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다윗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은 삼하7:11b-17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나단의 예언은 다윗 왕가의 영속성에 대한 종교적 허가라 할 수 있으며 이 종교적 허가는 언약이라는 틀 속에서 구속에 대한 보충적 확증이기도 하다. 이 구절들에서 비록 언약이라는 단어를 찾을수는 없으나, 구절내의 구조, 즉 역사적 서문(8), 핵심내용을 담은 규정(16) 등과 시89:3-4은 이 약속을 언약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옳음을 증명한다.

하나님께서는 성전 건축을 열망하는 다윗의 소원을 유보시키시며(1-7), 대신 다윗 당대의 안정과 번영(8-11a), 다윗왕의 후손들에 의해 영원히 이어지는 다윗왕조(11b-17)를 약속하신다. 혹 그들이 범죄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징계하실지언정 버리시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14-16, 시89:30-37). 따라서 이 약속은 다윗을 좇아나며 그가 이룩한 왕국을 통치하게 될 열왕의 혈통을 완전하게 보장하였다.

2.언약의 중재자로서의 왕

왕정 수립 이후 이스라엘의 왕은 언약과 관련하여 독특한 역할을 유지한다. 즉 왕이 되는 것은 하나님과의 언약관계에 들어가는 것이다. 더욱이 왕은 백성들과의 언약을 중재한다. 언약의 중재자로서 왕은 백성 앞에서 언약의 주로서의 권위의 하나님을 나타낼 뿐 아니라 또한 하나님 앞에서 그들을 대표한다. 이러한 언약 중재자의 이중 책임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위치와도 관련되는 것으로서(14), 이런 왕의 역할이 실제로 다윗 언약의 중요한 면이 된다.

3.언약의 신실성과 최종실현/메시야

다윗 언약은 다윗의 아들과 하나님의 아들과의 관계성을 강조한다. 즉 왕은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가지게 되는데 이는 하나님은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이다(14). 여기서 나타내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다윗 왕국은 하나님에 의해 탄생된 나라라는 다윗왕국의 기원을 말해주며, 둘째로, 범죄해도 징계로써 회개케하는 사랑으로 연합된 관계임을 주목하게 하고, 셋째로, 상속의 관계로서 영원한 기업을 물려받은 다윗왕국이 멸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관계성의 강조와 더불어 다윗 언약은 다윗의 후손들이 영원히 이스라엘의 보좌위에 앉을 것이라는 약속이다. 이 약속에 의해서 다윗왕조는 -북이스라엘 왕조와는 생생하게 대조되게- 400년이상(B.C. 1010-586) 지속되었다. 열왕기서에 기록된 다윗왕조의 역사는 이 사실을 강조해준다(왕상11:13;32;34;36,15:4,왕하8:19,19:34,20:6 등). 하지만 왕조는 영원히 지속되지 못하고 끝나버렸다. 므낫세의 죄악(왕하21장)을 기점으로 해서 요시야의 개혁에도 불구하고(왕하23) 하나님은 유다를 버리신다(왕하23:27).

그러면 언약의 신실성에 문제가 있는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구약 역사에서 다윗의 왕위 계승이 끊어진 것은 이스라엘 왕권의 예언적인 역할이라는 말로 평가될 수 있다. 즉 다윗의 통치는 다윗 왕권과 하나님 왕권을 최종적으로 통합하는 메시야적 구원자의 실재를 그림자 형태로 예언하기 위한 것이었다. 다윗의 혈통에서 난 메시야는 언약의 최종 실현으로서 언약적 신실성은 지켜지게 되는 것이다. 한 영원한 통치자를 그리고 있는, 다윗에게 주신 약속은 시2:7에 다시 언급되며, 여러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서 언약적 신실성은 강조되어진다(암9:11, 호3:5 등).

2.새 언약

렘31:31-34에서 주께서 이스라엘의 집과 유다의 집에 세우실 "새 언약"이 언급되어 있다. 포로가 되기 직전, 하나님의 언약의 약속들의 모든 외적인 상징들이 파괴된 가운데 글을 쓰면서,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교제를 끊으신 것이 아님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어느 날 하나님꼐서는 선조들이 깨뜨렸던 과거의 언약과 같지 않을 새 언약을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다.

1.옛 언약의 실패와 새 언약의 출발

①옛 언약의 수립된 "날"

31,32절을 비교하면, 두 개의 상이한 날과 언약이 나온다. 전자는 미래의 새 언약이며, 후자는 과거에 세워진 옛 언약이다. 여기서 먼저 옛 언약이 이스라엘 역사의 많은 언약중 어느 언약을 지칭하는지 규명해야 한다. 왜냐하면 옛 언약의 실패로 나타난 새 언약은 옛 언약과 같지 않을 것이기 飁문이다(32).

32절은 옛 언약이 출애굽 시기와 관련이 있음을 말한다. 여기서 "날"의 의미는 문자적인 24시간이 아닌 "일반적 의미의 때", 곧 어느 하루보다는 어느 시기를 총칭하는 뜻으로 보아야 한다. 또한 평행구인 렘11:4,7;34:13을 볼 때 옛 언약은 표면적으로는 호렙산 언약과 갱신된 모압 언약을 포함하는 모세언약의 총체적 시기를 나타낸다. 하지만 깊이 생각하면 예레미야의 대조는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이전 계약 전체를 옛 언약으로 보게 된다. 즉 예레미야는 지금 역사적으로 다윗언약의 규정하에 있으며, 출애굽 사건은 아브라함과의 계약 규정하에서 일어난 것이기 飁문이다.

②옛 언약 실패의 배경과 새 언약의 출발

32下에 의하면 하나님이 아닌 -과거의 열조와 당대 사람을 포함하는- 백성이 하나님을 언약을 파한 것이다. 언약을 파하는 것은 언제나 인간이다. 하지만 언약 자체는 변함 없으며(렘31:35이하) 단지 "인간과 언약사이의 관계성"이 파하여지는 것이다.

옛 언약의 실패는 요시야의 종교개혁의 실패와 관련된다. 우상을 제거하고, 산당을 헐었음에도 불구하고 렘7:22이하에서는 그들의 제사 행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음을 지적하고 있다. 즉 실패의 원인은 현상주의와 형식주의에 기인한 내적 순종의 결핍이었다.

이런 사실들은 국가와 백성에게 심각한 신학적인 착란증(theological madness)을 가져다 주었다. 이는 렘15:1-15의 성전설교에서 잘 드러난다. 즉 이들은 거짓 선지자들의 가르침에 의해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이유만으로 율법을 지키고 구원을 얻은 것처럼 생각하면서(렘7:10), 평강을 외치고(렘6:14), 언약법에 대해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계명들을 범하는 범죄자들이 되었다.

이스라엘은 거짓신학으로 율법에 순종하기를 거부함으로써(렘6:16) 모세언약은 파기되었다. 이제 이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께 돌아올 수 없으며, 언약을 지킬 수 없다(렘13:23). 더 이상 옛 언약의 구조하에서는 인간의 죄성으로 인해 인간과 율법이 조화가 되지 않는다. 이제 하나님은 죄있는 백성과의 교제, 구원을 위해 새 언약을 말씀하신다.

2.새 언약과 새로운 면

①ࠚࠃࠇ의 의미

ࠚࠃࠇ는 '다시 새롭게 하다(to renew)'의 의미로서 물질적이든 비물질적이든 이미 존재하는 어떤 것을 나빠진 조건에서 본래의 조건으로 회복(수리)한다는 의미(사61:4,대하24:4,12,시51:10,애5:21)로 사용되며, 또한 이 새것은 옛것이 결코 가져본 적이 없는 새로운 실체를 소유하게 된다(사65:17). 따라서 새 언약은 옛 언약과 동일한 요소를 공유하며, 동시에 '질적으로 새로운 실체'를 소개하는 "회복과 새로운 시작"인 것이다.

②연속성과 불연속성

먼저 새 언약과 옛 언약간의 연속성은 첫째로, 모두가 동일하신 하나님이 선포하신 언약이라는 점이며(31,32), 둘째로, 율법 중심적 언약이고(33), 셋째로, 하나님과 자기 백성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동일한 언약문구(33下)를 들 수 있다(창17:7,출19:5-6,왕하11:17 등).

불연속성은 단지 인간편에서 나타나는 언약들 사이의 시차에서 비롯된다. 과거에 하나님은 자신의 언약을 세우셨고 또한 날이 이르면 자신의 언약을 세우실 것이다. 따라서 새 언약은 '아직은 존재하지 않는(not-yet-to-be)', 종말론적 차원으로 성취될 약속의 형태로 주어졌다.

③초월성

a.율법의 내면화: 앞서 말했듯이 이스라엘 백성은 마음이 전적으로 썩어서 홀로는 하나님의 법을 따를 수 없게 되었다(4:4,13:23). 그러나 하나님은 이제 그 마음 자체를 바꿔주신다. 돌비에 손수 쓰셨던 율법을 이제는 마음에 두시고(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주시고) 기록하신다(33). 즉 하나님의 법은 내면화되어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게 된다. 이는 율법의 외적 일치에서 내적 수용으로의 전적인 전환인 것이다. 법은 이제 그들 인격의 내적 일부분이 된다.

b.하나님에 대한 직접적인 지식: 본래 이스라엘 백성은 아비가 자식에게 하나님의 법을 잘 가르쳐야 했다(신4:10). 그러나 그 가르침은 바알을 좇도록 잘못 전해졌다(렘9:13,14). 인간으로서 가르치는 자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율법의 내면화로 인해서 인간 중매자(출20:19참조)의 도움 없이도 하나님을 알게 된다(34上). 즉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보편화를 의미하며, 더 이상 사람의 의사전달과 교훈에 얽매이지 않게 된다.

c.사죄의 단번성: 34下의 선포는 영원한 사죄의 성격을 띠는 죄 용서이다. 기억지 않으시기에 징계하지 않으시며, 따라서 언약은 결코 파괴되지 않는다. 이 약속은 날이 이르게 될 때 옛 언약의 제사제도가 끝날 것임을 내포한다. 이제는 반복적인 제사가 아닌 하나님의 단번적 사죄를 통해 죄를 제거하시는 그의 능력을 행사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새 언약의 새로운 면의 핵심인 것이다.

3.새 언약의 성취

새 언약은 일찍이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 본 적이 없는, 엄청난 구원의 약속이 된다. 본문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철저한 실망을 전제로 하여 그 절망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사랑의 새로운 구원을 이룸을 알려준다. 하지만 이 약속의 말씀이 구약시대에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 않다. 이에 대한 한 가지 해결의 방법은 새 언약(렘31:31-34)을 둘러싸고 있는 광범위한 문맥들(렘32:27-44,33:1-26,겔34:1-31,37:15-28,사55:1-6,61:1-9 등)을 포함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예언자들의 언어는 땅으로의 이스라엘 복귀, 황폐된 성의 재건설, 나라의 재 건립 등 물질적으로 정의된 축복의 말을 많이 포함하게 되고 B.C.537년 고레스왕의 칙령으로 이런 물질적 축복의 "작은 실현"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렇게 하더라도 새 언약의 모든 성취(특히 내부적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제 새언약의 실제적 성취는 신약에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