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새기 예배의 신학/ 김영한 33

5) 교회의 영성쐬퇴

예배의 의회는 오늘날 교회의 삶에 하나님 임재의 경험이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오늘날 목회자들은 세속적이고 교회행정적인 일에 너무

나도 분주한 나머지 날마다 하나님과 영적으로 만나는 교제가 결핍하다.

목회자의 기도와 설교에서 영적 감화력이 결여하다. 여기서 교회의 영성

은 쇠잔한다. 신자들은 목회자의 설교와 예배집례에 영적 감동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신자들은 예배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다. 그래서 예배

참석이 부담이 되거나 나오지 않게 되는 것이다.

6) 사이버예배의 출현

최근에는 컴퓨터가 발달하고 인터넷을 통하여 사이버공간이 펼쳐지면서 각

교회들이 전 도용으로 펴놓은 교회용 네트워크를 통하여 교회에 출석하지

않고 사이버예배를 드리는 신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

한 사이버예배는 진정한 예배를 대체할 수 없다

사이버 예배는 보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몸이 직접 참여하여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고 회개하고 결단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교회에서의

예배와 동일시할 수 없다.

진정한 예배는 구속받은 신자들의 교끼 녹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몸과 마음

의 헌신이기 때문에 사이버예배는 병상에 있는 신자나 산간 휴양지나 외딴

곳에 있는 신자들을 위한 보충예배는 될지언정 진정한 예배는 아니다. 사

이버 예매는 공교회 예배를 보완하는 21세기 미디어 예배요 선교의 매체로

서의 기능을 할 수 있다.

다섯째, 대안 -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감동어린 예배

이에 대한 대안으로는 예배에 대한 이해가 새롭게 되어야 한다.

주일저녁 예배는 낮예배에 비하여 찬양을 강조하여 왔다. 대다수의 교회들

이 20-30분 정도의 찬양과 복음송과 찬송가를 중심으로 찬양시간을 갖고

그리고는 묵도 기도 찬송 설교 헌금 및 광고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

다.

예배의 핵심은 어떤 전통적인 의식의 순서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의 만남을 중요시해야 한다 예배의식도 종교적인 전통이나 관습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에 두어야 한다. 그러므로

어떤 프로그램의 도입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 말

씀이 선포되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새로운 결단을 하게 되는 하나

넘 임재의 체험이 중요하다.

애배의 의식,환경,순서의 새 모델/김소영 197

1998년 2월 26일 (11'00 AM - 12: 10 PM)

예배의 의식, 환경

새 모델

I ). 한국 교회 예배의 문제

한국 교회에 예배가 많다. 예배학적으로 볼 때

1. 기복주의 예배(복받기 위한 예배)

예배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행위이다

것 이 다.

Jfl

◎◎

서의

김소영 목사(수원 영은교회 담임)

전 대한기독교서회 사장, D.D. Menahas

문제가 많다

한국 교회는 복받기 위한 예배가 되어 있다.

2. 관람객의 예배

예배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인간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응답이 어 야 하는

데, 예배집례자에 대한 방청객. 관람객이 되어 있다.

예배를 "드림"이 아니고 "보고"있는 실정이다.

설교를 보고, 성가대를 보고, 사람을 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예배의 참여자가 되게 해야 한다.

,3.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주관주의적이다

예배는 공동적 행위이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이 목표이다 나

혼자 구원받고 천국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그리고 인간 주관에서

fo080 SIL WINTER INSTITUTE OF THEOLOGY

19821세기 예배의 새 모델

다

벗어나 하나님을 동경하는 행위이며, 주님께 헌신하는 것이 예배이

다. 그래서 "축하예배"가 있을 수 없다. 축하는 경사스러운 일이 있

는 사랑 사이에 행해지는 행사이다. 예배의 대상은 사람이나 사물이

될 수가 없다

4 감상주의적, 감정주의적 예배이다.

한국 교회 예배는 감정에 치우치며. 열광적이 다. 고전14:40에 "모

든 일을 적절하게, 질서 있게 하라"고 했다

예) 박수치며, 열광적으로 부르는 찬송(예배찬송) 그리고 목이 터

지도록 부르짖는 통성기도(하나님은 귀가 밝으시다) 설교중에

할렐루야, 아멘으로 화답

5. 이교적, 샤마니즘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샤마니즘의 특징은 즉흥적이다 열광적 이다. (무당굿 하는 것)

불교적 영향 - 지나친 내세주의. 타계주의

유교적 영향 - 사색당파, 지방색, 교권주의, 편협하고 고루하다

6. 예배신학이 없다.

1) Raymond Abba교수

ⓒ 예배는 계시에 대한 응답으로 드리는 것

ⓒ 예배는 성령으로 감동으로 드리는 것

③ 예배는 공동적 행위로 드리는 것

④ 예배는 증거를 위해 드리는 것

2)예배신학면에서 신관이해에 차이가 있다.

(1) 신비적예배 방법 ' 하나님의 존재를 공간에 보고 공간이나

지역의 수호신으로 믿는다

(2) 성육신적 방법 : 하나님을 시간속에 오신 존재로 이해 하나

님이 성 육신하셔서 역사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임을 믿는다.

(3) 한국 교회에 신관에 대한 신학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구분한

① 성부중심의 신앙 : 유교의 가부장제의 영향

② 성자중심의 신앙 : 사회정의, 인권에 관심

③ 성령중심의 신앙 : 영적세계만 추구하여 성령받아 방언

SOONG SIL HINTER INSTITUTE OF THRQDGV

예비의 의식,환경,순서의 새 모댈/김소영 L99

신유의 능력을 강조하는 신앙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하

나님이심을 믿고 하나님을 편파적으로 믿지 않게 해야

한다.

ll). 한국 교회 예배 갱신의 과제

"교회갱신은 예배 갱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한국 교회가 반드시 갱신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예배 갱신에서부터 이루어

져야 한다 한국 교회 예배 갱신의 과제는 예배학의 원리적 측면, 예배순

서, 예배당 내부구조, 예배와 생활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예배에 대한 본질적 정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로 한 하나님과 예

배자와의 교제 또는 만남"이라고 할수 있다.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하나님

의 명령에 불 순종하여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었다. 때문에 죄인이 하나

님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부르며 경배할 수 있게 된 것은

다만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적 은총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그의 백성 가운데 특별

계시로 현존해 계시며 그로 인해 하나님과 교제하는 축복의 은총을 누리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그 하나님의 현존. 임재와 축복의

은총에 대해 믿음으로 응답하고 봉사해야 하는데 이것이 기독교 예배의 본

질인 것이 다.

한국 교회는 공적인 혹은 사적인 예배에 있어서 예배자는 예수 그리스도

를 중보로 하여 하나님과 교제한다는 인식을 철저히 가져야 한다. 그리고

예배중에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임재해 계신다는 것을 확실히 믿어

야 한다. 한국 교회가 왜 예배 중에도 싸움과 분쟁을 하였던가? 그것은 하

나님의 임재가 없는 예배였기 때문이다. 예배중에 예수께서 그 자리에 임

재해 계신다고 한다면 어떻게 싸을 수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한국 교회는

예배의 원리적인 면에서 우선적으로 갱신이 되어야 한다.

한국 교회의 예배에는 이교적인 요소가 내포되어 있다. 예배의 대상은

5080 SIL HINTER INSTITUTE OF THEOLOGY

200 21세기 예배의 새 모델

인간이나 사물이 아니다. 예배는 참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은

항상 예배의 처음과 나중이다. 어디까지나 기독교 예배의 중심은 하나님이

시다. 이것이 이교의 예배나 제사와의 차이이다.

이교의 예배는 사람이 그 섬기는 신에게 봉헌하는 것이 선행되지만 기독

교 예배는 언제나 하나님의 초청이 선행되고. 예배자는 그 초청에 감사의

응답으로 참여하는 것 뿐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불교인은 부처님에게

시주를 바치고 경배함으로 그 부처님이 복을 주시고, 사업도 번창케 하시

고. 병도 낫게 해주신다고 믿는다. 그러나 기독교는 지금까지 지내 온 모

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요, 보호하심이니 그에 대한 감사의 응답

으로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다 다시 말해서 예배를 드림으로 복이 온다고

믿는 것이 이교적 예배요, 복을 받고 보호해 주셨기에 그 은혜에 감사하여

예배를 드리는 것이 기독교 예배인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한 주간 동안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과 축복하

심에 대하여 예배자는 믿음으로 감사에 응답하는 행동이 있을 뿐이다 이

것이 기독교 예배의 본질적인 면에서의 성격이다 한국 교회는 이러한 측

면에서 갱신되어야 한다. 기독교가 전래된지 불과 100여년 밖에 되지 않

았기에 교회 예배가 꼭 이교도들이 예배보는 것과 같은 예배 행위와 정신

을 가지고 있다. 내가 오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림으로' 복이 도고 A'1업이

잘퇴는 것이 아니라, 오늘까지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에 대한 감사의

응답으로 예배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예배가 갱신되지 않으면 모든 순서. 즉 헌금. 찬송, 기

도. 설교. 성경낭독 등 모두가 무위로 돌아가고 만다. 그래서 한국 교회가

입시를 앞두고 40일 새벽 기도회, 몇달 작정 기도회 등을 하는 것은 잘못

이다. 물론 입시를 앞둔 학생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기도하는 것은 잘못

이라 할수 없으나, 평소 실력 배양을 게을리한 학생을 위해 40일간 새벽

기도회를 한다고 입학이 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

를 잘못 이해하는 것이며 그것은 미신화할 우려가 있다. 한국 교회 안에

이런 샤머니즘적인 요소를 제거하지 않으면 교회의 갱신은 이루어지지 않

는다.

SOONG SIL 脚INTER INSTITUTE OF ◎H20nOGV

예배의 새 모댈/염펄형 IL9

1998년 2월 24일 (1 :10 PM - 2:20 PM)

예배의 새 모텔

염

필형 박사(감신대 총장)

Ph.D. Ohio

예배의 본질이해와 예배형식의 새로운 모색

(설교의 형태를 중심으로)

1) 예배의 신학적 의미

예배의 신학적 의미는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예배는 하나님의 절대성과 섭리에 대한 긍정과 순종의 행위이다 절

대자, 지고자,'절 대선으로서의 하나님께 대한 복종이다 - 곧 하나님 중심적

인 특성을 띤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의 은총과 영원한 약속으로서의 구주이심을 수

락하고 그에 순종하는 행위이다. 즉 그리스도 중심적인 특성을 띤다

셋째, 하나님의 현재적 임 재로서의 성령역사에 따른 인간의 순종과 생활의

표현 이 다.

넷째, 예배는 신앙 공동체의 고백이요 신앙의 표현이다.

다섯째, 예배는 신앙과 실행이 표준이 되며 그리스도의 모습을 제시해 주

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서 위에 서 있다는 것이다.

여섯째, 예배는 모든 회중에게 예배가 지닌 기본 정신의 생활화를 요청하

고 있다는 점이다. 즉, 예배의 새활화를 말한다.

SOONG 51L MINTER INSTITUTE OF THEO遁OGY

강헤설교를 위 한 신 약성경 연구1/ 이종윤 189

Andrews

1998년 2월 26일 (9:30 AM - 10:40 AM)

강해설교

:鱁

亐◎

위한

신 약성 경 연구 1

신약의 예배 1

이종윤 목사(서울교회 담임)

한국 교회갱신연구원 원장, Ph.D. S1.

┌──────────────┐

│하나텀껴 어렬계 애배할까.6r │

│ 蘿│

│ (-fL4:24) │

└──────────────┘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예배란 가장 중요한 것(the most

momen%us), 가장 긴급한 것(the rrast urgent), 가장 영광스러운 것(the most

glorious)"이라고 스위스의 신학자 칼 바르트는 말했다. 또 "그리스도인들이 하

나님의 은혜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고상한 활동을 예배라고 믿는다"고 영

국의 목회자 죤 스토트는 강조했다. 이 두 신학자의 말은 하나님을 알고 바르

게 섬기려는 모든 성도들의 마음에 공감을 준다. 그러나 오늘날 예배라고 불려

지는 것들 중에는 실은 전혀 예배라 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어떤 이는 '예배란 무엇인가', '누가 어디서 어떻게 예배를 드릴 수 있는가'를

SGM8 SIL HINTER InSTITUTE OF THEOLOGY

19021책기 예비의 새 모댈

묻는다. 오늘날 교회에서 오랜 신앙 생활을 하던 사람 중에서도 참된 예배의

의미를 망각하고 그 대신 프로그램이라 불리우는 이상하고 성경의 가르침과

무관한 낯선 것으로 그 자리를 메우고 있으면서 예배를 드린다고 생각하는 이

들이 있다.

하나님이 받으실 참 예배는 어떤 것인지 성경의 교훈을 통해 찾아보자.

I- 예배의 성경적 원리

예배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들을 찾아보고 예배의 본질과 형식에 대해 논해

보자.

1. 臺塏:느즈으또로望皇쓰逑澾그豊臺고◎. 사실 하나님은 예배하라고 명하

셨다.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배에 대한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팎츠시느니라"(요

4:23). 이와 비슷하게 예수는 시험하는 마귀에게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하였으

되(마4:10) 주 너희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신6:13)

또 요한.게시촉 19:10에서는 천사가 말하기를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고 했다.

2. 즈重望으르꼬그그흐또고望垈즈초조堂. 예수께서 사탄에게 하신 말씀에서 "주

너희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마4:10) 하셨다(참조.출20:3-5).

그 하나넘은 살아 계신 분이시다. 우리로 하여금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려고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셨다(히9:14). 바울이 루스드라지방에서 앉은뱅

이를 일으킨 기적으로 그 지방사람들이 바울을 예배하려 했을 때 바울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

님께로 돌아 오라"고 외쳤다. 사도는 살전 1潛에서도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긴다고 했다.

우리가 예배하는 하나님은 만유의 주가 되신다(행4:24脚. 그는 시공을 창조

하신 하나님이시다(행17:24-26). 예배에 임재하시고(고전14:25) 모든 사람의 마

음을 아시며(행1:24, 15:8) 찬송과 영광을 받으실 분이다(행2:46f, 롬15:6). 삼

위일체 하나님께 향한 예배가 아니면 그것이 아무리 화려하고 인상적인 것일

지라도 참된 예배가 될 수 없다.

SOONGSIL 脚1 NTER 1 NSTI T닌TE OF 不HR㉧ꁁDGV

장해설교를 위한 신약성경연구1/이종윤 191

3. 豈堂堂壇壇差프조끄스峻澾L星◎堂. 구원받은 사람은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고' '예수로 자랑하고' 성령으로 예배(봉사)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나님

의 성령으로 봉사(예배)하고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

하는 우리가 곧 할례 당이라"(빌3:3).

4. 壇刻圭즈逃逃프童圭그堂監望으型堂臺. 혼자서는 예배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기도시 골방에 홀로 들어가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하셨다(마6:6). 그러나 가장 충만하게 표현되는 예배는 하나님의 모든 백성이

포함된 것이어야 한다(계5:13-14).

5. 臺◎述豊프逃垈포型炎塗르뇨느포츠천迎雌츠이堂. 외식하는 자의 예배는

거부하신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

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 하는 도다"(막7:6-7). 참

된 예배는 심령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하며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것은 예배가 될 수 없다(암틀21-24, 사1:11-17, 시51:16-17).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는 하나님께 그의 진정한 가치(worth-shiP)를 돌려

야 한다. 하나님을 찬송하고 그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헬라어 6okto

라는 동사에서 軸Ic 라는 명사가 나왔는데 6oK軸는 '나타나다' 또는 '보이다'라

는 뜻이 있다. 그리고 6dBc는 '의견'이라는 뜻이 있다. 영어의 Orthodox (곧은

또는 바른 의견, 정통)와 heterodox(다른 의견, 이단) 그리고 paradox(역설)등

의 단어가 여기서 나왔다.

왕들은 신하의 칭송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어 칭찬과 존경을 받는 영광을 지

닌다. 만약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바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 속성에 대해 바른 의견을 형성할 수 있다는 뜻도 된다. 즉, 하

나님의 전지 전능 거룩하심, 의로우심, 자비하심, 변치 않으심과 같은 속성들을

바로 고백하고 나타낼 때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은 그의 가치(worth-shiP)를 나타내고

보이는 것이다. 하나님께 예배드린다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뜻이며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크고도 완전하심을 고백하는 것이다.

6. 皇雌漣雌츠臺差츠鎣皇柒크즈逃堂◎으堂◎.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fo080 SIL HINTER INSTITUTE OF THEOLOGY

19221새기 예배의 새 모델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했다고 한다(고

전2:2). 바울은 이 말씀대로 그의 신학과 행동 전부가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

되 었다.

애배자는 믿음의 사람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반드

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 찌니라(히11:6)고 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고(4

절) 이브라함은 이삭을 믿음으로 드렸고(17절) 모세는 믿음으로 유월절을 지켰

고(麗절) 우리는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가야 한다(히10:22).

이 믿음의 기초는 그리스도의 희생이다.

예배자는 하나님을 위한 예배를 드려야 한다. 모세에게 명하기를 '나를 위

하여 백성을 모으라' 하신 하나님이(신4:10) 모인 백성에게 말씀을 주신다. 말

씀을 들은 백성들이 계약을 지키려는 서약을 하므로 예배의 절정을 이룬다.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창8:20) 여호와는 아브라함에게 나를 위하

여 번제물을 드리라 하셨다(창15:9).

얘배자는 영적 지식과 이해가 있어야 한다(히13:15, 고전 14:15, 딤전3:16).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영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주님의 은혜를 체험한 자

라야 한다(골1:9,12). 하나님의 자녀로 양자의 영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어야 한다(롬8:14, 갈4:6).

예배자는 하나님께 가까이 가되 자랑치 않고 그러나 담대해야 한다.

바리새인의 자랑은 버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겸손히 그러나 담대해야 한

다(엡3:12). 예배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일치된 마음을 갖고(마틀23) 하나님

의 임재를 기다리면서 그러나 자신은 예배할 자격이 없는 죄인임을 자각하고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엡3:8).

ll- 어떻게 애배할까?

기눌문명이 눈부시게 발전함에

따라

미 디 어 를

통한

하이 테크

(High-technology) 예배가 등장하고 있다. OHP나 CD-Rom을 이용하는 것

은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이고 소위 가상교회(C?ber Church) 예배가 등장

하고 있다. 육성설교를 영상과 함께 볼 수 있는 예배는 컴퓨터를 능숙하게

SOONGSI遁 脚1 NTER 1 NST 1 T닌TE OF 琴HBeCnGV

예배의 의식,환경,순서의 새 모댈/김소영 199

신유의 능력을 강조하는 신앙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하

나님이심을 믿고 하나님을 편파적으로 믿지 않게 해야

한다.

H). 한국 교회 예배 갱신의 과제

"교회갱신은 예배 갱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한국 교회가 반드시 갱신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예배 갱신에서부터 이루어

져야 한다 한국 교회 예배 갱신의 과제는 예배학의 원리적 측면, 예배순

서. 예배당 내부구조, 예배와 생활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예배에 대한 본질적 정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로 한 하나님과 예

배자와의 교제 또는 만남"이라고 할수 있다.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하나님

의 명령에 불 순종하여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었다 때문에 죄인이 하나

님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부르며 경배할 수 있게 된 것은

다만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적 은총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그의 백성 가운데 특별

계시로 현존해 계시며 그로 인해 하나님과 교제하는 축복의 은총을 누리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그 하나님의 현존. 임재와 축복의

은총에 대해 믿음으로 응답하고 봉사해야 하는데 이것이 기독교 예배의 본

질인 것이 다.

한국 교회는 공적인 혹은 사적인 ·예배에 있어서 예배자는 예수 그리스도

를 중보로 하여 하나님과 교제한다는 인식을 철저히 가져야 한다. 그리고

예배중에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임재해 계신다는 것을 확실히 믿어

야 한다. 한국 교회가 왜 예배 중에도 싸움과 분쟁을 하였던가? 그것은 하

나님의 임재가 없는 예배였기 때문이다 예배중에 예수께서 그 자리에 임

재해 계신다고 한다면 어떻게 싸울 수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한국 교회는

예배의 원리적인 면에서 우선적으로 갱신이 되어야 한다

한국 교회의 예배에는 이교적인 요소가 내포되어 있다. 예배의 대상은

5088 SIL hINTER INSTITUTE OF THEOLOGY

200 21세기 예배의 새 모델

인간이나 사물이 아니다. 예배는 참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은

항상 예배의 처음과 나중이다 어디까지나 기독교 예배의 중심은 하나님이

시다 이것이 이교의 예배나 제사와의 차이이다.

이교의 예배는 사람이 그 섬기는 신에게 봉헌하는 것이 선행되지만 기독

교 예배는 언제나 하나님의 초청이 선행되고. 예배자는 그 초청에 감사의

응답으로 참여하는 것 뿐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불교인은 부처님에게

시주를 바치고 경배함으로 그 부처님이 복을 주시고. 사업도 번창케 하시

고, 병도 낫게 해주신다고 믿는다 그러나 기독교는 지금까지 지내 온 모

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요, 보호하심이니 그에 대한 감사의 응답

으로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다 다시 말해서 예배를 드림으로 복이 온다고

믿는 것이 이교적 예배요, 복을 받고 보호해 주셨기에 그 은혜에 감사하여

예배를 드리는 것이 기독교 예배인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한 주간 동안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과 축복하

심에 대하여 예배자는 믿음으로 감사에 응답하는 행동이 있을 뿐이다. 이

것이 기독교 예배의 본필적인 면에서의 성격이다. 한국 교회는 이러한 측

면에서 갱신되어야 한다. 기독교가 전래된지 불과 100여년 밖에 되지 않

았기에 교회 예배가 꼭 이교도들이 예배보는 것과 같은 예배 행위와 정신

을 가지고 있다 내가 오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림으로' 복이 오고 A'1업이

잘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까지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에 대한 감사의

응답으로 예배가 이루어진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예배가 갱신되지 않으면 모든 순서. 즉 헌금 찬송, 기

도. 설교 성경낭독 등 모두가 무위로 돌아가고 만다. 그래서 한국 교회가

입시를 앞두고 40일 새벽 기도회. 몇달 작정 기도회 등을 하는 것은 잘못

이다 물론 입시를 앞둔 학생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기도하는 것은 잘못

이라 할수 없으나, 평소 실력 배양을 게을리한 학생을 위해 40일간 새벽

기도회를 한다고 입학이 길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

를 잘못 이해하는 것이며 그것은 미신화할 우려가 있다. 한국 교회 안에

이런 샤머니즘적인 요소를 제거하지 않으면 교회의 갱신은 이루어지지 않

는다.

SOONGSILt判 MTER 1 NST 1 TUTE OF 琴淵勳膽躪3GV

예배의 의식,환경,순서의 새 모댈/김소영 201

의식은 하나님의 백성이 연합하여 하나님께 접근하고 나아가는데 있어서

질서 있게 하는 한가지 방편이라 할 수 있다. 의식은 '하나님의 식탁에서

의 예의'라고 어떤 학자는 말했다. 예배자는 왕 중의 왕이시요, 주 가운데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교제하기 위해 나아갈 때 다음의 세가지 의

식에 주의하여야 한다.

첫째, 의식이 예배자의 자발성을 억제해서는 안된다. 항상 사랑을 자발

적으로 표현하며 아무런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마음과 마음을 서로 주고받

을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의식을 외관적 외부적으로만 지키고 마음의 진정한 느낌을 표현

하지 않은 의식은 위선이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역사와 전통을 유지하

기 위해 형식적으로 하나님께 겸손한 체하는 행위. 외관상으로 엄숙하게만

지켜지는 의식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지 못할 위선이 되는 것이기 때문

에 주의해야 한다(사1:11).

셋째, 의식은 인간의 명의로나 또는 인간에 의해 행하여지는 가중스러운

행위가 되어서는 안된다 또한 하나님보다는 오히려 인간중싣으로 되어 그

자체의 목적이 하나의 인간적인 흥행이 되게 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의식주의자가 되어 버린다

오늘날 한국 개신 교회는 의식화되어 가고 있다 구교는 신교화되고 신

교는 구교화 되고 있다. 예배당구조에서나, 예배 순서에서, 성직자의 가운

이 점점 구교화 되고 있음을 본다. 한국의 장로 교회는 칼빈사상과는 거리

가 멀고. 칼빈의 주장대로 따르지 않는다. 칼빈은 '말씀'만을 강조했다. 화

려한 장식이 필요 없다고 주장한다. 가운도 검은 가운만 입었다. 아카데믹

가운이 아니었다. 학위 후드도 걸치지 않았다. 이 모두가 갱신되어야 할

과제이다.

예배의 제요소를 갖추고 순서를 작성하는데 있어서 개신 교회는 각 교파

교회에 자유로이 위임되어 있다 교회가 자유롭게 가감하여 순서를 작성하

는 것이 개신 교회의 특색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순서 작성에 있어서 원리

가 있으니 그 원리에 준해서 자유롭게 작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배 순서의 기본적 원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감사의 응답

500651遁 hINTER INSTITUTE OF THEOLOGY

20221세기 예배의 새 모델

이 성경적, 논리적으로 잘 배열되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예배의 제요

소, 즉 찬송, 기도, 설교, 헌금 등이 분산되지 않고 유기적 통일을 가지고

예배의 본질인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로 하여 하나님과 예 배자와의 만남"

을 구현시켜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상적으로 예배학적인 예배순서를 크

게 3부분으로 나누어 ①개회 ⓒ말씀의 선포 ③감사의 응답의 순서로 작성

했다.

( 개회 : 사회는 무언으로 한다 )

전주(오르간)‥‥‥‥‥‥‥‥‥‥‥‥‥‥‥‥‥‥‥‥‥‥‥‥‥‥‥‥‥‥‥ 연주자

개회찬송‥‥‥‥‥‥‥‥‥‥‥‥‥‥‥‥‥‥‥‥‥‥‥‥‥‥‥‥‥‥‥‥‥‥‥‥다같이

성가대를 앞세우고 예배 위원(목사, 장로)은 회중과 함께

찬송을 부르면서 입장하여 성가대석과 강단으로 간다.

찬송이 끝나면 다음 순서로 넘어간다

예배의 말씀(성구낭독)‥‥‥‥‥‥‥‥‥‥‥‥‥‥‥‥‥‥‥‥‥‥‥‥‥‥ 목 사

기원기도‥‥‥‥‥‥‥‥‥‥‥‥‥‥‥‥‥‥‥‥‥‥‥‥‥‥‥‥‥‥‥‥‥‥‥‥‥‥목 사

주기도‥‥‥‥‥‥‥‥‥‥‥‥‥‥‥‥‥‥‥‥‥‥‥‥‥‥‥‥‥‥‥‥‥‥‥‥‥‥‥다같이

송 영 ‥‥‥‥‥‥‥‥‥‥‥‥‥‥‥‥‥‥‥‥‥‥‥‥‥‥‥‥‥‥‥‥‥‥‥‥‥‥성 가대

성시교독‥‥‥‥‥‥‥‥‥‥‥‥‥‥‥‥‥‥‥‥‥‥‥‥‥‥‥‥‥‥‥‥‥‥‥‥‥다같이

찬송(만복근원」 ‥‥‥‥‥‥‥‥‥‥‥‥‥‥‥‥‥‥‥‥‥‥‥‥‥‥‥‥‥‥‥‥‥‥다같이

목회기 도 또는 대표기 도‥‥‥‥‥‥‥‥‥‥‥‥‥‥‥‥‥‥‥‥‥‥‥‥‥‥‥‥ 맡은이

응답송‥‥‥‥‥‥‥‥‥‥‥‥‥‥‥‥‥‥‥‥‥‥‥‥‥‥‥‥‥‥‥‥‥‥‥‥‥‥성가대

(말씀의 선포)

구약성경‥‥‥‥‥‥‥‥‥‥‥‥‥‥‥‥‥‥‥‥‥‥‥‥‥‥‥‥‥‥‥‥‥‥‥설교자

찬송(설교와 부합된 것) ‥‥‥‥‥‥‥‥‥‥‥‥‥‥‥‥‥‥‥‥‥‥‥‥‥‥‥다같이

신약성 경 ‥‥‥‥‥‥‥‥‥‥‥‥‥‥‥‥‥‥‥‥‥‥‥‥‥‥‥‥‥‥‥‥‥‥‥‥‥설교자

찬 양‥‥‥‥‥‥‥‥‥‥‥‥‥‥‥‥‥‥‥‥‥‥‥‥‥‥‥‥‥‥‥‥‥‥‥‥‥‥‥‥성 가대

설 교‥‥‥‥‥‥‥‥‥‥‥‥‥‥‥‥‥‥‥‥‥‥‥‥‥‥‥‥‥‥‥‥‥‥‥‥‥‥설교자

기 도‥‥‥‥‥‥‥‥‥‥‥‥‥‥‥‥‥‥‥‥‥‥‥‥‥‥‥‥‥‥‥‥‥‥‥‥‥설교자

신앙고백 (사도신경 ) ‥‥‥‥‥‥‥‥‥‥‥‥‥‥‥‥‥‥‥‥‥‥‥‥‥‥‥‥‥‥‥다같이

결단찬송‥‥‥‥‥‥‥‥‥‥‥‥‥‥‥‥‥‥‥‥‥‥‥‥‥‥‥‥‥‥‥‥‥‥‥‥다같이

SOONG SIL WaNTER INSTITUTE OF TH20mGV

예배의 의식,환경,순서의 새 모댈/김소영 203

(감사의 응답)

헌금(위원)‥‥‥‥‥‥‥‥‥‥‥‥‥‥‥‥‥‥‥‥‥‥

중재기도(특별한 형편에 처한 자를 위해)

감사송

폐회찬송

위 탁의 말씀‥‥‥‥

목사 .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예수 그리스도의 일군으로서 선교와

봉사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세계 속으로 나아가십시오."

회중 : "주여 우리와 함께 하옵소서. 아멘."

축도

교회 소식 (성 도의 교제 ) ‥‥‥‥‥‥‥‥‥‥‥‥‥‥‥‥‥‥‥‥‥‥‥‥‥‥‥‥‥ 위 원

폐회

다같이

목사

성 가대

다같이

다같이

사

(1) 예배 개회시간 5분전에 연주자가 전주를 하고 예배자는 묵상기도로

예배를 준비 한다.

(2) 개회찬송은 '입례송'이라고도 한다. 목사가 앞서는 것이 아니라 성가

대를 앞세우고 목사는 성가대의 뒤를 따라 입장하는 것이 성경 적이다.

(3) '예배에의 부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이것은 'Call to

Worship'이라는 영어에서 유래되었다. 예장 통합측 총회는 예배의 말씀'

이라고 결정하여 예식서에 사용하고 있다. 한국 교회는 '예배의 말씀'으로

통일했으면 좋을 것 같다.

(4) "묵도함으로 예배를 시작하자."고 사회자가 예배 시작을 알리는데

'묵도'는 일본신국주와의 잔재이다 예배학적으로 보면 묵도로 예배를 시작

하는 것이 아니라 '개회찬송'으로 예배를 시작한다. '묵상기도'는 이미 전주

시간에 끓기 때문에 재차 "묵도로 예배를 시작하자 "는 말을 할 필요는 없

다.

(f) 7r원기도는 짧을수록 좋다. 성령의 임재를 기원하는 기도이기에 길

게 할 필요가 없다. '예배의 말씀'과 '기원기도'는 합해서 1분이면 충분하

다. 기원기도의 끝부분도 "예수의 이름으로 기원하옵나이다. "라고 해야 한

5(888 SIL hINTER INSTITUTE OF THEOLOGY

20421새기 예배의 새 모델

다 "·.·기도 하옵나이다 "라고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6) '주기도'를 앞부분에 넣었다. 이것은 죄의 고백기도 대신에 삽입했

다. '죄의 고백기도'를 한후에 목사가 '죄의 용서의 확증기도'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주기도 순서 대신에 '신앙고백' 순서를 하는 것은 예배학

적으로 부당하므로 시정되어야 한다.

(7) 목회기도는 목회자만이 하는 기도 순서이다 목사가 하지 않고 장로

나 평신도가 할 경우 이것은 '기도' 또는 '대표기도'라고 해야 한다. 이 순

서를 평신도들이 담당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

(8) 성경 낭독은 신약성경과 구약성경을 반드시 같이 낭독해야 한다. 설

교 본문이 구약이면 관주성경을 보고 신약에서 상응한 내용을 찾아 신약성

경도 낭독해야 한다. 신구약 성경 전체가 하나의 성경임을 주지시키기 위

한 것이다. 성경 낭독 순서는 설교의 부수적인 순서가 아니다. 성경 낭독

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받는 시간임을 교인들에게 주지시켜야 한다 그

래서 어떤 교파는 성경 낭독시에 교인들을 기립시키는 것을 보았다 아주

의미가 있다고 본다.

(9) 신앙고백. 즉 사도신경 암송 순서를 설교 후에 넣었다 그 이유는

사도신경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사도들이 고백했기 때문에 설교 후

에 그 뜻을 생각하며 암송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도신경은 성경에 없다.

그래서 보수적인 교파에서는 성경에 없기 때문에 인정하지 않는 교파도 있

다. 그러므로 성경에 근거하여 고백한 사도신경이기에 성경 낭독 후 또는

설교 후에 신앙을 확증하는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것이 타당할 줄 안다. 한

국 교회는 거의 전체가 앞부분에 이 순서가 있는데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

다

(10) 설교 후 헌금하면서 찬송하는 것은 타당치 않다. 찬송가의 의미도

상실하고 헌금의 정신도 망각하게 된다 아무리 급하더라도 찬송가는 찬송

가대로 그 뜻을 생각하면서 부르고, 헌금은 감사의 응답으로 하나님에게

정성된 마음으로 바치게 해야 한다. 헌금 순서는 설교 후에 하는 것이 예

배학적이다 받은 은혜를 말씀으로 확증하고 그것을 응답하는 마음으로 헌

금을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헌금함을 예배당 입구에 설치하여 들어

가면서 헌금함에 넣게 하는 것은 예배학적이 아니다. 예배순서 중에 설교

SOONG SIL HINTER INSTITUTE OF THf01fGV

예배의 의식,환경,순서의 새 모댈/김소영 205

말씀을 듣고 받은 은혜 감사한 마음으로 드려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11) 중재기도는 반드시 하는 것이 좋겠다. 대표기도를 평신도 또는 장

로가 담당하기 때문에 더욱 중재기도는 목회자가 할 필요가 있다. 이 순서

는 '타자를 위한 기도'라는 뜻이 있다. 예를 들면 군에 입대할 청년을 위해

앞에 세워 성경을 읽고 이를 위해 기도한다든지, 또는 어린애를 낳은 후

첫 번 교회 출석하는 신혼부부 또는 부부와 어린이를 위한 기도, 또는 병

원에 입원한 환자를 위해 기도하는 순서이다. 헌아기도 순서도 이 중재기

도 시간에 하는 것이 좋다

(12) 위탁의 말씀의 순서는 반드시 넣어야 한다 예배당 안에서 은혜를

받고 힘을 얻었으니 세계 속으로 나가 선교, 봉사의 사명을 감당하라는 파

송의 선언인 것이다. 한국 교회에는 이 순서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예배

와 생활'의 관계성이 없는 것같다. 목사가 위탁의 말씀을 선포한 후 회중

은 응답으로 "주여 우리와 함께 하옵소서"라고 하는 것이 좋다.

(1,3) 교회 소식을 축도 후에 넣었다 방문한 손님을 소개하거나 새신자

를 소개하고 교제하는데 시간에 쫓기지 않는 장절이 있다. 그러나 대교회

는 어려울 것이다. 교회의 형편에 따라 축도 후 또는 축도 전에 순서를 넣

어 진행함이 좋을 것이다

(14) 이 예배 순서 전체를 크게 셋으로 구분했다. 시간 배정은 첫 부분

에서 15분 둘째 부분을 30분 셋째 부분을 15으로 배정한다. 첫부분에

'기도'가 길면 20분이 되기도 한다 둘째 부분의 설교는 20분이 되기도 한

다. 설교가 길다고 은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전체 시간을 60분에서 70분

으로 할애하면 이상적이다

(15) 무슨 예배든지 목사가 없어 축도를 할 수 없으면 "주기도로 폐회합

시다. "라고 하는데 주기도로 폐회하는 것은 예배학에 없다. 예배의 폐회를

위해 '주기도'가 있는 것이 아니다. 주님 가르치신 기도 정신에도 위배된

다. 마지막 '기도'로 폐회 하면 된다.

한국 교회 예배 순서에는 이상과 같이 시정해야 할 것들이 많다. 또한

'수요일 기도회'를 '삼일기도회'라고 하는데 수요일은 3일이 아니고 4일이

다. 그러므로 '수요기도회'라고 해야 타당한 것이다

SQBBS SIL HINTER INSTITUTE OF THEOLOGY

206 21세기 예배의 새 모델

건물도 사람에게 말하고자 하는 언어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당을

건축할 때는 언어가 분명하게 설계되어야 한다. 교회당의 미를 살리기 위

해 예배의 본질을 상실하고 언어가 없는 교회당을 건축한다면 그것은 예배

당 건축의 실패라고 할 수 있다. 한국 교회는 대체적으로 예배당의 외부는

교회라는 언어를 잘 표현하여 건축하고 있으나 내부는 천태만상이고 목회

작◎ 구민에 및측에 장식을 하고 있으먼 익칙향적으로 언어가 분멉친 몫하

다. 여기에서 예배당 내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예배의 중심은 복음이다. 복음은 성경 낭독과 설교와 성례전을 통해 사

람들에게 전달된다 따라서 예배의 중심은 말씀, 즉 성경 낭독과 설교와

성례전으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성례전은 세례와 성찬 둘로 나누어진다

이와 같이 예배의 중심이 설교, 성찬, 세례에 있다고 하면 예배당 내부,

소위 지성소라 하는 강대가 있는 부분에 설교대 성찬대, 세례반의 세부분

에 중심적 위치를 두고 설계되고 배치되어야 옳은 줄 안다 오늘의 한국

교회는 이 세부분이 중심이 되어 있지 못하고 설교대, 성찬대, 사회대가

앞부분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한국 교회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사회대는

원래 말씀 낭독대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것이 한국 교회에서는 사

회대로 그 기능이 변형되었다.

이제는 예배 중심부의 배치 문제를 언급하고자 한다. 하나는 정찬대를

중심에 두고 그 좌우에 설교대와 낭독대를 배치하는 것과 다른 하나는 설

교대를 중심하여 그 앞에 성찬대를 배치하는 두가지 형태가 있다. 전자는

주로 가톨릭교회와 성공회 등에 많고 후자는 장로교회, 회중교회, 감리교

회, 자유교회, 개혁교회 등에 많다 이 배치에 있어서 전자는 예배의 중심

을 성찬에 두었고 후자는 설교, 즉 하나님의 말씀에 비중을 두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 예배에 있어서 설교와 성례전은 동등한 위치를

가져야 하므로 설교대와 성찬대를 배치하고 사회대가 있는 그 위치에 세례

반을 배치하는 것이 예배의 중심을 살리는 것이 되고 예배학적으로 바람직

한 형태의 배치이다. 성찬대를 강대 윗부분에 배치할 경우 벽에 약간 띄어

놓고 집례자가 성찬식을 집행하도록 할 수 있게 공간을 두어야 한다. 그리

고 성찬대 위에 촛대를 설치해서는 안되고 성경도 펴놓아서는 안된다. 성

경을 펴 놓으려면 강대상에 두어야 한다 촛대는 무덤의 사상에서 왔기에

SOONGSIL 脚1 NTER 1 NST 1 T니TE OF 琴H208GV

예배의 의식,환경,순서의 새 모댈/김소영 207

없애야 한다. 교회 내부의 앞부분은 될 수 있는 대로 간편하게 장식이 없

는 것이 좋다

르_웨堂豊소또그꼬코고

예배의 목적에는 네가지가 있다. 첫째는 감사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구속적 은총과 사랑에 대해 감사하기 위해 예배에 참석한다. 둘째는 헌신

을 위함이다. 이것은 쉬운 말로 바치기 위함이다. 시간을 바치고, 정성을

바치고, 몸을 바치고, 마음을 바치고, 물질을 바치기 위해서 예배를 드리

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속적 사랑에 대한 헌신과 봉사를 위해서 교회에 출

석한다. 셋째는 덕성을 배양하기 위함이다. 기독교의 덕성인 믿음, 소망.

사랑의 덕을 계발하고 자비, 용서, 인내, 이해의 덕성을 함양하기 위해 예

배를 드리는 것이다. 예배 드리기 전에 용서하지 못했으면 예배 후에는 용

서하고, 예배 전에 이해, 사랑이 없었으면 예배 후에는 이해하고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예배 전에는 사랑의 도수가 50도였으면 예배 후에는 사랑의

도수가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예배의 횟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기독교의

덕이 점점 더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한국 교회

는 예배는 많으나 기독교의 덕성이 함양되지 않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으

니 문제이다. 넷째는 예배를 통해 자극 받고 힘을 얻어 세계속에서 사회,

가정에서 선교적인 사명,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기 의해 예배를 드리는 것

이다. 예배당 내의 예배로 끝나지 않고 그 예배가 세계 속으로 연장되게

하고 생활과 관계를 갖도록 예배에 참여해야 하는 것이다. 예배와 생활이

일치하여 교회의 예배가 생활화하여야 한다. 예배를 영어로 서비스'라고

도 한다. 예배를 서비스라고 할 때 그 뜻은 예배가 예배당 안에서의 예배

로 끝나지 말고 생활 가운데서 계속하여 행동으로 나타내야 된다는 뜻이

다 그래서 예배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예배는

예배당 안에 패도처럼 걸어 놓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배당 안의 거룩하고 경건된 예배가 가정과 직

장과 세계 속의 생활과 일치될때에 '거룩한 산제사'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기 위해 세상에 오셨

다고 친히 말씀하셨다(막10:45) 아버지의 뜻을 이 세상에서 행하는 것이

라고 또한 말씀하셨다(요4:34). 예수님은 성전이나 회당에서 예배에 참석

SC麴騷醫 르IL 脚1 HTER 1 NSTITUTE OF THEOLO靈Y

20821세기 예배의 새 모댈

하신 것으로 끝나지 않으시고 예배후에 곧 그의 발을 시내의 거리로 峯◎

셨던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는 것으로 생각하셨다. 예배의 궁극적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

을 돌리는 것이라고 하면 이러한 세계 속에서 봉사생활과 결코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예배는 곧 세계를 향해 섬기는데 힘을

쏟는 일이다. 그리고 세계 속에서 섬기는 일이 곧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예배의 행위이다. 그러므로 예배와 생활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예배당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거룩한 집이고, 반면인간이 살고 있는 세상

은 죄악이 가득찬 곳이라고 하는 사상은 잘못된 예 배관에서 왔다고 할 수

있다. 소위 '속되다'고 하는 이 세계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계이

다 마귀가 창조한 더러운 세계가 아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은혜의 선물로 주셨다. 속되다고 하는 이 세계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인간들이 만나는 장소임을 알아야 한다

이 속된 세계는 사람과 하나님이 만나는 거룩한 땅이다(출3 5). 그러므로

이 세계를 떠나서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있을 수도 없는

것이다. 예배당이 세상으로부터 격리되서는 안된다 오히려 이 세상을 향

하여 예배당 문을 활짝 열어 놓고 모든 사람들이 들어와 구원받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교회당이 되어야 한다.

예배와 생활과의 관계가 단절되면 교회는 무력해질 가능성이 많다. 교회

를 이 위험에서 구출하기 위해서는 예배의 갱신운동, 혁신운동이 필요하

다. 혁신운동 가운데 프랑스의 '떼제공동체'운동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운

동은 교회가 이 세상으로부터 도피한 수도원이 아니고 이 세상안에서의 생

활의 확증을 목표로 근거를 예배에다 둔 운동이다. 예배는 세계속에서 생

활하는데 있어서 하나의 근거가 되고 힘과 능력이 된다고 주장한다. 이 운

동체는 이미 한국에 들어와 활동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이 예배와 생활은

분리가 아니며 일치해야 한다는 것을 한국 교회는 명심해야 한다. 이 운동

이 한국 교회에도 확산되기를 희망한다

교회는 이 세계 속에서 분리되어 존재하는 특별 계층이 아니다. 산 위에

세운 특별한 도피성도 아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예배는 항상 이 세계의 생

활을 향해 나아가는 자세로 드려야 하고, 이 세계 안에서의 하나님 백성의

SOONG 51 L 脚1 NTER 1 NST 1 TUTE OF 鞏脚脚膽纏3GV

예배의 의식,환경,순서의 새 모델/김소영 209

생활은 예배에 의해 지탱되어 가야 하는 것이다

바울이 안디옥교회에서 처음 전도여행을 시작할 때 "주를 섬겨(예배하

여) 금식할 때에 .."(행13.2), "금식하여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행13:3)고 한 말씀을 보면 예배한 후 안수하여 전도자를 파송

한 것을 알 수가 있다 이것을 보아 전도도 예배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예배 그 자체가 세상을 향하는 아주 강력한 전도

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행14:24, 28)

예배는 인간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바쳐 하나님을 따르게 하는 것이다 그

것이 교회 안이든, 세계안이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 거듭난 인간

이 죄에서 해방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세계 속에서 감사

의 생활을 하게 된다. 한국 교회는 예배당 안의 예배는 거룩하고 엄숙하고

경건하지만 예배당 안에서 끝나 버리고 세계 속으로 연장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세계 안에 문제가 많은 것이다. 이제는 예배와 생활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이땅에 이루어지도록 갱신해야 한다.

한국에 전래된 기독교 예배는 유대 나라에서 행하여진 예배 의식이 아니

라 미국과 유럽에서 사용한 예배 의식을 그대로 받아들여 오늘날까지 진행

퇴 고 있다.

이제 100년의 역사를 넘은 한국 교회는 기독교의 고유한 복음의 진리의

몸에 한국적인 옷을 입히는 노력을 해야 될 줄 안다. 한국 교회의 예배당

건물과 내부구조, 회중들이 부르는 찬송가, 예배순서, 예배용 악기등이 모

두가 한국적인 요소가 전혀 없고 서구식인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제 구체

적으로 한국적인 요소들을 교회 내에서 시정할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1) 첫째로 예배당 외부 건물에 대해 한국적 건축을 가미했으면 한다.

한국 교회의 초창기 평양의 예배당은 기와집이었다. 그리고 시골에서는

초가집이었다. 근대화의 물결로 초가집은 사라졌지만 한국 고유의 기와집

은 그 건축 모형을 살릴 필요가 있다고 본다. 만일 전체 예배당 구조를 기

와집형으로 하지 못한다고 하면 종각 위의 지붕을 청기와나 초록색 기와를

이을 수가 있을 것이다. 서구의 고딕식 건축양식을 한국에서 반드시 채택

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SOBGQ SIL hINTER INSTITUTE OF THEOLOGY

21021새기 예비의 새 모델

(2) 둘째로 예배당 내부 구조에서 우리 한국적인 요소가 있었으면 한다

설교대, 성찬대, 세례대, 의자 등에서 한국적인 얼이 담긴 가구나 모형을

땄으면 한다.

(,3) 셋째로 예배의 한 요소인 찬송의 곡조에서 한국적인 가락으로 작곡

찬 찬송가가 있었으면 한다 찬송은 곡을 붙여서 드린 기도요, 신앙고백이

며 결단의 표현이기 때문에 한국적인 가락에 의해 찬송을 불러야 한국 문

화에 알맞는 예배가 될 것이다.

(4) 넷째로 미국의 극단 보수주의 교회에서는 오늘날 교회에서 사용하

고 있는 예배용 악기인 피아노, 전자올갠, 파이프올갠 등이 성경에 없는

악기라 하여 사용하는 것을 비성경적이라 하여 반대하고 있다 그래서 시

편에 나오는 악기를 사용하려고 노력하고 또 그대로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교획 예.배.에. 반드시 올갠이나 피아노를 사용하지 않고 한국적인

악기를 사용하여 예배드린다고 비성경적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교회 예배에 피아노나 올갠을 사용하는 것이 보편화 된 차제에 또

그 기능과 효과면에서 크게 작용하고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는 이때에 그

사용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적 악기를 병행해서 사용하는 것이 어

떠한지 제안하는 바이다.

(5) 다섯째로 오늘날 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서구극 성찬기를 한국식 성

찬기로 교체했으면 한다. 성만찬 집기(잔과 접시)에 한국 문화적 얼을 담

아 표현하는 집기를 사용했으면 한다. 오늘날 서구 교회에서도 플라스틱이

나 스테인레스 같은 재료는 사용을 금하고 있다 1962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로 도자기의 성만찬 집기들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떼제

공동체. 호주연합교회 미국의 대다수 교회들도 도자기를 만든 성만찬 집

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국 교회도 성만찬 집기를 한국에서 제조한 도자기를 사용함으로 바람

직한 한국적 성만찬 신앙이 뿌리내려 가게 될 것이다.

(6) 여섯째로 교회력에 한국적인 내용들을 많이 담아 제도화했으면 한

다

교회력은 원래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중심하여 만든 것으로 어느 한

민족의 문화에 영향을 받아 교회에서 만든 것이다

SOONG SIL HINTER INSTITUTE OF T桃醴脚駙

예배의 의식,환경,순서의 새 모델/김소영 211

이 교회력은 유럽 교회의 교회력과 미국 교회의 교회력과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음을 발견한다. 물론 기본적인 예수의 생애에 대한 교회력은 동

일하다. 미국 교회는 유럽 교회보다 국가 축제일을 교회력에 삽입한 것이

많음을 본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도 100년이 지난 역사를 가졌기 때문에

무조건 미국교회나 서구 교회가 지키고 있는 교회력을 그대로 지킬 필요가

없다고 본다.

예를 들면 추수감사절을 한국 상황에 맞게 지키는 것과 국가적인 기념을

교회력에다 제도적으로 제정하여 지키는 것이 한국적인 교회력이 될 수 있

을 것이다

(7) 일곱째로 성직자의 예복과 성가대의 가운을 한국적인 문화에 알맞

는 예복과 복장이 되도록 수정했으면 좋을 것이다. 성직자의 가운이나 성

가대의 가운이 완전히 서구화되어 있다. 성직자들이 강대에서 예배를 집례

할 때 가운 대신 두루마기를 입고 집례를 하고 교인들이 한복을 입고 교회

예배에 참석한다면 한층 더 돋보일 줄 안다.

물른 한복은 개량된 한복이면 좋겠다. 가령 두루마기와 옷고름을 없애고

단추를 다는 것으로 대체했으면 한다.

한국 문화적인 얼을 살리는데 주의할 것이 있다

리쳐드 니버가 말한 대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문화를 해석하는 길보다는

문화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이해하는 길을 택하려는 시대적 요청을 감지한

결과라."고 하는 말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토착적 예배를 시도하는데

있어서 하나님 앞에서의 예배보다는 예배하는 자들의 마음에 들게 하고 즐

겁게 해주는 잘못을 가져올 위험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어느 나라 문화의 읏을 입든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라는 것을 잊

어 서 는 안된다.

fn10 SIL HINTER INSTITUTE OF THEOLOGY

21세기 예배의 신학/ 김영한 33

5) 교회의 영성뇌퇴

예배의 뇌퇴는 오늘날 교회의 삶에 하나님 임재의 경험이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오늘날 목회자들은 세속적이고 효회행정적인 일에 너무

나도 분주한 나머지 날마다 하나님과 영적으로 만나는 효제가 결핍하다

목회자의 기도와 설교에서 영적 감화력이 결여하다. 여기서 효회의 영성

은 뇌간한다. 신자들은 목회자의 설교와 예배정례에 영적 감동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신자들은 예배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다. 그래서 예배

참석이 부담이 되거나 나오지 않게 되는 것이다.

6) 사이버예배의 출현

최근에는 컴퓨터가 발달하고 인터넷을 총하여 사이버공간이 펼쳐기쩐서 각

교회들이 전 도용으로 펴놓은 교회용 네트워프를 통하여 교회에 출석하'41

않고 사이버예배를 드리는 신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있다. 柔거나 이러

한 사이버예배는 진정한 예배를 대체할 수 없다

사이버 예배는 보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몸이 직겅 팔여하여 자신치 삶온

하나님께 드리고 회개하고 결단하고 하나닌치 임재를 겅험하쓴 쵸회에서치

예배와 동일시할 수 없다.

진정만 예배는 누녹받은 신자들의 元끼 록에서 히·i넘 ·'ii 그히÷_ 똔극 'i -3-

의 헌신이기 때문에 사이버예배는 병상에 있근 긴사나 간간 휴양지나 비딴

곤에 있는 길자틀을 위한 보풍예배는 꾈지언징 ~l깅한 체때-~.=- 싸니다 사

이버 체배는 촐효치 예배를 보관하는 기세기 띤디이 껜배요 선=1):치 "') "1!로

서의 기능을 할 수 있다

다섯째, 대안 -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같동어런 에때

이에 대한 대안으로는 예배에 데한 이해가 새◎ 게 피어랴 란다.

주일저녁 예배는 낯예배에 비하여 찬양을 강초하여 찼다. 대나누치 친치는

이 20-30岺 정도의 찬양과 덕음송파 찬쏟파글 군긴으壽_ 한양시긴옳 갖j:

柔리호는 묵도 기도 찬쏭 설효 헌금 및 왐고라1-- 폰에서 떳어나시 않고 있

다

체배의 핵심은 어떤 전통적인 의식의 눅서를 피기◎ 건이 까니라 파가'1!j')

의 만날을 줄요시해야 한다. 체배치식토 종효직인 전폴이나 1'1寺을 지키1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것에 투어야 한디. ◎I'1 ~고

어떤 프로그램의 도입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피 께ll)1초 岺-차띠 하나'.」 딱

씀이 선포피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로운 절만을 하제 피◎ 히가

님 임재의 페험이 중요하다

SOONE SIL hINTER InSTITUTE OF THEOLOGs

3421새기 예배의 새모델

1) 예배는 하나님 중심적이어야 한다.

예배의 창시자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다. 인간이 고안한 것이 아

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 고 그들에게 은총을 베푸시

고 그들을 선택하시여 그를 경배하게 하셨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

이다. 어떤 사랑이나 운동이나 프로그램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나 황제나 거대한 건축물에게 예배를 드릴 수 없다. 참된 예배는

수직적인 관계에 촛점이 모아진다. 하나님 중심적이야 한다. 예배는 하나님

을 위하여 그분을 기뻐시게 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드리는 것

이 어 야 한다

예배는 인간중심적이서는 안된다. 집례자를 위한 것도 참여자의 이익을 위

한 것이어서는 안된다. 예배의 순서나 규칙도 하나님에 의하여 규정되어

야 한다. 하나님이 요구하는 대로 예배를 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 중

심적인 예배란 예배에서 말씀이 선포되고 성령이 생동적으로 역사해야 하

는 예배를 가르킨다.

2) 예배는 그리스도중심적이어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종교적 존재로 만드셨다. 인간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림으

로써 그 존재의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인간은 괴로 말미임아 자기의 공

로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예배드럴 수도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배

치 중보자가 되셨다 인간은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어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다. 예배는 그리스도 중심적이어야 한다. 그리스도피 구속공로를 우

리에게 전달하시는 이가 성령이시다. 그리스도 중심적인 예배는 성령으로

인도되고 감동되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 구속받은 인간의 인격은 예배하

는 행위에 따라서 형성된다. 예배에는 인간존재의 모든 것이 집중되기 때

문이다. 구속받은 인간인 신자가 하나님이 주신 구속의 은혜을 찬양하고

경배하고 감사하고 자신의 삶을 헌신하는 방식이 바로 예배이다.

3) 예배는 성경중심의 신령한 예배로서 계시와 응답의 구체적인 현장이어

야 한다.

예배는 신자들의 신학적 확신뿐 만 아니라 윤리적 확신을 표현하며 그러한

확신을 형성한다. 신자들은 신조를 배우기 이전에 이미 예배를 통하여 신

앙과 신조를 배운다. 예배는 기독교공동체의 중심이다. 교회의 행사가운데

서도 가장 중심적인 행사는 예배이다. 매주일 드리는 예배는 가장 교회 활

동의 핵심적인 행사이다. 예배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고 구원이 없다 이

러한 예배에는 성령의 감동과 인도하심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 예배

의 처소는 하나닌이 일재하시고 받으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처소가 된다,

SOOHG SIL WINcER INSTITUTE OF THEOLOGY

21새기 예배의 신학/ 김영한 35

예배는 그러므로 단지 종교적인 모임이나 축제가 아니다. 예배는 계시하

시는 하나님과 이에 응답하는 인간이 만나는 구체적인 현장이다. 3)

예배는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구속하신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종교의식

적인 응답"( liturgical response)이다. 4)

4) 종교개혁은 예배 갱신이었다.

종교개혁은 하나님 말씀의 발견이었고 예배의 회복이요 예배의 갱신이었

다.

종교개혁적 예배의 정신은 예배의 형식과 절차에 변화를 가져 왔다. 종교

개혁자들은 중세교회의 성례전적으로 마술화되고 의례적으로 형식화된 예

배를 신약성경과 초대교회의 예배관행의 기준에 따라 개혁하고자 했다. 그

것은 중세교회가 상실한 신약의 예배를 다시 발견한 것이었다.

우리는 종교개혁의 예배개혁을 수용하되 루터교나 성공회가 시도했던 전통

적 예식을 부분적으로만 수정하는 보수주의적 입장도 아니고, 瑩빙글리

(H. 2wingli)의 개혁파 처럼 눈에 보이는 예전의 형식이나 경건의 태도를

경시하는 보다 진보적인 개혁5)의 입장도 아니고, 윤쳐(Thomas

Muentzer)를 비롯한 재세례파에서 보는 것 처럼 회중예배의 필요성을 인

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예배의식 자체를 거부하는 극단한 입장6)도 아닌,

부처( Martin Bucer), 칼빈(John Calvin), 낙스(John Knox)의 온건한 개혁

주의적 입장에서 예배의 갱신을 논하고자 한다.

이들의 중도적 개혁은 말씀과 성례전을 예배의 두 가지 축으로 하고 회중

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므로서 초대교회의 복음적 예배를 재

발견하고자 했다. 7)

종교개혁적 예배는 일리온 존스(lllion T. Jones)가 그의 저서 [복음적 예

배의 이해]에서 서술하는 바 같이8) 경직된 예배가 아니라 자발적이고 자

유로운 예배, 제사예배가 아닌 기도와 찬양예배, 제사장 예배가 아닌 평신

3) Paul Whitman Hoon, The Integrit)r of f'orship (Neut t~ork: Abingdon

Press, 1971), 77

4) 박은규, 예배의 재발견, 대한 기독교출판사, 1988, 18

5) William r,maxwell,4 Histor)7 of Christian Worship (Grand Rapids: Baker

Book Hou,ie, 1982), 81-87

6) William L. Lumkpin, Baptist Confession of Faith (Philadephla: The

Judson Press, 1959), 23-24

7) 정장복, "예배의식에 대한 복음주의적 이해", 성경과 신학 제 6권, 임마누엘,

1988, 36

8) lllion T. Jones, 복음적 예배의 이해, 젓잘복역. 장로교출판사, 1988,

SOONG 51遁 HINTER INSTITUTE OF THEOLOGY

3621세기 예배의 새모델

도들이 참여하는 예배, 의식적 예배가 아닌 말씀선포예배, 외형적 형식적

예배 아닌 영적 감동적 내적인 예배, 복잡하고 주술적인 예배가 단순하고

직 접 적 인 예 배 이 었 다.

2. 예배의 새로운 모델

루터는 예배의식에서 성경에 위배되지 않는 것은 허용된다고 보고 로마 카

톨릭의식에서 성경에 위배되지 않다고 생각되는 많은 부분을 수용하였다.

이에 대해서 칼빈은 예배의식은 성 경적이어야 하고 성경에 충실해야 한다

고 강조하면서 예배의식이 성경에 합하는지를 검토하고 철저히 비판하면서

"명령받지 아니한 것은 자유로이 선택할 수 없다"고 주터보다 철저히 예배

개 혁 을 단행하였다.

다가오는 21세기 예배의 새 모델은 이러한 칼빈의 정신에 입각해서 성경적

이고 종교개혁신학적인 관점에서 제안되어야 할 것이다.

1) 성령 안에서 드리는 신령한 예배 - 종교의식아닌 하나넘 만남의 신비

1> 성경적 영성을 함양

한국장로교와 감리교 여성의 뿌리는 청교도운동이다. 청교도영성은 세상을

떠나 은둔의 삶을 살거나 그리스도의 수난이나 성찬을 묵상하는 카톨릭적

영성이나 종효적 체험을 중시하는 오순절 영성과는 다르다. 오히려 세상

가운데 살먼꺼 하나님 말씀을 실천하며 이루어자는 성화의 삶에 있다. "주

관적 차원의 영성보다는 말씀에 근거한 경건훈련으로서 객관적 영성"이 개

혁주의 전통의 영성이다.

여기서 예배의 영성이란 성경이 가르쳐주는 영성을 말한다. 한국 교회 안

에 잔재로 남아 있는 불교적 유효적 무교적 예배의 요소를 제거하고 성길

이 가르쳐주는 방식대로 예배드리는 것이 요청된다. 불효적인 명상,유효

적인 형식, 무교적인 기복의 요소를 제거하고 드리는 성경적인 영성이다

자기명상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내용없는 형식에 때이지 않고

하나님의 영의 임재를 기대하며, 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영성이 요청된다.

2) 성령 안에서 드리는 신령한 예배

예배드리는 자는 종교적인 형식과 예식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신령과 진

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한다(요 4:24). 이러한 신형한 예배는 성령

안에서 드리는 예배이다.

예존의 신혈한 돋력은 성령이시다. 헤겔이 주장하는 것처럼 인간의 정신

SOONG SIL HINTER INSTITUTE OF THEO遁OGY

21세기 예배의 신학/ 김영한 37

으로 하나님에게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이 예배현장에

임재하심으로 예배자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 은혜를 체험한다. 그리고 그의

아들 십자가의 대속의 진리를 알게 하신다.

성령의 내적 증거(요 16:8, 14-15)를 통해서만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

험할 수 있다.

성령은 교회의 영혼이며 생명이다. 성령의 능력없이 교회는 존재할 수 없

다. 신령한 예배는 성령의 감동하심과 인도하심에서만 가능하다. 성경은 성

령의 책으로 성령의 조명이 있을 때에만 듣는 자가 하나님의 말씀 곧, 생

명의 말씀으로 받게 된다.

예배란 영혼 심층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경배와 헌신이다. 예수께서 "네 마

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마

22:37)고 말씀하였다 그렇다고 우리는 종교개혁 당시의 재세례파들이나

모라비안주의자들, 미국의 퀘이커교도들이나 오늘날의 급진적인 신령주의

자들(예컨데, 토론토 축복운동 등) 처럼 영적인 예배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

머지 예전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신령과 진정의 예배는 공적 예배당에서

드리는 예전의 형식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진정한 예배는 하나의 쏭효의식으로 끝나지 않는나. 거기에는 하나님을 만

나는 신비가 있다.

예배에서 우리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초월성과 하나님의 내재성을 동시

에 그의 임재 속에서 체험한다. 우리는 예배치 儀式 과정 속에서 하나님

을 경험한다. 예배는 종교적 분석과 이해 이전에 먼저 경험되어야 한다. 9)

2) 말씀의 선포가 중심되고, 그리스도가 중심되는 예배 그리고 말씀에 일

치 하는 예 전

1) 예배에서 신자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예배의 모든 순서가

그것을 위한 방편이긴 하지만 말씀의 선포처럼 하나님의 뜻을 더 확실히

전달하는 눈서도 없다.

구약시대에는 죄용서를 위한 제사가 강조되었으므로 성전 안에서 설교의

가치는 높게 평가되지 못했다. 그거나 성전의 제사가 형식과 관례에 흐름

에 따라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예언자들의 말씀의 선포가 나타났다. 예언

자들은 한결같이 의로운 행위가 동반하지 않는 제사는 하나님 앞에서 가

증한 것이라고 설교했다. 의를 행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 앞에 합당한 제사

9) Fraklin, 班. kegler, (예배학원론), 정진팡연, 요단, 1979, 10

SOONG SIL HINTER INSTITUTE OF THEOLOGV

裴蘿 21새기 예배의 새모댈

라고 가르쳤다.

포로기에는 회당예배가 중심이 되면서 율법에 대한 설교와 주해와 기도의

형식이 전면에 나타나게 되었다. 초대교회에는 찬양, 카리스마, 케리그마와

디다케의 형식이 구체화 되었다.

중세기에는 성체성사의 신비성에 근거하여 미사에 초점이 맞추어 지면서

설교는 디다케의 한 부분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그나마 종효개혁 직전에는

설교가 그 모습을 완전히 감추어 버리고 말았다. 중세효회는 초대교회로

부터 전래된 구약과 신약에서의 말씀을 한번씩 봉독하는 것을 생략하거나

점차 소홀히 하였다.

종교개혁자들은 설교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영혼을 일깨우는 도구로 설교를

강단 위에 다시 끌어 올렸다 그리고 신비한 미사중심의 예배가 아니라

말씀 중심의 예배를 강조하였다.

설교는 설교자의 철학이나 사상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선

포하는 것 이 다.

하나님 말씀의 권위가 회복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개신교의 예배가 된다.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권위 있게 선포될 때 비로소 그 예배는 하나님

이 임재하는 예배가 되는 것이다.

설교직전 설교본문의 봉독 전에 한국 교회 예전에서 구약과 신약의 선택본

문을 봉독하는 전통을 다시 살렸으면 한다. 예배에 메시지 효과를 나

타내기 위하며 小劇이나 띠디오를 에배의 한부분으로 사용할 수 있다.

예레미야나 에스길도 그의 말씀 선포를 위하여 상징적인 행동( 1)rophetical

symbolism)을 보여주었다. 신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해야

한다.

2> 삼위일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피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

말씀선포의 주제는 어떤 주제가 되든지 간에 그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건이요 성령을 통한 그분의 내주요 성화요, 그 분의 역사주관이요

재 림 이 다.

중세교회는 사제 중심으로 예배를 드렸고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교황의

존재를 부각하였고 또 성모마리아를 비롯한 수많은 성자들(마카엘, 앤드

류 등)들을 예배의 구심점으로 만들었다. 따라서 종교개혁자들은 이러한

예배의 탈선에 대하여 공격했다. 오늘날 개신교의 예배가

자칫 중세교회의 예배로 되돌아가는 경향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총회

장과 노회장이 명예의 자리가 되어 이것을 얻기 위하여 심한 경쟁을 벌이

는 것, 거대한 부흥회에서 인도자가 신 격화되는 경우, 수천명이 모이는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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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겐기 예배의 신학/ 김영한 39

배처소에서 인도자가 스타처럼 연기하고 설효하는 것, 사회유명 인사들을

예배의 전면에 내세우는 것 등이 그 구체적인 위험신호등이다.

예배현장에서 어떠한 인도자나 역사적인 인물이 예배의 구심점으로 부각될

수 없다

오로지 이들에게도 구속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삼위일체 하나님께 나

가는 은혜만이 있을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하나님의

尊前을 찾는다는 것은 기독교예배에서는 있을 수 없다.

3> 예전 자체가 말씀에 기초해야 한다. 예배는 인간에게 드리는 것이 아니

라 하나님께 드리기 때문에 21세기 예배의 모델이라고 해서 현대인들의 기

호와 취미에만 맞추고자 하다면 그것은 분명히 탈선이다. 오늘날 많은 예

배인도자들이 신령 주의자들이 거나 자유주의자들이거나간에 자신들의 제한

적인 경험자 지식에 맞추어 예배의식을 정하고 집전하는 것은 종교개혁적

정신에 합당하지 않다. 칼빈을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은 예배의 정신과 내용

이 초대교회가 실천한 성경의 정신으로 되돌아가야 할 것을 피력했던 것이

다.

모든 예전은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정신과 법도에 맞아야한다. 종

교개혁자 칼빈이 가르쳐준바 같이 "하나님은 성경 가운데서 우리에게 그

자신에 관한 정확한 지식을 주신다".10) 예배의식의 제정과 집행에 있어서

"성경없이는 우리는 탈선할 수밖에 없다".11)

예전을 예 배자들의 기호에 맞도록 꾸미는 것은 탈선하는 것이다.

미국 뉴잉글랜드 청효도 신학자 존 로튼(John Cot街n)은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이 명하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하나니께 분향하다가 죽임을 당한

구약의 예를 들면서 성경에 기록되지 아니한 어떤 형식의 예전, 즉 인간이

고안한 어떤 의식도 기독교예배 예전으로서 결코 사용할 수 없다고 하였

다. l2) 성경은 유일무이한 예배의 규범서이며 말씀에 제정된 예식만이 하

나님이 제정하신 의식이다. 오직 성경에 근거하고 그 가르침의 정신에 머

무는 예전과 그것을 집행하는 예배공동체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

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의식은 하나님 말씀이 제정하신 것들이다. 장

로교의 표준적인 신앙고백서인 "웨스트민스터 신조"도 성경에 근거한 것만

을 예배의 내용으로 인정하여 단순한 예배를 가르치고 있다.

10) C릴vin, Institutio, 1,4,1

11) Calt·in, Institutio. 1,4,,)

12) 오덕교, "교회사에 나타난 예배", 성경과 신학 제 6권, 임마누엘, 1988,

1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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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21새기 예배의 새모델

3) 예전 중심에서 축제의 예배로 : 과거적 구속 사건에 대한 기념과 미래

적 종말론적 예기.

경직된 예배가 아니라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예배를 드려야 한다.

예배는 나를 구속하신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행위에 대한 경축이다. 이 하

나님의 행위는 하나님의 팡조, 섭리, 구속의 언약, 성육신, 십자가의 죽으심

과 부활, 성령의 강림에 대한 경축이며 퍼욱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된 나를 구속하신 하나님의 구속행위에 대한 감사의 축제이다.

한국 교회에서 보는 것 처럼 예배를 드릴 때 사회자 내지 집레자가 모든

것을 관장하고 거기에 기도자와 찬양자들이 보조역할을 하고 평신도들은

보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한국 교회의 예배는 예전중심이기 때문에 집레자에게 모든 것이 달려 있게

되 는 것 이 다.

이제는 예배가 예전중심에서 축제의 예배로 변화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집례자나 기도자나 찬양대만이 아니라 모든 참여자들이 같이 참

여해서 하나님의 구속을 찬양해야 한다. 하나님의 영인한 구속을 찬양하고

그에게 영광과 존귀를 돌리는 축제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예배자들이 그 푹제 행위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배분하는 순서를 짜

는 것이 바람직하다. 평신도들이 만인 제사장으로 같이 참여하는 것이다.

이처한 축제로서의 예배는 효회치 종말론적 기능이다. 예배에서 드리는 이

축세는 단지 과거직 구속사건에 대한 기념에만 끝나지 않고 미래를 창한

종말론적 성취에 대한 예기와 기대를 가지고 있다. 우리 신자들은 예배 속

에서 한편으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구속하심에 대해 기념한다. 또한 예배에서 우리 신

자들은 그리스도의 재림 속에서 이루어질 하나님의 날의 잔치에서 성취될

하나님의 약속을 종말론적인 선취 속에서 예기한다

4) 성례전이 살아 있는 예배

시각적 예배에서 공동체적인 예배를 드리는 한 방법이 성례전이 살아 있는

예배의 거행이다 우리는 성례전에서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받아 먹음으로

써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신비에 함께 참여한다. 그래서 하나가 피며

우리가 되며 공동체를 경험한다.

성례전에 대한 바른 신학적 이해가 요펑된다. 성만찬은 중세의 미사처럼

그리스도의 희생제사의 반복이 아니다. 그것은 영적으로 임재하는 그리스

도와의 연합하는 것이다. 떡과 포도주는 실재적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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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겔기 껜빌의 신학/김영한 41

로 변하는 것(화체설, Transsubstantiation)이 아니고 단지 추억하는 것(기

념설, Memorial Feast)도 아니다. 세례도 단순히 교인으로 받아들이는 절

차를 넘어서서 영적 그리스도 몸의 지체로서 받아들이는 절차이다. 여기에

는 성령의 역사하심이 필요하다

성찬식과 세례식은 자주 시행하는 것이 좋다. 칼빈은 매주 성찬식을 가지

는 것을 원하였다. 제네바교회에서 비롯된 개혁교회 전통에서처럼 적어도

일년에 4번은 집행해야 한다.

성례식을 할 때에 지나치게 의식을 갖추는 것은 중세교회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 된다. 중세말기 성찬식에서 이중삼중으로 기도하면서 너무 거룩하게

진행함으로써 신자들로 하여금 지루케하여 성찬을 기피하게 만들었다. 성

찬이나 세례는 간단하게 시행하는 것이 좋다. 초대교회가 항상 그러했던

것 처럼 말씀의 선포와 성례전은 동반되어야 한다.

중세교회는 하나님 말씀이 부재된 성례전을 집행했다. 그러므로 종교개혁

자들은 말씀이 없는 중세교회의 미사의식을 마술적 연기에 불과하다고 비

판했다.

성례전은 말씀의 선포와 더불어 시행되어야 한다. 성례전은 가시적인 말씀

이다. 성례전은 자주 시행하므로써 설효와 관형을 이루어야 한다. 한국

교회의 예배는 사경회 또는 부흥회 식의 예배가 그대로 정착된 것으로서

예배진행자의 인도와 설교가 예배의 대부분을 차지하여 왔다. 그리하여 성

례전이 소출히 되고 설교중심의 예배가 드려졌다. 그리하여 교인들은 예배

드리는 것을 설교듣는 것과 동일시 하는 경향도 있다. 이것은 시정되어야

하다.

5) 성도의 효제가 역동적인 예배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같은 형제인 신자들

사이의 교제로서 나타나야 한다. 이것이 코이노니아(koinonia)이다. 여기에

는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의 나눔 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이 성도의 사귐

이 교회로 하여금 조직된 교회의 경직성에서 벗어나게 하며 자체의 생명력

을 보존하도록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지 총회나 보이는 예배당이

아니다. 교회의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다. 지체인 신자들은 예

배를 통해서 ◎리스도의 몸에 성령으로 연결되고 새로운 생명력을 공급받

게 된다.

회중들은 예배를 통한 교제를 나눔으로써 서로의 소속감을 확인하고 서로

를 이해하고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임을 확인한다. 예배에 참여하여 주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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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21새기 예배의 새모델

은혜를 나눔으로써 신자는 회중으로 자신의 삶의 피고의 가치를 발견한다.

그러므로 교제시간이 보다 역 동적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교제시간이 단순

히 광고로 채워져서는 안되며 보다 내실있고 즐거운 프로그램으로 나타나

야 한다

예배후에도 차를 마시고 간단한 다과(떡을 뗌)를 나누며 대화를 하는 장소

와 시간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광고시간도 코이노니아의 주요절차이다.

회중은 한 가족이며 믿음의 한 형제이다. 적절한 광고는 상호관심과 공동

의 행동영역을 가지고 있어서 회중예배에 사랑과 인간적인 교감을 더할 수

있다.

6) 참회와 결단과 헌신이 살아 있는 예배 그리고 전도를 위한 열린 예배

1>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으려고 하는데 있지 않고 하나

님이 주신 은혜에 감격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하나님께 기꺼이 자신을

헌신하고 봉헌하는 데 있다(시 斅:9;벧전 2:5). 이교적 예배는 신으로부

터 복을 받기 위하여 무엇을 드릴겨고 한다. 신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제

물과 헌금을 드려서 신의 마음을 살려고 한다.

이에 대하여 기독교적 예배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 감격하여 하나님께 감

사드리며 하나님 앞에서 잘못 살았던 자신의 삶을 회개하고 새로운 결단과

헌신을 한다.

종효개혁사들이 중세의 미사에 대하여 비판하면서 강조한 것처럼 하나님

말씀이 회중들의 삶의 방향을 변화시키고 이끌어 주는 참회와 결단과 헌

신의 사건이 일어나는 예배가 참된 예배이다.

2> 예배는 기존신자만이 아니라 불신자들을 위한 열린 예배의 요소를 가

미 해 야 한다.

예배는 믿는 신자들만을 위한 것 아니라 아직도 주님을 모르는 이 세상의

불신자들에게 전도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은 복된 소식의 증언을

기뻐하시고 신자들의 증언으로 인하여 불신자들이 하나님에게 돌아 오기

를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7) 예배당에 대한 종교개혁적인 이해

종교개혁자들은 예배당 내에 있는 성상을 치우고 제단을 철폐하고 설교단

을 예배당 전면 중앙에 설치했다 그 이유는 성소와 지성소로 나누는 카

톨릭적인 제단개념을 철폐하고 말씀의 선포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이었

다 그리고 』든 치장을 단순화 하고자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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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갤기 예배의 신학/ 김영한 43

한국 교회에서는 이러한 종효개혁적 사고와는 다르게 나타났다. 보수교

회일수록 강단을 윗 강단과 아래 강단으로 나누어 윗 강단을 성역화 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하여 목사는 윗 강단에서 예배를 정례하고 설교하고 평

신도나 여자가 예배를 인도하거나 설교할 때는 아래 강단에서 하도록 한

다. 그리고 講臺床은 강단 중앙에 넓고 크게 배치하나 성찬상은 없거나

아래 강단에서 제이의 장대상으로 사용되거나 다용도 탁자로 사용된다. 그

리하여 성찬상이 지니는 상징적 의미를 전달하지 못한다. 그리고 서구개혁

교회 예배당에서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는 세례를 위한 물을 담는 세례대를

한국 교회 예배당에서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교회의 표지가 말씀의

선포와 성례의 집행이라면 예배당에는 강대상과 더불어 성레집례를 위한

기물인 성찬대와 세례대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13)

한국 교회 예배에 있어서 집례자와 설교자가 회중석을 통하여 강단으로 진

행하지 않고 취장 뒤로부터 혹은 뒷문이나 앞문을 통해서 강단으로 나아

가므로 강단이 무대화 되고 회중과 분리되어 버린다. 강단과 회중석은 을

타리를 치거나 줄을 둘러 회중석과 차단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개신교

적 예배가 아니다. 예배당의 강단과 회중석을 차단됨이 언이 하나의 공간

을 이루어야 한다. 예배시작에 있어서 목사,순서맡은 자들, 성가대 순

으로 줄을 이루어 이들이 반드시 회중석 가운데로 진행하여 강단으로 나

아가는 것이 개혁교회의 일반적인 예전이다.

8) 음악과 찬양이 살아 있는 예배

우리가 쓰는 찬송가의 대부분이 18, 19세기 영미교회의 산물이기 때문에

우리의 시대와 우리정성에 맞는 곡을 삽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성가대의 찬양은 종교적 감명을 불러 일으키는 데 좋은 수단이며 복음적

진리를 전달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악기음악은 예배시작전, 찬양의 전주

나 후주, 간주, 기도중 조용한 음악, 헌금하는 동안, 그리고 축도 후 독주로

사용된다. 찬양은 예배에 영감을 주고, 예배를 촉진시키고, 예배내용을

알려주고 예배를 인도하고 예배내용을 풍부하게 하고, 찬양자체가 예배이

다14) 이제는 평신도들이 듣고 감동을 받는 수동적 차원에서 스스로 참여

하여 부르는 경배와 찬양의 적극적인 순서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13) 김영재, "한국 遣회 예배에 대한 반성과 갱신을 위한 제언", 성경과 신학

제 16권, 1994, 115

14) Bruce LeatblacB, ft·music, Worship and the ft·linistr!'of the Church

Western Consen·atit·e Bap狀.it 壽臺rina?·, Po減land, Ore鷺on ?壽75, il-,i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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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21럭기 여비의 새모덜

9) 평신도 그리고 남녀가 함께 참여하는 예배

세계교회와는 달리 한국 교회만이 독특하게 발전시 켜온 예배형식 가운데

목사와 평신도, 또는 남자와 여자를 분리시키는 이중강단 사용하므로써 강

단을 성역화하는 것, 예전을 설교를 듣기 위한 준비행위처럼 여기는 것, 예

배시간 중 헌금자의 이름을 부르고 축복기도를 하는 것, 축도사 손바닥을

아래로 향하여 마치 목사가 축복을 내리는 듯한 자세 등은 비성경적이다.

목사가 남녀 평신도들과 모두 함께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제사장"(벧전

2:5)으로서 예배를 드리고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하여 자신을 제물로 드

린다. 이것이 영적인 제사이다. 평신도와 여성들도 모두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제사장들이다. 그러므로 더 이상 성직자의 중보적 역할이나 중세교

회적인 성혜전의 중보적 제물이 필요없다.

평신도는 중세 카톨릭교회나 오늘날 한국보수교회에서 처럼 예배의 참석자

나 구경군이 아니다. 이들은 목회자와 함께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동역자이

다. 신약시대의 예배는 더 이상 구약시대처럼 성직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평신도와 여성들은 성경봉독과 기도와 사회와 전도 및 구역상황보고, 헌금

봉헌와 성가대 찬양의 순서에 참여할 수 있다.

10) 역동적이고 통일있는, 주제에 맞는, 우리 실정에 맞는 예배의식 제정

1> 한국 교회는 예배시작에 있어서 종을 치고 묵도함으로 예배를 시작하

는 특이한 관습을 가지고 있다. 종치는 것은 카톨릭전통이고 묵도는 일제

때 궁성요배의 관습에서 온 것이라 한다. 유럽과 미국의 장로교와 개혁주

의 전통의 교회에서는 예배시작 定時에는 올겐전주에서부터 예배가 시작된

다. 회중은 늦어도 10분 전에는 다 예배당에 들어와 기다린다. 前奏가 끝나

면 예배시작 찬송을 부른다. 그러면 인도자가 강대상으로 나아와 "예배합

시다"( Call to worship)라고 말한다. 한국 교회 예배도 종치고 묵상으로

시작하는 것보다는 인도자가 은혜받은 성경귀절을 봉독하고 난후 "우리 다

함께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드립시다"라고 선언함으

로 시작하는 것이 성경적 이라고 생각한다.

2> 한국장로교회는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시종 앉아서만 예배를 드린다.

그러니 예배를 본다는 말이 나온다. 이것은 지루한 것이다. 예배에는 하나

님을 만남을 향한 진행과 진전이 있어야 한다. 예배의 시작부터 모든 순

서는 말씀의 선포를 향한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 신앙고백과 성시

교독에는 일어서고 그리고 폐회찬송과 축도에는 기립하는 것이 좋고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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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예배의 신학/ 김영한 45

고 성경봉독에는 회중들이 일어나는 것이 좋다. 독일 교회 전통 그리고 일

부 개혁전통에서는 말씀의 봉독에는 회중들이 반드시 일어난다. 우리 한

국에서는 감리교에서 이 전통을 이어 받고 있다.

3> 주일 대표기도는 서구에서는 목회기도로 주로 목회자들이 하지마는 우

리 한국에서는 장로들이 하고 있다. 이것을 목회자기도를 대체하고자 하는

시도하는 교회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 교회 예전의 좋은 관습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니 구

태어 바꿀 필요는 없다. 목회자의 기도는 헌금봉헌기도와 설교전후의 기도

와 축도에도 할 수 있기 때문에 평신도들이 회중대표기도에 참여하는 것은

21세기 예배를 위하여 바람직하다 단지 기도에 대한 교육을 담당자들에게

주지시켜 너무 시간을 끌지 않도록하고 (5분 내외) 교회적 관심에서 필요

한 사항에 대하여만 기도하고 개인적인 사항은 피하도록 해야한다.

4> 그 주일 예배의 주제(예컨데, 환경주일, 북한동포돕기주일, 경제난국타

개주일, 선교주일 등) 를 정하여 그 주제에 맞는 순서를 역 동적으로 진행

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예배순서는 큰 흐름으로 입문(입례송-예배에의부름-기원)-찬양(화답송-찬

쏭)-회 개 와 신앙고백(신앙고백-성 시 교독-송영-회 중기 도)-헌신(성 경봉독과

설교본문 봉독-광고-헌금-찬양-새 가족환영)- 말씀의 선포(설교-사명-설교

자기도)-보냄(축도-폐회송-성도의 교제)이 바람직하다.

5> 선교 2세기를 맞이하면서 한국 교회도 통일적인 禮典(liturgy)을 제정해

야 한다.

한국 교회는 예배에 대한 일정한 의식이 없다 각 교단마다 다르고 같은

교단도 목사의 선호도에 따라서 예배순서가 각기 다르다. 그렇다고 각 교

단 예배의식의 특수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모두 비숫하다. 따라서 예전에

있어서 종잡을 수가 없다. 영국 청효도들이나 독일의 경건주의자들은 예

배의식서를 가졌으나 자유롭게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것을 선호했다. 그러

나 이들의 자유는 무지한 자유가 아니라 이들이 역사적으로 자라온 국가교

회의 예배의식서 를 배경으로 하여 자유로운 예배를 향유한 것이다. 우리

한국 교회에는 평신도의 훈련과 성숙을 위하여 그리고 목회자의 보다 성숙

한 예배의식 집전을 위하여 다양한 모범기도문과 예배지침서, 예배의식서

같은 것이 필요하다.

11)

이~

진정의 예배 - 예배를 준비하는 자세(정성이 것등)의 중요성과 진리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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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21세기 예배의 새모델

첫째, 진정의 예배는 예배자의 정성이 깃들여 있는 예배이다

예배는 시작시간과 더불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그 준비과정이 중요하다.

예배가 시작되는 정시에 효회 현관문에 들어서게 된다면 그것은 이미 늦은

것 이 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가운을 입고 헌금을 준비하고 찬양을 준비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예배이다. 평신도들은 십분 전에 나아와 준비기도를 드리는

것 자체가 하나의 예배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정성이 것들지 않는

예배와 성전은 하나님 앞에서 가증스러운 제물이요 처소밖에 되지 않는

다. 46년 동안 공들여 지워졌던 예루살렘 선전은 그 규모와 웅장함에 당

시 최고 최대의 건축물이었다. 이 성전에서 18만마리의 희생제물이 제단

위에 받쳐졌다. 그러나 그후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허물어 졌다.

그것은 에 배드리는 유대인의 자세가 하나님 앞에서 열납될 수 없는 불신앙

에 비롯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진정의 예배에는 드리는 자의 전 인격- 생

각과 가정과 의지-이 헌납되어 있다.

둘째, 진정의 예배는 진리의 예배이다. 진리의 예배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

한 예 배 이 다.

오늘날 서구에서는 종교다원주의시대를 맞이하여 여러 종교가 같이 예배를

드린다. 기독교와 불교와 이스람과 힌두효가 공동으로 하나의 신에게 예배

를 드린다. 이러한 예배는 인간적으로는 서로에게 관용적일 수는 있으나

기독교신방적로는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방법 아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진리의 예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예배가 아니기 때문이다.

12) 정의로운 삶의 예배

예배의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드리는 자의 영

성이다. 예배형식의 갱신 자체가 진정한 예배갱신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하

나님은 예식이나 어떤 형식보다는 예배드리는 자의 정성과 헌신을 흡양하

신다. 예배는 예배시간의 헌신행위와 의식과 예식에서 끝나지 않는다. 예

배는 신자의 생활 전체이다. 주일의 대예배는 여샛동안의 삶의 결실이요

총화가 되어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 앞에서 성도가 드리는 예배는 향기있

고 하나님 받으시기에 합당한 산제사가 된다.

신자 자신의 삶과 영성이 직접 연출되는 예배여야 한다 신자의 매일의

삶자체가 하나님의 뜻을 이 땅위에 이루어 드리고 하나님파 동행하는 구별

된 삶이 될 때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앞에 구별된 제물이요 제사가 되는 것

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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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예배의 신학/ 김영한 47

아모스선지는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물같이 하수같이 흘리는 것"(암

5:21-24)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의 조건이라고 선포했다.

맺음말

칼빈이 지적한 바같이 아무도 특정한 예배형식을 표준적인 것으로 주장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21세기의 예배모델이 이러한 것이라고 제시할 수 는 없

다. 단지 다가오는 21세기에 예배의식이 이러한 정신과 형식이 되었으면

하고 제안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예배를 갱신하는 본질적인 것은 어떤 형식이나 예식을 옮겨오는 것이 아니

다. 또는 첨단적인 연출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새들백교회(Saddleback)와 월로우크릭(Willowclick)교회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으로 예배의 모습을 만들 수 없다. 그것은 우리에 해

답이 아니라 하나의 참고만 될 뿐이다. 하나님의 성령이 임재하는 영적

만남의 장을 연출해내는 것이다. 그것의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이

다. 하나님의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를 통하여 역사하시기 때문이

다. 그리하여 회개와 결단과 찬양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하여 새로운 삶

의 체험의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다. 다가오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예배의

원리는 종교개혁적인 원리인 말씀중심, 그리스도 중심, 성령중심의 예배이

다. 여기에 현대교회는 새로운 임기응변적인 테그닉이 아니라 이 시대의

세속적 도전을 이겨낼 수 있는 영적 쇄신을 필요로 한다.

은혜롭고 바른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평신도 각자가 예배의 중요성과 의

미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예배를 집례하는 목

회자 자신이 예배에 대한 성경적 이고 신학적인 이해를 가지고 교인들을 바

르게 가르쳐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 교회에 적절한 예배의 신학이 정

립되어야 할 것이다

예배의 감격을 회복해야 한다. 낮예배든 저녁에배든 삼일예배든 모든 예

배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신령한 영적 체험이 있어야 한다. 신자가 예배에

서 말씀의 선포와 기도와 찬양과 교제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함으로

서 은혜를 받고 감동을 받으면 그 예배는 그 신자에게는 기다리는 예배가

된다.

말씀의 선포와 기도와 찬양과 성도의 교제와 성레전의 거행 속에서 다가

오는 하나님 나라의 축제를 선취하고 불신자들을 향하여 하나님 나라의 증

언이 열리고, 하나님의 임재와 그의 위대하심을 경험하는 감동어린 예배

이것이 바로 21세기를 향한 예배의 새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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