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에 있어서의 기독교 문화 형성의 과제

- 서 광 선 ( 기 독 교 윤 리 학 ) -

1 . 기 독 교 와 문 화

초대교회의 유명한 교부 테르툴리안(Tertullian)은 희랍, 로마시대의 문화

적 전통에 살면서, 그 나름대로의 문화적 상황 안에서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물었던 것이다. 그의 질문은 아주 간결한 것이었지만,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로 심오하고 복잡한 문제로 새삼 제기되는 것이다. "예루살렘에게 있어서

아테네는 무엇인가?"하는 질문이었다. "예루살렘"이란 지명과 희랍문화의 중심

지 "아테네"라는 지명을 대립시켜 놓고 한 질문이다. 이 질문은 그리스도와 희

랍, 로마 문화의 관계를 묻는 질문이었다. 기독교신앙은 희랍, 로마의 문화적

전통과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테르툴리안의 입장은 한 마디로 말해서 "아테네는 예루살렘에게 있어서 아

무 것도 아니다"하는 것이었다. 기독교 신앙은 희랍, 로마의 문화적 전통과는

독립된 것이고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었다. 기독교신앙은 본질적으로 반 헬레

니즘적이며, 믿는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부조리이기 때문에, 합리성을 절대 기준

으로 하는 희랍, 로마의 철학적 전통과는 대립되는 것이며, 상관없다는 입장이

었다. 신앙이 합리적이기 때문에, 즉 희랍로마의 전통에 부합하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는다는 것이었다.

서구 기독교의 역사 전체가 테르툴리안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점철되었

다 해도 지나친 관찰이 아닐 것이다. 서구 기독교 역사가 내린 답변은 모두 테

르툴리안의 답변과 일치하지 않는다. 오히려 테르툴리안의 답변과는 반대의 것

이었다 하겠다. 예루살렘에게 있어서 아테네의 영향은 대단한 것이었으며, 실로

기독교 역사는 본질적으로 아테네와 예루살렘의 결함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적 합성의 과정에서 헬라적인 것과 유태적인 요소

들 사이에 아무런 긴장도 없었다는 것이 아니다. 그런 긴장과 대결은 얼마든지

있었다. 따라서 테르툴리안의 입장이 전혀 틀린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서구 기

독교 문화의 역사는 "예루살렘"과 "아테네"의 대립과 결합의 우여곡절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2 . 기 독 교 와 반 문 화

니이버(H. Richard Niebuhr)는 "그리스도와 문화"라는 책에서 바로 테르툴

리안의 문제를 다루었다. 서구 기독교 역사안에서 기독교문화와 사상의 형성과

정에서 있었던 예루살렘과 아테네의 관계를 다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는 노력

을 하였다. 그리스도와 문화, 혹은 예루살렘과 아테네와의 관계의 첫째 유형은

역시 테르툴리안의 입장에서 표현되는 대립관계라 하겠다. 로마 교부 테르툴리

안처럼 그리스도는 문화와 대립되는 것이었다. 이 둘은 혼합될 수도 없고 타협

될 수도 없다. 이 둘은 서로 배타적이다.

네로황제를 비롯하여 300년 동안 로마황제들은 기독교를 받아 들이지 않았

다. 박해의 역사는 초대 기독교회의 역사였다. 로마제국의 문화는 기독교를 배

척하였을 뿐 아니라, 기독교 역시 로마제국의 문화와 접촉을 가지면서도 그 문

화와 대결하였고, 타협하지 않았다. 기독교는 오히려 로마제국의 문화에 적대적

이기까지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입장, 그리스도와 문화의 대립관계는 하나의

기독교 전통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기

독교를 종교적으로 이질적인 것으로 보고 이단시하는 문화에서는 더욱 기독교는

문화와 대립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대립적 관계는 기독교가 서구 문화에 깊이 뿌리를 박고, 서구문화

의 일부분이 되어 버린 중세에 이르러서도 수도원을 중심으로 한 탈세속운동이

나 신비주의 운동에서도 드러난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이러한 배타적이며

대립적 관계는 기독교를 박해하는 문화권 안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문화권 안에서도 이른바 그리스도와 기독교문화에 대립관계가 성립되었다는 것

이다. 이것은 20세기 독일에 있어서도 가능했던 것이다. 나치스는 기독교를 박

해하는 반기독교적 단체가 아니었으나, 본회퍼와 같은 신학자는 엄연히 그리스

도와 기독교문화를 대립시키면서 나치스 문화에 저항하였던 것이다. 본회퍼가

나치스 감옥에서 제창한 "기독교의 탈종교화"는 바로 기독교의 "탈문화화"를 말

하는 것이었다.

한국에 천주교가 들어왔을 때 천주교와 이조왕조의 통치문화의 관계는 이

첫째 유형에 해당되었던 것이다. 한국 천주교의 역사는 박해의 역사였다. 1784

년 이승훈이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귀국한 이래, 순교와 배교로 한국천주교의

역사는 점철되어 왔다. 이름 있는 교난만 해도 1791년의 가가가가, 1801년의 가

가가가, 1827년의 가가가가, 그리고 1899년이후 6년동안 계속된 가가가가이 있

었고, 수많은 한국천주교 교도와 외국 선교사들이 순교의 길을 갔던 것이다. 어

떤 외국사람이 한국 천주교의 박해를 목격하고 한 말중 "고대 로마제국의 어떤

기독교인이 19세기 초반 70년간에 걸쳐 한국교인들이 겪은 것과 같은 시련과 형

고를 겪었었는지 잘라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것은 그 참상을 잘 말해주는

것이다.

한국천주교의 박해 이유는 단적으로 말해서 천주교는 반문화적이었기 때문

이다. 이조왕조의 사상적 문화적 뿌리는 숭유사대였다. 종교적으로는 유교를 그

종교문화로 삼았으며, 정치적으로는 중국에 의존하는 것이었다. 숭유는 곧 척불

을 말하는 것이었는데 척불의 이유는 불교는 무부무군이라는 것이었다. 불교가

출가입산의 견성성불을 주창하니 출가함은 무부요, 입산하여 현실을 도피함은

무군이라는 것이다. 어버이와 임금을 마다하는 불교는 유교적 정치문화와 종교문

화에서 도저히 용납될 수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여신 최승로 때부터 이조왕조

오백년 동안의 통치 이데올로기였으니, 이러한 문화적 입장은 이퇴계에 이르

러 정통 이념으로 더욱 경화되었다.

이조왕조가 천주교 기독교를 박해한 문화적 근거는 헌종의 척사윤음(1866

년 8월)에도 밝혀져 있지만 "천주교의 천당지옥설은 불교의 가장 진부한 교설과

마찬가지이며, 사단오륜을 폐하고, 멸기난상함으로써 다 오랑캐요, 짐승들"이

기 때문이었다. 결국 천주교는 충효의 도리에 어긋날 뿐 아니라 천주교의 교리

자체가 상식을 벗어난 혹세무민하는 것이라고 공박하고, 나아가서 그것은 국기를

흔들어 놓은 것이라고 박해한다.

일제 통치하의 한국 개신교의 민족주의적인 입장에서 일제에 저항한 것도

있으나 문화적으로 일본제국주의적 문화통치에 반대하였던 것이다. 신사참배 반

대가 그것이었다. 그리고 그 이전에 한국의 개신교는 천주교보다 더 강력하게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한 배타적 입장을 고수하였던 것이다. 예수를 믿고, 개종

한다는 것은 한국적인 것을 모두 버리는 것이었다. 선교사들이 쓴 기록을 보면

기독교인들이 교회에 나오기 전에 반드시 집안의 귀신 단지들을 깨버리고 귀신

종이들을 불사르고 나왔다. 기독교 신앙과 무속신앙은 양립할 수 없다. 기독

교인은 관혼상제에 있어서 "한국식"이 아닌 "기독교식"을 따라야 했다. 한국의

노래 가락이나 유풍을 따를 것이 아니라 "기독교식"을 따르고, "찬송가"를 불러

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극단적으로 기독교인이 제사를 드린다거나, 굿을 한다거

나, 제사 떡이나 굿 떡을 먹는 것 조차도 "죄"가 되며 부정한 것이 된다고 가

르쳤다. 아마도 한국의 기독교는 그 초기부터 가장 문화 배타적인 성격을 띈 것

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다고 하겠다.

3 . 문 화 적 기 독 교

콘스탄틴 대제가 밀라노칙령에 의하여 232년에 기독교가 국교로 인정을 받

으면서 서구의 기독교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문화의 일부분이 되었다. 세속문화

가 기독교를 받아들였고, 문화 그 자체가 기독교화 해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서

구문화 전체가 기독교화 함으로써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동화된다. 서구문화는

"기독교 문화"라고 할 때 "그리스도"와 "문화"는 대립관계에 있거나 상호 배타

적인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다. 니어버(Niebuhr)의 말대로 하면 "문화의 그리스

도"(Christ of culture)가 되는 것이다.

교황이 서구사회를 수백년 동안 정치적 영도자로 군림하고 있을 때, 그 정

치 문화는 바로 종교문화였던 것이다. 서구 문화는 기독교문화가 되었던 것이

다. 따라서 르네상스 이후 근세 서구사회는 또 몇세기 동안 문화 그 자체가 비

기독교화하고 세속화하는 과정을 걷지 않을 수 없었다. 정치적으로 볼 때, 근세

서구사회는 왕권을 신권으로부터 분리시키고 독립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왕권

신수설"은 그리스도와 문화가 일치되는 사회에서나 허용되는 것이었다. 그리스

도와 문화가 서로 배타적인 경우에서는 왕권이 그리스도에게서 왔다고 하는 것

은 양쪽 모두 모욕이며, 혹은 모독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구 근세의 문제

는 중세기독교 문화에서 탈기독교화하는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또한 왕권의 신

수를 박탈한 근세시민사회는 그 왕권의 근거를 민의에 두는데 성공하였던 것이

결국 왕권까지도 세속화하여 입헌공화제를 택하기에 이르고도는 국가권력과 분리

되게 된다.

표면적으로, 법적으로 현대 시민사회는 그리스도와 문화는 분리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분리관계는 로마제국시대의 대립관계와는 다르다. 서구 시민사회

에 있어서 그리스도는 그 지배적 이데올로기이며, 그 정신적 기반이 되고 있는

한 "분리는 되었어도 동질적인 관계"(separate but the same)이라는 관계를 가

진다는 것이다. 이때에 그리스도는 정치적 종교의 기능을 다하게 된다. 어느 사

회나 그 사회가 어떠한 상징의 도움으로 통합되고 그 근원과 존재를 위한 투쟁

과 그 운명을 신화화된 이야기들로 표현하고 있는 한 정치적 종교는 존재한다.

국가적 기념일이나 경축일에 국립묘지와 권위적 상징에, 그리고 대통령의 연설

과 학교 교과서에서 정치적 종교가 존재하고 있다는 말이다. 기독교가 서구사회

에 있어서 정치적 종교라는 것은 그리스도가 그 문화의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되

었으며, 그 정신적 지주이며, 근본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로버트 벧라(Robert Bellah)는 "미국에서의 시민종교"라는 논문에서 미국

의 역대 대통령의 취임연설을 예로 들면서, 교회와 국가가 엄격하게 분리되었다

고 하는 미국에도 이상한 형태의 정치적 종교가 존재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

히 피그림(pilgrim)조상들을 들추어 내는 것을 보면 메시아적이고 여기에는 출

애굽이 있고, 선민사상이 있다는 것이다. 가령 죤 F.케네디 대통령은 구약성서

의 선지자들을 상기시키면서 이들이 "혁명적"이며 사회비판적인면을 강조한다

는 것이다. 최근에는 "공산주의"를 미국의 정치적 종교의 원수로 돌리고 있다.

이 정치적 종교는 프로테스탄트도 아니고 천주교도 유태교도 아니지만, 막연한

"유신론적" 종교성을 갖고 있으며 어떤 종류의 운동에 국민들을 동원시킬 수 있

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민종교는 극단적 우익사상과 국가적

"권력의 교만"(arrogance of power)을 낳을 수도 있고 미국식 생활양식을 특별

한 축복, 기독교적 축복으로 믿고 그것을 세계에 퍼뜨려야 한다는 오만한 종교

로 이끌어가기 쉬운 것이다.

벧라가 말하는 "세계적 시민종교"는 아무리 좋게 보아도 "미국의 꿈"을 파

괴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성취시키자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러한 결과

는 처음부터 미국의 시민종교가 가졌던 종말론적 소망이었다"고 한다. 이것은

역시 에큐메니칼 기독교인의 꿈으로서 기독교적 국가종교를 인류통합적 종교로

해서 이것을 세계적 시민종교로 승화시키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소위 에큐메니

칼한 발언들은 대개 이러한 방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피터 버거(Peter Berger)와 같은 종교사회학자는 이러한 시민종교화한 기

독교를 비판한다. 문화의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다. 1061년에 출판된 "거룩한 회

중의 소음"이란 책에서 미국의 시민종교를 비판하면서 미국의 시민종교적 체제

를 타파하는 일이야 말로 기독교인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역설한다. "우리의 상

황에 있어서 하여야 할 신학적 작업은 이 세상적인 미국종교에 물결하여 기독교

신앙의 종말론적 성격을 강조하고, 미국국교인들의 철저한 율법주의에 대결하여

믿음으로써 의롭게 된다는 것을 내세우고 성공과 행복을 찬양하는 문화와 대결

하여 십자가의 의미를 설명하는 일일 것이다." 피터 버거는 "문화화된 기독교"

를 비판하면서, 기독교는 문화와 대결하여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비기독교적 문화권에 살면서 기독교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처음부터 기독

교는 문화와 대결관계에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밖에 없다. 기독교인은 재래적인

문화영역에서 소외되거나 이탈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으로서 기존문

화와 대결하기도 하지만, 기존문화는 기독교를 배척하게 된다. 이 경우 기독교

인은 소수에 머물게 된다. 이러한 상태에서 기독교인들은 문화 전체가 "기독교

화" 됨으로써 기독교적 생활양식이 받아들여질 뿐만 아니라 문화 그 자체가 "기

독교적"이기를 바라게 된다. 심지어는 기독교가 대다수의 종교가 되기를 바란

다. 기독교인이 아니면 세상에서 행세할 수도 없고, 기독교인이어야만 입신출세

할 수 있다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일제아래 정치적 이유와 종교적 이유로 박해를 받으

면서 그리스도와 문화의 대결의 쓰라림을 경험하면서 기독교적 국가를 해방된

메시아 왕국으로 동경하며 기도하였다. 기독교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박해를

받아야 하고 숨어서 살아야 하는 설움은 없기를 염원하였던 것이다. 문화의 기

독교가 되어야만 소수 기독교인들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

었다. 1945년 8.15해방을 맞이하면서, 그리스도의 상징인 미국이 해방군으로 한

반도에 상륙하고, 남한에 기독교인 대통령이 제일공화국을 형성할 때, 성경책에

손을 얹고 대통령 취임서약을 하는 광경을 보고, 급격한 변화를 경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유롭게 예수를 믿을 수 있고, 기독교인이 사회적 인정을 받고, 정

치,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기독교적 언어와 심볼이 판을 치기 시작하면서,

그리스도와 문화의 관계가 이질문화 속에서 동화되는 듯한 인상을 받았던 것이

다. 이것이 과연 선교사들의 궁극적인 성공인가 하는 질문을 가지게 된다. 그리

고 숫적으로 말해서 전체 인구의 3/1이 넘어야만 기독교문화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며, 또한 전체 인구의 80%이상이 기독교인이 될 때 그 기독교문화의

질과 타당성을 다시 한 번 묻게 되는 것이다.

4 . 문 화 위 의 그 리 스 도

"기독교화"란 문화에서는 곧 그리스도의 특수성을 모색하고 강조하기 시작

한다. 기독교가 보편화된 사회에 있어서, 사회화와 문화화 이상으로 기독교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이것은 가령 유교가 보편화 했던 이조 왕조의 사회

에 있어서는 특별히 유교를 믿는다는 것보다는 충실한 사회인, 혹은 문화인이

되는 것이었다. 기독교문화 안에 살면서 유별나게 기독교인이라는 것이 무엇일

까 하는 질문이 나오게 마련이다. 기독교인들은 한편 그리스도가 기독교문화와

는 다를 것이 없다고 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

리스도와 기독교문화의 대립이라는 것은 결국 기독교화한 문화, 즉 니이버의 제

2유행인 "문화의 그리스도"(Christ of culture)에서 제시되는 질문인 것 같

다. 그리고 그 형태는 이 제 2유형을 닮고 있다 하겠다.

니이버가 그리스도와 문화의 관계의 제 3유형으로 분류하는 것이 바로 이

러한 관계이다. 즉 한편 그리스도와 문화는 다를 것이 없다고 하면서도 또한 그

리스도는 문화를 초월하는 위치에 있으며 또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니이버는

이 관계를 이름하여 문화 위에 그리스도라 하였다. 이러한 상위적 위치의 관계

는 전통적으로 율법과 은혜, 일과 믿음, 이성과 신앙 등의 관계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을 말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율법과 문화는 동일시 되었고, 일과 이성 역

시 문화와 동일시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관계에서 그리스도, 믿음 혹은 은혜는

율법이나 일이나 이성을 모두 초월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도식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과 신학에서 볼 수 있다. 토마스는

인간의 이성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해 낸다. 자연신학이 그에게 있어서는 가능했

던 것이다. 인간의 이성으로 자연 안의 질서 속에서 신의 존재를 귀납적으로 추

리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기독교 철학이 가능했던 것이다. 철학이라는 문화의

테두리 안에서 기독교는 증명이 되며 논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거스틴이나

토마스와 같은 서구 철학자들에게 기독교는 철학적으로 가능한 것이었다. 기독

교는 철학적 종교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리스도는 문화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서구철학은 기독교를 사상적으로 가능하게 하였으며, 또한 기독교는

서구철학과 형이상학과 윤리학의 기본이 되었던 것이다. 기독교철학이 서구철학

의 대종을 이룰 수 있었다면, 그것은 기독교와 서구문화의 관계에서 이해될 수

있다 하겠다.

그러나 토마스는 기독교가 철학의 전부가 아니며, 또한 철학이 곧 기독교

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그리스도는 문화 위에 있다는 생각

이고, 그것은 철학과 문화의 한계를 설정하는 것이었다. 철학은 신의 존재를 증

명하는 추리의 과정까지 할 수 있으나, 철학의 힘으로 기독교의 신비를 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성의 영역과 계시의 영역은 전혀 다른 것이고, 계시의 영역

은 이성으로부터 단절되어 있으며, 초월적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신의 존

재를 추리할 수 있는 것은 이성과 철학의 영역이나, 신의 속성이나 신의 활동

에 대한 것은 신앙과 계시와 신학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토마스는 기독교 신학자답게 계시의 영역, 혹은 그리스도의 영역을 초월적

인 차원에 두었다고 하겠으나, 아직도 그리스도와 문화의 이원적 계승화를 면하

지 못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문화는 기독교문화라는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

을 것이다.

그리고 문화에 어떤 한계, 즉 자연, 혹은 이성 등의 한계를 긋고, 계시와

신앙을 그 한계 위에 둔 것은 토마스적 특징이라 하겠다. 이러한 방향은 현대에

이르러서 칸트에 의하여 더욱 굳혀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칸트는 문화를 기

독교문화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세속적, 과학적 지식, 즉 유클리드의 기하학과

코페니쿠스의 천문학과 뉴튼의 문리학이 지배하는 과학문화를 인식하였다. 칸트

는 그리스도와 이 문화의 관계를 설정하면서 순수이성비판을 저술한 것이다.

"지식의 한계를 설정함으로써 신앙의 여지를 주고자 함"이 그의 목적이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영역과 문화의 영역을 구별하고 이원화시켰던 것이다. 그러

나 이 양자간의 관계는 역시 토마스적인 것이었다 하겠다.

칸트에 의하면 결국 세속적인 과학적 문화는 나름대로의 논리와 구조를 가

지고 있으며, 그리스도로 대표되는 윤리와 형이상학, 즉 "가치의 세계"는 그 위

에 있는 것이라고 구분하여 놓고, 초월의 세계를 현상의 세계 위에 두고 있다.

따라서 현상의 세계에 살고 있는 인간은 동시에 문화를 따라 갈 수 있고, 또 그

리스도도 따라 갈 수 있게 되었다. 충실한 과학자가 동시에 독실한 기독교인이

될 수 있는 길이 트인 셈이다. 그것은 그리스도는 문화 위에 있으며, 과학의 영

역과 신앙의 영역은 다르기 때문이다. 과학이 신앙을 입증할 필요가 없어졌으

며, 또한 신앙이 과학 때문에 희생당하지 않고, 오히려 독립적 정신적 영역을

독차지하기에까지 이르렀다고 할 수 있겠다.

문화위에 그리스도라고 하는 상위적 도식은 칸트에 의하여 오히려 공존의

관계가 되었고, 이러한 공존관계는 계몽주의시대 이후의 서구사회의 시대적 정

신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리스도는 과학문화와 공존하면서 서로의 영역과 그

한계를 점잖게 지켜 왔던 것이다. 이것은 서구사회의 다원화와 문화적 복수화를

가능하게 하였으며, 또한 이것은 민주주의와 자유의 기틀이 되기도 하였던 것

이다. 중세의 교권시대의 그리스도는 문화를 단일화시켰고, 단색화시켰는데, 칸

트 이후의 그리스도는 자신까지도 다양화시키는데 성공하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관계가 그리스도와 서구의 과학문화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동양

의 종교문화와 연결될 때, 다른 문제가 제기된다. 먼저 그리스도는 동양종교 위

에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동양종교는 서로 정중한 관

계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동양종교의 문화권 안에서도 그리

스도는 문화위에 나름대로의 한계를 고수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도 제기

된다. 동양종교의 기초 위에 그리스도가 가능하다는 말이 가능한 것이 아닐까?

마치 토마스의 기독교철학이 있어서 철학의 기초로서 신 인식이 가능했던 것처

럼, 동양문화권에 있어서는 동양종교의 전이해의 기초위에 그리스도와 계시가

가능한 것이 아니었던가 하는 말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그리스도는 동양문화와 배타적인 관계에 설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그리스도 계시를 위하여, 오히려 동양문화의 전이해가 필요해지게 된다

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와 동양문화의 대화는 필수적인 것이 되고, 또 그

관계는 다양화하는 현대사회에서 당연한 것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화위의 그리스도의 도식은 그리스도 우위라는 위치를 결코 버리

지는 않는다. 토마스도 그랬고 칸트도 그랬다. 동양문화 안에서는 더욱 이 우위

성을 포기하지 않는 한도 안에서의 이 도식은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전제한 것이

며, 그렇지 않고서는 선교나 전도나 개종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5 . 그 리 스 도 와 문 화 의 변 증 법

우리는 다시금 그리스도와 문화의 관계가 대립되는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숙명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스도와 문화가 동일선상에 놓여졌다고

하는 도식을 만들어 놓으면서도 또한 문화가 그리스도화하는 현상을 보고 있으

면서도, 역시 그리스도와 문화의 이질성을 보게 되거나 혹은 그 이질성을 강조

하여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 그리스도와 문화는 항상 대립하게 되어 있는 구

조적 모순을 가지고 있는가? 그것이 그리스도의 본질적 특징인가? 그리스도와

문화가 동화 혹은 동질화 한다는 것은 그리스도도 모르고 문화도 알지 못하는

신학적 무지의 소치인가?

어거스티누스나 루터의 입장은 그리스도와 문화는 변증법적 긴장관계에 있

다는 것이다. 변증법적 대립,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와 문화가 가지는 숙명적 관

계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쪽은 문화쪽을 건드려서는 안된다는 말이 아

니다. 이것은 피차 마찬가지이다. 이 양자의 숙명론적 관계는 양쪽이 서로 서

로를 동화시키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려 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양자는 변증법

적 긴장관계를 가진다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 무관심하는 평행선의 관계가 아

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변화시키려는 동적관계에 놓여 있다는 것

이다.

그러나 결국 역사의 끝날까지 이 대립과 대결은 계속되며, 이 대립과 대결

에서 파생되는 갈등과 낙심과 고통 역시 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문화의 대립관계는 니이버의 제 1유형, 즉 Christ against

culagainst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나 대립관계에 있어서는 상호대립적이다.

Culture against Christ의 호전성이 있는 것이다.

서로 자유를 허용하고, 보충하는 따위의 우호적 관계가 아니라 다분이 도

전적인 관계를 가진다. 이러한 호전적이며, 도전적인 관계는 니이버의 제 5유

형, 즉 그리스도는 문화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양자의 대립, 긴장관계를 인정하

면서도 문화를 그리스도편으로 흡수하고, 개종시킨다는 이른바 개종식 해결방

법인 것이다. 그리고 이 제 5형에 전제되고 있는 것은 문화와 세속역사는 죄이

며, 오염되어 있다는 것이다. 문화와 역사는 그리스도에 의하여 회개하여야 하

며 회심하여야만 구원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제 5형은 제 4형의 변증법적 긴

장관계에서 그리스도의 도전성을 강조하고 또한 그것을 정당화시키는 입

장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문화는 계속 대립관계에 머문다. 제 4유형, 즉 그리스

도와 문화의 변증법적 긴장관계를 그리스도와 서구세속문화의 맥락에서 볼 때,

근세 서구의 역사는 오히려 문화 쪽에서 탈그리스도화하여 세속문화의 독자성을

되찾으려는 것이었다고 하겠다. 따라서 반드시 제 5유형, 즉 세속문화가 회개하

는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속 문화는 그 독자성을 찾게 되었다는

것이다. 변증법적으로 세속문화는 탈그리스도화 했으며 이제 세속문화가 기독교

의 개종을 말하게 된 것이다. 세속문화는 반드시 죄스러운 것도 아니며, 또한

악인 것도 오염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가 문화를 변화시키고

개종시키기보다는 오히려 문화가 기독교의 개종을 부르짖게 되고, 독립을 선언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서구적 세속문화의 긴장관계로부터 유추하여 볼 때, 그리스도

와 동양문화의 관계는 어떠한가? 그리스도와 동양문화 사이에도 영원히 건널 수

없는 평행선이 있는가? 그리고 그리스도는 동양문화를 변화시키는 입장만을 생

각할 것인가? 그리스도와 동양문화의 긴장관계는 과연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한국의 선교 역사를 볼 때 그리스도와 동양문화의 긴장관계는 갈등을 낳았

으며, 그 갈등 속에서 개종의 방향을 택하여 왔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역사를 가진 한국의 기독교회가 기독교문화를 형성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것은 나름대로의 문화를 형성한다는 것인가? 아니면 한국이 가지고

있는 전통과 문화와 어떠한 관계를 성립하고 형성하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