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가정과 교회교육
기독교 가정, 예배하는 가정인가?
홍명희(강사 / 장신대 예배학)
월간 [교육교회] 97.5월호
기독교교육원 제공
들어가면서
기독교 가정은 교회의 세포로서 존재한다. 각 가정이 신앙으로 살아서 숨쉰다면, 교회 또한 그렇게 되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한국 교회들은 가정예배를 적극적으로 권면하고 강조해 오고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가정예배는 가정에서 다른 사람들도 함께 드리는 예배와 가족구성원만이 드리는 예배를 말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말하고 있는 '가정예배' 라는 말은 가족 구성원만의 예배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이러한 '가정예배' 는 보편적으로 당연한 사실은 아니었다. 본 내용은 역사적, 사회적 변화에 있는 가정 상과 이에 상응하여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는 예배의 형태는 신학적으로 그리고 교회사적으로 어떻게 이해하고 정리하고 문제를 삼을 수 있을 것인가? 또한 바람직한 '가정예배' 의 형태는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지를 살피고 해답을 제시하는 가운데 이 글을 전개해 나가고자 한다.
기독교 역사로 본 가정과 가정예배
구약성서 시대에서 고대 가정은 중심에 아버지를 족장으로 하여 처, 자녀, 부모. 조카들까지 포함하는 대가족제도를 말한다.(창7:13, 출20:17, 삼상27:3, 삼하9:13)집이라는 범주에는 귀속된 종들과 때로는 손님들까지 속했다.(창17:12, 출21:6) 이러한 고대 가정은 아버지의 권위가 절대적이었고, 그도 또한 부모를 공경하고 그들에게 순종해야 했다.(출20:12)이러한 권위는 종교적인 역할에도 마찬가지로 이어졌다.
그러나 차츰 시간이 흘러가면서 종족과 가정에서 드리는 제사 규칙들이 예루살렘의 성소에서 드리는 제사로 중앙화되면서 가부장의 종교적 기능 역할이 약화하는 쪽으로 변화를 맞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의 종교교육에 대한 의무는 더욱 강화되어 갔다.(신6:20) 가정 공동체가 깨질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가족 구성원 중에 누군가가 이방신들을 믿게 될 때뿐이었다.
이러한 대가족 공동체였던 구약시대 가정의 모습은 신약시대로 넘어오면서 판이하게 다른 의미의 가정을 요청하게 된다. 엄밀한 의미에서 그리스도 복음 안에 서 있는 가정은 종족과 국가와 사회의 구분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의지로 선택되는 새로운 백성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었다. 그리스도는 제자로의 부름에서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그것의 결과로서 백배의 더 많은 집들과 형제들과, 자매들과, 부모님들을 갖게 된다고 말하였다." (막10:28-30) 이렇게 가정에 대한 이해를 파격적으로 확장시킨 것은 초대교회가 가정을 예배처소로 삼는데 신학적인 근거를 자연스럽게 제공을 했던 것이다.(행20:20, 고전1:16) 이러한 사실은 새로 형성된 초기 기독교 교회 공동체가 개별화되고, 가족 구성원간에 상당히 친밀한 관계 유지를 전제로 하는 오늘날의 시민적 핵가정과는 얼마나 동떨어진 형태의 것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기독교 탄압이 중지되고 전용 교회건물 내에서 매일 예배드리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지속되어 오던 초기 기독교사에 나타나던 가정예배는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교회에서의 예배는 예전중심으로 많은 절차에 의해서 치루어지면서 함께 참여하였던 성도들이 비교적 자발적으로 예배에 참석할 수 있었던 초대교회의 가정에서 드리는 예배는 제한을 받게 되었다.
특히 중세에는 오순절 다락방에서 드려졌던 예배와는 다른 사제중심으로 예배가 드려지고 인도되는 형태로 더욱 강하게 발전하게 되었다. 물론 신분이 높은 귀족들의 경우는 따로 작은 예배당과 전속 승려를 두어 일종의 가정예배를 드렸으나 이것은 오늘날의 가정예배와는 또한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러나 일반평민이나 농노계층의 가정에서는 주로 수동적이고 고정화된, 일정한 틀을 갖춘 기도행위나 성호긋기가 예로서 신앙생활의 중심에 놓여 있었다. 초대 교회에서 드려졌던 가정예배같은 것은 극히 예외였다.
종교개혁의 초기 당시의 열정은 매일 교회 예배를 가능하게 했으며 가정예배에 대한 특별한 필요를 느끼지 못하였다. 그러나 어른들을 교육함으로서 다시 강조가 되어 갔다. 루터(M. Luther)의 작은 요리 문답서(Kleiner Katechismus=KLK, 1529)는 신학자들을 대상으로 한 큰 요리문답서(Grosse Katechismus)와는 다르게 국민 교육적 차원에서 쓰여졌다. 이 글은 각 가정의 가장을 통해서 누구나 알아야 할 믿음에 대한 것을 쉽게 다섯부분(십계명, 믿음, 주기도문, 세례, 성만찬)으로 제한하여 소개한다. 이 부분들은 질문과 답으로 이어진다.
또한 가장이 온 가족에게 아침과 자기 전에 축복의 기도를 하는 기도문과 식탁에서 드리는 기도는 주기도문과 함께 또한 식사전과 식사후에 하도록 안내되어 있다. 가장에게는 이러한 가정예배를 책임질 뿐 아니라, 급한 경우에는 (위독한 상태에 세례 받지 못하고 죽어 가는 자녀) 세례까지 줄 수 있는 만인제사장설에 입각한 권한까지 부여받게 된다. 그래서 온가족의 믿음을 위해 교육하는 것이 아버지의 책임이 되었던 것이다.
또한 인쇄술의 발달에 맞추어서, 여러 교육서들이 출간되었고, 찬송가, 설교집의 편찬, 그리고 성서가 모국어로 번역되는 사실 등은 이러한 가정에서의 예배를 더욱 뒷받침해 주었던 것이다.
기독교 역사상 가정예배의 필요를 가장 절실하게 강조한 때는 경건주의 시대였다. 그러나 계몽주의의 출현으로 그 열기가 사그라지면서 19세기에는 가정예배를 드리는 가정을 '경건주의자'라는 부정적인 낙인을 찍었다.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은 비교적 자유로운 형태의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는데 커다란 특징은 두가지였다. 첫째는 초대교회처럼 가정들끼리 모이는 작은규모의 예배를 자주 드렸고 또 하나는 각 가정들을 중심으로 하는 오늘날의 가정예배로 통하는 가정예배와 가정신앙교육을 점차 발전시켜 나갔다. 물론 이러한 발전에는 과거의 제도와 생활틀에서 제한을 받지 않는 자유로운 신대륙의 사회적, 신앙적 배경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로마 가톨릭 교회도 '가정예전'에 관심을 가지고 개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전세계적으로 본다면 이제 기독교에서의 가정예배 또는 가정경건회는 보편화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강조하는데 있어서 적극적이냐, 소극적이냐 정도의 차이는 각 교파간이나, 민족성이 내재되어 있는 신앙의 내용에 따라 다른 것이다.
우리나라의 가정예배도 서구적 기독교에 영향을 받았으나, 한국적 기독교 역사의 독특한 배경이나, 신학의 흐름 또한 무시하기 어렵다.
한국 기독교 역사는 핍박으로 시작되었다. 외세와의 끊임없는 침략에 저항하는 힘으로 신앙을 지켜 나갔고, 성령을 간구하는 초대교회의 모습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한국교회는 또한번의 시련을 맞게 되고, 그후 사회적 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에서도 복음은 구석 구석 전파되고 있었다. 마을에 있는 교회는 그 교인들의 상황을 다 알고 있었고, 교회의 어른은 곧 마을의 어른이었다. 즉, 가정의 상황이 거의 교회 전체에 개방되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오늘날과는 달리 자연스럽게 어른들의 신앙생활에 대해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그래서 이 시대에도 가정예배를 드리는 가정이 있었지만, 교회는 '가정예배' 보다도, 가정을 심방하여 예배드리는 것을 계속했다.
60년대와 70년대는 산업화, 근대화를 목표로 하는 국가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맞물려, 교회도 여러 진통을 겪게 되는데, 그것의 결과로 여러 교파의 분열도 있었지만, 기복주의 신앙의 강조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된다. 좋은 믿음은 곧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어져 잘 살게 되는 것이 당연시되었던 시기였다. 이뿐 아니라 각 가정의 자녀들이 도시로 내몰려지게 되면서, 또는 전가족이 도시로 이주하게 되면서 교회는 그들의 고향과 가정의 역할을 대신하려 노력했다. 그래서 명절에는 교회에 모여, 잔치를 하기도 했고 성탄절도 각 가정보다도 교회에서 축제형식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 시기에도 또한 가정예배를 그리 크게 강조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앞서 말한 기복주의적 신앙과 신학의 단순화의 영향으로 한국 기독교는 대형화되기 시작했다.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랑방 교회 같은 형태의 가정을 중심으로 여기는 소규모의 교회는 시대적으로 핵가족의 고립화의 추세와 대형교회내의 익명성의 차가운 분위기를 극복하여 가정과 가정을 연결하려는 초대교회적 공동체에 초점을 두고 시작하였다.
핵가정의 등장은 이제까지 비교적으로 불분명했던 가정과 사회 사이의 경계를 공적, 사적 영역으로 분명하게 구별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핵가족은 개인화 또는 고립화의 추세를 상대적으로 강하게 드러내기 시작했고 따라서 지금까지 가족구성원들을 강하게 묶어주고 구속하던 기존의 교회제도와 예배 형태는 그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고립화되어 가는 가정들이 효과적으로 신앙생활을 계속 유지되게 하는 장치가 필요했다.
각 개인의 구원과 전도에만 힘써오던 한국교회는 올바른 기독교가정에 관심을 갖고 교육하는 데에는 여력을 가질 수 없었다. 그리고 예배 후에는 대부분 성별로 나누어진 곳에서 교육을 받거나 활동을 하게 되고, 자녀들도 주일학교의 각 부서로 나누어지기 때문에 오히려 교회는 가정이 주일에 모일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주지 못하는 원하지 않는 결과를 갖게 되었다.
기성교회는 이러한 각성으로 80년대 중반 이후부터 서서히 가정예배의 권장뿐 아니라 여러 프로그램을 통하여 바른 가정을 세우려는 노력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가정예배를 드릴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데 앞서, 가정이 무엇인가에 대한 기독교적 규명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기독교 가정의 의의
기독교 가정의 의의는 창조 질서에 그 의미를 둔다. 그러나 창조는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더이상 창조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적 결혼과 가정의 기본적인 과제가 있다. 즉, 창조주 하나님의 원래의 역사성을 초월하는 불변적인 결혼과 가정에 대한 뜻을 밝히는 데 있다.
일반적인 결혼은 창조 질서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이러한 창조 질서에 따른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의도를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서술하고자 한다.
첫째, 가정은 삶의 공동체이다.
가정은 기초적인 삶과 사랑에 대한 욕구를 채우는 곳이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간에 형제간에 서로간의 관계에서 이해를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만약 부부나 가정내에서의 사랑이 그리스도의 교회와 사랑에 합당하게 영향을 미친다면, 그들은 기독교적 삶의 활력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삶의 공동체란 창세기 2장 24절에 '한 몸이 된다' 로 잘 표현되는데, 이 히브리어 단어의 의미는 '한 인간이 된다' 이다. 이러한 결혼의 삶은 사랑의 '유일성' 을 전제로 한다. 바르트는 이러한 사랑의 유일성을 "인간이 갖고 있는 하나님의 형상" 으로 본다. 하나님의 유일성은 그의 유일한 존재 특성에서 보여지며, 또한 그의 백성들을 유일하게 선택하는 데에서도 볼 수 있다. 따라서 가족 공동체는 두사람이 유일하게 한 사람을 선택하여 사랑하는 데서 비롯되고 이것은 삶이 다할 때까지 이어져야 한다.
둘째, 믿음의 공동체이다.
기독교 가정은 부부간의 관계나 자식과 부모간 또는 형제간의 관계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관계와 하나님이 함께 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기독교 가정은 이 믿음의 공동체의 중심이다. 모세가 이혼 증서를 허락한 것에 대해 예수님은 '마음의 강팍함' 을 이유로 든다. 여기에서 '마음의 강팍함' 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며 이것은 죄에 대해 무감각하도록 이끈다. 즉, 가정 공동체의 큰 위기는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지 못하는데 있다. 이러한 믿음의 공동체에 대한 성서적 근원을 찾는다면 먼저 구약에서는 창조의 질서에서의 '한 몸'이다. 이 '한 몸' 은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몸' 뿐이 아닌 '영적인' 화합까지 본다. 즉 영은 곧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의 공동체로서 온전한 화합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신약의 여러 곳에서 믿음의 공동체에 관한 지침이 나온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에베소서 5장 21-33절에 나오는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는 것처럼 서로 다 헌신하여 사랑하라는 말씀을 가장 의미있다고 본다. 여기서 얘기하는 서로간에 자기를 주는 헌신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만이 가능하다. 루터도 또한 이 결혼에 있어서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았는데 왜냐하면 결혼의 삶이 죄의 위험에 항상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매일 매일의 시험과 싸우는 결혼은 '영적인 연습' 이라고 까지 말했던 것이다.
셋째, 책임의 공동체이다.
기독교 가정은 부부 두사람의 관계에서 여러 종류의 책임을 가질 뿐 아니라, 그들의 자녀에 대한 책임 또한 갖게 되는데, 무엇보다도 하나님 말씀 앞에서의 책임을 말한다. 거의 세계 공통적으로 교회 결혼 예식에서는 '기쁜 날이나, 슬픈 날이나 서로 사랑할 것인가?' 라는 내용의 질문을 하고 있다. 부부가 된다는 것은 병이 있을 때나, 늙어서나, 어떤 어려움이 있어서 서로가 서로를 책임져야 함을 뜻한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명령된 '너희가 서로 짐을 지라' (갈 6:2)라는 말씀에도 해당되며, 이것을 본 회퍼는 '죄를 짐' 으로 해석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짐을 진 것처럼. 우리도 형제들의 짐을 져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법을 이루게 되는데, 즉, 십자가를 짐이다. 형제의 짐을 진다는 것은 어떤 외형적인 것… 등을 지는 것이 아니고, 엄밀한 의미에서 그의 죄를 짊어진다는 것이다. 내가 스스로 그 죄를 예수 그리스도의 힘으로 용서하면서, 또한 나도 그에 동참하는 가운데 죄를 져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듯 살아가면서 기독교 가정은 책임을 갖고 공동으로 엮어지는 믿음의 가족 역사를 만들어 간다.
가정 연합공동체로서의 새로운 가정예배
현재 한국 사회의 여러 요소들은 가정예배를 어렵게 하고 있다. 많은 가족들이 직장문제로 떨어져 살기도 하며, 함께 살아도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운 문제가 있다. 더구나 모든 가족이 믿지 않을 경우에 더욱 큰 어려움을 갖는다. 여기에 대한 보완으로는 구역예배나, 다른 가족과의 연계가 필요할 것이다 어떻든 하나의 가정이 그리스도에게로 이끌려지기 위해서는 하루에 한번 짧은 시간을 내서라도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필수이다.
이것을 위해서 교회는 여러 안내들(가정에 대한 성서에서의 가르침 해석들, 규칙적으로 읽을 수 있는 성경읽기 계획표, 기도 제목들과 좋은 기도문, 명상집 사용, 방송 매체에서의 예배 안내, 창의적으로 드리는 가정 예배에 대한 모델들, 새로 번역된 성서들, 성서 해설 등…)을 통해 도움을 주어야 할 것이다.
가장 간단한 예배는 송영 찬송, 말씀, 기도이다. 예배 순서는 정해 놓는 것이 유익하다. 절기에는 각 가정에서도 절기 예배를 드린다. 만약 말씀에 대한 의문이나, 가족간에 이해가 충분히 안되는 경우에는 그 자리에서 해결을 하기보다는 서로의 침묵 시간을 가져 각자의 말씀의 뜻을 발견하는데 중점을 둔다.
그러나 정해진 예배시간에만 만족될 수 없는 것이 가정이다. 삶속에서 언제나 예배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아플 때나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 뿐 아니라, 평상시에도 기도를 부탁하고, 말씀과 여러 경험들을 나누며, 때로는 권면과 용기를 주며, 찬송이 항상 입에서 맴돌고, 식탁에서도 아이들에게 성경을 이야기식으로 대화하며, 자기 전에 기도를 해주고, 아이들을 훈계할 때에도 주님이 원하시지 않는 일들을 알게 해주는 것 등 이 모든 것이 일상에서 자연스러운 것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주님이 가장 원하시는 예배요, 영적 예배의 길이 될 것이다.
한가지 더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있다고 본다. 즉, 가정예배는 그 문을 열어 가정연합 공동체로서의 예배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초대교회의 형태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교회의 가정예배에서 몇가지 다시 상기하여 도입해야 할 중요한 점들이 있다.
첫째, 핵가정 중심으로 사회구성이 재편되다 보니 가정끼리 함께 모여서 드리는 예배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모이더라도 나이별로 재구성이 된다든가 직업 또는 성별로 따로 모이게 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에 가정 연합 예배 공동체 속에서 상호간에 주어지는 역할을 배우는 기회가 없게 된다. 비교적으로 공적이고 딱딱한 교회와 너무 사적인 가정간의 떨어지고 격리된 사이를 매개해 주는 중간 형태의 연결고리가 있더라도 그 기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통상 이 매개 기능은 구역예배나 모임, 교회내 소그룹 모임 등에 부과되지만 이러한 모임 또한 위에서 언급한대로 특성있는 집단들끼리 따로 모이도록 재편성이 된다. 그러므로 중간매개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 교회는 각 가정에서 일어나는 내부적 갈등이나, 신앙적인 문제점 등을 파악하는데 구조적으로 불가능한데서 오는 결과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야 하는 공동체 형성에 문제점이 생긴다. 문제있는 가정은 또한 스스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교회와 가정에서의 신앙적 연결이 되지 않는 상태가 계속될 수 있다. 심방예배가 이런 경우에 어느 정도의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본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지속적인 소그룹의 만남이 계속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깊은 문제의 핵심에 는 도달하지 못하고 겉에서 머무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정은 외부로 문을 닫을수록, 공동체를 향해 가지 않을수록 가정의 이기주의나, 부부간의 심화된 갈등을 치유하기가 힘들다. 결혼에 있어서 둘이 '한몸' 을 이루는 성서적 내용이 강조되고, 서로간의 사랑을 강조하다 보니까, 사실 기독교가정이 그리스도인으로서 교회 공동체안에서 '그리스도의 한 몸' 이 되어야 하는 부분이 약화될 수 있다. 따라서 가정은 타가정을 향하여서 개방되어야 하고 언제든지 함께 기도하여야 한다. 또한 되도록 정기적인 예배 및 경건회를 갖고 신앙적 성숙을 함께 열망하는 가운에 각 가정이 당하는 어려움과 기쁨을 서로 나누어야 할 것이다.
기독교 가정과 교회교육
가정에서의 갈등 회복을 돕는 교회교육
홍정근(목사·기독교교육연구원)
월간 [교육교회] 97.5월호
기독교교육연구원 제공
시작하는 글
여기 저기에서 가정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우리 사회를 가득 채우고 있는 간 큰 남자 시리즈로 대변되는 남성파괴의 바람, 애인 신드롬, 점점 높아 가는 이혼율, 자식을 내다버리고 죽이는 부모, 부모를 때리고 죽이는 자식, 부모와 같이 살 수 없다고 살림을 나가는 자식, 자식내외와 같이 살 수 없다고 내보내는 부모, 쓸쓸한 표정과 깊고 길게 내뿜는 노인들의 한숨 모두가 가정이 무너지는 소리들이다. 90년대 이후 이혼한 부부가 한해에 5만쌍이 넘어서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92년 한해 동안 41만 8천 쌍이 결혼하고 5만 7천 쌍이 이혼, 7쌍 가운데 1쌍이 이혼하는 셈이다. 최근 통계청의 통계에 따르면 95년의 경우, 하루 평균 1,100쌍이 결혼하고 190쌍이 이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혼율이 85년에 5.2%에 지나지 않던 것이 이제는 10%를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90년 11월 '리빙뉴스' 라는 지역 주간지가 서울 강남의 중산층 아파트 지역의 주부들 4백명을 상대로 설문을 한 적이 있다. 설문내용은 '다시 태어나더라도 현재의 남편과 결혼하겠느냐는 것이었는데 67%의 주부가 단연 'NO' 라고 답했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가정 주부의 67%가 남편 아닌 남자와 혼외정사를 가졌다는 놀라운 통계가 나와 있다. 이는 93년 9월 영국의 런던에서 발행되는 잡지 '코스모폴리탄' 의 조사 결과였다. 뿐만 아니라 또 영국의 데일리 미러 지는 30%이상의 남편들이 여자에게 매를 맞으며 산다고 발표하여 충격을 주었다.(낮은 울타리, 96년 5월, 김성일칼럼, 뼈중의 뼈, 살중의 살에서) 모두가 가정에 금이 가는 소리요, 가정이 깨어져나가는 소리다. 이제 더이상 여유를 부리고 있을 시간이 없다. 가정을 세워 주고, 가정을 회복하는 일은 촌각을 다투는 일이다. 본 고에서는 크리스천 가정에서 일어나는 가족간의 갈등에 관하여 살펴보고, 교회 교육적인 대응에 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
확산되어 가는 가정에서의 갈등
가족간의 갈등은 대부분의 가정들이 경험하고 있는 문제이다. 기독교 가정이라 해서 예외가 아니다. 우리를 더욱 당황하게 하는 것은 갈수록 가정내의 갈등은 더 심해질 것이라는 것을 쉽게 예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변화의 물결들은 가족관계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면서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도 미래사회를 연구하면서 미래의 가족 문제 특히 미래의 가족 형태에 관하여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앨빈 토플러, 제 3의 물결, 서울. 홍성사, pp.267-287) 토플러는 거기서 가정의 위기에 관하여 이렇게 말한다. "오늘날 가정의 파괴라고 하는 문제는 산업주의의 일반적인 위기 상황의 일부로서 다루어져야만 할 필요가 있다. 최근 가족제도의 붕괴라고 하는 말을 흔히 듣는다. 가정이야말로 최대의 과제라고 말할 수 있다." (엘빈 토플러, p.267) 또한 제 2의 물결시대가 핵가족시대였다면 제 3의 물결시대는 핵가족이 해체되고 복잡하고 다양한 종류의 가족형태가 생길 것이라고 보고 있다. "켈람(Kellam), 엔스밍거(Ensminger), 터너(Terner)라는 세 명의 정신과 의사가 시카고의 흑인 빈민가에서 조사한 결과 적어도 86종류의 가족 형태로 분류되었다. 어머니와 할머니의 가족, 어머니와 큰 어머니의 가족, 어머니와 의붓아버지의 가족, 기타 어머니와 맺어진 것만도 갖가지의 가족이 보인다."(앨빈 토플러, p.274)
이러한 가족형태의 변화는 다양한 형태의 갈등 관계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 가족의 형태는 아직 제 2의 물결 형태인 핵가족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볼 수 있다. 거기다가 제1 의 물결 시대의 가족형태인 대가족적인 면을 아직은 많이 갖고 있다. 한 집안에 삼세대가 사는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제 3의 물결시대에 나타나는 다양한 가족형태로 변화해 가는 모습이 감지되기도 한다. 또한 젊은 세대들 사이에는 개인주의적인 생활방식이 확산되고 있다. 그런가하면 가족관계에 있어서 아직도 유교적인 전통의 영향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렇다보니 가정 내에서의 가족간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가정에서의 갈등의 유형과 원인
그럼 먼저 우리나라 가정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가정 내에서의 갈등 유형들을 정리해 보자. 대개 우리나라 가정에서 경험되는 가족간의 갈등의 유형은 다음 다섯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부부 간의 갈등이다. 부부는 가정형성의 기본 단위이다. 그러기에 부부간의 갈등은 가정에서 발생하는 가장 기본적인 갈등유형이라 할 수 있다. 페미니즘의 영향, 아내의 맞벌이를 통한 경제력 형성 등으로 인하여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어 가는 데 반하여 남편의 경우 세대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유교적인 가부장적 권위의식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부부간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되고 있다. 갈등의 양상도 다양하다. 매 맞는 아내나 매 맞는 남편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처럼 한쪽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경우, 부부 상호간에 팽팽히 맞서는 경우, 소리를 지르거나 물리적인 행동을 가하면서 갈등을 표출하는 경우,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한 것 같으나 소리없이 심리전을 벌이는 경우 등 갈등의 모습도 간단하지가 않다. 부부간의 갈등의 원인도 다양하다. 가치관의 대립, 습관의 차이, 성격의 부조화, 시집이나 친정 관계 성적인 문제, 경제적인 불안정, 배우자의 외도, 자녀양육문제 등 실로 복잡하다.
둘째, 부모-자녀간의 갈등이다. 이 갈등은 발달단계의 차이라는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야기되는 갈등이기도 하다. 대개 부모와 갈등관계에 빠지는 자녀의 세대는 청소년기가 주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흔히 세대간의 갈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에릭슨의 발달단계에 따르면 청소년기의 자녀들을 둔 부모는 대개 자기가 가진 생산성(generativity)을 발휘하여 자기의 가치를 찾느냐 아니면 생산성을 이루지 못하고 가기 침체(stagnation)에 빠지느냐 하는 위기를 맞게 된다. 뭔가를 성취하고 이루어 내는 생산성이 자신들의 생의 중요한 과제가 된다. 따라서 이 시기의 부모들은 과업 지향적이고 성취 지향적인 삶의 자세를 갖게 된다. 반면 청소년 자녀들의 경우는 자기정체성(identity)을 찾느냐 아니면 자기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역할혼돈(role confusion)에 빠지느냐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결국 부모는 자녀를 통하여 자신의 생산성을 증명하려 하게 되고 반면에 자녀들은 부모에 종속되지 않고 부모와 다른 '자기자신' 을 찾고 싶어한다. 청소년 자녀들은 가능한 한 자기 자율성을 많이 확보하여 독립하고 싶어한다. 반면에 부모는 어떤 형태로든 통제하고 지시하여 생산성을 높이려 한다. 충돌은 피할 수 없다. 따라서 귀가시간, 옷차림새, 머리모양, 방 청소, 텔레비전 시청, 친구관계, 용돈사용 사소한 일상적인 생활사건들이 갈등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어떤 관계보다도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더욱 절실히 필요한 관계이다.
셋째, 고부간의 갈등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마찰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아들에게 지나치게 집착하는 시어머니와 이를 못 견뎌 하는 며느리사이의 문제만은 아니다. 또한 시댁의 문제와 친정의 문제 사이에서 지혜롭게 일을 처리하지 못하는 며느리와 이를 넓은 마음으로 품어주지 못하는 시어머니 사이의 문제만도 아니다. 시어머니의 지나치게 강압적인 자세와 이를 못 견뎌 하는 며느리 사이의 문제만도 아니다. 고부간의 세대차이에서 발생하는 가치관의 차이나 생활방식의 차이만 하더라도 고부간의 마찰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며느리와 함께 사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 하는 시어머니가 늘어가고 있다. 경제적으로 뒷받침이 되고, 건강이 허락한다면 굳이 며느리 '눈칫밥' 을 먹지 않겠다고 말하는 시어머니들이 늘어가고 있는 것이다.
넷째, 형제간의 갈등이다. 남아선호 사상과 관련한 아들과 딸 사이의 눈에 보이지 않는 갈등, 장자선호사상에 따른 형제간의 갈등, 이것은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 박힌 문제이다. 얼마전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도 남아 선호사상에 따른 아들과 딸의 갈등 문제와 장자선호 사상에 따른 아들들간의 갈등을 다룬 적이 있다. 그만큼 우리 사회저변에 깊이 깔려있는 상처라는 것을 반영해 주는 현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매사에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자녀와 그렇지 못한 자녀 사이의 갈등과 이로 인한 열등의식의 형성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정말 '피를 나눈 형제' 이어야 할 형제 관계가 경쟁관계가 되고 시기와 비교대상이 되어버리는 것은 마음 아픈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다섯째, 친척간의 갈등이다. 이 문제는 비록 가정내의 가족간의 갈등은 아니지만 간과할 수 없는 한국 가정 내의 갈등유형이다. 특히 기독교가정의 경우, 신앙가정과 불신 친척간의 갈등은 참으로 다루기 힘든 갈등이다.
일반적으로도 맞벌이 가정의 경우 육아문제나 기타 다른 이유로 인하여 자녀들은 친가보다는 외가와 더 가까이 지내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할아버지보다는 외할아버지가, 할머니보다는 외할머니가, 고모보다는 이모가 더 가깝게 느껴지게 된다. 이 경우에 크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미묘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러한 친척간의 갈등은 가족관계에도 부담을 주는 요인이 된다.
갈등의 연쇄현상
중학교 다니는 남자아이가 현관문을 꽝!하고 닫으며 밖으로 뛰쳐나왔다. 강아지가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며 달려왔다. 아이는 사정없이 강아지의 옆구리를 향해 발길질을 날렸다. 깨갱깽깽! 강아지는 죽는다고 소리를 지르며 도망간다. 이 아이는 이제 막 학교에서 돌아와 집으로 들어갔다가 기분이 좋지 않은 어머니로부터 날벼락 같은 잔소리를 한바탕 듣고는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해서 도망치듯 집을 나서는 중이었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아침부터 별것도 아닌 문제로 할머니와 신경전을 벌이고는 기분이 아주 저기압이었다. '어디 화풀이 할 곳이 없나' 하고는 건수를 찾고 있던 중이었다. 결국 고부간 갈등의 불씨가 아들에게 튀었고 그 불똥이 애꿎은 강아지에게까지 튀어 간 것이다. 우리가 가정에서 흔히 경험하는 일이다. 이처럼 갈등은 연쇄작용을 일으킨다. 가족간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문제이다. 갈등이 전혀 없는 가족관계란 존재할 수도 없다. 적당한 정도의 갈등경험은 오히려 가족관계를 더욱 끈끈하게 엮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건강한 가족관계라면 어느 정도의 갈등은 충분히 처리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가족은 서로 싸우면서 정이 든다고 하기도 한다. 건강한 가정이라면 웬만한 갈등은 거뜬히 소화하고 처리하여 다시금 평화로운 가정상태를 회복해 낸다. 문제는 갈등이 발생하고 나서 이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여 지속적이고 심각한 갈등상황까지 가는 것이다. 더욱이 갈등 상황이 심각한 갈등으로까지 발전하게 되면 그 갈등은 또 다른 갈등을 연쇄적으로 만들어 내게 된다. 고부간의 갈등이 부부간의 갈등으로 발전하고 부부간의 갈등은 자녀에게 투사되면서 부모와 자녀간의 갈등으로 비화된다. 이러한 갈등의 연쇄현상은 건강한 가족관계를 해치든 무서운 암(cancel)과 같다. 가족간의 평화로운 관계를 해치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이다.
건강한 가족관계의 회복과 교회
가족 갈등의 성서적인 뿌리
우리는 창조동산 아담의 가정에서 가족관계의 갈등의 씨앗을 보게 된다. 아담과 하와 그리고 가인과 아벨의 가정은 그 단란한 행복을 세어 볼 시간도 없이 삐거덕거리며 깨어지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가인과 아벨의 대립과 갈등에서 형제간의 갈등의 뿌리를 본다. 우리는 아벨의 피의 호소에서 그 갈등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 것인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아담과 하와의 설전! 서로를 헐뜯고 책임을 떠넘기는 구차함에서 부부간의 갈등의 뿌리를 본다. 가족관계의 갈등은 타락 이후 사람이 갖게 된 피할 수 없는 고통거리이다. 야곱과 에서의 뿌리깊은 형제간의 갈등, 요셉과 형들의 갈등, 모세와 아론의 형제갈등, 아버지 엘리 제사장과 자식간의 갈등, 다윗과 아내 미갈의 부부갈등, 솔로몬과 그 형제간의 갈등 등 성경은 우리에게 다양한 갈등의 사례들을 보여주고 있다.
가정은 하나님이 세우신 축복의 통로이다. 하나님은 가정에서 하나님의 창조동산의 신비를 맛보며 살도록 하셨다. "크리스천 가정은 자기를 주는 아가페의 사랑과 신뢰에 근거해서 이룩된 하나님이 창조물인 것이다. 크리스천 가정은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와 보존의 질서를 유지시키는 도구요 방편이다." (G.M.쉬레어, 신학과 기독교교육, 대한기독교교육협회,p.243-244) 하지만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것처럼 사람은 하나님의 복된 선물을 잘 간수하지 못했다. 하나님의 창조동산인 에덴에서부터 가정은 깨어졌고 무너졌다. 아버지 아담과 어머니 하와는 집에서 쫓겨났다. 둘째 아들인 아벨은 형의 손에 죽었고 맏아들 가인은 아예 멀찌감치 추방당했다. 아담의 가정은 깨어졌고 아담의 가족은 흩어졌다. 가정의 비극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실망하지 않는 것은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가정회복의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가정의 회복! 이것은 기독교교육의 중요한 과제이다.
기정의 갈등회복을 돕는 교육목회
교회는 크리스천 가정이 건강한 가족관계를 맺으면서 행복한 가정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도와야 한다. 특히 가족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문제에 관하여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도와주어야 한다. 가정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교회를 위해서도 가정을 돕고 지원하는 사역에 투자해야 한다. 성도들의 가정이 건강하고 행복해야 교회가 건강하고 행복한 교회가 될 수 있다. 가정에서의 갈등을 교회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하나의 기관으로서의 기독교 교회와 크리스천 가정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밀접한 관계에 있다. 무질서한 세상에서 가정이 만약 그리스도인들의 양육면에 주 역할을 맡아 주지 않는다면 교회는 제기능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찰스 셀, 가정사역, 생명의 말씀사, p.37)그러기에 가정안에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회복하고, 풍요롭고 화목한 가족관계를 가꾸어 가도록 지원하는 가정사역은 이 시대와 미래사회 교육목회의 중심에 놓여야 한다. 교회교육의 부서 가운데 '가정사역부' (또는 가정교육부)를 상설부서로 두었으면 한다. 그리고 가정교육에 관하여 전문적인 준비가 갖추어진 전담교역자가 이 사역을 담당하도록 했으면 한다.
최근 한국교회안에서 가정사역(Family Ministry) 또는 가정생활교육에 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다. 고무적인 일이다. 아직은 가정을 지원하고 세워주는 가정사역이 교회의 여러가지 활동 중에 가정에 관한 몇가지 프로그램을 추가하는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가정사역은 다른 여러 프로그램 가운데 한 가지의 프로그램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생활 전체에 배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찰스 셀,p.16)목회 패러다임 자체가 가정을 회복하고 세워주는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지적이다.
맺으면서
이제 가정사역은 교육목회의 중심에 놓은 사역이다. 특히 가정 안에서의 가족간의 갈등회복은 돕는 사역에 특별한 관심이 요구되고 있다. 갈등관계에 힘들어하고 지치고 상처받는 크리스천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부부간의 갈등, 부모-자녀간의 갈등, 고부간의 갈등, 형제간의 갈등, 친척간의 갈등 등 가정 안에서 발생하는 모든 갈등 국면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가 절실하다.
그리고 성경적인 처방을 제시할 수 있어야 겠다. 심리적인 처방이나 어떤 프로그램을 통한 일시적인 방편만으로는 부족하다. 크리스천 가족들이 가정과 가족과 가족관계에 대하여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원리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고 붙잡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갈등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예방차원의 교육과 함께 지금 갈등의 늪에서 힘들어하는 가정을 돕고 지원하는 교육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우선은 기존에 나와 있는 교육프로그램들을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PET(parents effectiveness training), ME(marriage encounter), 부부대화학교, 10대 자녀와 40대 부모를 위한 대화학교, 부모 리더십 훈련, 고부대화교실 등을 들 수 있다. 이외에도 가족역할과 갈등해결을 위한 세미나, 가족관계훈련, 가족캠프, 가족축제의 개발을 위한 교육, 기타 간 세대 프로그램 등을 기획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가 발벗고 나서야 할 때이다. 성경에는 건강한 가정을 창조하고 행복한 가정을 건설하는데 필요한 유용한 자원들이 풍부하다. 기독교교육에는 이러한 자원들을 발굴하고 재구성하여 교회교육 현장에 내어놓을 수 있는 능력과 사명이 있다. 이제 그런 능력과 사명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사용해야 할 때이다.
기독교 가정과 교회교육
가정 회복을 위한 교회교육 프로그램
황영태-목사 , 연동교회
월간 [교육교회] 97.5월호
기독교교육연구원 제공
가정이 살아야 교회가 산다
얼마전 TV에서 방영되었던 '애인' 이라는 드라마는 오늘날 한국 가정이 안고 있는 위기의 단면을 잘 보여 준 것이었다. 그 내용은 한 가정의 아내가 다른 남편을 사랑하게 된다는 이야기였는데 이를 두고 세간에서는 가정의 불륜을 조장한다느니, 그래도 이것이 현실이라느니 하여 논란도 많았다.
그렇지만 이 드라마가 유례없는 시청률을 기록한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이는 실제 우리들이 안고 있는 문제임에는 틀림없다. 교회안의 성도들 또한 예외는 아니다. 많은 성도들이 가정의 문제를 안고 있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시어머니와 며느리, 청소년의 탈선 , 노부모의 치매증등은 오늘날 우리 성도들의 가정의 문제임에 틀림없다. 그것이 신앙이라는 탈 때문에 드러나지 않고 속으로 숨어 곪는 지경이 되면 그것은 심각한 것이 된다.
교회는 이를 외면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치유하고 가르쳐서 건강한 가정이 되게 해야 한다. 그저 막연하게 예수 믿고 신앙만 좋으면 가정문제도 해결되고 행복하게 된다고 생각하는 그릇된 신념에서 벗어나 구체적이고도 현실적인 도움을 성도들의 각 가정에 주어 가정을 치료하고 보다 더 행복하고 건강한 가정으로 변화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본교회는 건강한 가정이 건강한 교회를 이룬다는 점을 생각하여, 병든 가정을 치유하고 건강한 가정을 회복하기 위한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운영하고 있다.
그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가정사역이 곧 목회사역
먼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본교회의 교회학교 조직을 설명하려고 한다. 우리 교회의 교회학교는 네가지의 조직을 갖고 있다.
평신도학교, 성인주일학교, 청소년주일학교, 교사훈련원이다. 평신도학교에는 문답교육부, 성경통신부, 성경연구부, 상담부가 있다.
문답교육부는 학습세례문답 공부를 하는 곳이며, 성경통신부는 매주일 주보를 통해 나가는 성경문제를 풀면서 성경을 통독하게 하는 곳이다.
성경연구부는 연동성경학교를 운영하고, 주간성경공부반을 운영하고 있다. 연동성경학교는 25년 동안 교회 내외의 강사들을 초청하여 강의를 들으며 성경 전체를 공부하는 과정이었다. 올해부터는 성경학교 생활편 강의가 개설될 예정이다.
상담부는 주로 가정사역을 담당하고 있는데 부부대화학교, 아브라함학교, 새가정학교, 열린가정 세미나 등을 개설하고 있고, 앞으로 룻학교, 나오미학교, 예비시어머니학교 등을 개설할 예정이다.
상담부는 상담에 관한 모든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는데 가정사역에 관한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이 상담부에서 주관하고 있다.
이제 몇몇 프로그램을 소개하고자 한다.
부부 대화학교
부부들은 자신들이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사실 부부들은 대화다운 진정한 대화는 별로 나누지 못한 채 지내고 있고, 오히려 병든 대화를 하고 있다. 그래서 건강하게 발전되어야 할 부부관계가 오히려 병들고, 대화의 단절로 말미암아 더욱 악화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학교에서는 부부관계, 의사소통방법을 통해 건전한 가정을 이루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여러가지 유익한 대화 기법을 배우게 되며 서로의 마음을 잘 알게 되고 부부의 관계가 더 친밀해질 수 있다.
부부사이의 대화는 어떻게 시작하는지, 어떻게 말하는 것이 상대방을 기분 나쁘지 않게 하면서 나를 표현할 수 있는지를 배우게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어떤 부부를 이루게 하시는지를 알게 된다. 남성과 여성의 생각과 관점의 기본적인 차이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서로의 자리를 찾고 역할을 담당하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전체 10주 과정으로 되어 있으며, 매주 수요일 수요기도회 후에 2시간씩 모인다.
참가인원은 15쌍으로 제한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룹이 너무 커질 경우 개별적인 접촉과 치료가 어렵기 때문이다. 주로 젊은 부부들이 참여하지만, 40대, 50대의 부부들도 참여할 뿐 아니라, 장로님 가정도 참가하신다.
이들을 또다시 4명씩 묶어서 소그룹을 만들고 강의와 웍샵으로 진행한다. 매주마다 한가지씩 재미있는 숙제가 주어지는데 둘만이 가질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찾아 대화하며 저녁식사를 하는 것 등이다.
이런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부부들은 새로운 경험으로 자신과 배우자를 다시 알게 되며, 경이로움을 금치 못한다.
마지막 시간에는 촛불을 켜 놓고 서로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서 읽어 주도록 하는데 모든 부부들이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며, 새로운 삶을 다짐하게 된다.
부부가 서로 친밀해지고 상대방의 속사정을 알게 되며 부모와 자녀 사이의 벽이 없어짐으로써 가족간의 전체적인 관계가 개선된다.
가족간의 전체적인 관계가 성장하게 되면 하나님과도 더욱 친밀하게 된다.
10주의 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주, 대화학교를 소개합니다.
2주, 대화원칙(1)
3주, 대화원칙(2)
4주, 정확한 정보를 주십시오(1)
5주, 정확한 정보를 주십시오(2)
6주, 사려깊게 들으십시오(1)
7주, 자녀와의 대화방법
8주, 사려깊게 들으십시오(2)
9주, 문제는 이렇게 해결하십시오.
10주, 게슈탈트부부 대화의 실제
아브라함학교
아브라함학교는 아버지들을 위한 학교이다. 우리 사회는 아버지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그 권위를 잃어 가고 있다. 아버지가 되었어도 아버지로서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 하나님이 가정의 가장에게 주신 권리와 의무가 무엇인지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다. 아브라함학교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같이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믿음의 좋은 본을 보여주며 그들을 믿음의 일꾼으로 키울 수 있는 길을 알게 해준다. 이 프로그램은 토요일 저녁이나 공휴일을 이용하여 1박 2일로 실시한다. 등록인원을 30명으로 제한하고 강의와 웍샵, 아버지 헌장 만들기, 아버지 서약서 쓰기, 자녀에게 보내는 편지 등으로 진행된다. 이 프로그램은 먼저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다음 훈련생들을 위해 모든 준비를 갖추어 주고, 간증을 하기도 하며 돕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참가자들은 하나님이 주신 가장으로서의 특권과 가정안에서의 아버지의 사명을 깨닫게 되고, 그동안 무관심했던 자녀들과 아내에게 관심을 갖게 되며 바른 아버지의 위치를 찾아 나서게 된다.
처음으로 아브라함학교에 참여했던 어느 집사님은 이 프로그램으로 말미암아 아버지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그동안 탈선과 불순종으로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아들을 기도와 대화로 바르게 지도하게 되었다고 고마워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강의: 성경속의 아버지
제2강의: 아버지, 부르고 싶은 이름
제3강의: 아버지가 변해야 가정이 변합니다.
간 증: 아버지의 간증코너
특 강: 아버지가 자녀에게 사랑을 전달하는 방법
제4강의: 아버지의 영적 권세
새가정학교
새가정학교는 신혼부부와 예비부부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하여 젊은 이들은 결혼이란 구름을 타고 날아다니듯 꿈같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오히려 결혼은 배우자를 이해하고, 그와 함께 협조하며 양보하고 가꾸어야 할 공동작품이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새로운 사람과 적응해야 할뿐만 아니라 신랑측과 신부측의 두 가정이 결합되는 매우 힘든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과정에서 알아야 할 지혜와 희생속에서만이 누릴 수 있는 소중한 행복을 깨닫게 된다.
새가정학교는 8주간의 과정으로 이루어지는데, 매주일 오후 4시부터 7시까지 교회에서 모여 공부한다.
대상은 6개월 이하 신혼 부부 및 결혼신청자에 한한다. 한 기수의 참가자는 일곱쌍이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성서 속의 가정·남성과 여성의 역할·자기발견(성격검사)·부부 의사소통(1)·부부 의사소통(2)·건강한 부부생활(가정의학 전문)·부모의 역할(모범적인 부부의 간증)·집단상담 (1박2일)
젊은 부부와 예비부부들이 함께 모여 이루어지는 새가정학교는 주일오후예배에 모든 성도들 앞에서 수료예배로 드리게 되는데, 부부가 손을 잡고 앞에 나와 부르는 찬송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하기에 충분하다.
열린가정 세미나
새가정학교가 신혼부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반면, 열린가정 세미나는 구혼부부(?)들을 위해 개설된다.
오랜 결혼생활로 권태기에 접어들거나 사랑이 시들해진 부부들이, 잃어버린 따스한 가정의 숨결을 되찾게 되는 프로그램이다.
참가자들은 서로간의 대화를 통해 상대를 알게 되고, 그동안 나만이 그 문제로 고민하는 줄 알았는데 모두가 함께 겪는 일반적인 문제였던 것을 확인하고, 용기를 얻어 가정의 문제해결을 위해 적극 나서게 된다. 매주일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모이며 100명을 모집하여 강의와 그룹토의의 형식으로 진행한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성서에 나타난 가정·남성과 여성의 역할 부부의 대화 방법·부부의 문화 개발·자녀와 가정 교육·미래 인생 준비·가정과 건강
룻학교, 나오미학교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관계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가진 보편적인 문제이다. 많은 기독교 가정들이 이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으면서도 대화와 이해로 적극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그저 신앙이 부족해서 생긴 것처럼 생각하고 묻어두고 지나치다가 결국 가정이 무너지는 경우도 종종 있게 된다. 이 프로그램은 며느리와 시어머니를 따로 구분하여 모아서 진행하게 되는데, 룻과 같은 지혜롭고 효성이 지극한 믿음의 며느리와 며느리를 친자식처럼 생각하고 아끼고 이해해 주는 시어머니를 키우게 될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올해 시작하게 될 예정이다.
연동 성경 학교 생활별
연동성경학교는 오랜동안 교회안의 성도들에게 성경을 바르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좋은 강사들을 초청하여 성명을 각권별로 개론적인 강의를 들어왔다.
그리스도인들의 행함이 있는 믿음이 더욱 절실한 이 시대에, 성경의 진리를 삶속에 실천할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성경학교 생활편을 개설했다.
제1학기 사회생활편, 제2학기 가정생활편, 제3학기 교회생활편, 제4학기 영성생활편으로 진행하는데 매년 봄과 가을에 한학기씩 개설하여 2년 동안 진행하게 된다.
제2학기 가정생활편은 어떻게 행복한 가정을 가꿀 것인가?, 기독교인의 부부 윤리란 무엇인가?, 믿음의 자녀, 어떻게 키울 것인가?, 부부의 건강한 대화는 어떻게 할 것인가? 등의 내용으로 진행되고, 그 분야의 전문 강사들을 초빙하여 강의를 듣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한학기는 4일간, 매일 저녁 7시부터 9:30까지 대예배실에서 모든 교인들이 참석하게 된다.
이 프로그램은 중요하다. 인간의 모든 문제들은 성경속에서 해결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일학교와 함께 드리는 예배의 확대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은 아동부 예배와 중고등부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어른 예배에 참석할 기회가 별로 없다. 그러다 보니 교회의 온 가족이 함께 드리는 예배는 점점 어려워지게 된다.
본교회는 부활절과 추수감사절, 성탄절에는 2부예배시간을 택하여 어른들과 주일학교 모든 부서 어린이, 청소년들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린다.
처음에는 그들을 2층에 앉혔더니 예배를 드리기보다 내려다보며 구경하는 듯 느끼며 예배에 동참하지 않고 시끄럽게 떠들어서 방해가 되었다. 그래서 아주 자리를 1층으로 정하여 맨 앞에 앉게 했더니 오히려 조용하고 경건하게, 마치 자기들이 주인공인 것처럼 의젓하게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이 예배에 참석한 어느 어린이는 자기 부서에서 드리는 예배보다도 어른 예배의 목사님의 설교에서 더 많은 감동을 받았다고 어른스럽게 말하기도 했다. 앞으로도 계속 어린이와 함께 드리는 예배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두 공동체: 가정과 교회
하나님이 이 땅위에 손수 만드신 공동체는 가정과 교회뿐이라고 한다. 모든 인간은 가정의 일원으로 소속되어 있다. 가정은 인간이 만나는 최초의 공동체이며, 몸담고 떠나게 되는 최후의 공동체이다.
성경은 부부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설명하고 있다. 교회는 가정과 같이 되어야 하고 가정은 곧 교회여야 한다.
이제 목회는 가정을 세우는 가정 사역이어야 한다. 가정이 깨어진 후에는 교회도 설 수 없다.
모든 교회들이 이 땅의 무너진 가정들의 피폐함을 밝히 보고 가정을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일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