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서론 page 1
본론 page 1
1.인터넷이란 무엇인가? page 1
1)인터넷의 정의 page 1
2)인터넷의 역사 page 2
3)인터넷의 이용현황 page 2
4)인터넷의 미래 page 3
2.전통교회와 인터넷 교회 page 4
1)전통교회의 정체성 page 4
2)인터넷 가상 교회 page 5
3)인터넷 시대 교회의 모습 page 6
4)통합적 네트워크형의 간 교파적 교회 page 6
5)평신도 중심의 봉사형 디지털형 교회 page 7
3.인터넷과 선교 page 8
1)대화 도구로서 인터넷을 이용한 선교 page 8
2)인터넷 선교의 대상 page 9
3)인터넷 선교의 성경적 의미 page 10
4.인터넷과 인터넷 시대의 목회 page 12
1)가상사회와 가상교회의 출현 page 12
2)창조적 웹 사이트로 도전하라 page 13
3)선교 및 교회 교육의 전초기지화 page 14
4)디지털 목회, 소프트웨어 목회 page 14
5)관계적 목회와 미립자 목회 page 15
6)시뮬레이션 목회 page 16
7)온라인 목회 page 17
8)네티즌 윤리 정립과 건강한 가상공동체 실현 page 17
5.교회에 미치는 인터넷의 부정적인 면과 그 대응방안 page 19
1)교회에 미치는 인터넷의 부정적인 면 page 19
2)인터넷 시대의 바른 교회론 page 19
3)교회의 대응 page 20
序論.
인터넷 시대라는 말이 이제는 결코 생소하지 않게 들리지 않는 세기말 적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러한 때에 특히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 이에 따른 선교의 문제, 전통적인 성례전에 대한 이해, 그리고 교회 사역에 대한 이해가 새로운 시대에서 어떠한 변화를 겪게 될 것인지 분석하고 전망하는 것은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과제들이다.
이 글에서는 급변하는 세상과 정면으로 만나 더불어 존재하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사역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인터넷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을 살펴보고 기존 전통교회와 인터넷 시대 교회와의 차이점 그리고 인터넷을 이용한 선교와 목회 활동을 고찰하고 그 인터넷 교회가 가져다 줄 문제점들과 그 대안 또한 살펴보고자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변화의 물결에 직접 노출되어 있는 교회에 대한 자기 이해를 새롭게 정리하는 것이 곧 인터넷이 주도할 새 시대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새로운 대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本論.
1.인터넷이란 무엇인가?
1)인터넷의 정의
현대 기술은 제작 가능한 것이면 무엇이든지 만들어 왔고 만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 기술이라는 것은 어떤 정신적 가치를 지니지 않았으면서도 인종이나 민족, 그리고 지역에 초월한 보편성을 지녔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 기술이 지식과 정보의 폭발 시대를 맞아 사람들의 구조와 행동 양식의 변화 이외에 사람 사이의 연결과 사회의 연결을 위해 필연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 인터넷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기술들로 하여금 인터넷의 사용자들은 자연스러운 정보의 공유, 자유스러운 의사 개진과 자기표현, 정보 분배를 통한 민주화 그리고 컴퓨터와 정보 매체에 대한 무제한적인 접근이라는 기본 철학을 가지고 인터넷을 사용한다 할 수 있다.
오늘날 컴퓨터는 노트북에서 슈퍼 컴퓨터까지 도스와 윈도우즈 환경의 개인용 컴퓨터(PC)에서 유닉스(UNIX)를 사용하는 워크스테이션에 이르기까지 그 규모와 크기가 무척 다양하다. 케이블이나 전화선,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네트워크는 서로 다른 컴퓨터를 연결해 프로그램, 파일 그리고 하드웨어까지 서로 공유할 수 있도록 하여 기존의 정보 활용 범위를 놀라울 정도로 확장시켜 주었고 사용자가 여러 종류의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더라도 모두 하나로 연결시킬 수 있게 해 주었다. 다시 말하여 PC 앞에 앉아서 작업하는 사람이 워크스테이션이나 IBM 메인 프레임에서 작업중인 사용자와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전자우편을 보내고자 할 경우, 메일을 보내는 사람은 그 메일을 받을 사람이 어떤 종류의 기계를 사용하는지 또는 그 기계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등에 대해 전혀 알 필요가 없어졌다.
일반적인 정의를 내려보면 인터넷이란 이러한 네트워크들의 네트워크로서 같은 약속을 사용하는 전세계에 걸쳐 연결된 네트워크들의 집합이다. 이러한 네트워크는 기업체, 연구소 등의 사내망과 캠퍼스 전산망, 정부 행정 전산망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인터넷은 이러한 네트워크 가운데 세계 최대이다. 약 5만개의 네트워크가 연결되어 있고 약 5백만 대의 컴퓨터, 약 5,000만 명의 사용자가 그 구성을 이루고 잇는 것이 현재의 상태이며 매년 100%이상의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1분 안에 정보를 전달하거나 전달받을 수 있는 가히 정보의 보고라 할 것이다.
2)인터넷의 역사
인터넷의 역사는 미소 냉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최초의 태동은 1969년 미 국방성에서 군사적 목적으로 에이알피에이네트(ARPA net)란 네트워크를 구축하면서부터 였다.
ARPA(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란 기관은 소련이 우주선 스푸트닉의 발사에 성공하자 이에 자극을 받은 미국이 군사 분야에서 과학과 기술적으로 앞서기 위해 의욕적으로 만든 것이다.
이곳에서 여러 지역에 흩어져있는 연구 자료와 연구원들의 개발 정보를 나누기 위한 통신망의 필요성이 제기 되었다. 이와 함께 소련이 군사적 공격에 의해 일부분의 네트워크가 파괴되더라도 전체 네트워크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만들고자 하였다.
이로부터 이루어진 여러 연구 결과들이 ARPAnet에 적용되었고 티씨피/아이피(TCP/IP)의 기본 개념들과 구현 프로토콜이 활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1982년 각각의 프로토콜들이 한데 묶어져 TCP/IP의 완전한 형태로 개발이 완료되었고 국방성에서는 표준으로 제정하였다. 이로써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다음해인 1983년에 데스크탑 워크스테이션이 개발되었고 이의 운영체제인 4.2비이에스디 유닉스(BSD UNIX)에 TCP/IP 프로토콜들이 기본적으로 탑재되었고 이 때쯤에 개발이 거의 완숙의 경지에 이르렀던 인터넷(Eternet) 랜(LAN)이 워크스테이션에 기본적으로 설치되어 ARPAnet에 직접 연결되었다. 인터넷의 급속한 확산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어서 1986년에 미국과학재단(NSF,National Science Foundation)에서 56kbps의 엔에스에프네트(NSFNET)란 통신망을 구축하였다. 보다 빠른 속도의 중심망으로써 역할을 시작하면서 ARPAnet은 갖고 있던 대중적 서비스를 NSFNET에 넘겨주고 1990년에 발전적 해체의 운명을 맞게 되었다. 기존의 군사 부분에서의 역할은 별도로 엠아이엘네트(MILNET)를 만들어 해결하였다. 1992년에는 미국의 NSFNET이 T3(45Mbps)의 속도로 올라갔다. 이러한 망은 점차 규모가 커져 현재에 이르러 전세계가 하나의 정보 전송의 매개체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1982년 7월 처음으로 에스디엔(SDN)이라는 서울대와 키트(KIET)를 연결하는 네트워크가 만들어졌다. 이어 몇년동안 유에스이네트(USENET), 씨에스네트(CSNET) 등에 연결이 되고 1985년 에는 피에이씨네트(PACNET, 아시아 태평양)을 구성하게 된다. 1987년에는 에이알피에이네트(ARPANET)에 접속 승인을 받게 되고 1989년 교육망과 연구망이라는 국내의 커다란 줄기를 이루는 두 가지 망이 생겨나게 된다. 그후 소수의 제한적인 사람들만이 사용하던 국내의 인터넷은 1994년 비로소 상용 서비스를 시작하게 되었다. 현재는 수많은 사용자가 인터넷, 그 정보의 보고에서 서핑을 만끽하고 있다.
3)인터넷의 이용현황
흔히 '정보의 바다'라 부르고 있는 인터넷의 실체는 전세계 컴퓨터가 전용선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네트워크망 자체를 의미한다. 만약 내 컴퓨터가 이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다면 이 망에 연결된 전세계 어떤 컴퓨터라도 들어갈 수 있으며, 또 그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거의 모든 내용을 검색하고 이용할 수 있게 된다. 개인이 개인용 컴퓨터를 가지고 인터넷에 접속하려면 유니텔과 같은 컴퓨터 통신회사를 통해 인터넷 서비스를 받으면 된다. 인터넷에 연결코자 하는 컴퓨터는 계속 증가하는 추세이며, 활용 가능한 무한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전문가들은 인터넷을 "차세대 정보화 혁명의 기수"로 평하고 있다. 국내 정보통신업계의 한 저명인사는 "현대 사회를 대변할 수 있는 개념은 '세계화'와 '정보화'인데, 이 둘이 현실화된 것이 바로 인터넷이다"라고 못박았을 정도다. 또한 그에 따르면 추후 국가간의 경쟁력은 보유 정보의 질과 양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에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인터넷을 잘 활용할 줄 아는 사회구조를 갖추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금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는 우리 국민은 대략 0.2% 미만이다. 이에 반해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 인터넷은 이미 상식으로 통하고 있다. 인터넷을 이용하면 당장 이라도 이름으로만 듣던 세계 유명 언론을 마치 그 나라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보고 들을 수 있다. 신문이나 잡지 등은 배달을 위해 며칠씩 기다릴 필요가 없어지며, 비싼 구독료 역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상당 기간동안은 공짜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자료 수집을 위해 외국 출장을 가야 했던 것도 옛날 얘기다. 인터넷을 통해 세계각국의 소중한 연구자료나 기업정보, 신상품 정보 등을 손쉽게 구할 수 있어 경비 절감에 시간까지 절약할 수 있어 좋다. 세계 각국의 다양한 문화와 정보도 얻을 수 있으며 그 나라 친구들도 만나 정치나 생활에 관한 많은 얘기를 나눌 수도 있다. 여기에는 항공료나 숙박비가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컴퓨터와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모뎀만 있으면 세상 곳곳을 순식간에 넘나들 수 있기 때문이다. 비용은 컴퓨터가 사용하는 전화요금 정도다. 인터넷이 등장함으로써 전세계는 그야말로 지구촌 동시생활권으로 접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 됐다.
4)인터넷의 미래
많은 사람들은 가까운 미래에서의 인터넷의 규모와 영향을 예측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지금의 추세로 보아 빠른 미래에 1억대 이상의 호스트와 1백만 이상의 경제적 교류량을 지원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주변의 생활 모든 분야에서 매끄러운 협력을 위한 도구가 될 것이며 결과적으로 각 기관, 사업, 경제, 정치 분야의 경계를 재구성하게 될 것이다. 인터넷 소사이어티(Internet Society)의 책임자로 있는 룻코우스키(Anthony-Michael Rutkowski)는 인터넷이 우리의 미래에 끼칠 영향에 대해 다섯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정보 기반구조(Bottom-up Information Infrastructure)이다. 인터넷에서의 정보 서비스는 대규모 정보 제공자에 의해 주도되었던 데서 벗어나 전세계 곳곳에 흩어져있는 네티즌들 스스로에 의해 이루어지기 시작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 일반 사용자가 더 이상 정보 이용자로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정보 생산자와 제공자로서의 역할로 거듭날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것이 가능하게 된 토대는 뭐니뭐니 해도 웹(WWW)의 위력 때문이다.
인터넷 전역에 연결된 그물(The Internet Global Mesh)이다. 전세계에 걸쳐 거미줄처럼 연결된 인터넷은 개개의 국가가 갖는 지리적 한계를 뛰어넘어 국경과 인종과 민족을 초월하여 전 세계인을 인터넷의 국민으로 하고 있다.
공동 협력과 개발(Open Collaboration and Development)이다. 개방성과 정보의 공유에 의해 급속한 발전을 거듭해온 인터넷에서 지리적 거리는 더 이상의 장벽이 될 수 없으며, 다양한 형태의 정보도 사용자들에게 통합적으로 서비스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인터넷에 살고 있는 수많은 네티즌들은 공동의 관심사에 대해 논의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장소로서 각종 그룹을 만들었다. 이러한 인터넷 세계의 특징은 각종 공동작업이나 공동연구와 개발을 훨씬 손쉽게 만들어준다.
기업, 제도, 직업의 변형(Transforming Enterprises,Institution,and Professions)이다. 인쇄술의 발명이 인류 문명의 발전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고 할 수 있으며 자동차의 발명은 인류의 생활방식을 뒤바꿔 놓았다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존재해 왔던 많은 한계를 뛰어넘고 존재하게 되는 인터넷 또한 인류의 생활방식을 뒤바꿔 놓을 것이기에 따라서 기업 활동이나 연구 활동 등도 달라진 생활 방식에 따라 변화를 해야만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자동차 시대에 소달구지 방식을 고집하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거대한 시장 부문(Huge Market Sector)이다. 전 세계인이 인터넷이라고 하는 하나의 통신망에서 네티즌이란 존재로서 살아가는 현실에서 기업 활동은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하게 되는 것이다.
룻코우스키 박사는 이러한 예측과 함께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여 놓았다. "100년쯤 뒤에 인류의 역사는, 인간의 의사 소통에 있어 인터넷의 등장이 인쇄술의 발명보다 더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다고 기록할 것이다."
이러한 인터넷이 우리에게 끼칠 영향은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룻밤 사이 유명해 졌다는 말이 있듯이 인터넷은 하룻밤 사이 수백만 아니 수천만의 정보를 우리에게 제공할 것이다. 혁명이 진행중일 때는 그것이 혁명인 줄 모르는 법이다. 세월이 지나서야 그것이 혁명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향후의 세계에서 그 누구든 인터넷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2.전통교회와 인터넷 교회
현재 우리는 전통적인 가시적 교회와 하나님의 성도로 구성되는 불가시적 교회에 아울러 인터넷 교회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전통적인 교회는 그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성도간의 사랑의 교제가 있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모든 성도들은 그 교회를 중심으로 모여 하나님을 찬송하며 기도하였고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공식적인 기관으로서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죄인된 모습을 깨닫고 복음 설교를 통하여 죄와 허물로부터 새로운 생명을 체험하게 해 주는 곳이었다.
칼빈은 이와 같은 교회를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와의 사귐에로 초대하시고 이 사귐에 머물게 하시는 외적인 수단이라고 주장하여 모든 믿는 자들이 교회와 연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복음이 성령의 역사로 우리 마음에 와 닿을 때, 그리스도는 우리의 것이 되고 우리는 우리안에 신앙을 시발시키고 증강시키며 이 신앙의 목적을 향하여 우리를 이끌고 갈 보조 기관인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교회는 변화에 수동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아마도 전통의 줄에 자신을 가장 꽉 붙들어 매놓는 공동체가 교회일 것이다. 그러나 밀려오는 파도를 막을 수 없듯이, 다가오는 문명의 파도 또한 피할 수 없는 법이다. 지금 다루고자 하는 인터넷의 파도를 교회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의 문제가 현대 교회에 다가오게 되었다.
이제 교회는 아무리 기존의 전통, 가치 및 교리를 고수하기 위해 버틸지라도 엄습하는 물결을 비켜지나갈 수는 없게 되었다. 받아들여야만 하는 하나의 선택만이 남아 있게 된 것이다.
이제 교회가 여기서 밀려오는 파도에 난파되지 않기 위해 하는 것은 파도타기를 하는 것 뿐이다. '파도를 타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전통적 가치를 유지하는 길은 교회가 시대의 파도, 인터넷의 파도물결을 잘 타고 넘어가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1)전통교회의 정체성 : 사귐과 선교공동체
과거나 현재와 마찬가지로 인터넷 시절에도 여전히 중요한 것은 '교회의 본질'에 대한 자기 이해다. 우리는 여기에서 다양한 교회론이 지니는 신학적 의의를 일일이 다 열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신약성서에 나타난 주요 교회 개념을 살펴보면 하나의 특징적 사실에 접할 수 있게 된다.
신약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새 이스라엘,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 안에 있는 공동체, 성도의 교제, 증인들의 공동체, 계약의 성취 안에서 사는 공동체 및 종말론적 공동체로 이해된다. 이렇게 다양한 교회의 성격들을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교재하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중거하는 종말론적 공동체'라고 종합할 수 있다. 이를 더욱 집약한다면, 교회란 성도들의 거룩한 사귐(Sanctorum Communion)이다.
종교개혁자들도 교회는 오직 그리스도만이 다스리는 그리스도의 나라(regnum Christi)로 보고 영륢 사귐을 강조한 바 있다. 그리고 복음이 순수하게 선포될 뿐 아니라 성례전이 바르게 집행되는 성도들의 모임을 참된 교회로 보았다. 인간에 의하여 형성된 전통이나 예식 또는 의식이 언제 어디서나 같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아우스부르크 신앙고백서 제7조).
웨슬리의 경우도 종교개혁자들의 교회론을 정당히 수용한다. "그리스도의 가시적 교회는 믿음이 충실한 사람들의 모임이다. 그곳에서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성례전이 온전하게 집행된다.
그러나 그는 교회를 하나님나라를 위한 수단으로 봄으로써 교회의 선교적 우선성에 강조점을 두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교회를 형식이나 제도가 아니라 하나의 행위이며 기능이며, 세상안에서의 선교를 위한 공동체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웨슬리는 교회의 표지(notae)로 본 말씀과 성례전을 은혜의 수단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다.
교회의 본질에 대한 성서적이며, 신학적인 이러한 이해가 인터넷 시대에도 훼손되지 않고 더욱 강화될 수 있느냐는 것이 문제이다. 즉 인터넷 시대의 교회도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 말씀과 떡을 떼며, 성령의 능력으로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선교공동체라는 본질에는 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교회의 본질이 구현되는 한, 교회는 시대의 흐름 가운데서 다양한 모습으로 고백하며 섬기는 공동체로서 자신을 인터넷 시대의 정보화 사회가 몰고 오는 높은 파도에 개방할 수 있을 것이다.
2)인터넷 '가상교회'
네티즌들이 자신의 고유한 국적(한국, 미국 등)을 가지면서 가상 공간의 인터넷 주소를 갖고 있듯이, 인터넷 시대의 지상 교회들 역시 또 하나의 가상 공간 세계의 주소를 만들어 네티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른바 가상교회(Cyber Church)를 교회로 볼 수 있느냐는 문제에 직면한다.
즉 가상교회도 전통교회가 견지해온 교회의 본질을 지니고 있는지 묻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성도들의 거룩한 사귐'이란 꼭 지정된 시간과 장소에 나가서 만나야만 이루어지고, 인터넷의 가상공간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느냐는 점이다.
우리는 가상교회를 교회로서 전적으로 인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 말은 역으로, 가상교회만으로는 교회의 본질이 구현되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러나 적극적인 차원에서는 '온라인 처치(On-Line-Church)', 혹은 '텔레비젼 교회(TV Church)' 등으로 불리는 '가상교회'라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민첩하게 파도타기를 하고 있는 교회라고 볼 수 있다.
이 교회는 인류가 전자 정보통신 문명시대에 진입함과 동시에 지나간 세대의 옷을 벗고 새로운 옷으로 갈아 입은 것이다. 적어도 전자교회는 그들이 전통적인 교회를 위해 선택한 것으로 이해되기를 바랄 것이다.
어쨌든, 전자교회의 출현은 전통교회의 입장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한 신학적 의미 뿐만 아니라, 도전을 주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그 도전이란 한 마디로 교회 갱신적 차원에서 진지하게 다루어져야 할 내용이다. 오늘날 개신교회의 전반적 경향은 제도주의적 교회관에 기초하고 있다. 이 교회론은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지 못하는 취약성을 보인다.
교회의 '방주' 개념, 목사의 축복, 치리, 저주권한, 하향식 당회의 결정 및 집행권, 일사분란한 군대식 통일성, 강단 위주의 나눠주기식 교회, 평신도들의 제한된 활동영역, 예언적 모델에 대한 거부감, 신학적 창조능력에 대한 반감, 성장위주의 목회활동, 자유로운 영적 은사의 활용에 대한 제한 및 교단적 전통과 교리에 대한 충성심 강요 등은 개신교회가 다시 구교회로 돌아가는 듯한 내용들이다. 이는 현대 교회가 교인의 본질을 상실하고 있다는 위험 신호로 보인다.
인터넷 교회는 최소한 이러한 제도주의적 교회관이 지니는 부정적 측면을 선명히 보여 준다. 그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신학적 교회론 때문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인터넷'이라는 미디어가 형성하는 환경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인터넷과 월드 와이드 웹(WWW)이 만남으로써 인터넷의 의미가 훨씬 더 광대해져 가고 있다. 그 주요 변화들이 인터엣 교회의 성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인터넷의 이러한 흐름을 타고 형성되는 가상교회가 앞에서 전제한 교회의 본질을 얼마나 유지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우리의 우선적인 관심은 가상교회를 만드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통양식의 제도적 교회가 21세기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사귐과 선교의 공동체가 되도록 하는 데 있다. 여기에 인터넷의 가상교회가 전통교회와 어떤 상관성을 지닐 것인가에 우리의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다.
전통적 기성교회가 새로이 출현한 전자적 가상교회에 가하고 있는 비판은 매우 거세다. 그러나 전자교회의 등장은 여러 면에서 기존의 제도교회에 교회 갱신적 충격을 주고 있음을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 현재로서 가상 교회는 말 그대로 '가상적'인 차원을 못 넘을 수도 있겠으나, 고도의 정보화 시대에 본격적으로 진입하는 21세기 중엽 이후부터는 가상적인 것에 의해서만 현실을 접할 수 있는 때가 올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전통교회와 가상교회는 서로 한쪽 극에만 서서 대립적 상관성을 갖고 있을 것이 아니라 교회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미래에 개방적인 교회로 서기 위하여 양자간의 조직적 긴장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3)인터넷 시대 교회의 모습
미래의 고도 정보화 사회로 진입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정보를 자유자재로 신속히 주고 받을 수 있는 정보 유통망이다. 다시 말해서 본격적인 인터넷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세계를 하나같이 통합할 수 있도록 닦아진 통신망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서 소위 '통합 서비스 디지털 망'(Integrated Service Digital Network)이 전세계적으로 활발히 구축되고 있다.
이러한 종합 전산망이 설치되면 단순히 새로 개발된 통신망 하나가 추가된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도시와 시골 사이에 철로가 연결되거나 산골짜기까지 전선줄이 들어 갔을 때, 그것은 곧 삶의 질과 양식까지 변화되는 것을 함축하는 것이었다. 인터넷 시대를 가능하게 하는 종합 전산망이 뚫고 들어가는 곳은 어디든지, 그곳이 이전까지 아무리 소외된 지역이었다고 할 지라도 지구 촌락의 한 일원임을 확인하게 된다.
그렇다면 인터넷 시대의 삶의 양식을 결정하게 될 통합, 서비스, 디지털, 네트위크(ISDN)를 구성하고 있는 네 가지의 개념들은 인터넷 시대의 교회를 말할 때 매우 중요한 모티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박영근의 경우도 정보화 시대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열쇠로 ISDN의 네 개념을 잘 정리한 바 있다. 우리는 이 개념들을 신학적 관점에서 수용함으로써 인터넷 시대의 바른 교회론 수립에 적용코자 한다.
4)통합적 네트워크형의 간(間) 교파적 교회
우선 여기서의 '통합'이란 말은 종전의 단일화 개념과는 다르다. 중앙집권식 피라미드 구조의 획일적 통합이 아닌 다원적 조화와 협력의 관계성을 의미한다. 더욱 구체적으로 말하면, 교회간의 연대를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이제 더 이상 교파간의 신학적, 성례적, 문화적 차별성이 교회간의 연대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따라서 다른 전통들을 존중하는 가운데 서로간 유통하는 일이 요구된다. 각 교파마다 내세우는 슬로건이나 교회적 특징들이 있다. 그러한 것들은 '교환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이러한 개 교회적 전통들을 정보화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개 교회들이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역량들을 공개함으로써 정보를 공유할 뿐만 아니라 활용함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청년부 대상으로 '크리스천의 직업관'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하려 할 때, 적당한 강사를 섭외하는 일이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개 교회가 보유하고 있는 전문인력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에 올려놓기만 한다면, 강사를 필요로 하는 교회가 훈련된 고급 전문인을 발견하여 상호 유통함으로 교회의 활동 수준을 높일 수 있게 된다.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이미 글, 소리, 그림 및 동영상까지도 통합적으로 주고 받을 수 있는 멀티미디어의 세계를 열어 놓았다. 그런데 이러한 멀티미디어 시대에도 여전히 교파간, 종파간 대화와 교류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한다면, 이 모든 것이 자유롭게 개방되어 있는 인터넷 시대에 교회는 마침내 선교의 원심적 능력을 잃는 때가 올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보화 시대의 주도적인 잠재력인 네티즌(Netizen:네트워크 환경에서 정보를 공유하는 새 집단)에게는 전혀 영향력을 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복음화하는 절호의 기회도 놓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인터넷 시대란 온 세계가 네트워크상으로 하나의 지구 촌락을 경험하는 시대다. 더 이상 자기를 공개하지 않고 배타적으로 닫아놓게 되면 고 엔트로피 현상을 피할 수 없게 된다. 파도를 타기는커녕 오히려 그 밑에 깔려 교회의 본질적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5)평신도 중심의 봉사적 디지털형 교회
인터넷 시대는 다른 말로 수용자 중심의 사회다. 수용자가 공급자를 움직인다. 이때의 수용자는 대중이 아닌 주체적인 개인이다. 이러한 개인을 계층적 문화를 거부하게 마련이다. 그동안 전통교회는 성직자 중심의 교권적 계층문화를 암암리에 형성해 왔다. 이러한 문화에 대항하여 인터넷 시대의 교회는 성직자 중심으로부터 '평신도'중심의 신학과 제도로 전환시키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이미 평신도 신학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이야기되어 왔었으나 미진한 상태였는데, 미래 교회의 중요 모티브로 평신도 사역의 극대화를 위한 목회구조의 '대변혁'에 대한 논의가 가시화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성직자 중심의 교회는 인터넷 시대의 교회가 될 수 없다. 인터넷 시대는 수도꼭지에서 물 나오는 듯한 하향식 전달이 아닌, 쌍방적 커뮤니케이션 시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목회자 자신의 신학이나 특정 교단의 전통을 내세우기 보다는 신자들의 영적이며 실제적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다양한 신학적 처방을 내려주고자 하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생산업체에서 도입하고 있다는 '유연 생산 체계(Flexible Manufacturing System)'에서 처럼 기본 모델은 같으나 수용자의 형편과 취향에 따라 맞추어줄 수 있는 융통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것은 목자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요10:3)하는 인격적 대화의 상담 목회로 가야 하는 이정표다.
아직까지 목회자가 설교를 통한 메시지 전달로 공동체 전체를 대량 인도할 수 있는 시대인지 모른다. 그러나 인터넷 시대는 지도자 자신의 신앙적 삶으로 모델을 보여 주지 않으면 안되는 때다. 왜냐하면 일대일 인격적 만남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아날로그 형식에서 디지털로 기술방식이 전환됨으로 따라오는 변화는 생각보다 광범위하다. 특히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함으로써 수신자가 동시에 발신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의 변화가 그 중의 하나다. 이것은 평신도 중심의 교회 신학 수립을 더욱 가속화하는 계기가 된다.
이제 신학이 목회자만의 전유물인 시대는 지나간다. 성경에 대한 전문적 주석도 목회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온갖 신학적 정보가, 그 동안 수동적으로 듣고 따라가기도 바빴던 신자들의 손끝에까지 와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가진 전문적 정보나 목회 에 대한 개인적 의견들을 목회자에게 발신함으로써 목회에 참여하는 '평신도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목회자나 당회는 더 이상 컨트롤러(controller)가 아닌, 서버(server)가 되어야 한다.
시대가 변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이 변하는 시대 속에 변하지 않는 중심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다! 그분도 한 시대에 오셔서 살았듯이, 교회도 한 시대를 맞이하여 살아야 한다. 시대를 분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 한 가지는 그 시대가 어떠하든 교회는 그 시대와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이다. 우리는 '파도타기'를 해야 한다. 파도타기는 시대의 거센 흐름에 빠져들지 않기 위함이다. 이것은 오히려 소극적으로 들린다. 파고 꼭대기에서 파도를 다스리며 항해하기 위함이다.
인터넷 시대의 교회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 단언하여, 간 교파적이며(Inter-Church) 평신도 중심의 교회로 돌아가야 한다. 왜 그런가? 그것이 성서의 정신을 회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터넷 시대가 몰고 오는 파도를 타는 데 방해가 되지 않고 오히려 파도의 흐름에 자신을 맡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시대 파도의 흐름은 통합, 서비스, 디지털, 네트워크(I.S.D.N)의 특징을 지닌다. 교회는 이 흐름에 자신을 적극적으로 열어 놓아야 한다. 이것도 한 시대가 지나면 낡아진 옷일 수밖에 없겠으나, 교회는 이 옷을 걸쳐야 한다.
통합 서비스 디지털 망(ISDN)의 파도를 타는 것 자체가 이미 교회 갱신적 차원을 포함하고 있다. ISDN 교회는 개교회 중심과 성직자 중심의 교회에 대한 비판이자 아울러 대안이다. 간 교파적이며 평신도 중심의 교회로 전환될 때 비로소 전통교회는 성서적인 교회의 '본질'인 성도의 사귐과 선교의 공동체로 회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3.인터넷과 선교
1)대화도구로서의 인터넷을 이용한 선교
①인터넷을 이용한 대화 도구
웹 기술을 거대한 정보 도서관으로부터 정보를 검색하여 자신의 컴퓨터로 옮겨 활용하는 수단으로 본다면 이는 다분히 수동적 정보제공방법이다. 아무리 좋은 선교 자료를 준비해 두어도 이곳에 들어와서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지는 것이다. 이에 반해 최근에 들은 바 고등학생들의 모임 가운데 컴퓨터 통신의 동아리가 친화력이 크다는 점은 인터넷의 양방향 통신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늘상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지만 같이 수업만 하는 친구보다 비록 개인용 컴퓨터를 통해서지만 공동의 관심사를 함께 나누고 한 달에 한번 만나는 컴퓨터 동아리 친구가 더 깊고 오랜 친구라는 이야기이다.
지금 인터넷 상에서 제공하는 양방향통신 매체로는 전자우편, 실시간 문자 대화를 지원하는 채팅, 국제 전화를 시내전화요금으로 할 수 있는 인터넷 폰, 그리고 화상전화, 화상회의 시스템 등이 있다. 이 매체들을 선교에 활용하면 일대일 원격 선교, 원격 교회, 원격 예배 등을 실현할 수 있다.
②일대일 원격 선교사
일대일 원격 선교사란 일대일 제자 양육의 개념을 인터넷 상에서 실현시킨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양육자를 원격 일대일 선교사라 부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원격 일대일 선교사는 전자 우편, 채팅, 인터넷 폰 등을 이용하여 전도 대상자 혹은 양육 대상자와 인격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성경적 지식과 신앙 생활을 지도하는 선교사를 말한다.
원격 일대일 선교사는 그 이름이 말해주듯이 원격이라는 관점에서 인터넷을 활용할 줄 알고 인터넷 상에서 준비된 설교자료를 활용하여 양육을 할 줄 알아야 하겠다. 원격이란 개념은 한계점도 있지만 장점은 지금의 직장과 가정 생활을 영위하면서도 자비량으로 선교지를 섬길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선교지가 한글 문화권이 아니라 외국이라면 그 나라의 언어와 문화에 익숙해야 하겠고 양육에 필요한 성경지식과 성령 충만이 준비되어야 하겠다.
원격 일대일 선교사에게는 목회자로서의 훈련까지는 필요하지 않은 것 같고, 선교지 현지 적응 훈련 및 생계 마련을 위한 훈련 등도 생략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적어도 선교지에 한번 이상 방문하는 것이 선교지의 애정을 갖게 하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하겠다. 이상을 고려하여 원격 일대일 선교사의 훈련과정은 다음과 같이 수행되면 좋겠다고 생각된다.
성경과 영성훈련을 위해 일대일 제자 양육의 지도자 과정을 이수케 하는 것이 최소한 필요하다. 물론 성경과 찬양에 대한 지식이 더 많다면 더 바람직한 것은 말할 나위가 없겠다. 일대일 제자 훈련 과정은 예를 들어서 현재 온누리 교회에서 제공되고 있지만 다른 교회나 선교 단체에서도 이 훈련 과정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각 도시의 한 교회에서는 이런 훈련과정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보겠다. 이 훈련과정 자체에 반드시 인터넷이 동원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선교지의 언어나 문화는 단시간 내에 교육시켜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외국어 면에서는 미리 준비된 사람이 참여하도록 소극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 외국어가 잘 훈련된 사람이라면 선교지의 자원자, 단기 선교사, 유학 후 귀국한 자원자 등과 국내에서 그 언어를 전공한 학사 이상 정도의 전문가를 대상으로 하여야겠다. 다만 외국어가 훈련된 정도를 확인하기 위해 외국어 전공 교수님들의 인정을 받게 하는 과정이 필요하겠다.
인터넷을 활용하여 선교하는 과정을 실습을 통하여 훈련받아야 한다. 이 훈련과정은 인터넷 자체의 활용을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어떤 선교자료가 인터넷 상에 준비되어 있는지를 숙지하여 선교 대상자에게 안내를 잘 할 수도 있어야 하겠다.
교육기간은 개인별 컴퓨터 및 인터넷 사용 경험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몇 일 정도의 단기간 교육으로 족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나서 각자 자비량으로 마련한 컴퓨터와 인터넷을 이용하여 모의 전도 및 양육 훈련을 받아야 한다. 각 원격 일대일 선교사가 소장한 컴퓨터는 담당 선교지 언어를 처리할 수 있는 자판이 준비되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이 완료되면 원격 선교사로서 섬김을 시작하면 된다. 전문적으로 선교를 담당하는 기관과 연결하여 양육 대상자를 만나게 되면 성령의 인도하심 하에서 인격적 관계를 유지하며 그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양육한다.
여기서 원격 일대일 선교사는 신앙 고백을 받는 역할까지는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나 세례를 주지는 못할 것이므로 원격 교회와 원격 목회자의 준비가 필요하다.
2)인터넷 선교의 대상
①해외 선교 대상자
인터넷을 통한 선교의 대상에 따른 특성을 고찰해보자. 해외 선교지별 인터넷 선교의 첫 번째 특징은 지역별로 그 언어로 된 선교자료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과 원격 선교사 및 원격 목회자가 그 언어로 문자 및 음성으로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컴퓨터 자판도 그 언어를 입·출력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야 한다. 각 선교지에 따라 인터넷 사용자의 범위와 수준이 다르므로 선교 전략도 그에 알맞게 구성되어야 하겠다.
예를 들어서 일본에는 가정에도 인터넷이 보급되어 있지만, 중국에는 대학과 기업 중심으로만 인터넷이 보급되어 있으므로 선교자료 번역의 우선 순위가 그에 합당하게 선정되어야 할 것이다. 화상도 그 나라 문화에 어울리도록 개발되는 것이 좋은 인상을 줄 것이므로 선교지별로 전문 선교단체와 협력하여 선교 자료 화면을 설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런데 기존의 선교 단체는 인터넷의 활용에 생소한 경우가 많으므로 세계 인터넷 선교 학회의 해당 위원회와 협력하는 것이 좋다.
우리 나라도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노방 전도의 장소는 도심의 길거리보다 인터넷의 길목이어야 할 것 같다. 특히 불신자들이 선교의 길목으로 들어와 보게 하기 위해서는 문화선교의 측면에서 건전한 음악, 오락, 게임 등의 휴식 및 교육 공간을 마련해 놓고 그곳에 왔다가 호기심으로 선교자료에 접촉해 볼 수 있도록 하는 유인책이 있어야 하겠다.
특히 연령별로 유년부,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대학부에 따라 그 수준에 맞는 전도자료를 흥미롭게 개발해놓을 필요가 있다. 청소년 선교는 해외보다 먼저 우리 나라 안에서 시급히 필요하며,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해외 선교자료로 번역할 수 있겠다.
②선교사 자녀 교육
선교사들의 고통 가운데 하나는 자녀들의 학교 교육이다. 특히 단기 선교사의 경우 자녀들이 귀국후 학교교육에 적응하기 힘든 것을 해소해 줄 방안이 시급하다. 지금 6천명의 선교사가 해외에 파송되어 있는데 그 자녀들을 보살피기 위하여 한국 선교사 자녀 교육 사역회를 구성하여 노력하고 있는 동역자들이 있지만 분산된 6천 가정을 현지에 찾아가서 지원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다행히 교육부에서 가상대학의 설립을 교육개혁의 일환으로 채택하였고 초·중·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멀티미디어 형식으로 개발하고 있다. 따라서 그 교육 자료들을 정리하여 선교사들 자녀에게 인터넷으로 보내주기만 하면 된다.
교육자료는 V.O.D(Video On Demand) 방식으로 학생들이 시청하고자 하는 시간에 강좌를 개별적으로 시청할 수 있게 준비할 수 있고, 평가는 컴퓨터를 통해서 제공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개발은 몇 년 후에나 사용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어 안타깝지만 그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선교사 자녀들의 외로움을 인격적으로 달래줄 원격 친구나 원격 가정교사가 체계적으로 구성되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③현지 선교사 지원
현지 선교사는 소속 교회나 파송 단체의 소식을 교환할 필요가 있고, 새로운 선교 자료를 공급받을 필요가 있다. 이 분들을 위해서는 교회소식, 새 설교, 기독교 잡지, 월간 Q.T 자료 등의 공급이 절실할 것이다. 해외 여행만 해 보아도 성경과 찬송이 없는 곳이 얼마나 고립감을 주는지 모른다. 그러므로 현지 선교사를 위한 새로운 자료의 공급원으로서 인터넷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3)인터넷 선교의 성경적 의미
①인터넷의 선악성
혹자는 인터넷에 나쁜 자료가 많다고 인터넷을 부정적으로 비판하고, 교회가 이런 악한 장소에 가까이 가는 것에 거부감을 갖는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하면 매체와 내용은 냉정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매체는 인쇄물이든 T.V든 심지어 우리의 목소리일지라도 그 자체는 가치 중립적이다. 그 매체가 악한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면 좋은 목적으로 사용되도록 대안을 제시하는 것외에 그 매체가 유익해질 방법은 없다. 그러므로 인터넷 공간을 선교목적으로 사용되게 하려면 선교 자료를 개발할 수밖에 없다.
타락한 인터넷 공간을 향하여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 앉아 음식물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이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그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마 9:10-12)"라고 하신 것과 같이 우리는 인터넷 공간을 건전한 선교의 공간으로 회복시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
②원격 전도와 선교
전도와 선교에서 변하지 않는 진리는 복음 자체와 그 말씀이 성령님의 감동에 의해 마음판에 새겨짐이다. 이에 반해 복음의 저장, 전달하는 방법은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모세는 불로 새겨진 돌판을 가지고 손수 들고 시내산을 내려왔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종이에 손으로 쓴 편지를 인편에 전했다. 마틴 루터는 활판인쇄로 성경을 찍어냈다. 오늘날은 전자적으로 컴퓨터에 기록하고 인터넷으로 전달시킨다. 복음과 성령님의 감동에 변화가 없다면 인터넷 선교는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사역임에 틀림없다.
다만 경계해야 할 점은 도구가 너무 편리해지면 게으름의 소치로 이 도구를 이용해버릴지도 모를 부작용의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이다. 게을러서 혹은 정성이 부족하여 교회에 가지 않고 인터넷에 의지한다면 인터넷은 바람직하지 않은 역기능을 야기시킬 수도 있으므로 성도들의 의식구조에 분별력을 가르쳐야 하겠다.
③원격 신앙고백
신앙고백은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신앙고백은 위치에 구애받을 수 없다.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행 7:47-48)" 함과 같이 신앙 고백 장소를 교회로 제한할 수는 없다. 또한 사람에게 들리는 바 신앙 고백은 그 거리와 매체에 제한될 수 없다. 많은 사람의 고백은 편지나 전화로 전해지지 않는가? 그 고백이 진실한 자기 고백이라면 얼마든지 인터넷 상으로 가능하다고 본다.
④원격 세례
세례는 성령세례와 물세례가 있다. 성령세례는 성령님께서 주시는 것이지 목회자가 주는 것이 아니다. 바울은 목회자 없이 주의 임재를 체험하여 변화되었고, 고넬료에 대해서도 베드로는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행10:47) 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성령세례는 머리에 손을 얹든, 원거리에서 축원하든 그 거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성령님의 임재하심 그 자체가 중요하다.
그러나 물세례는 교단에 따라 그 의식이 다른 것 같이 교회 안에서 영으로 거듭남을 선포하는 의미가 크므로 이 선포는 거리에 의해 제약되기보다는 교회가 정한 의식에 따른 선포절차에 의해 주어진다. 따라서 불가피한 위치에 있는 성도를 구원하기 위한 원격세례를 교회가 인정하고 그 절차를 채택하면 그 동기가 성경에 합당한 의식이 될 것으로 믿어진다. 만일 기존교회를 무시하는 뜻에서 이 방법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외형상으로는 같으나 내용은 정반대가 되는 행위를 하는 것이 될 것이다.
⑤원격교회와 예배
불가피한 위치에 있는 선교지의 성도들을 위한 원격 교회를 통한 원격 예배는 그 동기나 그 절차가 기존 교회와 다를 것이 없다. 단지 원거리를 인터넷으로 극복했을 뿐이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 함께 기도하고 말씀 선포를 듣고 성도가 원격으로나마 교통하는 원격 교회가 비판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이 역시 나쁜 동기로 기존 교회를 부인하는 의도로 이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면 본질상 다른 모임이 될 수 있으므로 이런 동기의 모임을 인정해서는 안될 것이다. 마치 교회와 겉모양은 유사하지만 속이 다른 이단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과 같다. 원격 교회는 주일날 불가피하게 일터를 떠날 수밖에 없는 직종에 종사하는 성도들에게 예배를 제공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것인지도 조심스럽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⑥원격 교회와 원격 목회자
인터넷을 이용한 원격 교회는 교회에 올 수 없는 선교지의 성도들에게 원격으로 예배를 제공하는 예배 공동체를 의미하며 원격 목회자는 이 예배를 집도하고, 새신자에게 원격 세례를 베풀고, 그 신자들을 개별적으로 섬기고 원격 일대일 선교사들의 도움 아래 교회 신자들을 돌보는 역할을 수행하는 목회자를 말한다.
⑦원격 교회와 텔레비젼 교회와의 차이.
텔레비전 교회는 불특정 다수에게 한 방향으로 방송하는 것이라면, 원격 교회는 참석자가 지정되고 양방향으로 대화가 가능한 인터넷 원격회의 방식의 도구를 활용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원격 교회에서는 출석 교인들이 돌아가면서 인사를 할 수도 있고, 기도나 성경봉독을 맡은 교인은 그 역할을 분담하여 참여할 수 있는 교회이다.
이 원격교회는 언어권 별로 한 교회 이상 구성하여야 하겠고 선교지에 교회설립과 해외 선교사 파송차원에서 한국 교회가 공동으로 재정후원을 하여야 할 공동 사역이다.
4.인터넷과 인터넷 시대의 목회
전자메일, 파일전송, 원격로그인, 파일검색, 주제토론, 실시간 원격대화, 목회자들에게 생소한 이러한 단어들이 인터넷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성경보다 더 가까운 말이 되고 있다. 인터넷은 지리적인 경계, 시간적인 경계, 그리고 연령적인 경계를 무너뜨리면서 우리 속에 자리잡고 있다. 특히 정보고속도로 공사가 경쟁적으로 진행되면서 세계는 한 마디로 지구촌이 되어가고 있다.
이것은 사회뿐 아니라 교회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다준다. 사고와 생활양식까지 변모시키고 있다. 교회에도 가상교회와 가상교인이 등장할 만큼 복잡해진다. 이러한 변화 앞에서 교회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고, 특히 목회자가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것은 결코 이르거나 낯설지 않다.
현재 한국기독교는 인터넷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으나 시작하는 단계에 있다. 미래사회연구소나 컴퓨터 선교회 등이 정보화사회의 기독교의 대응을 모색하는데 노력하고 있으나 노력의 결실이 맺어지기까지는 인터넷에 대한 광범위한 관심과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리라고 본다.
1)가상사회와 가상교회의 출현
이제 인터넷은 단순히 여러 대의 컴퓨터를 통신망으로 연결해주는 차원을 넘어서 가상공간을 창출해내고 거기에 가상사회, 가상교회를 구축해가고 있다. 실제로 우리 나라에도 수준이 그리 높지 못하지만 가상교회가 등장했다.
등록일시:96/04/23 22:27 길이:13줄
제 목 : 온라인 교회 / 네티즌을 위한 교회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네티즌을 위한 가상의 온라인 교회가
열렸습니다.
멀티미디어로 구성되는 예배, 성경공부, 찬양의 방 등의 서비스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아직은, 개척 중입니다. 물론 한글이구요. 한번 들러 주세요.
http://bora.dacom.co.kr/~hyndol
교역자 : 황인돈 전도사 (예장통합)
이미 전세계적으로 4천만명 이상이 인터넷에 가입되어 있고 향후 10년 내에 세계인구의 대다수가 인터넷에 가입하게 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인터넷의 보편화로 앞으로 홈페이지를 개설하는 교회가 늘어나고 인터넷을 활용하는 교인들도 확산되고 있다. 그 결과 인터넷 속의 가상교회만 왔다갔다 하며 예배드리고 설교를 듣는 가상교인들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건물교회에 대한 선호가 줄어드는 대신 가상교회에 대한 선호가 늘어감으로 인해 교회에 대한 개념이 점차 바뀌고 건물교회의 교인수가 줄어들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지금 이러한 생각은 기우 또는 상당히 지나치다고 하겠지만 그러한 시대가 예상 외로 빨리 올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건물교회가 전혀 의미가 없다거나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건물교회는 옛 정취를 담은 만남의 예배장소로서 각광을 받고 더 존귀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시대에 교회나 목회자가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변화하는 목회적 환경 속에서 인터넷을 통해 목회자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별로 없을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지나친 생각이다. 과거보다 오히려 할 일이 더 많아진다.
인터넷 세대에게 삶의 의미를 찾아주고 비트(bit)를 하나님으로 간주하려는 그들에게 참하나님이 누구시고 오늘의 삶에서 어떻게 역사 하시는가를 일깨워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목회자는 시대적 변화를 먼저 감지하고 인터넷을 잘 이용하여 교회를 역동적으로 만들고 교인들을 살아 움직이게 만들어야 할 책임과 사명이 주어져 있다.
2)창조적 웹사이트로 도전하라
그러나 교회나 목회자가 인터넷이나 정보고속도로를 피할 수는 없다. 세계는 이미 그쪽으로 방향을 잡고 큰 물결을 이루며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회도 이 영역에 소극적이기보다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않으면 안된다.
그 한 가지 방법이 창의적 웹사이트로 도전하는 일이다. 교회가 어떤 태도로 웹사이트를 구축하느냐에 따라 인터넷의 질이 향상될 수 있다. 사이버스페이스 속에는 정말 의미 없는 정보도 많다. 그러나 가상공간을 떠도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에게 의미 있는 최고의 정보에 굶주려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된다.
많은 교회에서 자기의 교회를 알리는 소개프로그램을 웹사이트에 띄우지만 그 내용은 별반 감동을 주지 못한다. 그저 천편일률적인 내용이다. 그것을 알기 위해 가상공간에 들어 온 것은 아니다. 보다 내용이 알차고 삶에 의미를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이 혹시 있을까 해서 어렵사리 찾아 들어온 것이다.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한다면 모두 식상해서 다시는 그 주소를 찾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교단 및 총회에서는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한국구세군, 한국루터교등이 홈페이지를 개설했고 강변교회, 광염교회, 나단감리교회, 남산교회, 노량진교회, 명성교회, 부산수영로교회, 사랑의 교회, 새벽교회, 아름다운교회, 안동교회, 연동교회, 온누리교회, 지구촌성결교회등이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가 목사님의 설교나 칼럼, 교회소개등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홈페이지나 인터넷목회를 담당하는 담당교역자가 공식적으로 준비되어 있지 못하고 개인적인 관심을 가진 교역자가 혼자만의 노력으로 일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온누리교회 담당 전도사님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보면 html로 올리는 목사님의 설교와 전도사님께서 모잡지에 내는 칼럼을 올리는 것, 그리고 교회소개가 전부이며 그 이외의 것은 준비중이라고 했는데 준비라는 말은 구상을 하는 단계를 얘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홈페이지를 개설한 교회들중에 시스템상의 기술적인 문제로 사용하지 못하고 곳도 적지 않은 숫자였다. 소개되어 있는 주소를 통해 인터넷을 접속해보면 많은 교회가 접속이 되지 않는다. 전화를 걸어서 확인을 해보았더니 위와 같은 문제로 일시 폐쇄 중이라는 것이었다.
케이블 TV의 종교 프로그램을 보면 그저 목사의 일방적인 설교를 처음부터 끝까지 중개하는 것으로 시간을 채운다. 만일 교회의 홈페이지에도 그런 식으로 정보를 띄운다면 네티즌들은 교회가 그 정도의 실력밖에 없느냐고 비웃을 것이다. 목회자의 설교를 소개하는 것이 결코 나쁜 것은 아니지만 보다 동화상과 함께 양방참여를 요구하는 네티즌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기 때문에 감흥이 있을 리 없다.
가상교회의 생활은 설교나 각종 프로그램에 쌍방대화와 참여를 요구한다. 설교에 대한 느낌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평가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목회자의 목회스타일이 달라지고 메시지의 내용이 달라진다. 가상교회는 최고의 것을 원하고 있고, 최고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한다.
따라서 교회는 무엇보다 볼거리가 풍부하고 유익한 웹사이트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한 때 유행처럼 만들어진 웹 페이지들이 부실한 디자인과 정보로 이용자의 외면을 받아 제 기능을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업이나 정부는 물론 교회의 홈페이지도 경쟁력이 있어야 외국의 홈페이지에 당당히 대항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국내 인터넷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
따라서 목회자는 계속 홈페이지 리컨스트럭팅을 해야 한다. 베스트 사이트, 곧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사이트로 만들어 효과 및 그외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우선 고객이 원하는 정보를 구비해야 하며 재미있고 쉬운 홈페이지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교회의 웹사이트가 무엇보다 찾아온 사람들에게 영성을 한층 더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면 성공적이다.
3)선교 및 교회교육의 전초기지화
현재 인터넷은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나 교육의 장이 되고 있다. 가상고등학교, 가상대학이 이미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각 학교나 교사가 인터넷을 통해 교과목을 설강하고 많은 학생들이 수시로 참여하고 있다. 교수들도 시간만 나면 인터넷 속으로 들어가 다른 나라의 교수들과 대화를 하고 토론을 한다.
교회나 목회자는 이런 인터넷을 선교 및 교회교육의 전초기지로 삼는 일이 중요하다. 교인이든 교인이 아니든 교회의 홈페이지에 들어와 안방처럼 지날 수 있도록 하고, 교회가 줄 수 있는 좋은 꼴들을 먹여야 한다. 교회의 홈페이지가 전천후 선교의 장이 된다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는 교회가 선교사를 키우고 선교지에 파송하는 일에 온 힘을 경주했다. 그러나 가상사회에서는 사람이 가는 것이 아니라 메시지가 간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선교전략도 변화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선교사를 키우고 파송하는 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교회교육도 인터넷 스쿨을 통해 얼마든지 이뤄질 수 있다. 교사와 학생들이 말씀을 읽고 토론하며 문제와 숙제를 풀어간다. 이것은 교사와 학생의 관계에서만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목회자와 일반성도들 사이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러한 교육은 망만 연결되면 언제 어디서나 이뤄질 수 있기 때문에 매우 효과적이다. 교회교육의 첨단정보화, 교회교육의 세계화를 위해 인터넷이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도 많다.
이런 의미에서 인터넷은 사치가 아니라 교회의 필수품이 될 것이다. 앞으로 인터넷은 마치 우리가 전화를 하듯 매우 보편적인 문명의 이기로서 우리 곁에 자리를 잡아갈 것이고, 전화가 없으면 불편을 느끼듯 인터넷이나 정보고속도로가 없으면 불편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더욱이 인터넷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교회나 목회자에게 있어서 이것의 부재는 일을 하지 말라는 것과 똑같은 말이 될 것이다.
4)디지털 목회, 소프트웨어 목회
가상사회가 본격화되면 목회자의 역할은 더욱 다양해진다. 설교, 심방, 교육, 전도, 봉사, 상담이 전자네트워크를 통해서 이뤄진다. E-Mail로 설교를 각 교인들에게 전송하거나 화상대화를 통해 심방도 하고 상담도 한다. 가까운 지역뿐 아니라 국내 타지와 외국의 교인들에게도 인터넷망을 통해 만나 대화한다.
종전의 목회를 아날로그 목회라면 이렇듯 변화하는 시대의 다채널 목회를 가리켜 디지털 목회라 한다. 디지털 목회 현장에서 목회자 고정된 한 채널보다 여러 채널을 통해 만나고, 일방적 목회보다 쌍방향 목회를 하며, 획일적인 목회보다 다양하고 신축적인 목회를 한다. 그만큼 목회의 차원이 다르다.
디지털 목회에서 중요한 것은 교회와 목회자가 제공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다. 인터넷망이 설치됨으로써 이미 하드웨어는 마련된 셈이다. 이제 소프트웨어로 승부를 가려야 한다. 독창적인 소프트웨어를 교인들에게 제공함으로써 다른 교회와 차별화하는 소프트웨어 목회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렇고 그런 프로그램과 빈약한 내용을 가지고 목회를 한다면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
교회는 나름대로의 핵심역량을 개발하고 키워나가야 한다. 교회의 핵심역량은 무엇보다 소프트웨어의 특성화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교인 모두가 교회의 웹사이트에 관심을 가지고 보다 독창적인 소프트웨어 개발에 참여할 뿐 아니라 계속 수정, 보완함으로써 다른 교회와 차별성을 두어야 발전할 수 있다.
삼성그룹은 국제적인 입양아단체인 지케이엘(GKL; Global Korean League)과 손잡고 세계 입양아 홈페이지를 설정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17만 명에 달하는 입양아들이 정보통로를 통해 들어와 함께 하는 마당을 마련함으로써 홈페이지를 활성화하고 공익에 기여하는 효과도 거둔다. 교회도 홈페이지를 설정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이용자를 획기적으로 확대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사회봉사 프로그램을 마련한다면 교회의 대사회 이미지를 높일 수 있다. 이러한 활동이 교회홈페이지를 통해 국제적으로 활성화된다면 교인들의 자긍심도 높아지고 홈페이지의 국제화도 이룰 수 있다. 교회의 인터넷은 단지 장식용이 되어서는 안된다. 많은 사람들을 교회의 웹사이트로 유치함은 물론 교인들로 하여금 다른 여러 웹사이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5)관계적 목회와 미립자 목회
사이버세계는 사람들이 직접 만나는 곳이 아니다. 인터넷이나 도로망을 통해 만난다. 사이버에서 만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옛처럼 정이 통하고 인간미가 넘치지는 못한다. 사람은 관계적 삶을 중시한다. 그러나 사이버 세계에서 관계적 삶은 인격적 만남의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정보의 공유성을 인간의 공유성으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공중을 통한 정보의 고유성이 더하면 더 할수록 인간의 개인화는 심화된다. 산업사회에서는 기계에 의해 인간이 소외되었지만 후기산업사회에서는 정보에 의한 인간소외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것은 문명의 위기마저 초래할 위험마저 안고 있다.
교회나 목회자의 역할이 더 중시되는 부분이 여기에 있다. 사이버 세계의 사람들은 두 가지 점에서 부족을 느낀다. 하나는 대인적 인격관계요 다른 하나는 하나님과의 관계다. 대인적 인격관계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서는 목회자나 교우들의 따뜻한 접근이 중요하다. 그들의 영혼을 사랑하고, 통신망에서 잃어버린 영혼을 되찾아 준다. 그리고 사이버에 빠져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살아왔던 사람들에게 창조주 하나님을 찾아주어야 한다.
이것은 통신망을 통해 대단위로 이뤄질 수도 있지만 1대1의 대면을 통해 이뤄져야 보다 효과적이다. 잃어버린 관계를 인격적으로 바로 세워주는 목회를 가리켜 관계적 목회라 하며, 특히 1대1의 관계로 접근하는 것을 미립자 목회라 한다. 이것은 이미 경영학에서 관계적 마케팅 또는 미립자 마케팅으로 개념화되어 있으며 미래의 전략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목회자는 신학적인 문제 뿐 아니라 다른 학문 영역에서 어떤 것이 주목받고 있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디지털 목회, 소프트웨어 목회와 관계자 미립자 목회를 잘 조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대형교회는 부목사들이 구역을 전담하여 심방을 하는데 1년에 한 번씩 자기구역에 있는 성도를 심방하는 것도 힘들다고 한다. 이러한 경우 통신망을 통해 디지털 심방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 목회에 대한 개인적인 입장은 부정적이다. 전화 통화를 하는 것과 직접 만나는 것이 다른 것과 같은 이치이다. 통신망을 통해 화상과 오디오를 통해 만난다고 해도 전화 심방과 달라지는 것은 얼굴이 보인다는 것 이상이 아닐 수도 있다. 디지털 목회의 적용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현재 명성교회에서는 홈페이지 이용자가 명성교회 현재 출석하고 있는 교인 이외에는 전에 명성교회에 출석하다가 외국으로 이민간 교우들이 홈페이지를 많이 찾는다고 한다. 이런 경우에는 디지털 목회가 유용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 교회 현실에서는 관계자 목회와 미립자 목회가 인터넷의 부작용과는 무관하게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6)시뮬레이션 목회
가상사회는 전자정보와 상상력이 만나는 사회다. 따라서 인간의 어떤 상상력도 전자망을 통해 구체화할 수 있는 사회다. 가상사회는 상상력시대의 출현을 앞당기는 것은 물론 창의력을 극대화한다는 점에서 어느 시대보다 특징이 있다. 인간의 창의력은 하나님의 창조성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지만 하나님은 인간에게 창의력을 허락하심으로 사회를 발전시키도록 하셨다. 중요한 것은 그 창의력을 인간의 쾌락증진보다 하나님을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가상사회는 시공을 초월해 상상력을 키워간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가상현실이 전자영상을 통해 가상체험을 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이다. 그 상상력을 통해 시간과 장소를 초월해서 경험의 폭을 넓힐 수 있다.
그 경험이 인간의 상상력에 연쇄충돌을 일으키면서 발전한다. 올랜도의 디즈니랜드 테마파크 가운데 하나인 '미래의 실험적 모형사회(EPCOT)센터'에서 처럼 현재에서 미래의 세계 뿐 아니라 먼 과거의 세계로 들어가고 지구 뿐 아니라 ET의 세계도 방문하면서 상상의 폭을 넓힌다. 가상공간 속에 자신을 투여시킬 수도 있고, 가상배우를 등장시킬 수도 있다.
지진을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가상공간 속의 지진공간에 들어가 지진의 효과를 간접 체험하고 이에 대한 대처를 강구할 수 있다. 가상공간에 나타나는 영상을 통해 다리붕괴, 아파트붕괴 등의 가상현실을 체험할 수 있다. 암흑코너, 폭풍우 체험코너 등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다. 이러한 가상체험은 단순히 천재지변에 한정되지 않는다.
영적인 측면에서 천국체험이나 지옥체험도 가능하다. 이러한 가상체험은 단순한 재미 이상을 넘어 앞으로 자기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그리스도인의 삶인가를 심각하게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이것이 바로 시뮬레이션 목회이다.
시뮬레이션 목회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대상은 어린이들이 아닐까 싶다. 요즘의 어린이들은 컴퓨터 게임과 비디오에 익숙한 세대다. 여름수련회때 슬라이드를 보여 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슬라이드를 상영한다고 얘기하니 주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요즘 아이들은 움직이지 않는 그림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런 어린이들에게 시뮬레이션을 통해 여러 가지 영적인 체험과 성경 이야기를 실감나게 전해줄 수 있다면 아주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가상교회에는 담임목사 뿐 아니라 가상목사를 등장시킬 수 있다. 가상목사는 프로그램대로 행동한다는 점에서 기계적이고 제한적 역할을 수행할 수밖에 없지만 영상세계에서 목회자를 도울 수 있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치 중립적인 가상기술을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일에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최고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하는 가상세계에서 가장 최고의 것, 그리고 가장 의미 있는 것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깊게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가상세계가 아무리 흥미로운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인간이 직접 만들어가는 세계, 인간적인 접촉과 만남을 통해 인격적을 이루어지는 공간세계와는 다르다. 그러므로 가상교회와 가상교회가 존재하더라도 인간적인 터치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느끼게 된다 이러한 느낌이 강해질 때 우리는 비로소 가상세계가 퍼붓는 공격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7)온라인 목회
목회자처험 책을 가까이 하고 정보에 밝은 사람도 드물다. 과거에는 책 위주였기 때문에 도서관이라는 말이 어울리지만 지금은 전자도서관을 따로 설치할 만큼 정보가 전자화되어 있다. 앞으로 목회자는 책을 사는 일도 줄어들고 도서관에 갈 필요도 없어진다. 인터넷을 세계 각곳에 있는 전자도서관에 자유롭게 출입하면서 책과 내용을 소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다. 각종 문화정보에 접할 수 있다. 유익한 전시도 보고 음악도 듣고 강연회에도 참석할 수 있는 온라인 종합문화센터들이 인터넷에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해외 유명박물관과 음악당들이 인터넷의 가상공간에서 새로운 종합문화센터로 변신하고 있다.
단순히 소장품이나 전시 및 공연일정을 소개하는 데서 벗어난 온라인 이벤트를 즐길 수 있는 인터넷 문화공간으로 그 폭을 넓혀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인터넷 문화공간과 실제 문화공간 사이의 격차도 상당히 좁혀질 것으로 전망된다.
스미소니언 인스티튜트는 박물관을 따분한 곳으로 여기는 사람들을 온라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다양한 이벤트를 개최하고 있다. 3차원 다큐멘타리 쇼를 비롯하여 3차원 우주공간을 감상하는 입체지구전도 열고 있다. 이제 늘 시간에 쫓기다보니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길 여유가 없다는 것은 구차한 변명에 불과하다.
이것은 문화행사에 국한되지 않는다. 세계 각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종교행사, 신학세미나 등에도 접할 수 있다. 이것에 익숙해지면 지방의 목회자들이 목회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서울에 올라오거나 외국을 방문할 필요도 없어진다. 인터넷을 통해 직접 그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문제는 목회자나 교인들이 이런 세계화 물결에 대처할 만큼 영어나 컴퓨터 제어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앞으로 목회자는 매일 성경을 읽어야 하는 것처럼 인터넷을 통해 매일 정보의 바다를 들리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목회를 준비하고 있는 입장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가오는 부분이다. 그리고 인터넷에 있어 가장 긍정적인 부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원래 인터넷은 학술적인 전문성을 가진 그물망이었다. 신학교 도서관에 가 본 사람이면 다음의 생각과 현실에 공감할 것이다. "필요로 하는 책이 별로 없다.", "있다손 치더라도 너무 오래되고 낡았다." 지금 지구 반대편에서 금방 출판되어 나온 책을 인터넷을 통해 얼마든지 읽어보고 최신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인터넷의 가장 좋은 역할이다. 세계화의 물결속에서 정보화 사회의 물결속에서 목회자는 정보에 민감해야하고 누구보다도 먼저 정보에 대한 나름의 신학과 견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8)네티즌 윤리정립과 건강한 가상공동체 실현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던 대로 이제 컴퓨터와 인공지능이 합작하여 만들어가고 있는 사이버 세계가 21세기의 복음이 되기도 전에 세기말의 판도라 상자로 변질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아지고 있다.
영국의 딤불비 교수의 주장처럼 인터넷이 컴퓨터 통신의 홍등가로 전락하고 있고 온갖 음란물과 범죄형 정보들이 횡행하는 무법의 하이웨이로 이용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컴퓨터에 매달려 있다고 해서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그들이 음란문화에 깊이 빠져들지 않았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PC통신의 영웅으로 지칭되는 클리포드 스톨도 [실리콘의 허풍]이라는 책을 통해 인터넷의 맹점과 허상을 날카롭게 파헤쳤다. 그는 인터넷이 점차 거대한 정보 쓰레기장으로 타락하고 있다고 개탄하고 있다. 원래 전문가들의 정보교환 마당이었던 인터넷이 어느덧 싸구려 정보만 흘러넘치는 바람에 정작 유용한 정보나 진지한 대화는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은 오락실, 홍등가, 허접스런 대화들, 믿을 수도 없고 별 볼일도 없는 정보들로 가득차 있어 사회의 복사판과 같다.
이같은 사이버 펑크 문화의 발호는 컴퓨터 통신이 발달된 미국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컴퓨터 통신의 폭발적인 전파력으로 우리사회에도 이미 깊숙하게 침투해 있다. 범죄적 음란정보 유통과 거래에 관한 조사나 단속내용을 보면 충격적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18개월 동안 인터넷에 올라온 90만 건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한 뉴스그룹의 정보의 83퍼센트가 음란성 정보였다. 다른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한 해 동안의 음란물이 45만 건이고 이를 컴퓨터로 받아간 건수는 반년 동안만도 640만 건에 달한다. 초기 화면에서 'SEX' 라는 항목을 삽입하면 이와 관련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수백 개의 웹사이트 목록이 떠올라 이용자들이 아무런 통제 없이 이들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것도 문제다. 서비스제공자들이 미성년자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경고문을 게시하고는 있지만 실질적인 통제수단을 갖춰놓고 있지는 않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러한 음란정보가 아무런 여과 없이 미성년자와 청소년들에게 그대로 전달되고 많은 경우 미성년 대상의 각종 범죄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무절제한 사이버문화 탐닉현상은 청소년의 도덕적 오염이나 인격의 파탄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의 건전성과 창조적 에너지까지 함께 고갈시킨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이 문제에 대한 조속한 규제입법도 시행되어야 하겠지만 이를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자율규제가 확립되어야 한다. 특히 이런 문제에 대한 목회자의 인식이 높아야 하고, 이에 대한 교단적 움직임도 강화되어야 한다.
이러한 현상은 인터넷에서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그레샴의 법칙이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이것을 초기의 과도기현상으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세월이 지난다해도 이러한 현상이 수그러들 것 같지는 않다. 따라서 인터넷을 과신해서는 안되며 이제 네티즌이 가져야 할 윤리기준을 국제적으로 확립할 시기가 되었다.
이 일에 대한 교회의 관심이 높아야 한다. 교회는 건전한 가상공동체가 건설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교회는 현재의 가상공간이 가지고 있는 현실과 문제점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할 때에만 가상공간이 단순한 오락기구나 소비수단, 음란매체로 전락하지 않고 진정한 인류미래의 길잡이가 될 수 있다. 이 일에 기독교인이 앞장서 올바른 문화형성의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이미 가상사회가 도래했고, 이에 대한 교회의 자세도 달라져야 한다. 지금의 청소년은 그저 X세대가 아니다.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무장된 가상사회의 시민이 되어가고 있다. 목회자들은 어떤 시대가 다가와도 그들을 하나님 말씀으로 무장시키고 그 말씀대로 생활하도록 목양할 책임이 있다. 시대가 변하고 있는대도 목회자들이 시대의 흐름을 간파하지 못하고 19세기의 목회를 계속하고 있다면 교회는 퇴조할 수밖에 없다. 그것을 무조건 신세대의 책임으로 미루기보다 그 시대의 잘잘못을 선지자적 안목으로 경고하지 못하는 목회자의 책임이 크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전자통신시대의 목회관이 시급히 정립될 필요가 있다. 인터넷을 무조건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신앙적으로 앞선 사고를 통해 그들을 영적으로 바르게 인도해야 한다. 지금 기독교에 요구되고 있는 것은 정보통신에 대해 폐쇄적인 목회가 아니라 열린 목회, 창조적인 목회, 특색이 있는 목회이다.
5.교회에 미치는 인터넷의 부정적인 면과 그 대응방안
1)교회에 미치는 인터넷의 부정적인 면
①인터넷 교회는 교회의 본질을 훼손할 수 있다는 부정적인 면을 갖는다.
아무리 시대가 변화되고 새로운 모습의 교회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요구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본질만큼은 변해서는 안된다. 교회의 본질에 대한 성서적이며, 신학적인 이러한 이해가 인터넷 시대에도 훼손되지 않고 더욱 강화될 수 있느냐는 것이 문제다. 즉 인터넷 시대의 교회도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 말씀과 떡을 떼며 사귀는 공동체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선교 공동체라는 본질에는 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교회의 본질이 구현되는 한, 교회는 시대의 흐름 가운데서 다양한 모습으로 고백하며 섬기는 공동체로서 자신을 인터넷 시대의 정보화 사회가 몰고 오는 높은 파도에 개방할 수 있을 것이다.
②인터넷은 가상교회를 가능하게 하고 기존교회의 붕괴를 가져올 부정적인 면을 갖는다.
우리는 가상교회를 교회로 볼 수 있느냐는 문제에 직면한다. '성도들의 거룩한 사귐'이란 꼭 지정된 시간과 장소에 나가서 만나야만 이루어지고, 인터넷의 가상공간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느냐는 점이다. 우리는 가상 교회를 교회로서 전적으로 인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상황에 놓여있다. 이 말은 역으로 가상교회만으로는 교회의 본질이 구현되기에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적극적인 차원애서 '온라인 처치', 혹은 '텔레비전 교회', '전자교회'등으로 불리는 가상교회라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민첩하게 파도타기를 하고 있는 교회라고 볼 수 있다. 어쨌든 전자교회의 출현은 전통교회의 입장에서 볼 때 매우 중요한 신학적 의미 뿐만 아니라, 도전을 주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그 도전이란 한 마디로 교회 갱신적 차원에서 진지하게 다루어져야 할 내용이다. 오늘날 개신교회의 전반적 경향은 제도주의적 교회관에 기초하고 있다. 이 교회론은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지 못하는 취약성을 보인다. 인터넷 교회는 최소한 이러한 제도주의적 교회관이 지니는 부정적인 측면을 선명히 보여준다.
2)이러한 부정적인 측면을 고려하여 인터넷 시대의 바른 교회론을 수립하고자 한다.
첫째, 인터넷 시대의 교회는 다원적 조화와 협력의 관계성을 유지해야 한다. 더이상 교파간의 신학적, 성례적, 문화적 차별성이 교회간의 연대와 통합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따라서 다른 전통들을 존중하는 가운데 서로간 유통하는 일이 요구된다. 즉 교회들이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역량을 공개함으로써 정보를 공유할 분만 아니라 활용함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청년부 대상으로'크리스천의 직업관'에 대한 세미나를 개회하려 할 때, 적당한 강사를 섭외하는 일이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개 교회가 보유하고 있는 전문인력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에 올려놓기만 한다면, 강사를 필요로 하는 교회가 훈련된 고급 전문인을 발견하여 상호 유통함으로 교회의 활동 수준을 높일 수 있게 된다. 인터넷 시대란 온 세계가 네트워크 상으로 하나의 지구촌락을 경험하는 시대다. 더 이상 자기를 공개하지 않고 배타적으로 닫아놓게 되면 고엔트로피 현상을 피할 수 업게 된다. 파도를 타기는커녕 오히려 그 밑에 깔려 교회의 본질적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둘째, 인터넷 시대의 교회는 평신도 중심의 봉사적 교회여야 한다. 그 동안 전통교회는 성직자 중심의 교권적 계층 문화를 암암리에 형성해 왔다. 이러한 문화에 대항하여 인터넷 시대의 교회는 성직자 중심으로부터 '평신도'중심의 신학과 제도로 전화시키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이미 평신도 신학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이야기되어 왔으나 미진한 상태였는데, 미래 교회의 중요 모티브로 평신도 사역의 극대화를 위한 목회구조의 '대변혁'에 대한 논의가 가시화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성직자 중심의 교회는 인터넷 시대의 교회가 될 수 없다. 인터넷 시대는 수도꼭지에서 물 나오는 듯한 하향식 전달이 아닌, 쌍방향적 커뮤니케이션 시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목회자 자신의 신학이나 특정 교단의 전통을 전면에 내세우기 보다는 신자들의 영적이며 실제적인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다양한 신학적 처방을 내려주고자 하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이제 인터넷 시대는 지도자 자신이 신앙적 삶으로 모델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되는 때이다. 왜냐하면 인격적 만남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제 신학이 목회자만의 전유물인 시대는 지나간다. 성경에 대한 전문적 주석도 목회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온갖 신학적 정보가 그 동안 수동적으로 듣고 따라가기도 바빴던 신자들의 손끝에까지 와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진 전문적 정보나 목회에 대한 개인적 의견들을 목회자에게 발신함으로써 목회에 참여하는 '평신도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3)교회의 대응
①성례전의 강화
사이버처치와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통하여 재택예배를 드릴 때 웅장한 성가대의 찬양과 화려한 인테리어로 장식된 아름다운 가상공간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다. 그러면 교회는 타격을 입게 된다. 그러므로 예배당에 모여서 예배드리는 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설교를 들으면 예배를 다 드린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대안은 성례전( 을 매일 거행하는 것이다.(특히 성만찬) 설교를 들었어도 성례전에 참예해야 제대로 예배를 드렸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교회에 모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가상현실이 발전하여도 성례전을 대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②의식의 강조
통신망의 발전으로 공간적인 거리 개념이 감소하여 재택근무, 출장근무, 홈 쇼핑, 화상회의 등을 자주 활용함으로써 개별화 소집단화의 영향과 사이버 섹스 등의 등장으로 가정의 중요성이 약화되어 사회적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교회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공동체의식을 강조하고 가정의 회복, 대인관계의 회복,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통한 감동적 사랑을 더욱 강조하고 이것을 회중에게 인식하도록 하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모여서 예배드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하고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
③새로운 신학의 정립
가상현실은 의식구조의 전환을 요구한다. 현재의 신학은 문자미디어를 뿌리로 하여 생성된 신학이다. 가상현실의 시대에는 논리적으로 설득하기보다는 감정적으로 느끼게 해 주기를 사람들은 요구하게 될 것이다.
④적극 활용
인터넷을 통하여 장애자나 특수직 근무자(낙도 거주자, 산간오지 거주자, 군부대, 등대지기등)들에게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거나 전도에 이용되는 부분에 있어서 인터넷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부정적인 측면만을 부각시켜 순기능을 도외시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結論.
지금까지 인터넷과 교회 사역에 대한 이론과 실재, 그리고 교회의 대응을 알아 보았다. 교회의 대응이 실천적이고 현실적인 부분인데 인터넷 시대에 대응하는데 있어 좀 더 적극적인 대응을 해나갔으면 한다. 지레 겁을 먹고 인터넷을 멀리하거나 인터넷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터넷 맹신의 우상숭배를 해서도 안될 것이다. 재택예배가 가능해지고 사람들이 나오지 않을까 하여 성례전을 강조하고 공동체성을 부각시키기 보다 현대사회의 근원적인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를 뿌리 뽑는 차원에서 교회의 공동체 예배를 강조해야 할 것이다. 가상교회는 실제교회의 예배를 충실히 드리는 사람이 자기의 신앙적인 성숙과 발전을 위하여 이용하는 선택과목 내지는 앞서 언급한 특수직 종사자들에게 활용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타락상을 대처해 나가는데 교회는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세상정부가 법적인 제재조치를 통해 그 일을 해나간다면 교회는 기독교문화의 우수성을 우수한 기술과 창조적인 홈페이지를 통해 정화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근본적으로 목회자가 먼저 컴퓨터를 다루고 인터넷을 하는데 익숙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인터넷을 활용하는데 있어 분명한 신학적 입장과 철저한 신앙으로 인터넷 활용에 있어 자기 절제를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칼이 강도의 손에 쥐어지느냐 주방장의 손에 쥐어지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