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불교 사상과 윤리
불교의 근본사상
1. 불교란?
불교는 어떠한 종교인가? 첫째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존재하는 모든 것의 실다운 모습을 크게 깨치시고 그 깨치신바 진리를 모든 생명을 위해 가르친 내용이다. 둘째 불교는 모든 생명을 위한 깨침의 길이다. 그의 가르침은 모든 생명들로 하여금 깨침의 원천에 이르게 하기 위한 것이다.
2. 연기의 진리(緣起說)
연기란 Paticcasamupada 로 Paticca (말미암아) 와 Samupada(일어난다)의 함성어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것이란 뜻이다. 아함경(阿含經)에는 '이것이 있으므로 저적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고한 다. 이는 존재하는 것을 공간 시간의 두 측면에서 관찰하고 있는 것이다. 공간적으로 보면 모든 존재는 서로 뗄수 없는 깊은 관계 속에 더불어 있다는 것이다. 또 시간적으로 보면 어떤 존재는 그럴만한 조건이 있어서 생긴 것이며 따라서 그럴만한 조건이 없어지면 그 존재 또한 멸한다. 이러한 연기의 진리는 불교사상의 기본이다.
3. 네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言帝))
연기의 진리를 실천적으로 체계화한 것이 네가지 성스러운 진리 즉 사성제 이다. 제(Satya)는 진리라는 뜻으로 고성제(苦) 집성제(集) 멸성제(滅) 도성제(道)의 넷으로 이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하여 깨처야 할 진리이다.
고제란 괴롭다는 인간실존으로부터 오는 근원적인 고뇌를 말한다. 구체적으로 여덟가지 인생팔고(人生八苦)를 말한다. 집체란 괴로움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으로 존재의 실상을 모르는 무명(無明)으로 인하여 모든 것에 탐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멸제는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벗으난 니르바나(열반涅槃Nirvana)의 세계를 가리킨다. 도제는 괴로움을 멸하고 니르바나에 이르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으로 여덟가지 바른 실천, 즉 팔정도(八正道)를 가리킨다.
4. 불교의 특성
첫째 불교는 인간의 종교이다. 즉 철저히 인간의 문제를 다루고 있을 뿐이다.
둘째 불교는 평등의 종교이다. 먼저 중생과 부처의 평등이다.
셋째 불교는 지금 여기의 현실을 중시한다. 불교는 결코 죽은 다음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의 삶이 문제인 것이다.
넷째 불교는 열린종교이다. 즉 진리에 대한 독단을 허용하지 않는다.
끝으로 불교는 깨침과 자비의 종교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의 실상에 대하여 여실히 알고 동체자비의 실천을 이상으로 하는 것이 불교이기 때문이다.
5. 불교의 두 흐름
불교의 흐름을 우리는 소승과 대승으로 구분할수 있다. 소승이 부처님의 가르침과 계율을 있는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보수적인 입장이라면 대승은 그 정신을 상황에 따라 잘 실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진보적인 입장에 있다.
소승적 전통은 인도를 중심으로 남방, 즉 스리랑카, 태국, 미얀마등의 나라로 전래 되었고, 대승적 흐름은 북방, 즉 중국, 한국, 일본, 티베트 등의 나라로 전해졌다. 그러므로 소승불교를 남방불교, 대승불교를 북방불교라 부르기도 한다.
한국 불교의 수용과 전개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 전래된 것은 삼국시대이다. 고구려에는 소수림왕 2년(372년)에 전진(前秦)으로부터, 백제는 침류왕 1년(384)에 해로(海路)로 동진(東晋)에서, 그리고 신라에는 법흥왕 14년(527)에 이차돈의 순교로 비로소 국가적 공인을 받았다.
불교는 삼국의 왕권의 강화와 국가체제의 중앙집권화의 역할을 감당하였기에 왕실이 불교수용에 선봉적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삼국에 뿌리를 내리기 까지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그것은 불교가 외래 종교요 사상이기에 적지 않은 이질감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당시 삼국은 농업중심의 가족중심적 혹은 부락공동체적 생활을 하였다. 종교적 심성 또한 농본생활에 밀접한 하늘에 대한 소박한 외경으로 현세중심적이요 인간중심적이었다.
여기에 비하여 불교는 인간의 근원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고 출가수행을 하였기에 무부무군지교(無父無君之敎)로 생각되었다.
불교가 토착화 된데에는 포용력이 넓은 대승불교였기에 인과응보와 바른 국가관과 정법적인 교리로 통치의 이념을 제시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불교는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받을 것은 받으면서 서서히 정착하였다.
삼국의 불교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점은 불국정토(佛國淨土)라는 격조 높은 현실정토 사상이다. 통일신라시기에는 원효 의상등이 나타나 불교사상의 원융회통(圓融會通)적 진면목을 세계에 떨쳤다. 고려불교는 태조의 신불(信佛)로 국가적 성격이 강하였다. 고려초 이른바 구산선문(九山禪門)과 교불교(敎佛敎)가 어떻게 조화를 이를것인가 하는 문제가 이슈였다. 대각국사 의천과 보조국사 지눌은 이러한 선.교(禪.敎)간의 문제를 원융한 입장에서 화해시키려 노력한 창의적인 사상가들이다. 조선 불교는 억압과 배척의 수난기였다. 그러나 서산대사는 나라와 겨례를 구하는데 진력하였다. 만해 한용운은 독립을 위하여 애섰다.
한국불교는 모든 갈래의 종파와 이론을 귀일 시켜서 묘한 조화를 이룩한 원융회통 사상과 우리의 현실국토가 그대로 불국정토라는 현실정토적인 사상을 완성하였다.
한국 불교사상의 성격
1. 원융회통(圓融會通) 사상
'하나'인 불교의 전통은 모든 이론과 종파를 묘합한 원융회통의 사상적 전통을 말한다. 원융이란 원만하여 막힘이 없는 것이며, 회통이란 대립과 갈등이 높은 차원에서 해소된 하나로의 만남인 것이다. 따라서 원융회통이란 어설픈 절충이 아니라 하나인 세계의 조화이며 종합니다. 그러한 결과로 한국 불교는 종파적인 색체가 지양된 통불교적 전통을 확립하였다.
한국 불교의 원융회통적 사상의 초석을 굳건히 다진 사람은 원효이다. 또한 " 하나 안에 일체요, 여럿 안에 하나, 하나가 곧 일체요, 여럿이 곧 하나,"라 하여 조화의 길을 제시한 의상 또한 원융회통의 큰 별이었다. 의천은 '둘을 잘 고루어 내외겸전(內外兼全)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선은 부처의 마음이요, 교는 부처의 말씀이라 하여 선.교가 본래 둘이 아니라고 한 보조국사 지눌은 원효 이래의 원융회통적 전통을 유감 없이 발휘한 위대한 사상가 였다. 그는 깨침과 닦음(悟 修)이 분리될 수 없으며 정(定)과 혜(慧)또한 함께 닦아야 된다는 이른바 돈오점수(頓悟漸修), 정혜쌍수(定慧雙修)의 독창적 사상을 확립, 비로소 한국선의 탈중국화를 실현하였다.
2. 현실정토(現實淨土) 사상
불교에서 서방극락세계, 용화세계등의 정토를 설립하는 것은 개인의 완성은 물론 우리가 자리한 국토와 사회를 완성하려는 대승적 정신의 발로이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월성 동쪽 용궁 남쪽에 가섭불의 연좌석이 있는데 이곳은 전불 때의 절터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전불이란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의 부처님을 말하며 가섭불은 그 중의 한 분이다. 즉 전불때의 절터와 가섭불이 앉아 설법하던 돌이 있다고 적고 있는 것이다. 신라인들은 불교가 인도 중국을 거쳐 유입되기 훨씬전부터 이미 불법과 깊은 인연을 가졌던 땅이었다는 자부심에 충만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불연국토설은 미륵사상과 접목되어 이땅이 그대로 미륵정토라는 독특한 현실정토사상으로 전개된다. 미륵사상은 미륵(Maitreya)은 원래 부처님의 제자로 죽은 뒤에 도솔천(Tusitadeva)에 나서 현재는 그 속에서 그 곳의 천중들을 위해 설법하고 있는 보살로 미래세에 전륜성왕(Shankha)이 세상을 다스릴 때 내려와 용화수 아래서 성불하고 석가불이 미처 제도하지 못한 중셍을 세 번의 설법을 통하여 제도한다는 미래불이며 그가 건설하는 이상적인 세계가 용화세계(龍華世界)이다. 이러한 미륵경을 바탕으로 하는 미륵신앙에는 두가지 유형이 있는데, 하나는 현재 미륵이 있는 도솔천에 가서 나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장래 미륵부처님의 용화세계를 건설할때 그곳에 나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이륵신앙은 죽고 난 다음이 아니라 '지금''여기'의 우리의 국토가 그대로 미륵정토와 용화세계라고 믿는 독특한 현실정토적 신앙이 주를 이룬다. 이러한 현실정토사상의 참뜻은 우리의 땅을 현실 불국정토로 장엄하려는데 있다.
원효의 사상
원효는 진평왕 39년 현재 경상북도 경산군 자인면 불지촌에서 태어났고 성은 설(薛)씨이며 원효는 불명(佛名)이고 고료 숙종때 화쟁국사의 시호를 받았다. 요석공주와의 사이에 설총을 낳았으며 신문왕 6년에 혈사(穴寺)에서 70세를 일기로 입적하였다.
그는 저술에 힘써 99부 240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금강삼개경론'른 중국에서 '논'으로 인정한다.
1. 하나인 마음에 즉한 화쟁
원효는 '강과 바다'를 이룬 쟁론을 회통하고 화쟁하는 일에 전력하였다. 하나인 마음이란 깨끗하고 더러움, 참과 거짓, 너와 나 등 일체의 이원적 대립을 초월해 있는 절대불이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화쟁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하나인 마음에서의 대긍정의 삶을 목표로 한다.
2. 하나인 마음에 돌아가서 모든 생명을 이롭게 함
원효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수 있는 길은 존재의 원천인 하나인 마음에 돌아가는 것이라고 믿었다. 즉 밖으로만 치닫던 우리의 관심이 방향을 전환하여 존재의 원천을 향해 되돌아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돌이킴'의 문제야 말로 원효에 의하면 신앙의 첫걸음이요, 자기회복의 첫걸음이다. 그렇게 돌이켰을 때 나타나는 하나인 마음, 그것은 나의 존재의 원천일 뿐만 아니라 부처요, 진리요, 승가인 삼보(三寶)인 것이다. 하나인 마음에 돌아간 사람의 삶은 어떠할까? 원효에 의하면 그것은 세찬 이익중생의 삶이라고 한다. 하나인 마음에 돌아가기 위하여 우리는 어떠한 실천이 필요한가? 첫째 베풀음, 둘째 계를 지킴, 셋째 참는 마음, 넷째 끊임없는 노력, 다섯째, 마음을 가라앉히고 항상 관찰함이다. 이러한 실천은 대승보살의 실천덕목인 육바라밀과 다르지 않다.
3. 원효사상의 의의
'나만 옳고 남은 그르다'하는 편견으로 일어난 쟁론을 화해하는 일도 하나인 마음에 즉할 때 근원적인 해결이 가능하다. 원효는 우리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살수 있는 길은 존재의 원천인 하나인 마음에 돌아가는 것이라고 역설하였다. 이러한 원효의 사상은 원융회통한 한국 불교의 사상적 전통을 창도하였을 뿐만 아니라 세계 불교사에 불멸의 빛이 되었다.
지눌의 사상
보조국사 지눌(1185~1210)은 회통을 확립한 대가이다. 8세에 입산하여 25세에 승선에 합격하였다. 그는 이통현(李通玄)의 '화엄론'에서 선교가 둘이 아님을 확신하고'세존이 입으로 설한 것이 교요, 조사(祖師)가 마음에 존한 것이 선'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41세때 지리산 상무주암에서 '대혜어록'을 읽다가 크게 깨치고 수심불교로 돌아갈 때 정법은 구현될수 있으며 선교의 갈등도 해소될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1. 돈오점수(頓悟漸修)
깨침과 닦음에 관한 바른길을 제시하는 것이 그의 돈오점수설이다. 즉 지눌에 의하면 올바른 수심의 길은 먼저 마음의 성품을 분명히 깨치고 그 깨침을 즉하여 점차로 닦아가는 선오후수(先悟後修)라는 것이다. 심즉불이라는 사실을 돈오했으면 수심을 마친 것인가 ? 지눌은 그러한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그렇게 되기가 어렵다고 한다. 깨쳤으면 그만이지 왜 점수가 필요한가? 지눌에 의하면 깨치기 전 오랫동안 익혀온 나쁜 습기는 즉시 제거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돈오가 자기존재의 실상에 대한 눈뜸이요 앎이라면, 점수는 그 앎이 생활 속에서 여일(如一)하게 하는 실천과정이요 닦음이다. 지눌은 이돈오점수의 체계를'모든 성인의 길'이라고 까지 강조한다. 그는 왜 그렇게 돈오점수를 강조하는 것일까? 거기에는 두가지 까닭이 있다. 즉 조그마한 깨침의 기미만 있는 듯 해도 자만하여 마치 성불한 양 닦음을 버리는 사람과, 경전이나 읽고 깨칠 생각은 염두도 못 내는 사람들의 나쁜 병을 고치기 위해서이다.
2. 정혜쌍수(定慧雙修)
점수(漸修)의 내용을 밝히는 것이 그의 정혜쌍수론이다. 즉 정(定)과 혜(慧)는 함께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이란 산란한 마음을 한곳에 집중하여 조용하게 하는 것이먀, 지혜는 사물을 사물대로 보는 것으로 삼학의 덕목이다. 즉 정은 마음의 공적(空寂)한 존체를 가리키며, 혜란 마음의 영지(靈知)한 작용을 말한다. 따라서 마음의 본체와 작용이 분리할수 없듯이 , 정과 혜도 항상 함께 해야 한다.
3. 선교융회(禪敎融會)
선은 부처의 마음이요, 교는 부처의 말씀이다. 마음과 말이 분리될수 없듯이 선과 교가 둘일수 없다. 그가 돈오점수의 체계를 강조한 것도 이러한 선.교 융회의 정신과 부관하지 않다. 그것은 돈오점수가 선.교학자의 병을 치유할수 있도록 체계지워졌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선교간의 갈등을 근원적으로 해소하려고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4.지눌사상의 성격과 의의
지눌의 사상은 묘한 회통을 기본으로 하는 원융한 것이다. 이러한 성격은 그의 돈오점수, 선교융회의 사상에 그대로 나타난다. 지눌에 있어서 개침과 닦음은 분리될수 없는 것으로 깨침을 통한 닦음,닦음을 게을리 하지 않는 깨침의 체계이다. 이것은 첫째 한국선의 탈중국적인 전통의 확립니다. 둘째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살수 있는길에 대한 철저한 규명이다.
결 론
불교가 이땅에 전래된 지 1600여년, 한국불교 특유의 사상적 전통을 수립하였다. 한국 불교는 보편과 특수, 이상과 현실, 원융회통과 현실정토적 전통이 묘한 조화와 균형을 이루었을 때, 가장 찰란한 문화와 전통의 꽃을 피울수 가 있었다. 한국불교의 사상적 전통에서 찾아볼수 있는 특성은 어떠한 것일까?
첫째 인간을 근본적으로 하는 인간중심의 사상적 흐름이다. 둘째 인간회복의 강한 실천적 메시지를 읽을수 있다. 셋째 현실국토 완성의 의지를 볼수 있다. 넷째 왜래사상의 주체적이고 창조적인 수용자세를 볼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