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사회-그 관계의 역사적 재조명

심일섭(강남대 교수 역사신학)

월간「기독교사상」

대한기독교서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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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론

Ⅱ. 예언자 아모스의 사회 윤리와 정의. 사상

1.아모스의 시대 배경과 그 특성

2. 정치와 종교

Ⅲ. 종교 개혁 신학자 루터의 권력론

1. 루터의 권력론 구조

2.루터의 두 왕국론, 그 논란의 동기

3.권력의 한계론과 직능론

Ⅳ.사회복음의 대두

1. 라우쉔부쉬의 생애

2.사회 복음의 중심 사상-하나님의 나라

3. 사회 복음 운동의 평가

Ⅴ. 에큐메니칼 신학과 책임 사회의 이념

1. 책임 사회의 정의

2.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의 이념들

Ⅵ. 결론

1.신성과 인성

2. 교권과 정권

3. 모두가 창조 질서의 회복을 위하여

Ⅰ. 서론

인류가 신봉해 온 역사적 종교는 저마다 그 시대적 조건과 사회적 환경 속에서 발생하고 성장하며, 그 보편적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역시 '역사적 진공 상태'에서 홀연히 나타났거나 고요한 땅에서 갑자기 돌발한 종교가 아님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이러한 역사적 진공상태 속에서는 선과 악의 도덕적 판단이나 진리와 허위를 논고한다는 것이 전연 무의미했을 것이다.

기독교가 탄생하기 이전의 철학 면에서는 이미 피타고라스(Pythagoras, BC 582--500)와 소크라테스가 활동하고 있었고, 종교적으로는 고대의 고상한 윤리사상을 교시하고 있던 '스토아주의'와 유대교가 있었다. 이처럼 다른 고등종교와 같이 기독교도 오랜 역사로 다져진 사회적, 문화적 짜임새 속에서 성장하고 확대되어 왔다.

그리하여 때를 따라 그때그때의 사회세력들과 긴장된 갈등, 사회 구성원들이 표출한 외침과 몸부림과 바람의 얽힘 속에서 고난과 승리, 실패와 영광을 거듭하면서 걸어가고 있다. 특히 기독교의 초월 지향적 신앙은 궁극적 실재인 초월적 존재를 삶의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변혁적(變革的) 폭이 축소된 사회의 밑바탕을 재구성할 수 있는 변혁적 에너지를 불어넣을 수가 있었다. 따라서 기독교는 가족적, 혈연적 특수주의를 초월적 가치에 따라 상대화시키고 보편주의로의 가치 지향성을 내세웠다,

실로 초월적 존재인 하나님이 기준이 될 때 인간이 만든 모든 문화적 전통, 사회적 역할 구조, 신분 관계, 제도 그 어느 것도 심판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신성'한(?)절대의 자리에 서 있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상'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혁 지향성을 펴 나가기 위해서 세워진 교회 그 자체의 성장이 곧 근대화 운동 바로 그것이라 보던 때도 있었다. 하나님 앞에 모든 인습과 제도, 그리고 전통 사회의 인간관과 사회관을 검토하고 심판하며, 교회성원의 삶과 행동을 훈련시킨 그 자체를 단단한 변혁의 현상으로 보기도 하였다. 기독교가 담고 있는 신념과 상징은 사회 변혁의 가능성이며 원동력이기도 하다. 기독교가 특정 사회 형태나 어떤 계층에 밀착하여 안주하지 않고. 또 세상으로부터 도피하려는 자기 은둔에 함몰되지 않는다면, 기독교는 끊임없이 사회를 바꾸려는 활력소를 공급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기독교의 내재적인 변혁 지향성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독교의 내재적 변혁 가능성은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연대적 책임감(Common christian responsibility)에서 실현되며, 이 책임성은 변화에 대한 윤리적 관계를 강화시켜 준다. 따라서 새로운 사회 질서를 확립하는 데 필요한 도덕적 문제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일차적으로 인류의 영원한 과제인 사회 정의와 인권 사상에 관한 새로운 각성을 불러일으키는 일일 것이다.

Ⅱ. 예언자 아모스의 사회 윤리와 정의. 사상

1.아모스의 시대 배경과 그 특성

예언자도 인간적으로는 그 시대의 사회와 환경의 아들임에는 틀림이 없다. 아모스는 그의 고향 '드고아'와 같은 고원 지대에서 노동을 하며 농촌에서 살았다. 그의 예언에서 나타난 '자연'과 '농촌, '목동'과 '가난한 삶' 등은 오히려 그의 순수성과 진실성과 과감성을 잘 뒷받침해 주는 배경이 되고 있다. 따라서 그의 신관은 지적이고 논리적이라기보다는 직관적이고도 감성적이었다.

아모스 자신은 어떤 학문적 논술이나 신학 사상을 체계화하지는 않았으나, 최초의 문서 예언자라는 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구체적인 사실로 전해 준 대표적인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이 아모스가 예언 활동을 전개했던 BC 8세기 중엽에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번성기로서 중동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의 중심적 위치에 있었다. 특히 여로보암 2세의 성공적인 통치로 정치적 안정과 영토의 확장, 이에 따른 무역의 확대로 인한 상업의 번창 등으로 인하여 권력자들과 부자들의 사치와 패륜은 극에 달해 있었다. 이 무렵부터 가난한 사람이 생겨나고 빈한한 계층이 출현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사회적 변동과 도덕적 타락, 그리고 영적 위기 현상을 목도한 예언자 아모스는 우선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사회적 삶의 문제, 그 중에서도 특히 사회 정의에 관한 예언에 집중하였다. 이러한 특성은 아모스가 시기적으로 가장 먼저 당면하였기 때문이며, 그때부터 예언의 새 질서가 정립되기 시작하였고, 후대의 예언자들에게는 막중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2. 정치와 종교

아모스는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보다는 그의 공의를 알려 주는 대표적 예언자였다. 아모스의 확대된 신관은 주변의 여러 나라, 즉 세계를 그의 심판 아래 두신 하나님이시다. 이 우주적 심판 선언은 야훼 하나님은 '만민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근거에서 가능하다. 이 만민의 하나님은 윤리적 공의를 요구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모스의 시대에는 (1)통치자들의 '폭행과 착취'를 일삼는 윤리적 폐허, (2)공직자들의 '뇌물 정치'로 인한 불의, (3)심지어 가난한 자의 머리에 끼어 있는 지푸라기마저도 탐을 내는 '불타는 탐욕 (4)궁핍한 자를 신 한 켤레 값으로 팔아 넘기는 '인권 말살의 죄'(암 2:6-7), (5)의인을 은으로 팔아먹는 압제와 패륜 등이 난무하였다.

그리고 아모스의 영향을 받은 이사야도 권력과 부를 이용하여 부동산 매매로 폭리를 취하는 자들에게 경고하기를, 집에 또 집을 연달아 지으며 토지에 또 다른 토지를 연달아 사 모아 빈틈이 없게 하고 이 땅에 혼자만 살고자 하는 자들이여 그대들에게 화가 있을지어다(사 5:8)라고 하였다.

또한 "야훼의 날의 신학자"라 불리는 스바냐도 혼합주의(습 1:1), 외국 신을 섬기는 일, 외국 생활양식을 추종하는 일(1:8), 강포와 궤휼(1:9), 완고함과 불신앙(3:1-4)등은 모두가 심판받을 죄목들이라고 외쳤다.

특히 아모스에게 있어서 하나님 야훼의 심판은 그의 공의를 위배할 때와 계약공동체가 준수해야 할 그의 윤리적 요구인 '정의의 질서'를 무너뜨릴 때 집중된다. 공동체의 윤리적 요청은 다름 아닌 사회 정의의 질서 속에서 구현되므로 개인적 차원을 넘어선다. 그러므로 "삶의 보다 포괄적인 실제" 는 '종교'와 '정치'를 통하여 완성된다. "실로 인간이 산다는 것은 육체적 생명과 정신적 생명만이 아니라, '정치적 생명'까지도 포함되어야만 한다."

구약 성서의 인간관은 언제나 계약 공동체 내에서, 즉 개인을 그가 속한 사회 또는 공동체를 통하여 해석되는 '공동 인격'(corporate personality)으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아모스 역시 어느 곳에서도 개인적 경건이나 개인적 윤리 가치를 논한 바가 없다고 한다. 이와같이 참된 종교는 인간의 '삶 전분야'와 '역사의 모든 순간'과 분리될 수가 없다. 일찍이 아모스는 주전 8세기 중엽에 이미 당시의 악과 불의가 최악의 상태이고.

그것은 사회학적이며 구조적인 악임을 정확하게 통찰하고 있었다. 확실히 아모스는 세상을 온통 하나님의 법정으로 삼는 심판사상으로써 역사를 보았으며, 정녕 인류를 위한 정의롭고도 영원한 검사'였다. 또한 구약의 예언자들은 세상을 지배하는 세력들에게 파송된 하나님의 영사(領事)와 같은 사람, 곧 정치적 대리자'이기도 하였다.

이처럼 아모스를 비롯한 구약의 예언자들에게 있어서 종교와 정치는 공동체 윤리의 측면에서 분리될 수가 없었지만. "예언자들은 정치적인 역사관에서 정치 문제를 결정한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역사관에서 (정치를) 결정하였다." 또한 트윌치(Emst Troeltsch)도 「히브리 예언자들의 품격」에서 강조하기를, "예언자들의 정치적 태도는 순수하게 종교적 근거에서 미루어진 것"이라고 했다.

Ⅲ. 종교 개혁 신학자 루터의 권력론

1. 루터의 권력론 구조

루터는 1523년에 "현세의 주권에 관하여-그것에 우리들은 어디까지 순응할 의무를 가지는가-"라는 글을 발표하였다. 이것은 루터의 사회윤리 사상을 밝힌 저작인데, 특히 국가 권력의 문제를 정면에서 논하고 있다.

루터는 이 글에서 먼저 세상의 국가 권력과 정신적, 종교적 권위와는 원리적으로 구별된다는 것을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기존 국가 권력의 근거를 성서에 기초하여, 모든 그리스도인은 현존하는 국가 권력에 복종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였다. 여기에서 루터의 사회윤리 사상의 보수적 성격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보수성은 1524년에 농민 전쟁이 폭발하여 점점 난폭해지자 루터는 연방 제후 편에 서서 농민들을 모욕적이고 극단적으로 단죄한 데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러면 루터는 과연 세속 권력에 영합하여 무조건 권력에 복종하도록 권면하였을까? 그의 글 중 "현세의 주권에 관하여"라는 부제가 암시하듯 루터의 주된 의도는 '권력의 한계'를 명시하자는 것이었다. 이 저작을 저술한 직접적 동기는 작센 공 게오르그(Georg)가 성서 판매 금지령을 내린 처사에 기인한다. 루터는 정신적, 종교적 사항에 국가 권력이 함부로 개입하는 것을 금지시키려 했다. 더 나아가 권력의 무제한적인 행사에 대해 엄하고도 단호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었음을 볼 수가 있다. 여기에서 단순한 권력 옹호자 이상의 모습을 루터에게서 찾아보게 된다. 그 근거는 국가 권력과 정신적 권위를 원리적으로 구별하는 데 있다,

2.루터의 두 왕국론, 그 논란의 동기

루터에 의하면 어떤 사람도 권력과 상위 권위 (Obrigkeit)에 순종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은 권력은 없기 때문이다. 신의 의지에 근거한 국가 권력은 칼을 가지고 이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며, 악한 자를 벌하고 선한 사람을 보호하는 것이기에, 어떤 사람에 의해서도 모독되어서는 안 될 신의 질서에 속한 것이다. 루터의 국가 권력론의 이론적 근거는 두 왕국(二王國) 사상이다. 인간은 신국(神國)에 속한 자와 '세상과 나라'에 속한 자로 나뉜다, 그런데 세상 나라에 속한 자에게는 국가 권력이 필요하지만, 하나님 나라에 속한 올바른 신앙인에게는 군주나 검이나 법이 필요 없다. 스스로 자진하여 모든 일, 모든 법이 요구하는 이상의 것을 행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주의할 것은 두 나라가 각각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 악한 현세상의 나라 가운데에 수렴하려고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다. 그러기에 복음을 현세도피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그에 의하면 '신의 나라'와 '세상의 나라'는 살아 있는 그리스도인을 접합점으로 하여 결합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이 두 나라 사이에서, 자기 스스로를 향한 어떠한 악에 저항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서도 이웃을 향한 악에 대해서는 용서 없이 벌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은 동시에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의 나라를 외적으로. 그러면서도 내적으로 만족시켜 악과 부정을 인내하면서 벌하고, 악에 저항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저항한다.

3.권력의 한계론과 직능론

루터가 두 왕국론에서 의도한 목적은 중세 이후의 교회와 국가의 통일론에서 야기된 혼란의 현실을 온몸으로 막으려 한 것이다. 루터는 혼란된 두 세계를 비연속적으로 보아 세속 권력화한 로마 카톨릭 교회를 부정함과 동시에 국가 권력이 종교에 개입하려는 것을 저지하려 하였다. 국가 권력의 정당성은 두 나라 모두에게 파급되는 것이 아니라 현 세상 나라의 질서와 평화를 유지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여기에서 권력의 한계가 명확하게 된다. 하나님은 자신 이외의 어떤 자도 영혼을 다스리게 하지 않으신다. 이처럼 철저한 루터의 권력 한계론은 결국 정신적, 영적 영역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손 안에 전적으로 있는 것이기에 인간의 개입을 용서하지 않는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심지어 루터는 이단자에 대한 세상 권력의 간섭마저 금지하였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만이 거기에 있어서 그 일을 행하신다."

루터의 이와 같은 철저한 권력 한계론은 한걸음 나아가 권력 기능론에서 백미를 이룬다. 그에 따르면 세상 군주의 권력은 하나님의 '도구'로서, '기능'으로 역할할 때 비로소 참된 권력자가 된다. 국가 권력은 "특수한, 하나님께의 봉사"이며, 권력자가 하나님의 '종'으로서 마치 이 세상의 '직업'을 위해 하나님이 불러내시어 나에게 주셨다는 소명 의식을 가지고 종사하는 것처럼, 권력 행사자도 하나님의 '직능인'(Handwerksleute)으로서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권력은 절대화나 자기목적화되지 않게 된다.

루터의 권력론은 봉건 사회의 신분 제도를 타파하고 근대적 기능주의의 길을 열어 놓았다고 평가될 수 있다.

Ⅳ.사회복음의 대두

1. 라우쉔부쉬의 생애

휠터 라우쉔부쉬 (W. Rauschenbusch, 1861-1918)는 미국에서 자유주의적 사회 신학 운동을 일으킨 사회 복음의 주도적 주창자이다. 그는 뉴욕주 로체스타에서 출생하여 뉴욕의 '제2침례교회'에서 10년 간 목사로 봉직한 기간 외에는 로체스타에서 생애를 보냈다. 종교적 유산과 신앙이 깊은 목사 집안의 7대인 그는 26세 때 작은 교회의 목회자로서 빈곤함으로 고난을 겪었으며, 회중 전도를 했던 생활이 귀중한 경험이 되었다.

그는 미국과 독일에서 교육을 받고, 1889년에서 1891년까지 "뉴욕 시의 노동자들의 이익에 공헌하기 위해" 월간지 For The Right를 발간하였다, 그후 1897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로체스타 신학교에서 독일과와 교회사 교수로 봉직하며 사회 복음 운동을 학문적, 실천적으로 주도하였다.

그의 독특한 인품을 가리켜 성실성, 종교적, 대중적, 유머, 시인, 신비주의자, 예언자, 목사 등등으로 표현하지만 그 표현은 부족하다. 라우쉔부쉬는 학자의 학식과 시인의 비전, 그리고 예언자의 정열을 겸비한, 그래서 미국 신학계에서 "가장 독창적인 인물"로 존경받고 있다.

라우쉔부쉬는 20여 년 간에 걸쳐 잡지에 무수한 논문을 기고했으며, 여러 집회와 강단에서 강의와 설교를 하였다. 1907년에 '기독교와 사회 위기'를 출간하였는데, 여기에서 구약 종교의 사회적 . 윤리적 측면을 분석하고, 또 신약의 그리스도의 구원 계획에는 인간의 필요(needs)와 권력과 관계된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고 했다. 이어서 1910년에 나온 「신의 백성을 위하여-사회적 각성의 기원자들-」에서는 사회 운동이 종교에 근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1912년에 나온 '사회 질서와 기독교문화'에서는 순수한 사회주의로 자본주의를 비판하며 사회 개혁을 위한 종교적 기초를 표명하였다. 또한 1916년엔 '예수의 사회적 재인식'이란 소책자를 출판했는데 가장 대중적인 저작이었다. 이어서 1917년. 그러니까 그가 사망하기 2년 전에 예일 신학교에서 행한 강연"을 정리한 '사회 복음과 신학'에서는 사회 운동이 종교적 성격을 상실하면 그 운동도, 사화 복음 신학도 모두 다 위험하다고 경고해 마지않았다.

2.사회 복음의 중심 사상-하나님의 나라

월터 라우쉔부쉬는 고백하기를, "나의 유일한 희망은 기독교의 공평에 대한 정열이다. 그러면서도 기독교의 사랑과 자비의 힘을, 그의 코앞에 널려 있는 여러 악으로부터 오늘의 사회 질서를 구출해 내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떨쳐 일으키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한 사람이 범죄하면 다른 한 사람이 고통을 받고. 한 계급이 범죄하면 다른 계급이 고통을 받는다. 이처럼 사회는 '통합적'이며, 고통은 '연대적'이다. 이 연대 의식이야말로 윤리적, 사회적, 종교적 본질이 된다"는 것이다.

뭐니뭐니 해도 라우센부쉬 신학의 중심 개념은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는 이것을 그리스도의 교훈의 진수로 믿었다. 그는 이 신국 사상을 다윈의 '진화론'을 종교적 입장에서 해석하며 믿었다. 따라서 이 신국을 인간의 전 사회 생활을 포함하는 하나의 집합적 개념으로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신국의 교의는 사회 복음 그 자체라 믿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필사적인 경쟁의 법칙"(the law of tooth and nail)을 따르기 때문에 인간성을 모독하고 인간들을 원시 시대로 퇴행시키며, 사회 질서의 비기독교화를 초래한다고 비판한다. 자본주의의 이윤 추구는 약자와 무력한 사람들을 착취하는 것을 합법화할 뿐 아니라 기독교의 사랑의 정신을 무효화한다. 그리하여 결국은 웃음과, 관계와 윤리 정신을 잃고 만다고 하였다.

당시의 사회 복음주의자들은 구체적으로 (1)어린이 노동 문제, (2)여인들의 참정권. (3)교도소의 개선. (4)주택 문제, (5)단일세제 확립, (6)공장의 착취, (7)노예 폐지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노동 정의를 위해 교회와 노동 조합의 연대와 신국 운동의 일환으로 '노동 이익 증진회'와 '형제회'(the Brotherhood of the Kingdom)등을 조직하였다. 그러면서 하나님 아래 있는 모든 사람은 형제로서, 하나님의 은사의 청지기로서 부지런히 일할 의무를 다하자고 서로 독려했다. 이들은 노동을 사회적 가치의 표준으로, 하나님이 주신 의도적 기회로 보았다.

더 나아가 기독교는 본질상 혁명적인데, 예수는 구약의 예언자의 계승자로서 가난한 자가 공평하게 되고. 울부짖음이 들리지 않는 이상 국가를 건설하려 했다, 그래서 예수는 새 정신-새 삶의 모습-새 습관-새 제도- 곧 혁명이라 하였다. 하나님 나라는 기독교라는 종교의 목적론을 포함하며, 하나님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상 오늘의 위기와 장래의 가능성의 양 방면에 존재한다. 신국은 늘 직접적 행동을 촉진시키는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이 하나님은 자본주의의 그 방식과 정신과 결과에 반대하여 존재하시는 분이다.

라우쉔부쉬는 강조하기를. 신국은 교회 내부에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인간 생활의 전체를 포함한다. 그러므로 "죄는 개인 이상의 것"이어서 속죄의 교의도 또한 "사회적 연대의 관점"에서 설명되어야만 한다. 반 타스의 인간들의 죄가 합해져서 그리스도를 죽였다. 고로 개인의 죄가 공동체의 죄 위에 구축되는 한 그리스도는 오늘도 인류의 죄악 전체와 충돌한다.

3. 사회 복음 운동의 평가

이상과 같은, 라우쉔부쉬를 중심한 사회 복음의 신학은 몇 가지의 문제점을 노출시킨다. 첫째로 지나친 낙관론적 진화 사상과, 둘째로 예수와 기독교를 혁명과 동일시킨 점, 셋째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현 사회에서 곧바로 실현하려는 것, 넷째로는 악덕 독점 자본가의 횡포를 막기 위해서는 중요 기간 산업체를 국가가 운영해야 한다는 주장, 곧 전체주의의 폭군화를 내다보지 못한 점 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복음 신학 운동의 공헌을 들어 보면, (1)전통적 교회의 사명의 재평가와 전통적 기독교 교의를 사회적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하였고, (2)관념적 신학의 각성, (3)사회 질병의 고발과 치유, 즉 사회적 목화(social ministry)를 발전시켰고, (4)개인주의적 신앙에서 사회적 책임의 연대성 강조. (5)사회 의식과 선교신학 속에서 변함없이 살렸고, (6)사회 정의와 평화의 관점에서 볼 때 에큐메니칼 운동의 국제적 기구화와 발전에 공헌한 것" 등이다.

Ⅴ. 에큐메니칼 신학과 책임 사회의 이념

1. 책임 사회의 정의

책임 사회(Responsible Society)란 용어는 1848년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모인 최초의 세계교회협의회를 1년 앞두고, 이 대회를 위한 준비 자료를 검토하던 과정에서 대두된 말이다. 당시의 국제적 상황은 전체주의와 민주주의의 양대 진영으로 나뉘어 긴장된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었다. 이 무렵에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제3의 세력의 발전을 바라고 있던 때에, 크리스천도 이들 여러 국가 민족의 요구에 응답하기 위한 표준적 이념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암스테르담 회합의 메시지를 선언하게 된 것이다. 그 선언문에 의하면, 우리는 산업·농업·정치·직업·가정 등 각 분야에서 크리스천으로서 남녀의 의무가 무엇인가를 새롭게 인식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진리 안에서 '예'와 '아니오'를 바르게 말하도록 가르쳐 주시옵소서 라고 하나님에게 기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어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조롱하는 자와, 어떤 인간을 마치 물건이나 혹은 이익의 수단으로 취급하는 모든 제도와 프로그램과 개인에 대하여, 그리고 질서를 빙자하여 불의를 옹호하는 자와, 어떤 필연적인 운명이라 하며 전쟁의 씨를 뿌리는 모든 자에게 '아니오'를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비록 확실히는 알지 못하지만 의인이 생존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탐구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예'를 말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상과 같은 관심과 종교적 의무감에서 책임 사회의 정의를 마련하였다. 즉 책임 사회란 곧 그 사회의 '자유'가 '정의'와 공공 질서에 대해 '의무'를 인지하는 사람들의 자유이다. 또한 정치적 권력과 경제적 세력을 장악한 자들이 하나님과 민중 앞에서 그 실권을 행사하는 경우에 있어서 책임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교회는 실제로 책임적인 자유를 위하여 모든 인간 존재를 섬기는,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께 대한 책임적인 자리에 서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 대한 책임은 몇 가지의 윤리적 항목들을 전제하고 있는데. 그것들은 '정의의 존엄성'과 '종교적 자유'그리고 '세계적인 연대성' 등이다. 하나님께 대한 의무는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와 정의를 궁극적인 문제로 삼는다는 뜻도 된다.

2.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의 이념들

신국 사상은 구약과 신약 전체에 편만되어 있으며, 그 메시지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특히 신국 사상은 예수의 교훈과 선포에서 급진적으로 발전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의 생활을 바로잡아 주었으며, 모든 고난과 좌절을 극복하게 하길,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문화를 수립해 가는 데에 원동력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장차 도래할 하나님 나라의 빛 안에서 고난받는 백성과 교회는 하나님의 승리를 대망하고 그 권력을 증거하며 그 나라에 복종한다.

하나님 나라는 교회와 동일한 것은 아니다, 교회가 시간에 대해 존재한다면 하나님 나라는 시간을 초월해 있다. 하나님 나라는 역사가 존재하는 한 그 자체의 완전한 역사를 갖고 있지만,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 나라에 그 기원을 둔 공동체로서 불완전한 역사를 갖고 있다. 임박해 오고 있는 하나님 나라와 제한된 시간, 이 사이에 교회가 서 있고 하나님의 백성들의 종말론적 삶이 영위된다. 칼 바르트는 육박해 들어오는 하나님 나라와 한정된 시간 사이에서 이중적 성장이 요청된다고 했다. 그 하나는 그리스도 공동체의 확장이고, 다른 하나는 공동체 성원들의 내적 성숙이다.

그러나 역사 안에서의 인간의 모든 제도나 이념이나 성취는 하나님 나라의 상대적 성취에 지나지 않는다. 실로 인간이 수립하는 모든 사회 질서는 시간의 제약을 받는 일시적이고도 상대적인 것이다. 이것은 책임 사회의 경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 나라는 역사적 현실 속에서 는 완전히 실현할 수 없는 영원한 사회적 이념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모든 상대적인 윤리적 노력과 역동적 관계를 가진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나라는 한편으로는 인간의 모든 역사적, 윤리적 성취가 미달한 것으로 심판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인간의 윤리적 노력을 그 이념으로 부단히 끌어올리는 '구원'의 역할을 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라는 궁극적 이념은 무정부적 상대주의를 극복하게 하면서, 또한 세속적 유토피아주의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히는 광신적 절대주의를 초극하게 한다. 즉 "하나님의 나라가 가지는 궁극적 성격은 모든 인간적 사회 질서에 대하여 비판적 -초월적(critical-transcendent)이다. 다만 불완전한 교회이지만 십자가의 공로로 교회에 말씀이 맡겨져 있으므로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Treuhanderin)이며 희망의 표징으로 서 있다. 교회가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의 팔 아래 있어서 그의 요청에 사는 정도에 따라서. 그리고 그런 한에서 희망의 표징이 된다,

Ⅵ. 결론

지금까지 -교회와 사회'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더듬어 살펴왔다. 교회와 사회의 관계를 확대시켜 보면, 기독교와 국가, 종교와 세속, 이스라엘과 이방 나라, 신의 백성과 세상 사람, 교황의 권위와 황제권, 신성과 인성, 하늘과 땅, 시간과 영원,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들과 상통하는 연속적·비연속적 대비체(對比體)들이다.

1.신성과 인성

교회와 사회의 관계를 교회사를 따라 올라가 보면, 그 먼 원인은 우선 그리스도 논쟁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추측된다. 그리스도 논쟁은 앞에서 적은 '신성과 인성'의 항목에 해당된다. 원(原)교회에 있어서 가장 중대한 과제는 아무래도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고백하며 믿느냐 하는 문제였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였는가는 바로 이 그리스도론 때문에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가 돌이킬 수 없이 분열되어 역사화된 사실만 보아도 능히 알 수 있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중요한 회의였던 니케아 회의(325년) 이후 예기치 않은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 문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신·인 관계에 관한 것이었다. 니케아 논쟁 때 터툴리알(Tertullian)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신성(full deity), 완전한 인성(full manhood 이 서로 혼동·손상된 없이 존재한다."는 분명한 정의로 서방 교회는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시릴(Cyril of Alexandria, 412--444)을 비롯한 동방교회에서는 '2성1인격'Una person)이 이 예수의 인격의 통일성을 해친다 하면서, 예수의 수육(受肉) 이후 '신성'과 '인성'이 합하여 '한 본성'이 되었다는 단성론(monophysitism)을 주장하며 서방 교회와 분열되었다. 즉 동방교회는 예수의 신성을 강조하였다.

2. 교권과 정권

이처럼 단성론쟁이 전개되던 때에 교황 겔라시우스(492--496)가 로마황제에게 편지로 "이 세계는 원칙상 두 세력이 다스리는데 '교황의 거룩한 권위'와 '황제의 권세'이다. 그런데 교황이 더 중요함은 군왕들도 신의 심판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선언하고 나섰다. 그후 교황 레오 3세가 800년 성탄일에 무릎을 꿇은 왕에게 로마 제국 왕관을 씌워 주었다. 이 대관식으로 말미암아 교황이 왕권을 주기도, 빼앗기도 할 가능성이 생기게 되었고, 이 사건은 황제의 권세와 교황의 권위 사이의 문제로 중세기 내내 논쟁거리가 되었다.

당시의 교회와 국가는 한 방패의 양면으로서 하나는 현세의 행복을, 다른 하나는 내세의 축복으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라 보았다. 그러면서도 서로가 제각기 어거스틴의 '하나님의 도성'의 꿈을 실현하려고 하였다.

그러다가 11세기 말에 황제권 수호자들은 '왕권신수설'(The Divine Right of Kings)을 주장하며 나섰다. 그러면서 왕은 신의 관유로 제관식을 수행함으로써. 국가의 정점에 서서 '그리스도·왕'을 상징하며, 왕은 성별되어 그리스도의 '하늘'(神性)과 '땅'(人性)을 다 대표하기에 황제는 종교와 세속을 모두 다스리노라고 선포하였다. 이러한 황제권과 교회의 권위와의 우위 다툼은 단테(Dante Alighieri, 1265-1321)의 '군주론'(1318)이후부터 상호 불가침의 평화를 찾아야 한다는 소리가 높아 갔다.

단테와 동시대인이면서 놀랄 만큼 현대적인 마르실리우스(Padua Marsilius, ? 1342)는 '평화의 옹호자'(Defenser Pacis, 1324)를 내놓았다. 그는 이 과격한 저서에서 "국가는 그 권위를 백성에게서 받았으니 백성에게 군왕을 세우거나 폐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교황권은 베드로가 아니라 콘스탄틴이 준 것이며. 교회의 모든 권리는 교직자와 평신도로 구성된 종교 회의가 갖는다"고 강변하였다. 이같은 주장으로 민주 운동의 선구자가 되었으며, 이 마르실리우스의 사상은 종교개혁과 프랑스 혁명에 이르러 그 결실을 보게 되었다.

3. 모두가 창조 질서의 회복을 위하여

이 소론을 맺으면서 잠시 교회 역사상 신성과 인성, 기독교와 국가, 교권과 정권 상호간에 빚어진 자기 중심적 주장과 논란들을 단편적으로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러한 논란들은 종교 개혁기인 근대에까지 계속되어 온 사실을 볼 때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제야말로 교회와 사회는 다 함께 종말론적 긴급성을 공감하면서 시급히 지향해야 할 지상의 한 과제가 있음을 보아야만 한다. 그 종말론적 과제는 곧 '창조 질서의 회복'이 아닐 수 없다. 창조 질서의 교란, 생명의 변질과 중병의 징후들을 그야말로 종말론의 현실적 주제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종말론은 어김없이 우주적 스케일을 갖는 것이기 때문에, 따라서 신학하는 작업이나 생명 문화 운동은 생명 중심으로 또는 우주 중심으로 급선회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을 위시한 생명의 존재론적 틀은 본래적으로 우주적 스케일로밖에는 다르게 생각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건대 종래의 신학하는 일은 압도적으로 구속사적 방법론에 치우쳐 있었기에, 역사에서 자연은 저 멀리 밀려나 '난 외의 것'(marginal thing)으로서 신학의 가장자리에 방치되고 있다.

그래서 "자연은 언제나 구속사 이해를 위한 해석학적 도구로만 이용하는 데 불과했다." 이제 구속사 일변도의 신학에서부터 자연 경험 그 자체를 통하여 인간 역사를 조망하는 새로운 '우주적 신학'이 수립되어야 할 때이다. 이러한 자연 신학의 수립을 위한 한 방법으로, 우선 신학하는 방법과 가장 가깝다고 볼 수 있는 예술을 신학에 결합시키는 일이다. 그 이유는 예술이 갖는 본성적 태도와 그 정신의 근본 철학은 창작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자연 그 자체를 '모방'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연을 참으로 모방한다는 것은 곧 '성실'이요. '겸허'이며, 생명에 대한 '경외'이다.

따라서 자연을 겸허하고 성실히 모방하는 일은, 더 나아가 자연 그 자체마저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그의 의미와 섭리를 드러내어 그것을 고백케 한다. 그러기에 플라톤이 '공화국'(The Republic)에서 이러한 모방 성향을 들어 추방한 예술인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오히려 그의 「시학」에서 예술인을 높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을 것이다. 예술 철학에서 정의하는 예술의 본질은, 곧 예술은 일종의 인식 활동이요, 예술 작품은 지식의 한 형태라 한다. 정녕 예술인이 자연을 아무리 모방하여 경외한다 하더라도 결코 '우상'을 만들어 내지는 않는다. 그는 다만 자연을 보다 완전하게 어디까지나 '모방'하려 하면서 '아름다움'을 심화 혹은 승화시켜 갈 따름이다.

이렇게 인간은 자연을 모방하면서 일깨워 주고, 자연은 하나님을 찬미한다. 확실히 '자연'과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를 나타내는 협동체 내지 공동 주체이다. 이같은 사상은 동양의 삶을 가꾸어 온 자연의 '모성적 이미지'와 자연주의와도 상통한다. 몰트만(Jiirgen Moltmann)이 신비주의 사상에 대해 언급한 글 가운데서, "전자연은 느끼는 물화된 신의 사랑에 불과한 것"이거나, 그의 창조 의지의 원색이 굴절되고 탈색된 변문(變文)은 아니다. 주지하고 있는 대로 범재신론(Panentheism)'에서도 자연 혹은 우주는 하나님의 '몸'이라 한다.

이미 14세기에 신비주의 동정자들의 그룹인 '신의 친구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저작인 '독일신학'(Theolgia Germanica, German Theology)에서 의미 깊은 말을 하였다. "만물은 하나님에게 있어서 '하나'이며, 그래서 그 하나는 하나님에게 있어서 '모두'이다. " 따라서 하나님의 고통. 즉 하나님은 스스로 모든 악과 죄와 벌을 자신 안으로 감수하여 받아들임으로써 동시에 이것들을 지양하셨다.

그러므로 바울에게서 심화된 '의인론'도 종래의 신학의 인간 중심적 비평을 넘어서 나가야 한다. 정히 이지러지고 병들어 신음하며 탄식하는 하나님의 우주 전생태계의 구원과, 종말론적 영광의 공동 상속자가 되기 위해 인간과 같이 자연도 의인화(justification)되는, "우주론적 칭의 신학"이 발전되어야 하겠다, 이것이 오늘의 교회와 사회가 공유해야 할 역사적 주제이다.